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Counter attack (3)
“……안 돼!”
현시우는 필사적으로 방어를 위한 술식을 그러모았다. 현하빈이 가면을 벗긴다고 하는 중얼거림을 언젠가 복도에서 들은 뒤로 현시우는, 항상 현하빈의 가면 공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 덕에 이번 공격도 제때 막아내긴 했지만…….
문제는 그녀의 공격이 꽤 강력하단 것이다. 현하빈 기준으로 죽일 작정으로 한 공격은 아닐 테니 적당히 가면만 벗길 정도의 위력일 가능성이 크다. 현시우는 필사의 힘을 다해 가면을 향한 공격부터 막으려 집중했다.
‘지금 가면이 벗겨지는 건 정말로 위험해.’
현시우는 처음 현하빈을 마주한 이후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그의 정체를 밝히는 게 치명적인 악수가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빈에게 실상을 알리는 순간 현시우는 관리자의 패널티를 받게 될 것이므로.
안 그래도 마이너 패치 때문에 관리자가 현시우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만 ‘사도’가 아닌 현시우에게 관리자가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이었을 뿐.
‘관리자는 자신과 계약을 맺은 사도에게만 실질적인 위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대신 마이너 패치한테 지령을 내려서 현시우를 죽여 보려고 그동안 수많은 발악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선을 넘으면 관리자 또한 나한테 선을 넘을 수 있게 된다.’
현시우가 회귀했다는 사실은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급의 기밀 정보. 현하빈에게 그걸 발설하는 순간 현시우 또한 세계의 법칙을 거스른 범죄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러면 관리자는 명분을 가지고 현시우에게 직접 패널티를 내릴 수 있게 된다.
물론 가면이 벗겨지고도 회귀 사실을 밝히지 않는 방법도 있다. 원래 현시우는 그 정도까지는 고려했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활동한 지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는 바람에, 그리고 관리자에게 너무 많은 적대심을 키웠던 그동안의 전적 때문에 ‘기만의 수호자’인 현하빈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관리자에게 일정 부분 패널티는 살 것이다.
‘물론 패널티 감수하고 동생한테 질러 버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과연 그게 될까?’
기껏 전해 봤자 왜 5년 동안 랭킹 1위인데 집에도 안 들르고 가식 떨었냐며 약간 과장 보태서 현하빈에 의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라도 현시우의 회귀 사실이 드러나면 관리자에 의해 게임 아웃.
[어느 쪽이든 죽겠네?]
그뿐만이 아니다. 현시우가 알기로 현하빈은 비밀을 지키는 데 소질이 없다. 지금 저렇게 어설프게 ‘하난’인 척하는 것만 봐도 답 나온다. ‘피데스=현시우’라는 사실을 현하빈에게 들키게 되는 건 위험 부담만 잔뜩 떠안는 것이다.
현시우의 행보를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마이너 패치들도 자꾸 이렇게 엮이게 되면 현하빈에게도 마수를 뻗칠 것이고…….
쾅-!
바로 그 순간, 폭발음과 함께 하빈의 공격이 닿았다.
“윽…….”
현시우는 재빠르게 보스 몬스터의 어깨 뒤로 몸을 피한 채였다. 그 공격의 여파로 피데스의 가면 아랫부분이 조금 깨졌다.
투두둑.
“어디, 그 잘났다던 얼굴 좀 볼까?”
하빈이 신이 난 말투로 현시우를 건너다보았다. 부서진 가면 사이로 얼핏 드러난 얼굴은…….
마스크였다.
“뭐야?”
하빈이 솜사탕 씻은 너구리 표정으로 외마디 신음을 흘렸다.
가면 아래에 마스크가 있었어?
천으로 가려진 하관을 보며 그녀가 살벌한 눈빛을 했다. 현시우는 일단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코로나 유행 때부터…… 방역수칙을 지키느라.”
[그치. 방역수칙 중요하지.]
“그게 말이 돼? 코로나 이미 종식 됐잖아!”
“…….”
