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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51) (151/268)

151. 모든 창작물에서, 명탐정과 같은 반이 되는 건 위험한 선택이다. (4)

“당연히 이상했지!”

하빈은 닭다리를 휘휘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일단 첫 만남부터…… 그래! 다른 수많은 학생들을 다 놔두고 왜 나한테 학교 안내를 해달라고 했는지가 참 희한했어.”

물론 하빈이 바로 근처 자리였기 때문에 수상하다고 짚고 넘어가기에는 상당히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백리다는 그런 애매한 사각지대를 잘 이용했다. 굳이 꼽자면 ‘수상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보면 도저히 수상하다고는 볼 수 없는 그런 애매함.

“하지만 말야, 근처에 도와줄 학생이 그렇게나 많은데 굳이 심각한 표정으로 폰을 보고 있는 나를 꼭 귀찮게 했어야 할까? 처음 자기소개할 때도 상당히 심드렁하게 반응했는데?”

‘현하빈도 본인이 심드렁한 태도인 걸 알고 있구나.’

어쨌든 굳이굳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학생들을 제치고 하빈을 선택한 건 그녀로서는 조금 이해가 안 되었던 모양.

이프시네가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저는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마신님이 너무 예쁘고 멋지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친해지고 싶었던 거죠!”

“…….”

곁에 있던 크릭샤는 이프시네를 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광신도인 건지 사회생활을 잘 하는 건지…….’

레몬이 소심하게 끼어들었다.

“어, 저라면 이분에게 먼저 말 거는 거 무서웠을 것 같은……데.”

레몬의 반응에 하빈이 조금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엥? 그렇다고 무서울 것까진 없잖아. 크릭샤야. 네가 보기엔 내가 무섭니?”

‘당연히 무섭지!’

그러나 크릭샤는 이프시네를 보고 배운 게 있었기에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에 머금었다.

“하하, 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카리스마 있는 것입죠. 멋지십니다.”

어정쩡하게 엄지를 척, 하고 치켜드는 크릭샤. 하빈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치?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입죠.”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백리다도 정말 친해지고 싶어서 말 걸었을 수도 있으니까.”

하빈은 자신이 백리다를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며 흐음,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힘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의심스럽긴 하네. 비밀 조직원일 수도 있겠어.”

아헤자르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현하빈 너도 힘을 숨기고 있지 않느냐?]

“뭐? 나랑은 사정이 다르지! 나는 선량한 힘숨찐이지만, 걔는 전학생 힘숨찐인걸!”

모름지기 전학생은 전학생이라는 점에서 아이덴티티를 갖는 법이다. 알 수 없는 사연이 있다거나 초능력자거나 미래인이거나 비밀 조직원이라거나.

“이 타이밍에 온 전학생 신분에 더해 공교롭게도 힘까지 숨긴 힘숨찐이다? 이건 무조건 수상하지. 절대 조사해야 해.”

하빈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던 채지세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응, 그래서 우리끼리도 조금 논의하던 중이었어. 힘을 숨기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힘을 가지고 있는 걸 모르는지도 알아봐야 했었거든. 나이가 어린 경우 본인이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걸 발현시키는 법을 몰라서 F급에 머문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하지만…….”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예지 능력을 써 봐도 역시 백리다라는 아이는 참 수상하다며 끼어듭니다.]

지세는 슬쩍 이프시네와 크릭샤 쪽을 살폈다. 예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저쪽한테까지 밝힐 생각은 없었기에 돌려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걔한테 얽혀 있는 징조들이 심상치가 않아서. 이건 조금 앞서나간 추측일 수 있으니 그냥 참고만 해. 어쩌면 그 백리다라는 애…….”

말을 잠시 끊었던 채지세가 얕은 한숨과 함께 설명을 끝맺었다.

“어쩌면 그 애, 마이너 패치의 끄나풀일지도 몰라.”

“뭐?”

마이너 패치의 끄나풀?

