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44) (144/268)

144. 십만 원이 왔다 갔다, 백만 원이 왔다 갔다, 백 억이 왔다 갔다 (2)

던전을 빠르게 공략한 건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 주장한 피데스.

인터뷰를 하던 기자들은 긴장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피데스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강했던 게 아니라, 던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던전에 문제가 있었다고요?”

“네. 이번 던전, 특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번 던전은 처음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등급과 실제 등급이 달랐다. 게다가 던전 안으로 구조대가 진입하지도 못했다. 기자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상했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혹시 짐작 가는 바라도 있으십니까?”

“…….”

피데스는 잠시간 침묵했다. 사실 아직도 이 사실을 밝히는 게 인류에게 득이 되는 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는 없겠지.’

회귀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게 된 사실. 이 참사의 배후에 마이너 패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뒤에 관리자가 있다는 것.

비록 패널티 때문에 관리자의 존재까지는 함부로 밝힐 수가 없지만, 덕분에 이 정도 힌트는 모두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피데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번 던전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던전입니다.”

“……네?”

그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던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럼 대체 누가…….”

“어떻게…….”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현시우는 못 박듯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건 마이너 패치라고 생각합니다.”

“……!”

낯익은 이름에 사람들의 표정에 저마다 느낌표가 떠올랐다.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 그럼 이 타이밍에 갑자기 마이너 패치가 SPES에 테러를 일으킨 것도?”

“네. 저를 일부러 끌어내려 한 수작이었을 겁니다.”

“허어…….”

“마이너 패치는 그냥 범죄 조직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던전 조작을…….”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있으십니까?”

“저도 이 이상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정중한 태도로 말을 끝낸 피데스. 그 태도와 쉬이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에 기자들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저마다 여러 생각에 잠겼다.

* * *

그리고 그 생중계는 마이너 패치도 보고 있었으니.

“저, 저 자식 지금 뭐라는 거야?”

화면을 보던 ‘네 번째’는 기겁하며 그 자리에 굳었다.

“던전의 배후로 바로 우릴 지목하다니! 어떻게 진상을 다 안 거지?”

덜덜 떨기 시작한 네 번째를 향해 세 번째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설마 알고 그런 거겠어? 정황상 우리가 유력하니 막 지른 거잖아.”

평소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마이너 패치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던전이 열릴 딱 그 타이밍에 SPES 테러를 감행하기까지 했다. 심증을 가지려면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심증 없이도 일단 덮어씌우려던 것일 수도 있고.’

피데스 입장에서야 마이너 패치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나빠질수록 이득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에라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피데스는 심증만 가지고 함부로 속단하는 X끼가 아냐. 저 자식이 얼마나 철두철미한데? 적어도 뭔가 듣거나 본 게 있어서 그럴걸.”

“그럼 정보가 샜다는 건가?”

세 번째가 날카로운 눈으로 좌중을 훑었다. 강태서는 동요 없이 무심한 낯을 했다. 피데스가 마이너 패치의 개입을 의심한 건 어쩌면 그의 영향일 것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피데스에게 정보를 주고 말았다.

‘테러 그거, 함정이니까.’

마이너 패치의 테러가 던전과 연관된 함정이라고.

그럼 바보가 아닌 이상 던전이 마이너 패치와 관련 있다는 것쯤은 눈치챘을 터.

“…….”

‘성급했을까.’

던전이 모두 진압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이번 강태서의 조언은 상당히 무모하고 또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아무리 학생들을 구할 만한 인물이라 해도 피데스에게 그의 패를 내보였던 건 성급했을지도.

이제 피데스가 강태서를 본격적으로 의심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피데스가 눈치 없이 강태서에게 ‘그때 했던 말은 뭐였냐?’라는 식으로 접근하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강태서가 피데스에게 정보를 흘렸다는 게 들통날지도 모르는 일.

강태서는 미간을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생중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뉴스 속보에서는 지하 대피소에 숨어 있었던 학생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강태서는 조용히 다시 손을 내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곳에 모여 있던 여섯 사도들의 앞에 알림창이 동시다발적으로 떴다.

띠링!

-경고! 당신은 관리자의 특별 퀘스트를 실패하였습니다!

-실패 패널티가 곧 정산됩니다!

끼기기기긱-

공간이 일그러지며 기괴한 소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네 번째는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고, 나머지는 말없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소환될 ‘관리자’는 미천한 인간 따위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끼기기익-

마침내 소음이 끝났다. 테이블 한가운데, 무거운 위압감이 공간을 짓눌렀다.

[……이번에도 또 실패란 말이지?]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이질적인 질감이었다. 끼긱끼긱거리는 쇳소리와 꿀럭거리는 진득한 소리가 섞여 만들어낸 인공적인 음성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분노와 경멸, 조소라는 점은 명확했다.

