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솔직히 불금에 이러는 건 너무했잖아 (2)
한편, 환한 빛이 작렬한 옥상 위.
-끄……끄륽!
현시우와 대치한 꿰뚥렉은 일렁일렁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윽…….”
[괜찮으냐?]
과한 마력 사용의 반동으로 현시우 역시 내상을 입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꿰뚥렉을 경계하며 대치했다.
꿰뚥렉 앞에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지만 솔직히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매 순간 긴장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위험했던 순간들이 있었으니.
역시 SSS급 던전의 보스는 단신으로 잡기에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현시우는 인벤토리에 마련해 놓은 포션을 한 손으로 까 마시며 고개를 들었다. 재가 되어 흩날리는 꿰뚥렉의 최후가 보였다.
‘끝인가?’
네아이바가 기겁해서 끼어들었다.
[잠깐! 그 대사는 플래그잖아! 원래 ‘해치웠나?’ 같은 대사 쓰면 절대 안 끝난다고!]
‘에이, 설마 그러겠어요?’
[그렇다니까!]
‘그럼 몇 방 더 쏴주도록 하죠.’
콰과광!
현시우가 사라지는 꿰뚥렉을 향해 스킬을 난사했다. ‘적의 체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같은 보조 알림이 뜨긴 했지만 그것조차 무시했다. 스르륵 형체가 녹아가던 꿰뚥렉은 끏어얽, 하고 그걸 맞았다.
“낇……! 잔악무도한……인갉! 이껄롧……끝이랅 생갊……마랅!”
꿰뚥렉은 꿀럭거리는 발음으로 최후의 말을 남겼다. 그가 낇낇낇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덟……완전해져섨! 돌아온닭!”
‘돌아온다고?’
현시우는 그 단어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페이즈형 보스인가.’
1페이즈 보스를 쓰러뜨리면 더 강해진 2페이즈로 한 번 더 돌아오는 방식.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었다. 마침 그 사실을 확실히 못 박는 듯, 새롭게 다시 알림창이 떴다.
-중간 보스 꿰뚥렉을 쓰러뜨렸습니다!
-축! 세계 최초, 단신으로 SSS급 던전의 중간보스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업적이 새롭게 추가됩니다!
‘중간 보스……?’
불길한 단어에 현시우가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새빨간 알림창들이 연달아 떴다.
띠링! 띠링! 띠링!
-경고! 던전 시스템이 2페이즈로 진입합니다.
-경고! 잠시 후 진 보스 꿰뚥렉-우레아랅의 소환이 이어집니다. 소환 완료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단, 중간보스 처치의 보상으로 3분의 유예 시간 동안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멈춥니다. 빠르게 대비하십시오.
“……하.”
현시우가 짜증 섞인 한숨을 뱉었다. 어쩐지 SSS급 보스치고 쉽게 죽는다 했다.
꿰뚥렉은 에피타이저였을 뿐, 이게 끝이 아니라 진 보스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지. 네아이바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
[봐봐! 이것 봐! 내가 말했잖아! 플래그 꽂으면 안 된다니까! 네가 ‘끝인가,’ 따위의 대사 치니까 쟤도 살아난 거 아냐!]
현시우는 기가 차서 반박했다.
“아니 그게 왜 제 탓인데요! 쟤는 그냥 원래부터 페이즈형 던전의 중간보스인가 본데?”
[아냐! 말이란 게 씨가 된다고!]
네아이바가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진중하게 조언했다.
[……야, 앞으로는, 어? 그런 플래그 꽂는 대사 하는 습관 자체를 줄여. 적을 해치우고 나면 절대 ‘끝인가?’ ‘해치웠나?’ 같이 물음을 던지면 안 돼. 반드시 ‘끝이다.’로 평서형 문장으로 끝내야 된다니까. 자, 따라해 봐. ‘……끝이다.’]
“아니 그게 진짜 대체 뭔 상관인데요.”
[있어, 그런 게. 일단 내 말을 들으라니까! 현자인 나를 못 믿냐? 이게 바로 대현자인 나의 지혜란 거지, 크흠.]
‘아니 뭔 현자랍시고 하는 조언이 왜 항상 이런 것밖에 없는…….’
[뭐, 이 자식이? 다 들리거든!]
현시우는 못 들은 척 재빨리 네아이바를 갈무리했다.
“흠흠, 어쨌든 2페이즈 준비나 하러 갑시다.”
현시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찐 보스 등장까지 30분이나 시간을 주다니, 넉넉하네.
* * *
한편 그 시각, 알림을 받은 건 현시우뿐만이 아니었으니.
-던전의 중간보스 꿰뚥렉이 처치되었습니다!
-곧이어 30분 뒤 진 보스 소환식이 이어집니다.
-중간보스 처치의 효과로, 3분의 유예 시간 동안 던전 내 모든 몬스터의 움직임이 멈춥니다.
“멈……췄어.”
제희가 주위를 둘러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학교 옥상에서 무시무시한 번개와 섬광이 치고 있었는데. 그게 보스 몬스터 처치였던 모양이다.
