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솔직히 불금에 이러는 건 너무했잖아 (1)
시사회장에서 하빈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시사회 끝나면 간식 뭐 사들고 가지?”
B급 게이트지만 강력한 선생님들이 모두 헌터로 학교를 지키고 있으니 조기 진압될 것이다. 그게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의 소견이었다.
게다가 거긴 인류의 최종병기인 피데스까지있으니 10분 내로 던전이 공략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서윤이도 갑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랐을 테니 달래 주러 간식이라도 사들고 가야겠다.’
저녁에 아이스크림 까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시사회 이야기랑 드라마 덕톡 하다 보면 놀란 기분도 좀 진정되겠지.
‘붸스킨롸빈스를 살까, 솔빙을 살까?’
서윤은 붸스킨라빈스의 ‘엄마는 이계인’이라는 아이스크림과 솔빙의 메론빙수을 좋아했다. 그리고 현하빈은 ‘소원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아이스크림과 애플망고가 들어간 빙수를 좋아한다.
‘흠, 다 사 가면 못 먹겠지?’
[그걸 다 먹겠단 말이냐? 달아서 어찌 다 먹느냐? 그러다 그 무슨, 당뇨? 당뇨라는 아주 무서운 병에 걸린다고 들었다!]
‘에잇, 잘잘이 너는 몸도 없으면서 웬 건강 관리야? 일단 다 골라 갔다가 안 먹는 건 인벤토리에 넣어두면 된다구!’
안 그래도 저번에 컨티뉴에서 간식 상자로 쓰기 좋은 케이스를 받았다. 거기에 간식을 넣으면 뒤집어져도, 흔들려도 안전하게 보관 가능!
‘그냥 이번에도 케이크를 고를까? 라티제의 스페셜 딸기케이크도 맛있는데. 그 해의 가장 맛있는 딸기를 따서 인벤토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쓴다고 들었어!’
인벤토리에 보관한 음식은 썩거나 상하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보관할 시 맛과 향미를 보존할 수 있다는 최고의 장점이 있다. 그러니 딸기를 제철에 따서 넣어두면, 사시사철 딸기 메뉴를 내놔도 품질 유지가 가능하다.
물론 인벤토리 자체가 무척이나 고급 기술로 취급되기 때문에 그런 메뉴는 하루에 한정 수량만큼만 공급되고, 가격도 무지 비싼 편이었다.
‘흐음……. 그래도 최근에 딸기 뷔페 갔던 적이 있으니까 이건 보류해 둘까.’
하빈이 어떤 간식을 골라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주변의 학생들은 게이트와 관련된 이야기로 떠들기 시작했다.
“……이것 봐, 좀 이상해.”
그들은 실시간으로 기사를 확인하며 술렁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본인들의 학교 일인 데다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있을 테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중 한 학생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
“이번 게이트, 바깥에서 진입할 수 없는 게이트래.”
“뭐?”
“그, 그럼 구조대가 못 들어가잖아?”
이번 일 말고도 주거 지역에 갑자기 던전이 열리는 경우는 종종 일어났다. 민간인들이 던전에 휩쓸리는 경우 헌터들이 팀을 조직해서 던전 내로 진입해 빠르게 공략하고, 사람들을 구한다.
“아무도 못 들어가면 공략도 못 할 텐데?”
“던전 내에 있는 선생님들끼리 공략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되겠지만…….”
“사람이 진입하지 못하는 던전은 이번이 최초 아냐?”
학생들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까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학생 중 한 명이 침착하게 말했다.
“야, 괜찮아. B급 게이트잖아. 피데스 님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단신으로도 B급쯤은 가볍게 해치울 수 있을 터. 다른 학생들도 그 말을 듣고 덧붙였다.
“태서쌤도 학교에 있을걸?”
“지세 쌤이랑 지석 쌤은?”
“그분들은 오늘 출근 안 하시잖아.”
“아하.”
그래도 강력한 헌터 두 명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안심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던 행인들 중 한 명이 끼어들었다.
