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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27) (127/268)

127. SSS급 던전 공략 (3)

그 시각, 서윤과 제희는 여전히 체육 창고에 있었다.

“나, 기숙사에 가봐야겠어.”

서윤이 말했다. 기숙사에는 포켓파이가 있었다. 던전 밖으로 통신을 연결해 줄 포켓파이가.

“그게 무슨 소리야, 기숙사에 간다고? 미쳤어?”

서윤의 말을 들은 제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숙사까지 가는 게 아니라 그 근처까지만 가도 잡힐 거야.”

와이파이가.

“뭐가 잡히는데?”

“거기에…….”

거기에 던전 바깥까지 터지는 포켓파이가 있다고 말해도 되려나. 하빈 언니한테 듣기로 그게 채지세 님이 개발한 새로운 기술이라던데.

마구 불어버리는 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지세와 하빈이라면 어차피 곧 상용화될 건데 이야기가 새나가도 별 상관없다 여겼을지 몰라도, 서윤이 느끼기엔 아니었다.

무려 우리나라 최고의 길드 수장이 직접 개발한 신제품. 듣기로 핸드폰 제조회사에서 시제품 하나 누출되어도 관련 직원 인생이 날아간다고 주워들은 적이 있다.

‘하빈 언니가 날 믿고 맡긴 거니까 비밀은 지켜야 해.’

서윤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설명했다.

“바깥에 우리 상황을 알릴 방법이 있어. 어떻게 하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아, 그러고 보니 너 정령술사였지?”

제희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령술사는 워낙 희귀 클래스다 보니 밝혀지지 않은 능력들도 꽤 많았다.

“바깥에 알릴 나름의 방법이 있는 모양이네. 하지만 꼭 나가야겠어?”

“……응.”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고 체육 창고 안에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이곳은 대피용으로 만들어진 시설이 아니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기에는 위험한 장소.

게다가 구조대에게 여기 있다고 알리지 않으면 제때 구출 받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체육 창고에 숨기로 결정하더라도, 그들의 사정을 바깥에 알리고 다시 들어오는 게 낫다.

“학교 쪽 길은 막혔지만, 기숙사 쪽으로 가는 길은 안 막혔어.”

서윤이 창밖을 확인하고 덧붙였다.

“걱정할 필요 없어, 나 혼자 빨리 다녀올게.”

바닥에 패인 구덩이와 몬스터들의 무리는 학교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마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에 있었으니 몬스터들도 그쪽으로 집결한 모양이었다. 기숙사를 향한 쪽은 몬스터의 수도 적었고 거리도 훨씬 가까웠다.

“그래도 넌…….”

넌 F급이잖아. 그렇게 말하려던 제희가 입을 다물었다.

서윤은 F급 각성자다. 아무리 지금이 던전 초기라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 해도 여서윤의 능력치라면 몬스터의 일격 한 방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포켓파이는 배터리로 작동되니까 정전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그 와중에도 서윤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던전이 열리면 전력이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핸드폰과 포켓파이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거면 할 수 있겠어.’

바깥에 그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다. 아니, 만약 서윤이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제희에 대해서는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여기 둘이서 죽는 것보단, 하나라도 사는 게 나으니까.’

서윤은 땀이 흐르는 손을 꼭 그러쥐었다. 언젠가 정령 수업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랐다.

‘F급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있으니까요.’

지금 이게 바로 서윤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서윤은 고개를 들어 체육 창고를 둘러보았다. 창고에는 훈련용 몬스터 인형들과 보호구 아이템, 보조 아이템들이 각양각색으로 쌓여 있었다. 그녀가 침착하게 아이템을 뒤졌다.

“여기 보호구들로 최대한 방비하고, 은신술 계열 스킬 효과가 부과된 아이템을 장착하면 돼. 출발 전에 반대쪽 방향으로 몬스터 인형을 풀면 어그로 끌기에도 좋을 것 같고…….”

“잠깐만.”

순식간에 착착 계획을 세워나가는 서윤. 제희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같이 가.”

“왜……? 내가 가서 체육 창고 안에 제희 네가 있다는 걸 알리면…… 넌 여기 있어도 될걸? 둘이 가서 동시에 일을 당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살아야…….”

“야, 내가 너 혼자 보내놓고 맘이 편하겠어? 두 다리 뻗고 잠이 오겠냐고!”

둘에 대한 구출 신호를 보내겠다고 홀로 나갔다가,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여서윤이 죽는다면?

개죽음이 따로 없었다.

“그딴 쓸데없는 희생 할 거면 집어치워. 가더라도 둘이 가는 게 낫지. 몬스터에게 대응하기도 훨씬 편하고.”

“하지만…….”

“막말로, 네가 가다가 잘못되어서 신호도 못 보내고 끝나 버리면 난 뭐가 되냐? 어차피 기회는 딱 한 번뿐이야.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하는 게 맞아.”

“…….”

제희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체육 창고부터 기숙사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니, 학교보다 확실히 기숙사가 가깝다. 잘만 하면 기숙사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기숙사도 지하대피소가 있지? 이참에 지하대피소까지 갈 수 있으면 좋은데.”

운동장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체육 창고는 다른 구조물에 비해 약하게 설계되었다. 대피용으로 만든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량이나 기타 생필품은 당연히 없다. 고위 던전일수록 구조까지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곳에 단둘이 있는 건 어느 쪽으로 보나 위험했다.

“그리고 갈 거면 지금 가야지.”

던전이 열린 직후가 몬스터 수가 가장 적다. 게다가 대부분의 어그로가 학교로 끌린 최적의 상황이니 움직이려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

“난 무조건 갈 거야. 너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나도 가기로 정했으니 알아둬.”

제희의 말에 서윤이 한 박자 늦게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이 그렇다면야, 알겠어. 그럼 이제 작전을 짜보자.”

