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모든 창작물에서, 명탐정과 같은 반이 되는 건 위험한 선택이다. (1)
“흐응,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
마이너 패치 인원들이 모두 귀가한 이후, 에라타는 홀로 회의실에 남아 턱을 괴고 있었다.
“피데스 그 X끼는 절대 홀로 SSS급을 공략 성공할 만한 능력자가 아닌데.”
에라타는 몇 번 피데스와 일대일로 승부를 벌인 적이 있었다. 몸을 사리는 에라타의 성향상 매번 싸우다 말고 치트를 써서 생존해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있었다.
“……최근에 겪은 걸로만 봐도 절대 그 경지가 아니었단 말이지.”
에라타는 월드 랭킹 3위. 아무리 1위의 넘사벽 피데스라지만 에라타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격차는 아닐 것이다.
“뭐, 듣자 하니 26층이랑 50층을 공략했다던데 그 덕에 레벨업 좀 했나?”
아니지, 레벨업을 좀 했다고 해도 역시 이상하다.
“……전원 생존이 떴으니까.”
에라타는 뉴스 브리핑을 다시 한번 훑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전원 생존이라니.
이건 아무리 봐도 불가능이었다. 당장 에라타에게 치트와 정보를 다 알려주고 시도하라 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을 불가능의 영역.
다른 평범한 B급 던전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게 사망자였다. 아무리 비상 대피 교육이 잘 되었다 해도 던전에 휘말린 평범한 학생들이 SSS급이라는 극악의 난이도에서 모두 생존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럼…… 역시 네 번째가 실수했나?”
SSS급 던전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던전 자체에 하자가 있었다는 것밖에 설명이 안 된다. 그러지 않고서야 피데스의 능력으로 커버할 수 없다. 게다가 피데스는 방송에다 대고 ‘던전에 수상한 부분이 많았다.’, ‘문제점이 있었다.’라고 지적까지 했으니.
“어쩌면 피데스는 홀로 들어갔다가 던전의 허점을 발견하고 그걸 공략해낸 게 맞을지도.”
홀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에라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 아무리 혼자 생각하면 뭐 해? 진상을 알려면 네 번째가 살아 있었어야 했는데! 이미 그X끼가 디졌으니 의미가 없잖아!”
던전 제작 과정의 모든 키를 쥐고 있던 네 번째가 제대로 추궁하기도 전에 관리자의 분노로 소멸되었다. 이제 서로 교차검증을 해줄 중요한 증인이 사라진 상황.
“하…….”
에라타는 답답한 속을 달래기 위해 술잔을 기울였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이 짓이 가지는 특별한 메리트 때문에 선택한 길이긴 했지만 그래도 관리자의 행보는 사사건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흐음, 이딴 그지 같은 상황 헤쳐나가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에라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이너 패치와 사도들은 그녀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나마 오늘 쌤통인 점이 있다면, 강태서가 드디어 관리자님한테 된통 깨졌다는 것이다. 패널티도 받고 신임도 좀 잃었겠지. 그게 에라타의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 했다. 그녀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강태서를 믿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설치 겸 감시 역으로 울림국제고에 보내 놨더니만 한다는 소리가 ‘피데스랑 안 친해서 잘 모르겠다’가 전부. 제대로 된 감시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정보를 알았는데도 에라타를 견제하기 위해 풀지 않았는지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
사도들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에라타는 그들 모두가 본디 속이 다 시꺼먼 놈들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서로 조금 뒤통수를 치든, 서로를 속이든 그러려니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강태서는 그중에서도 제일 거슬렸다. 제일 강한 것 같으면서도 실상 활약하는 건 없고, 책임을 져야 할 건 교묘하게 다른 사도에게 떠넘기고. 생색을 낼 만한 것만 제대로 처리해서 관리자의 신임을 사고.
‘그런데 또 막상 얼굴을 맞대면 모르쇠로 일관한단 말이지.’
그러니 그런 녀석에게 계속 울림국제고의 감시역을 맡겨둘 수는 없는 법이다.
“……나도 울림국제고에 스파이를 심어야겠어.”
분명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피데스 말고도, 네 번째의 실수 말고도. 무언가 그녀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점이.
‘어쩌면 강태서나…… 그 동창 여자와 관련이 있을지도.’
결론을 내린 에라타가 폰을 집어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에라타 님?
“거기 남는 인원 좀 있지? 얼굴 안 팔린 녀석으로.”
에라타가 연락한 곳은 마이너 패치 중에서도 스파이를 전문적으로 키워내는 비밀 기관.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그녀의 이중을 파악한 듯 즉답했다.
-연령대와 성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이왕이면 액면가가 십대였으면 좋겠는데. 성별은…… 표적과 가까워지려면 같은 성별이 좋겠지? 여자로 부탁해.”
-올려보내겠습니다.
“흐음.”
에라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통화를 끊었다.
“좋아, 일단 강태서의 동창 여자 옆에 스파이를 붙이고, 겸사겸사 강태서까지 감시해야겠어.”
벌써부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지는걸.
* * *
“……내가 아는 마이너 패치에 대한 정보는 이게 전부야.”
“이게 전부라고?”
하빈은 채지석이 가져다준 파일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예언 능력이 있는데도 이 정도밖에 못 긁어모았어?”
“음, 이건 내 추측이지만, 어쩌면 그쪽도 우리가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단 걸 미리 안다는 느낌이 들어. 매 순간 조직의 구성과 방식, 정보관리 방법을 모두 바꾸거든. 놀라울 정도로 철저해.”
채지석이 얕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우리는 솔라리스 길드니까 한국의 복구 사업과 던전 공략, 게이트 사건으로 벌어지는 사고 수습을 하기에도 일손이 모자라거든. 국제적인 범죄 조직의 일이라 여기까지 손대기엔 법적으로 제약이 많기도 하고…… 그래서 대부분은 피데스 님이 다 맡고 있지. 우린 지원을 요청하면 좀 거들어 주고.”