“피데스 님이 학교에 있다고? 하지만 아까 뉴스에서 SPES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기 가보시지 않았을까?”
“네……?”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는지 학생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순간이었다.
“……엥? 가면마법사 지금 학교에 없어?”
하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하빈은 츄러스에 한눈팔려 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상태였다.
“가면……마법사?”
“앗, 말실수했다. 교장! 교장쌤 말이야, 지금 학교에 없는 거냐고.”
하빈이 재차 물었다. 그 말에 잠깐 혼란에 빠졌던 학생들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이리저리 검색을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어, SPES쪽에 갔는지를 알아보면 될 것 같은데. 그쪽 테러 사건 보도를 찾아보면…….”
“국내 기사도 찾아보는 중인데…… 피, 피데스님은 학교에 있었을 것 같대! 나오는 걸 본 사람이 없대.”
피데스는 원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몰래 나갔다고 해도 목격자 하나쯤은 있었을 테다. 그러나 하빈은 그걸로 확신하지 않았다.
“……테러 사건 일어났다며. 테러범들 눈을 속이기 위해 학교에 있는 척 위장하고 몰래 출국한 것일 수도 있잖아.”
“……!”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다들 그 생각을 못한 듯 잠깐 벙쪄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학생이 외쳤다.
“아, 찾았어! SPES 지부에도 피데스 님은 나타나지 않았대. 그럼 학교에 있으실 것 같은데? 다른 기사들도 다 그런 이야기들이야. 피데스 님이 학교에 있었으니 이번 B급 게이트는 순식간에 진압이 될 것으로 예상된대.”
“아직도 SPES에 안 나타났으면 학교에 있을 확률이 높아.”
그들의 희망 사항이 반영된 추측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이것저것 무언가를 찾고 의견을 내놓는 모습을 보던 주변 어른들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잠깐만, 얘들아. 그럼 피데스 님이 테러 안 막고 학교에 있다는 소리니?”
“피데스 님이 테러를 안 막으면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최강자 헌터가 겨우 B급 게이트에 발이 묶여 있다니.
그럼 SPES의 테러는 누가 막느냔 말이다.
* * *
“……누가 막긴. 출근 안 한 교사들이 막고 있다.”
“누나! 남서쪽에 타겟!”
“오키.”
그 시각, SPES 킬스크린 지부.
채지세는 보지도 않고 탕탕, 총을 쏘았다.
[타깃을 처치했습니다!]
[타깃을 처치했습니다!]
‘테러범들치고는 상당히 허술한걸.’
너무 쉬워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피데스가 올 필요도 없었네.’
하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킬스크린에는 헌터 외의 민간인들도 꽤 있으니까, 그들이 위험에 빠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채지세는 다치거나 놀란 직원들을 침착하게 대피시켰다.
“저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거기 야근을 싫어하는 직장인 한 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안전하게 여러분을 모셔드릴 거예요.”
“예?”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내를 따라 대피했다. 조금 다친 사람은 채지세의 손짓 몇 번으로 깔끔하게 부상을 회복했다. 다급하게 뛰어가던 SPES 관리국 사람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솔라리스 인원들이 여기 온 거지?’
아무리 SPES 협회에 소속되어 있다 한들 반드시 도와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솔라리스는 길마랑 부길마, 지부장을 포함한 간부들까지 총출동해서 지원사격을 하러 왔다.
‘듣자 하니 피데스 부탁받고 왔다던데, 그동안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다더니 피데스 님이랑 서로 친해졌나?’
뛰고 있던 관리국 직원은 얼마 안 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솔라리스의 지부장과 마주쳤다. 그는 영혼 없는 말투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네에, 여러분 이쪽으로 마저 대피하시면 됩니다.”
‘야근을 싫어하는 직장인이 이분이 맞나?’
슬리퍼에 ‘도비 이즈 프리’가 적혀 있는 걸 보니 왠지 맞는 것 같기도.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야근을 싫어하는 직장인, 아니 솔라리스의 이준휘 비서가 손짓하자 공간 이동용 마법진이 발동했다.