강태서는 말없이 땅을 내려다보며 그 소음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저 목소리의 정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건 이 알 수 없는 던전과 시스템과 킬스크린의 제작자, 혹은 관리자. 혹은…….

‘신.’

그런데 저런 존재를 과연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너.]

마침 관리자가 네 번째를 지목하며 입을 열었다.

“네, 넷!”

네 번째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 퀘스트는 네가 총 책임을 맡겠다고 했었지?]

“그게…….”

네 번째가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네 번째의 형상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에 다른 사도들은 흠칫 숨을 삼켰다.

경고도 없이 바로 소멸형에 처하다니. 예상은 했지만 더 가차 없는 처사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감흥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기껏 만들어낸 던전은 피데스한테 한 번에 털리고, 너희 짓이라고 꼬리까지 밟혀? 기껏 거르고 걸러 뽑아 놨더니 하나도 쓸모가 있는 녀석이 없군.]

“…….”

[너희 같은 머저리들에게 내가 얼마나 더 실망을 해야 하지?]

“……죄송합니다.”

에라타가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관리자는 이번엔 에라타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뭘 했지? 기만의 수호자는 찾았나?]

“…….”

에라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감정은 두려움이라기보단 분노에 가까웠다.

‘하, 찾을 걸 찾으라고 해야지.’

아무리 관리자가 성좌 역할을 한다지만 진짜 성좌는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까지 공유되는 건 아니었다. 에라타는 그 틈에 관리자에 대한 원망을 속으로 읊조렸다.

‘관리자님도 못 찾는 걸 대체 나보고 어떻게 찾으라고?’

기만의 수호자는 세계에 존재하는 오류 그 자체. 오류이기 때문에 관리자도 제대로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 또한 아무리 치트를 쓰고 전 세계를 모니터링하려 해도 쉽게 찾아내기 어려웠다. 세계에 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그들 중 누가 기만의 수호자인지 어떻게 일일이 가려내란 말인가. 그러는 사이 관리자의 추궁은 이어지고 있었다.

[조직 운영조차도 요즘은 제대로 안 된다고 들었는데.]

“그건…… 조금의 자금난이 있었지만, 곧 해결될 겁니다.”

세 번째가 대신 입을 열었다. 그녀가 확신을 담은 어조로 말했다.

“이번 사건에 사람들 정신이 팔린 사이, 은행을 몇 개 털었거든요.”

* * *

“엥? 은행……?”

그 시각, 솔라리스 킬스크린 지부에 있던 현하빈.

그녀는 케이크를 먹다 말고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기사들이 무더기로 적혀 있었다.

대부분은 이번 던전과 테러, 마이너 패치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번 사건들의 배후에 마이너 패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피데스의 주장. 그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파생 기사가 몇 개씩 쏟아져 나오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하빈이 보고 있는 페이지에도 거의 다 그 이야기들뿐이었다.

그러나 하빈의 눈에 들어온 건 그 사이에 적힌 단 한 줄의 문장!

-또한, 혼란을 틈타 한국의 새빛은행이 털렸다고 합니다.

“새, 새빛은행?”

하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관련 기사들을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새빛은행이 털렸다면 어떻게, 얼마큼 털렸단 말인가!

하빈은 통장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통장은 새빛은행에 만든 통장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현시우에게 받은 100억을 넣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전설급 아이템 처분하면서 받은 금액으로 다시 100억을 다 채워서 소중히 새 통장을 만들어 거기에 예쁘게 넣어 둔 것이었는데!

“젠장! 내가 왜 그걸 곱게 넣어둬서!”

원래 하빈 성격이라면 주식에도 넣고, 부동산에도 넣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멸망할 세상에 주식 투자를 해서 되겠나?’ 같은 안일한 마음으로 주식은 쳐다도 안 봤던 것이고, 일단 예금 통장에 넣어 둔 채 어떻게 써볼까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건데.

하빈은 다급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제발 심각한 상황은 아니어라.’

하빈은 모르는 일이었겠지만, 사실 마이너 패치가 한국 내 은행부터 턴 건 이유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한국은 게이트 사태 이후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국가였다. 멀쩡하게 국가 기능과 경제활동, 문화생활까지 잘 굴러가는 선진국 반열.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을 건드리기에 그만큼 최적의 타이밍이 없었다. 피데스도 없고, 채남매도 없고, 강태서까지 없는 절호의 찬스를 ‘세 번째’는 놓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세 번째는 다섯 번째와 합을 맞추어 일을 진행했다. 세 번째가 온라인으로 은행을 털고, 다섯 번째는 오프라인으로 은행을 털고.

그래서 그 결과는-

“……아, 안 돼.”

하빈이 허망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폰 화면에는 먹통이 된 은행 사이트와 은행 앱, 그리고 방금 뜬 뉴스 속보가 있었다.

-새빛은행 파산 확정.

“으아악! 용납 못 해! 난 가봐야겠어!”

하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채지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어딜?”

“새빛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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