마이너 패치라는 단어에 하빈의 표정은 괴상해졌다가, 찌푸려졌다가, 다시 확 밝아졌다.

“마이너 패치라면! 그 백 억 가져간 멸린 말치들! 그 녀석들이랑 연관된 거지?”

“그치.”

그때, 아헤자르가 불쑥 끼어들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멸린 말치가 아니라 말린 멸…….]

“아잇! 잘잘아, 낄끼빠빠 하자!”

[…….]

시무룩해진 아헤자르를 뒤로하고 하빈이 씨익 웃었다. 꼬리를 잡고 싶어도 못 잡던 놈들인데, 이렇게 나타나 주다니!

“근데 왜 그 녀석들이 여기 전학생을 보낸 걸까?”

“피데스가 이번 던전의 원인이 마이너 패치라고 했잖아. 그런데 던전이 너무 쉽게 공략되어 버렸으니 무슨 일인가 싶어서 조사차 보낸 걸지도.”

지세가 나름의 추측을 덧붙였다.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대화에 끼지 못한 크릭샤가 끼어들었다.

“오, 마이너 패치? 그놈들이 나쁜 놈들입니까?”

그의 물음에 하빈이 재깍 큰 소리로 외쳤다.

“당연히 아아주 나쁜 놈들이지! 그놈들이 얼마나 흉악한 놈들인지 알아? 무려 내 전 재산을 들고 날랐어!”

“세상에!”

이프시네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떻게 우리 마신님의 재산을!”

그녀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듯 토끼 같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마계대전을 일으켜야 할까요?”

“마, 마계대전?”

레몬이 치킨 날개를 든 채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하빈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저었다.

“엥? 그 정도는 아냐. 내가 해결할게.”

마계대전이라니. 그런 건 이목을 너무 끌잖는가. 조용히 선량하게 살아가는 게 중요한 하빈에게 그런 방식은 어그로를 많이 끌어서 사양이었다!

물론 하빈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이프시네는 비장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래도…… 분부만 내리신다면 언제든 준비하겠습니다.”

뭘 준비할 셈인 건데.

그 대화를 듣던 채지석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생각에 잠겼던 하빈이 덧붙였다.

“아, 그래도 나중에 정보 털거나 하는 건 너희 도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온갖 저주와 주술에 능통한 게 마족들이다. 하빈의 스킬들은 너무 위력이 세기도 하고 얻은 지도 얼마 안 되었으니 세심한 컨트롤을 위해서라면 마족들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지도.

이프시네가 신난 얼굴로 소리쳤다.

“맡겨주세요! 정보 터는 건 여기 릭샤릭샤님이 전문이세요!”

‘왜 나를 갑자기 팔아?!’

조용히 치킨 뜯던 크릭샤는 식겁했지만 이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넵. 물론입죠! 저희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 주십쇼. 기억 속에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5,000년 전 수요일의 저녁 식사 메뉴까지도 불게 한 적이 있답니다.”

후후후 사악한 웃음을 짓는 크릭샤. 그걸 조용히 듣고 있던 레몬은 히익 딸꾹질을 했다. 사실 레몬은 크릭샤와 이프시네를 봤을 때부터 지적하고 싶은 게 많았다.

‘결국 저 여자, 마신 맞잖아!’

마신이 아니라고 잡아뗄 때는 언제고, 마왕들을 거느리며 음흉한 모략을 꾸미고 있었다!

‘마신인 척하기는 무슨? 지금 마왕들 거느리는 폼이랑 명령하는 태도가 본 투 비 마신이면서!’

대체 누가 마왕들을 저렇게 편하게 거느린단 말인가. 게다가 레몬이 알기로 마왕이라는 존재들은 바보가 아니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도 좀처럼 굽히지 않는 오만함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족속들.

그런 자들이 바짝 엎드려서 진심으로 따른다고?

‘역시 보통 거물이 아니었어.’

마신이 맞든 아니든, 정말로 보통 존재는 아닌 모양이다. 레몬은 머리를 굴리며 마저 치킨을 바삭, 베어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뭐라고 지적하거나 화낼 수 없는 이유는 하빈이 무서워서도 있었지만…….