뭐 일단 코로나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거짓말이 맞았다. 하지만 현시우가 가면 아래에 착용한 마스크는 각종 독성 물질과 공격에서 호흡기를 보호해 주는 아이템이었다. 이번엔 보스가 독과 관련된 계열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미리 써둔 것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현시우가 씨익 미소를 지을 때였다. 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가면마법사, 이렇게 들으니까 목소리가 되게 낯익다?”
“…….”
‘그러는 너야말로 네가 현하빈인 거 숨길 생각은 있는 거냐.’
가면마법사라는 단어는 현하빈이 자주 쓰는 단어인데.
현시우는 차마 지적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현시우는 예전부터 동생을 쫄리게 하는 방법쯤은 숱하게 겪어봐서 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근데 지금 우리 이럴 때가 아닌데?”
“뭐가?”
현시우는 자신의 공격을 대신 맞은 우레아랅의 모습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보스, 죽었어.”
“……?”
“던전 클리어됐다고.”
-끼이이옥…….
서글프게 우는 보스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며 그들은 잠깐 굳었다.
* * *
현남매가 보스를 죽이기 약 10분 전.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 상황은 없어.”
마이너 패치의 본거지. 그중에서도 ‘세 번째’는 오늘도 전 세계의 인터넷망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띄워진 수십 개의 창은 알아서 중요 정보를 걸러내고, 또 조작했다. 세 번째가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건 각 나라의 헌터넷 정보망들.
마이너 패치가 헌터넷을 운영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각 나라마다 헌터넷의 운영 주체도, 운영 방식도 다르다. 헌터넷이라는 이름 대신 다른 수많은 이름을 붙인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범람 중이고.
다만 거기에 ‘관리자’와 관련된 내용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올라오려 치면 누구보다 먼저 스킬을 써 해킹해서 가로채고, 삭제하는 게 그들의 방식.
‘세 번째’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화면을 노려보았다. 이전부터 제일 많이 신경 쓰던 나라는 당연히 한국이었다. 하필 사도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고 언론 노출이 많은 강태서가 한국인이었기에 몇 번이나 관리자와 관련된 사안이 노출될 뻔했었다.
‘특히 지난번에 누군가 강태서의 성좌 증거를 잡았던 걸 생각하면…….’
그들은 단순한 루머까지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강태서 성좌 있을걸’, ‘있음. 아무튼 있음’ 따위의 논리는 그대로 남겨 놓는 게 훨씬 도움이 되었다. 아예 그런 의문 제기가 나올 때마다 틀어막으면 그게 더 수상하니까.
오히려 증거도 없이 설치는 놈들을 보면 사람들은 어그로나 루머의 일환으로 취급하면서 의심을 놓는다.
문제는 실질적인 증거물이 나왔을 때다.
예전에 단 한 번 치명적인 증거물이 올라올 뻔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강태서가 다른 성좌와 마주쳤을 때 계약 조건이 성립되지 않아 결렬되던 순간이 기록된 치명적인 사진.
간혹 유일 계약만을 고집하는 성좌의 경우 관리자 또한 성좌를 보유한 것으로 인식해 제대로 된 계약을 할 수 없다. 그 결렬 장면이 찍히고 만 것이다.
‘대체 어떻게 촬영했던 거야?’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공간에서 강태서 홀로 시도하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강태서를 따라붙던 누군가가 촬영했던 모양. 그것도 언론에 바로 넘기거나 했다면 막아볼 틈이라도 있었을 텐데 보유자가 별생각이 없었던지 일단 인터넷에 올리고 보는 바람에 급하게 블라인드 처리하고 삭제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강태서는 몸을 더 사렸다. 성좌와 관련된 것들에는 더더욱.
그가 이미 성좌를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키게 되면 그게 어떤 성좌인지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또 꼬리를 잡힐 거다. 관리자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는 건 그들에게 치명적이다.
‘특히 피데스가 가만두지 않겠지.’
사사건건 마이너 패치를 방해하던 피데스. 예전에 사도를 죽인 적이 있으니 관리자에 대한 힌트를 이미 얻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강태서의 비밀까지 알게 되면 굉장히 곤란해진다.
‘첫 번째 녀석은 하필 인기가 많아서 관리하기가 유독 까다로워.’
