156. 아아 탕수육은 언제부터 부먹파와 찍먹파로 갈라서게 된 걸까요
백리다는 묶인 채 스피커를 노려보았다.
‘대체 저 보스라는 작자, 원하는 게 뭐지?’
아까부터 질문의 상태가 상당히 이상했다.
-지직……그래, 이제 본론으로 넘어갈 때가 됐군.
“…….”
‘진짜 본론으로 넘어가긴 할 건가?’
진을 빼려는 목적이라면 성공이다. 백리다는 빙빙 도는 대화에 지쳐 가고 있었다. 차라리 제대로 추궁을 한다면 훈련받은 대로 마인드컨트롤을 해 가며 모르쇠로 일관할 텐데, 진지하게 이상한 질문을 던져대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기 힘들었다.
이 상황에서 빈틈없는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마이너 패치와 연관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일반인이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며 굳건히 묵비권을 고수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렇다고 대꾸를 하고 발악을 하자니, 이런 정신 나간 질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답이 없었다.
‘생각해, 생각해야 한다, 백리다. 마이너 패치와 관련 없는 인간이라면 저 질문에 뭐라고 답했을까?’
매 순간마다 적절한 반응을 궁리하다 보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무리 마이너 패치의 조직원이라지만 백리다는 아직 어린 견습 조직원. 완벽한 대처를 보이기에 아직 미완품에 가까운 스파이였다. 그 와중에도 하빈의 질문은 이어졌다.
-네가 이제껏 조사한 것 중 절반은 모두 현하빈의 맛집 방문을 기록한 것이었다.
‘……정말로 보고서를 입수한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물어볼 정도면 말이다.
백리다의 보고서 중 반은 현하빈의 생활, 나머지 반은 피데스와 강태서의 생활. 겸사겸사 채남매의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피데스와 채남매, 강태서를 조사한 건 이해가 되었다. 마이너 패치가 경계하는 숙적 피데스와, 한국의 거물 랭커들.
-그런데 현하빈을 가장 많이 조사하다니…… 현하빈을 감시해서 얻어낸 게 뭐지? 역시 맛집에 혹했나?
백리다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디.
“그놈의 맛집! 관심 없다고!”
‘현하빈 그 녀석, 그런 것밖에 안 찾으니까 그걸 감시하느라 얼마나 답답했는데!’
그녀의 대답에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가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건 듣던 중 정말 다행이군.
그게 듣던 중 다행일 게 뭐란 말인가? 백리다는 티 나지 않게 어금니 안쪽을 깨물었다.
‘저 보스는, 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거야?’
분명 뭔가를 노리고 있는 듯한데 뭔지를 모르겠다.
사실 백리다의 촉은 정확했다. 그녀의 추측대로, 현하빈은 뭔가를 노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현하빈이 아닌, 백리다 곁에 있던 이프시네가 백리다가 동요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독심술.’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던 이프시네는 흘깃 백리다 쪽을 건너보았다.
‘역시 마신님! 훌륭하게 첩자를 몰아가고 계셔!’
독심술은 이프시네가 몽마로서 가지고 있는 비장의 무기 중 하나였다.
몽마들이 쓰는 공격이란 그런 종류였다. 상대의 꿈에 파고들어 가 약점을 잡거나, 악몽을 보여주어 움츠러들게 하거나. 그렇게 상대의 의도와 약점을 읽고 정신을 파괴하는 방식이 몽마들의 싸움 방식.
아무리 토끼 같은 이프시네라고 해도 그런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독심술은 상대의 마음이 흔들릴 때만 쓸 수 있다는 약점이 있어.’
상대가 동요하고 무너지는 틈을 엿보는 고도의 기술. 아무리 스킬이 있다고 해도 굳건하게 훈련을 받은 인간의 마음을 악몽 없이 파고들기란 쉽지 않았다.
‘……크릭샤 님이라면 단번에 해냈겠지.’
원래 마족의 방식이었다면 가차 없이 악몽을 보여주고, 고문을 통해 파고드는 방식을 썼을지도 모른다. 원래는 크릭샤가 고문으로 정보를 캐내자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마신님, 그냥 손톱을 하나씩 뽑으십죠. 그럼 순식간에 이 인간의 마음도 무너질 겁니다.’
‘에엥, 손톱을 왜 뽑아?’
‘역시 그걸론 좀 약하겠죠? 그럼 고문용으로 유명한 마물, 독가시거머리를 공수해서 그 통에 집어넣고 XXX를 XXX한 다음…….’
시범용이랍시고 ‘키에엑!’거리는 독가시거머리를 들어 현하빈 앞에 꿈틀꿈틀 보여주던 크릭샤. 그 끔찍한 몰골에 현하빈은 먹었던 점심이 도로 올라올 뻔했다.