생각을 멈춘 레몬은 치킨을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젠장, 이거 너무 맛있잖아…….’

바로 가져온 음식들이 너무 맛있었다는 점이었다.

바삭한 튀김옷 아래 야들야들 육즙이 흐르는 닭고기라니. 그 황홀한 맛에 레몬은 눈물을 찔끔 보일 뻔한 걸 참아야만 했다.

‘어떻게 이런 음식이 있는 거지……?’

너무 오랜만에 음식을 맛보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서 그런 걸까. 레몬은 조금만 긴장을 놓았다간 성좌로서의 체면도 잊고 허겁지겁 먹는 꼴을 보일 것 같았다.

‘이런 음식을 자주 가져와 주신다면야 얼마든지…… 핫, 넘어가면 안 돼!’

비록 하빈에게 협조하기로 했고, 그녀와 모종의 신뢰 관계를 맺었지만 그래도 경계해야 한다. 마신으로 활동하면서 이공간도 넘나들 수 있는 상식 파괴의 인물. 이 상대가 독이 될지 득이 될지…….

그가 요리조리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저기, 급하게 먹는 거 같은데 이거라도 마시는 게 어때?”

“……?”

못 먹은 듯 울먹이며 치킨을 먹는 레몬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채지석이 종이컵에 슾흐라이트와 얼음을 담아 건넸다. 레몬은 말똥말똥 컵과 치킨을 번갈아 보았다. 곧이어 조심스럽게 슾흐라이트를 꿀꺽 마셔보는 레몬.

“……!”

상큼하고 시원한 탄산에 그동안의 기름진 맛이 깔끔하게 싹 씻겨 내려갔다.

“마,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레몬은 흘끔 채남매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들은 느낌이 좋은데.’

채남매를 보고 있으면 과거 올곧고 바른 성품을 지닌 영웅들을 봤을 때의 느낌이 든다. 무력도, 인성도.

‘한쪽은 마왕 두 명, 다른 한쪽은 용사 두 명……?’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 같은데, 다 같이 모여서 치킨을 뜯다니.

‘내가 꿈을 꾸나?’

아리송한 표정으로 탄산음료를 홀짝이는 레몬. 하빈은 흐음, 하고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따.

“어쨌든 백리다라는 애가 마이너 패치 소속이면, 그 녀석을 털면 뭔가 나온다는 거잖아?”

“턴다고?”

“응! 털어야지! 내 백 억이 나올 때까지 탈탈, 탈탈!”

하빈이 빨랫감을 터는 동작으로 손짓을 했다. 채지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쪽이 스파이라면 오히려 섣불리 접근하는 게 위험해. 게다가 우리는 교사 신분이라 함부로 학생을 대하는 건 좀…….”

이야기를 듣던 하빈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럴 수 있겠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납치하고 추궁하는 건 좀 위험하지. 상대가 학생이기까지 하고.”

자연스럽게 내뱉는 납치와 위험이란 단어에 채지석이 지적했다.

“나, 납치? 설마 벌써 백리다를 납치할 계획까지 세운 거야?”

목소리에 황당함이 전해져 왔다. 하빈은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채남매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빛 솔라리스다. 대단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예지력과 합법적 정보 수집으로 얻은 것들. 솔라리스 인원들이 범죄 조직을 납치해 정보를 캐낸다거나 하는 뒷세계스러운 일을 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당황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빈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납치라니, 그게 무슨 무서운 소리야, 채씨? 난 아주 선량한 힘숨찐이라구. 물론 내 돈을 가져간 놈들만큼은 절대절대 용서할 수 없지만!”

잃어버린 백 억이 생각났는지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짓던 하빈이 말을 덧붙였다.

“사람을 데려오는 데는 말이야, 꼭 납치라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니야. 합법적으로는…… 직접 제 발로 오게 만들면 된다구.”

하빈이 꿍꿍이가 가득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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