서윤이 아이템들을 챙기며 입을 열었다. 제희가 덧붙였다.

“아까 작전으로도 충분히 좋던데? 보호구 아이템이랑 은닉 아이템 두르는 건 당연하고, 음…… 몬스터 인형을 사용하는 건 혹시라도 그 어그로의 불똥이 우리한테까지 튈 수 있으니까 일단 보류.”

“이건 어때? 이걸 챙길까?”

그들은 체육 창고를 뒤지며 머리를 맞대었다. 훈련부 소속이었기에 다행히 어떤 아이템이 어디에 있는지 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합심하여 가장 적당한 보호구와 아이템을 찾아낸 그들이 방비 태세를 갖추었다. 시간이 촉박한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다 고르는 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거 봐, 이건 두르면 투명하게 보이는 이불이고, 저건 뿌리면 몬스터들이 사람 체취인지 잘 모르게 하는 향수야. 물론 높은 등급의 몬스터일수록 안 통할 가능성이 높긴 한데…… 잠깐이라도 속으면 되니까.”

아이템을 정리한 서윤이 소곤소곤 설명을 했다. 지금 그녀가 들고 있는 이불은 효과가 좋긴 했지만 모양이 애매했다. 일어서 있는 상태로서는 몸을 다 덮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아, 이렇게 하면 쓸 수 있나?”

“이렇게 하라고?”

제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리저리 시험해 본 결과 몸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음, 엎드리니까 그나마 제일 잘 가려진다.”

“…….”

제희의 뚱한 표정을 보며 서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 기숙사까지 가려면.”

운동장을 네발로 기어야겠는데?

* * *

-끄에에에엑!

“…….”

슬금슬금.

저 멀리 난동을 부리는 몬스터를 경계하며 제희와 서윤은 네 발로 엉금엉금 체육 창고를 빠져나왔다. 뽈뽈뽈 기어서 기숙사를 향해 일렬로 재빨리 전진. 아이템 덕분에 그들의 모습은 투명하게 보였다.

‘시간 제한이 있으니 빨리 가야 해.’

그랬다. 투명 이불에게는 시간 제한이 걸려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마력을 오래 충전해야 다시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전에 기숙사까지 빠르게 가는 게 최우선이었다.

또한 아무리 투명화 효과를 얻어도, 움직이는 소리와 기척은 모두 숨길 수 없었기에, 그들은 소리를 줄이기 위해 온 신경과 감각을 곤두세웠다.

다행히도 기숙사의 입구까지는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었다. 서윤이 살고 있던 건물이다 보니 동선을 헷갈릴 일도 없었다.

‘이 정도 거리면 와이파이 잡힐 텐데.’

입구를 발견한 서윤이 그 생각을 떠올렸다. 와이파이는 거리가 조금 멀어도 미약하게나마 연결이 가능하니, 이 정도 거리면 인터넷 접속이 될지도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핸드폰을 꺼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건물 밖이었기에 조심스러웠다. 한눈팔다가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여서윤 정도의 각성자는 치명상이나 죽음을 입게 될지도 모르기에.

“멈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제희가 서윤을 잡아끌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제희가 유리문 너머를 흘긋 내다보았다. 서윤 역시 눈을 굴렸다. 멀쩡해 보였던 기숙사는 내관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이미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서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희가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보니까, 기숙사 지하대피소로 가는 입구도 막혀 있어.”

“뭐?”

기숙사 지하에도 만일을 대비해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다. 이제 보니 유리문 너머 지하로 가는 계단도 부서져서 막혀 있었다.

“안에 몬스터가 있는 모양인데.”

-끄르륵!

그 말과 동시에 내부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제희가 주머니에 넣어 둔 고글을 꺼냈다. 체육 창고에 있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몬스터나 움직이는 사물을 감지해서 표시해 주는 기능이 있다.

“다행히…… 건물 안엔 몬스터가 몇 마리밖에 안 남았네. 저것들이 벽을 부수다 지하대피소로 가는 길목을 막아 버렸나 봐.”

“여기 있던 사람들은……?”

수업 시간이라 대부분의 학생은 기숙사에 없을 시각이긴 했다. 하지만 사감 선생님을 비롯해 몇몇 사람들은 여길 지키고 있었을 터. 다행히 제희가 덧붙였다.

“미리 대피소로 피신한 모양인데.”

“……다행이네.”

“우리가 안 다행이지.”

“…….”

갈 곳이 없으니 그것도 문제다. 기숙사 지하대피소로 가는 길은 막혔다.

“다시 체육 창고로 돌아가야 할지도.”

물론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럼 아주 잠깐만 망 좀 봐줘. 바깥에 신호를 보낼게. 체육 창고에 사람 있다고.”

서윤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숙사 외벽에 딱 붙어 투명화 이불을 둘러싸고 있는 상태였다. 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은 핸드폰을 켰다.

‘와이파이가…… 잡히려나.’

이 정도 거리에서도 잡혀야 할 텐데.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화면 위 와이파이 표시를 바라보았다.

-wifi_누가이시간에노래부르냐

저번에 옆방에서 밤에 노래 부르길래 하빈이 제목을 바꿔 둔 와이파이 이름이었다. 서윤은 꿀꺽 침을 삼키며 미약한 신호가 잡히기만을 기다렸다.

‘제발, 제발 되어라…….’

띠링!

-wifi_누가이시간에노래부르냐

연결됨

‘됐다!’

서윤은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밀렸던 알림이 주르륵 왔다. 서윤이 미리 폰은 무음으로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문제없었다.

하지만.

“어……?”

서윤은 방금 온 카톡들을 보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녀에게 온 카톡 내용들의 상태가.

카톡 재난알림봇

합정역에 B급 게이트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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