‘으엑, 그만! 어우, 뭔 고어물을 찍고 있어? 으으, 입맛 떨어지네. 오늘 저녁엔 추어탕 먹으려고 했었는데 메뉴 바꿔야겠다.’
하빈은 질색하며 크릭샤의 요청을 기각했다. 물론 그 결정에는 나름의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우린 마계 출신이라는 정보 자체를 저쪽에 주면 안 돼. 차라리 공권력이나 비밀 조직에서 추궁하는 척을 해야지.’
만에 하나 백리다가 탈출할 가능성, 그리고 백리다를 공권력 수사기관에 넘겨 공조할 가능성까지 모두 열어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너무 마계와 관계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크릭샤의 고문 방식보단 이프시네의 독심술이 효과적일지도 몰라.’
상대가 정보를 뺏겼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정보를 뽑아낼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더더욱 방심하고, 더 많은 양의 정보를 흘리겠지. 또, 작정하고 고문하면 오히려 거짓 정보를 불거나 정신을 놓아버릴 수도 있으니.
‘그럼 신체적 고문 말고 어떤 방식으로 상대의 페이스를 흔들 거란 말씀이십니까?’
크릭샤는 영 그 부분을 못마땅해했다. 하빈은 걱정 말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다들 내가 하는 모습이나 잘 지켜보라구!’
그리고 하빈이 백리다에게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거다.
-……백리다. 지금 이 질문에 정말 잘 대답해야 할 거야. 이 대답에 마이너 패치의 존망이 달렸다.
“몇 번을 말해? 난 마이너 패치와 관계없다고! 이거나 풀어!”
-잘 대답해. 너는 민트초코를 좋아하냐, 싫어하냐?
“……?”
-싫어한다고 대답한다면 분노한 민초단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조, 좋아하는 편…….”
-뭐? 치약 맛을 왜 좋아해? 넌 방금 반민초단들의 원성을 샀다! 앞으로 반민초단들이 널 끊임없이 괴롭힐 거야!
“……크윽!”
‘대체 민초단은 뭐고 반민초단은 또 뭐야?’
급하게 스파이에 투입되어 한국의 인터넷 밈에 대한 숙지가 부족했던 백리다. 그녀는 저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설마 진짜로 민초단이나 반민초단이라는 비밀 조직이 있는 건가? 그런 단체에게 붙잡힌 거면 어떡하지?’
하긴 납치당할 때부터도 범상치가 않았다. 정석적인 방식으로 습격하는 게 아닌, 얼렁뚱땅한 납치 행각에, 깨어난 뒤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들.
‘여기 이 조직, 사실 순 또라이들만 모여 있는 거 아냐?’
그냥 마이너 패치에게 원한을 가진 사이비 종교단체 같은 곳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면서 왜 일은 빈틈없이 잘 하는 거지?’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은 수신기와 발신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백리다에게서 압수한 데다, 대체 어떻게 해킹했는지 백리다의 보고서까지 줄줄 읊고 있다.
‘이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은…… SPES? 아니, 아니면 정말로 한국의 국정원이 원래 이런 타입인가?’
계속해서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던 백리다는 스스로 진이 빠져 멘탈이 무너지고 말았다.
-백리다! 다음은 파인애플이야. 파인애플 들어간 피자를 어떻게 생각하냐? 응?
“…….”
-셋 안에 대답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파인애플 피자를 좋아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겠어!
“미친놈…….”
그 시점이었다. 이프시네가 카메라에 대고 수신호를 보냈다.
‘마신님! 이제 제대로 된 질문을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백리다의 멘탈이 무너진 덕에 독심술이 잘 듣고 있었다. 이제 백리다의 마음속 목소리가 이프시네에게 꽤 또렷하게 들린다.
이프시네는 척척 기록용 양피지를 꺼냈다.
“뭐야? 뭘 꺼내는 거야?”
백리다가 이프시네에게 물었다.
‘왜 저런 양피지를 꺼내지?’
취조실에서 기록할 땐 대부분 자판을 쓰지 않나? 키보드를 쓸 텐데.
이프시네는 타자기에 아직 적응을 못 해서 평소 쓰던 양피지를 쓴 것뿐이었지만 백리다가 보기엔 달랐다.
‘아이템인가? 저건 무슨 아이템이지?’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를 백리다가 생각할 틈을 주질 않았다.
-백리다! 집중해야지! 그래서 붕어빵은 머리부터 먹나? 아님 꼬리부터야?
“그딴 거 몰라!”
-뭐? 백리다, 한국인인데 붕어빵을 몰라? 역시 첩자가 맞았군!
“……하.”