화악-
‘이동 마법을 이렇게 대규모로?’
건물 밖으로 피신시키기만 하면 되기에 이동거리 자체는 짧을 것이다. 그러나 이동 마법 자체가 무척 희귀한 스킬이었다. 게다가 드는 마력과 컨트롤 능력은 또 어떠한가. 단지 피신용으로 이걸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
직원이 놀라서 감탄을 흘리는 사이, 어느새 그는 안전한 곳으로 순조롭게 이동되었다. 사람들을 제대로 피신 완료시킨 이준휘가 조용히 읊조렸다.
“하하. 오늘은 외근이네.”
그가 다크서클 내려온 눈가를 문지르며 살벌한 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테러범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영혼이 없었다. 하지만 은은한 광기가 느껴졌다.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원래 오늘은 신성한 불금이었는데.”
그랬다. 오늘은 불금이었다.
불타는 금요일. 내일은 행복한 주말.
게다가 금요일은 이준휘 비서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금요일은 채남매가 학교에 출근을 안 하는 날이었으니까. 평소에 학교에 다녀오는 게 조금 미안했다며 이준휘 비서의 일을 채남매가 더 많이 맡아서 도와주곤 했다.
그래서 금요일은 일도 좀 더 여유롭게 하고, 주말을 즐길 준비를 하며 꽤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날이었는데.
“…….”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이준휘 비서가 테러범들을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해피 프라이데이가 저 범죄자들 때문에 다 날아가고 말았다.
“감히 불금에 직장인을 건드리다니…….”
이 테러를 오늘 하루 안에 수습하면? 내일 기자회견하겠지. 오늘 안에 수습 못 하면? 내일까지 또 수습하겠지.
기자회견까지 다 끝나고 나서도 테러 관련 부수적인 일들 수습하는 게 얼마나 빡칠까.
일단 이번 주말은 물 건너갔다.
“하하, 하하하.”
물 건너갈 해피 주말을 생각하며 이준휘가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테러범들을 보며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너네 다 죽이고 오늘 안에 뒷수습이랑 기자회견 다 끝내서 칼퇴한다. 반드시.”
“…….”
그 말에 테러범들은 등줄기에 섬뜩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 * *
“이대로면 SPES 테러 사건은 순조롭게 마무리되겠네.”
철커덕, 철컥.
한편, 미리 설치되어 있던 폭탄을 발견한 채남매는 아주 간단하게 그것을 해체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본 테러범이 경악했다.
“아, 아니 대체 어떻게 그 특수 폭탄을…….”
“이런 거 원래 내가 전문인데?”
채지세가 손에 든 총기류와 화약을 까닥이며 비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무기 개발이나 폭탄 개발쯤이야 지하실에서 맨날 하는 일이 그거였던 채지세다. 게다가 예지력까지 있으니 어디에 폭탄이 설치되었고,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도 스킬 쓰면 꽤 나온다.
“그래. 더 중요한 문제는 이 폭탄 따위가 아니지.”
채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SPES 테러는 급조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성한 범죄였다. 놈들은 테러하겠다고 대놓고 선포한 뒤 시간까지 끌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야.’
“진짜 피데스라도 기다리고 있었나.”
채지세가 생각에 잠겼다. 주변에 있던 테러범들을 마저 처리한 뒤, 듣는 귀가 없다는 걸 확인한 채지석이 지세한테 물었다.
“맞아, 피데스 님은 대체 어떻게 아신 거지? 테러가 일어날 거란 사실을 말야.”
“…….”
채남매가 쉽게 테러를 제압한 이유는, 사실 피데스의 언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번 주 금요일에 무슨 일이 생길 겁니다. 안 생길 수도 있지만 생길 확률이 높아요. 특히 저를 학교 밖으로 빼내려는 작전이 있을 가능성이 큰데,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학교에 출근하지 않은 두 분께서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대체 어떻게 미리 알았지?”
피데스의 정보력이 대단하단 걸 알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지 수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