방심하는 순간 강태서의 사생팬들이 뿅뿅 하고 나타나 촬영해 대는 게 문제였다. 그곳이 던전이든 길거리든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촬영을 해대는 통에, 세 번째는 그걸 처리하느라 매번 넌더리가 났었다.
‘요즘은 잘 안 그러지만.’
몇 번 겪다 보니 대처법을 알아서 강태서 또한 상당히 조심했고, 법적인 처벌이나 예방책들을 마련했다.
“……뭐, 어쨌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세 번째는 강태서 모니터링용으로 보고 있던 화면을 치우며 다른 창을 띄웠다. 이것 역시도 한국 상황과 커뮤니티 반응들을 모니터링하는 창이었다. 그녀가 커뮤니티 상황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이번 던전이 SSS급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어.”
“그치.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데 대체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어?”
에라타가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번 게이트 사태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다들 안일하게 ‘B급이니까 금방 해결되겠지’, ‘피데스 님이 해결해 주실 거야’ 따위의 말을 하고 있다. 미소를 띠던 에라타의 미소가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래. 피데스 그 새끼가 문제야. 어쩌다 그 녀석이 던전 안에 있는 거지? SPES 테러는 어쩌고?”
기껏 피데스의 주의를 돌리려고 테러 계획까지 세워 놨더니만, 오라는 피데스는 안 오고 채남매가 와서 사건을 정리해 버렸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있나.
에라타가 테이블 한쪽에 있던 강태서를 노려보았다.
“첫 번째. 넌 마지막까지 학교에 있었는데 아는 게 없어? 피데스는 왜 학교에 남은 건데?”
“그놈이랑 안 친해서 몰라.”
“…….”
‘……하긴. 이 자식 평소 사회성을 보아하니 말은 되는데.’
저도 모르게 납득하던 에라타. 마침 강태서가 덧붙였다.
“그리고 어차피 피데스 한 명쯤은 학교에 있는 게 낫지 않나?”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피데스라도 SSS급 던전을 준비 없이 홀로 공략하는 건 어렵겠지.”
그럼 이참에 피데스를 손 안 대고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 명제에 에라타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하, 우리가 그 생각을 안 한 줄 알아? 하지만 지금 그 새끼 혼자 들어가 있는 거 아니잖아. 울림국제고 교사들이랑 같이 공략하면 아예 못할 건 없지. 그런 위험 부담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고.”
강태서가 고개를 저었다.
“……만일 피데스가 던전을 공략한다 해도 우리에게 손해는 없어.”
“그건 맞아!”
네 번째가 신이 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피데스가 애써 공략한다 해도 며칠은 걸릴걸? 그사이에 학생들은 상당히 죽을 테고…… 피데스에겐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히겠지. 흐흐.”
단 한 번도 승리를 내주지 않았던 괘씸한 피데스다. 이번에 제대로 엿 먹여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네 번째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난 자신 있는데? 아무리 피데스라도 이 난이도의 던전이라면 일주일 넘게 걸릴 거야! 아니면 그 안에서 개죽음당하거나!”
세 번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동의해. 피데스를 던전 안에 박아 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덕분에 우린 피데스가 없는 일주일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세 번째가 안경 너머로 얕은 눈웃음을 지었다.
“이건 또 다른 기회지. SPES도 테러 막느라 우왕좌왕에, 피데스는 던전에 갇혔으니 여러 미뤄둔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다구.”
“뭘 할 건데?”
에라타가 세 번째를 건너다보았다. 세 번째는 흐뭇한 표정으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렸다.
“알다시피 우리가 요즘 자금난이 있잖아? 이번 기회에 은행을 몇 개 털어볼까 싶어서 하나씩 손대고 있는데…….”
타닥타닥. 경쾌한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입력하던 세 번째.
“일주일이면 전 세계 은행을 털어볼 수 있을 것 같…….”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띠링!
그들에게 미친 듯이 알림이 떴다. 세 번째가 보고 있던 화면의 여러 창들 위로, 그리고 에라타가 쥐고 있던 핸드폰 화면 위로.
“…….”
“…….”
화면을 확인한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방 안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잠자코 있던 여섯 번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내가 지금 헛걸 보나요?”
던전, 벌써 공략됐다는 알림이 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