백리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저런 멍청한 질문에는 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완전히 묵비권으로 전략을 바꾼, 그 순간이었다.
-……그래, 그럼 다음 질문이야. 네가 갑자기 울림국제고에 투입된 이유, 그건 이번 던전 때문인가?
“뭐……?”
‘왜 갑자기 핵심적인 질문을?’
이프시네는 백리다의 ‘왜 갑자기 핵심적인 질문을?’이라는 문장을 그대로 양피지에 슥슥 적었다. 이프시네의 등 뒤에도 카메라가 달려 있었기에 그녀가 적는 내용은 하빈에게도 실시간으로 보인다.
-자자, 다음 질문, 너한테 감시를 맡긴 사람은 누구지?
‘에라타 님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어.’
백리다는 독심술에 대한 방비는 없었다.
애초에 게이트 사태 이후로 발견된 능력 중에 독심술은 아직 없었기에 아무도 독심술에 대한 방비까지는 하지 않았다.
마물이 헌터의 움직임을 읽고 싸우는 사례가 몇몇 발견되긴 했지만, 사람 그러니까 각성자가 직접 독심술을 발현한 경우나, 마음을 읽는 아이템이 발견된 경우는 없었다.
만약 있었다간 관리자와 사도의 정체가 순식간에 밝혀질 것을 우려해 그런 종류의 능력이 각성되지 않도록 관리자 선에서 수를 쓴 것이었다.
그나마 몬스터 진영으로 분류된 몽마, 그중에서도 가주이자 마왕인 이프시네였기에 이 정도나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상대의 멘탈이 무너질 때만 쓸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에라타 님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어’라는 마음을 읽어버린 이프시네. 그 내용을 현하빈 또한 알아버렸다.
‘흐음, 에라타라고?’
에라타는 마이너 패치의 수장. 악명높은 이름이다. 마이너 패치의 수장이 대체 왜 현하빈을 감시하라고 했단 말인가? 하빈은 대놓고 백리다에게 그걸 물었다.
-근데 왜 현하빈을 감시하라고 한 거지?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다! 그 땡땡이만 치러 다니는 애를 왜 감시하라 한 건지! 아, 채남매랑 강태서와 친분이 있어서 그런가?’
안타깝게도 말단 백리다는 에라타의 의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근데 나 원래 사이비 종교 관리 부서였는데 뭐 하러 이런 스파이 쪽에 뛰어들어서, 이런 고생을 하고있는 거야? 내가 미쳤지!’
-……!
* * *
“사이비 종교?”
“사이비 종교 부서라고?”
백리다의 뜻밖의 소속에 하빈과 지석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채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마이너 패치가 사이비 종교에 발을 뻗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래? 그럼 왜 진작 안 잡았던 건데?”
이제껏 피데스는 다른 곳은 잘 털었지만 아직 사이비 종교를 턴 적은 드물었다. 채지석이 입을 열었다.
“음, 여러 아무래도 사이비 종교가 워낙 많아서가 아닐까?”
시스템을 믿는 사이비, 멸망을 믿는 사이비, 신세계의 신을 믿는 사이비, 기어 다니는 혼돈을 믿는 사이비…….
게이트 사태 이후로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이비 종교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같은 존재를 믿는 종교끼리도 종파와 교리가 각양각색.
“종교라는 게 워낙 민감하잖아?”
설사 피데스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중 하나의 배후에 마이너 패치가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건드리는 건 어렵다.
예를 들어 시스템을 믿는 종교단체 중 하나를 털었다고 해보자, 다른 시스템 종교단체가 가만히 있겠는가? 우루루 반 피데스파로 돌아서서 사람들을 선동할 것이다.
“사람들의 분란과 혼란만 가속화시킬 것 같아서 가만히 있는 걸걸?”
“흐음……. 어쨌든 마이너 패치가 사이비 종교재단을 운영하는 건 확실한 거구나?”
“어, 그건 우리 쪽에서도 확인한 정보야.”
“흐음…….”
고개를 기울인 하빈이 생각에 잠긴 듯 잠깐 침묵했다. 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린 그녀가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채씨, 사이비 종교면 돈 많겠지?”
“……응?”
어딘가 들뜬, 꿍꿍이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채지석은 하빈을 돌아보았다. 이제 보니 하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재차 물었다.
“일단 백 억은 넘게 쌓여 있을까? 있겠지?”
“이, 있겠지?”
“오호…….”
허공에 있는 돈다발이라도 세는 듯 손을 까닥까닥 흔들어 보는 현하빈. 그 모습을 보며 지석은 어쩐지 섬뜩해졌다.
“야, 왜 그래……. 무섭게…….”
설마 사이비 종교 털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