“결론은 가면마법사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거란 이야기네?”
“그분이 가장 주력하는 일이 바로 마이너 패치 소탕이니까.”
“흠…… 그래도 가면마법사가 꽤 일을 좀 하는군.”
진작 말린 멸치들을 잡지 않은 건 아쉽지만 말이다. 그 녀석들을 진작 다 소탕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닌가?
현하빈은 일단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자료를 넘겨보았다. 일 처리에 능한 채남매답게 어려운 사건들과 정보들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역시 다들 대치동 입시 강사를 했어도 성공했을 사람들이라니까.’
어려운 개념들도 쉽게 풀이해내는 그 능력이란. 덕분의 하빈은 마이너 패치의 시작과 역사, 성향까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채지석이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당장 그쪽에 쳐들어갈 수 있는 최신 정보는 부족해. 마이너 패치가 막 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스타일이라 그쪽에서 미리 빌미를 제공해 주지 않으면 잡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
“빌미? 예를 들면?”
“음, 피데스 님의 경우 마이너 패치에서 보낸 스파이를 잡은 다음 역으로 그쪽이 정보를 불게 해서 본거지 하나를 소탕했었다는데.”
“그러니까, 그쪽에서 먼저 끄나풀을 보내면 그걸 족치는 게 편하다는 거지?”
“그렇지.”
“……에휴.”
하빈은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현하빈 그녀가 대단한 거물도 아니고, 마이너 패치가 뭐 하러 그녀의 주변에 먼저 끄나풀을 보내겠냔 말이다.
“아, 몰라! 난 그냥 휴교 끝나면 학교 가서 서윤이랑 네풀릭스나 봐야지.”
어느새 마이너 패치를 파는 것조차도 귀찮아진 하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고로 답이 안 나오는 문제에는 포기가 빠른 현하빈이었다.
“정 안 되면 마계에서 죽치면서 생활비 충당하거나, 킬스크린 다른 층 아이템을 털거나 하지 뭐. 어차피 돈이 일억 오천이나 남았겠다, 그거 떨어질 때까진 좀 더 놀아도 되겠지.”
코니 할머니한텐 미안하지만 여차하면 검집을 팔아넘기는 방법도 있고 말이다. 어느새 마음이 여유로워진 하빈이 흠흠 콧노래를 불렀다.
* * *
그리고 휴교가 끝난 첫 등교일.
[호오, 웬일로 제시간에 등교를 하느냐?]
재깍 일어나 학교로 향하는 하빈의 태도에 아헤자르가 무척 기껍다는 듯 감탄을 흘렸다.
울림국제고의 휴교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 편이었다. 던전의 빠른 진압으로 인해 생각보다 피해량이 무척 적었던 것이다. 그나마 휴교가 좀 길었던 이유는 피데스가 마이너 패치와 관련된 조사를 해야 한다며 현장 유지를 했던 탓이 컸다.
‘조사는 무슨. 조사하지 말고 그냥 학교를 개방해 줬어야지!’
찔리는 게 많았던 하빈은 그 사실이 매우 불쾌했지만 말이다.
‘설마 지나가던 동네 주민 ’하난‘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조사는 아니었겠지…….’
역시 다음에 보면 가만 안 둔다는 선전포고는 하지 않는 게 맞았으려나.
새로운 악의 조직의 등장이라 생각하고 피데스가 엉뚱하게 하빈을 조사하려 들면 무척 곤란해지는데. 하빈이 끄응, 하고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헤자르가 신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알겠다! 오랜만에 학교를 와서 기분이 좋아 등교를 일찍 한 것이지?]
처음 학교를 올 때 귀찮다며 입학식도 땡땡이치려고 한 하빈의 반응에 비하면 상당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하빈은 아페자르가 감상에 빠질 틈을 주지 않았다.
“응? 아니야. 난 우리 애플이들이 걱정되어서 한번 와본 거라구.”
[…….]
사과나무 묘목들이 잘 살아 있는지!
하빈은 그 점이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조례 시간엔 대충 엎드려 자야지!”
오늘도 알차게 졸 생각을 하는 현하빈. 물론 평소 같으면 그녀의 낮잠 계획은 무탈하게 성공했을 것이다. 평소와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자, 여러분. 그동안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도 모두들 무사히 등교해 주어 고맙습니다. 휴교 기간 동안 잘 지냈는지…….”
오랜만의 조례라 그런지, 아니면 큰일을 겪고 난 이후라 그런지 선생님은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덕담을 건넸다. 마침내 서론을 끝낸 선생님이 마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소개해 줄 학생이 있습니다.”
‘응?’
특별히 소개해 줄 학생?
막 선잠이 들려던 하빈이 뜻밖의 이야기에 눈을 슬쩍 떴다. 교실 앞문으로 평범한 인상의 여자애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뭐지? 우리 반 아닌데?’
다른 학생들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학생들을 둘러보던 선생님이 입을 열어 설명을 했다.
“외국에서 지내다가 지난주에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고 해요.”
전학생?
전학생이 왔다고?
하빈이 그녀를 쳐다보자 둘의 눈이 마주쳤다. 생긋 미소를 지은 전학생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전학을 오게 된 백리다입니다. 리다라고 불러주세요.”
“흠?”
[흠……?]
‘잘잘아. 이 장면 뭔가 나만 이런 기시감이 드니?’
[기시감?]
‘갑자기 이런 타이밍에 전학을 온다니? 이거야말로 진짜 클리셰라고!’
하빈이 눈을 매섭게 뜨며 중얼거렸다.
“내가 장담컨대, 저 전학생은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