“SSS급 던전인데 벌써 중간보스가 처치되었다니…….”
“피데스 님이 하신 걸까?”
“그분이라면 가능했을지도…….”
서윤과 제희.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는 옥상에서의 일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기숙사로 기어오는 동안도 네발로 엎드려 기는 데 집중하느라 학교 옥상을 올려다볼 엄두도 못 냈고 말이다.
스킬 사용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저 선생님들이 괴물들과 싸우고 있겠구나, 하고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제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 됐어. 이 틈에 대피소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덕분에 3분 동안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제대로 된 대피소를 찾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제희가 서윤을 일으켜 세웠다.
“구출 신호 보내는 건 나중에 다시 해. 어차피 자리를 이동할 테니까.”
서윤은 막 기사를 확인하고 놀란 참이었다. 아직 어딘가에 연락을 보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련 남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서윤이 물었다.
“어디로 이동하려고? 학교로 가는 건 너무 멀어.”
체육 창고를 기준으로 기숙사와 학교는 정 반대 방향이었다.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구덩이들을 넘어 학교까지 도달하는 것도, 학교에 도달한 뒤 지하대피소를 찾아가는 것도 모두 위험 부담이 컸다. 3분 안에 해낼 수 있는지도 미지수.
‘그쪽 지하대피소 상황도 모르고 말이야.’
만약 힘겹게 도달했는데 지금의 기숙사처럼 건물 일부가 무너져서 대피소 입구가 막혔다면?
그들은 꼼짝없이 몬스터들 사이에 포위되고 말 것이다.
생각을 마친 서윤은 제희를 붙들었다.
“일단 기숙사 대피소로 가자. 무너진 틈 사이로 들어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좋아.”
“가는 길에 바깥에 연락을 하면서 이동할게.”
“뭐? 연락? 이 와중에 연락이 중요해? 일단 대피소에 들어가는 게 먼저야! 연락은 그때 해도 안 늦어.”
“……원래라면 그랬겠지만.”
서윤은 복잡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아까부터 서윤의 표정은 계속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피소에 들어가면 바깥에 연락을 못 하게 될 지도 몰라.”
지하대피소는 폭탄이 터져도 안전할 정도로 외벽을 두껍게 설계했다. 그러니 포켓파이의 신호가 그 안까지 닿을지는 미지수다. 제희가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연락 안 하면 되지. 이제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구조대가 여기 오면 지하대피소부터 찾을 걸. 우린 체육 창고에 있었으니 연락이 필요했던 건데…….”
“아냐, 그 문제가 아냐! 지금 연락하지 않으면 애초에 제대로 된 구조대가 안 올지도 모른다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하지 못한 듯 제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촉박한 시간 속에 그들은 대피소로 이동하면서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서윤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던전, 분명 SSS급이잖아?”
“당연하지! 망할 SSS급!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니까 분명 고위 랭커들이 팀을 짜서 우릴 구하러 올…….”
“아니, 외부에는 B급으로 알려져 있어.”
“뭐?”
제희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게 뭔 개소리야? 확실해?”
“확실해!”
짧은 시간 안에 서윤은 인터넷 포털 기사들의 헤드라인을 훑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합정역 게이트를 B급이라 보도하고 있었다. 혹시나 나중에 정정되었나 싶어 최신 기사를 확인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SSS급이라는 기사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B급이야! 이 미친 난이도가 어떻게……!”
“그러니 우리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야 해. 지금 이 난이도가, SSS급의 던전이라고!”
만일 서윤이 조금이라도 기사를 더 자세히 훑을 시간이 있었다면 구조대에 대한 희망을 버렸을 것이다.
서윤은 던전의 등급이 B급으로 오해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현재 합정역 게이트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을 서윤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의욕 있게 나설 수 있었다.
“만에 하나 B급인 줄 알고 적은 구조대가 편성되거나,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 믿고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X발, 망했네.”
코앞에 도달한 지하대피소의 입구를 마주하는 것과, 제희가 욕설을 뱉은 건 거의 동시였다.
기숙사의 지하대피소는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완전히. 정말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들의 희망은 여기서 끝이었다.
굳게 막힌 대피소의 입구를 보며 절망하는 순간. 서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빈에게 보낼 카톡창을 열었다.
던전 관리 신고를 하는 곳은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그 번호로 신고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해봤자 장난 제보라며 무시할 게 빤하다. 던전 안에서 밖으로 통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못 믿을 테니까.
게다가 이건 현하빈이 특별히 서윤에게 먼저 알려준 신기술이다. 외부로 함부로 유출시킬 생각은 진작부터 안 했다. 무려 솔라리스에서 개발한 전 세계 최초의 신기술.
그러니 그걸 아는 사람들끼리만 연락을 할 수 있다. 서윤은 ‘구조대에 연락하겠다’라고 제희에게 둘러대었을 뿐 처음부터 현하빈에게 연락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1 언니
1 지금 기사에 나온 B급 던전이라는 정보
1 그거 가짜야
1 실제 등급은 SSS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