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SSS급 던전 공략 (2)
한편, 하빈은 순조롭게 배우 사인회에 참석 중이었다.
“네! 거기에다 ‘To. 서윤’이라고 써주시면 돼요. 제 룸메이트가 배우님 팬이거든요.”
“우와, 정말요? 그거 영광이네요.”
하빈의 말을 들은 배우는 신난 얼굴로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사인지에 순식간에 그려지는 멋들어진 사인을 확인한 하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이 사인회가 끝나고 나면 대망의 명감독님 인터뷰와 드라마 새 시즌 시사회가 있다.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사인이 다 끝난 걸 확인한 하빈이 신난 얼굴로 종이를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게다가 방금까지 학생들을 인솔하던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 챈 하빈이 물었다.
“음? 선생님은?”
근처에 있던 학생이 대답했다.
“아, 선생님은 방금 갑자기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며 전화 받고 나가시던데요…….”
“그래?”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어요.”
그 말에 하빈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글쎄…….”
“……뭐, 별 일 있겠어? 그냥 학교 일이겠지.”
외부 활동을 하다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인솔하던 선생님이 잠시 어딘가를 다녀오는 것.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상하게 밀려오는 불길한 기분. 학생들은 알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을 무시하며 다시 제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즈음부터 그들의 주위로 부스럭부스럭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잉- 지잉-
매너모드로 설정해 둔 몇몇 사람들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의 핸드폰에서는 벨소리까지 울렸다.
♪-♬♩
하빈은 얼굴을 찡그렸다.
‘매너 모드를 안 하다니!’
[매너 모드가 무엇이냐?]
‘핸드폰을 조용히 시키는 거지. 저렇게 중간에 알람이나 벨소리가 울리면 나중에 시사회 보다가도 흥이 깨질 테니까 미리미리 무음이나, 하다못해 진동 설정을 해두는 게 좋아. 그게 바로 극장에서의 기본 예절이라구.’
[호오…….]
물론 현하빈은 훌륭한 매너와 에티켓을 갖춘 이 시대의 교양인이었기에, 진작 무음 모드로 설정해 둔 상태였다.
‘근데 대체 뭐기에 저렇게 동시에 울린대?’
재난 알림 문자라도 떴나?
하빈이 어깨를 으쓱하는 사이, 사람들은 뭔가 싶어서 핸드폰을 켰다가 표정이 일그러졌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만 핸드폰을 확인하고 얼굴이 굳었다.
‘……헉.’
‘뭐야, 무슨 일이야?’
조금 어수선해지는 상황에 행사 진행요원들이 통제를 했다.
“핸드폰 사용 자제해 주세요.”
“사적인 대화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행인들 중 몇몇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특히 그들은 하빈을 포함한 울림국제고 학생들을 대놓고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왜 저런 표정으로 쳐다봐?’
하빈이 핸드폰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행인 중 한 명이 불쑥 물음을 던졌다.
“너희…… 울림국제고지?”
“네?”
“아, 아니다.”
화들짝 놀라며 말을 삼가는 사람들. 그 심상치 않은 반응에 학생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학생들도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뭐야?’
‘선생님이 무음 모드로 해두라고 해서 확인 안 했는데…….’
‘대체 뭔 일이 일어났길래…….’
찜찜한 얼굴로 먼저 핸드폰을 확인한 첫 학생. 그의 얼굴은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시시각각으로 질려갔다.
“이, 이게 무슨…….”
“뭐야?”
“엄마한테 전화가 100통 넘게 왔어. 이게 뭐지?”
“헉, 나도 아빠한테 전화 오는 중인데 받아야 하나?”
“무슨 일이…….”
학생들 중 몇몇이 재난문자 알림을 확인했다.
[합정역 근방 울림국제고를 중심으로 B급 게이트 발생-합정 인근 지역 방문을 삼가 주십시오.]
“……!”
“이, 이거 진짜야?”
그들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재빨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헤드라인을 발견했다.
-합정역에 B급 게이트 발생……. 울림국제고 학생 대부분이 휘말린 것으로 밝혀져……….
“뭐?”
다른 학생의 핸드폰 화면을 보던 하빈도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학교에 던전 열린 거야?”
“……그런가 봐.”
그럼 왜 선생님이 바로 달려 나갔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학생들은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몇몇 학생은 행사 요원들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기도 했다.
다행인지, 잠깐 경직되었던 분위기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학생들끼리 서로를 훌륭히 위로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괜찮겠지……?”
“마, 맞아, B급이니까 괜찮을 거야. 이런 일 다른 지역에서도 종종 있잖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세신데, B급이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
희망에 찬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하빈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학교에는 가면마법사가 있잖아? 그럼 뭐, 문제없겠네.”
[흐음, 그건 그렇다.]
B급이면 피데스 단독으로도 깨부술 수 있는 던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가면마법사가 알아서 깨겠지.”
하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폰을 집어넣었다. 아마 그녀도 다른 사람들의 피데스 만능주의-안전불감증에 전염된 모양일지도.
* * *
한편 그 시각, 가면마법사 현시우는 역시나 보스와 대치중이었다.
“쟤 되게 낇낇거리네.”
“끼읿…….”
자신을 대악마라고 지칭한 괴물은 증오 어린 눈빛으로 피데스를 노려보았다. 바라만 보아도 섬뜩해지는 기괴한 액체가 스르륵 현시우를 향해 쇄도했다.
치이익-
하지만 닿기도 전에 현시우의 스킬에 중도에 말라붙어 버렸다.
“끼읿……!”
자신의 스킬이 먹히지 않은 걸 확인한 괴물이 꿀럭꿀럭 몸을 틀었다.
‘대체 저 인간은…….’
자신을 악마라고 지칭한 괴물, 꿰뚥렉. 이래봬도 꿰뚥렉은 보스 몬스터 역할을 하기 위해 공들여 만들어진 존재였다. 마이너 패치가 관리자에게서 제공받은 치트 능력치를 한계까지 써가며 창조한 생명체.
그동안의 보스 몬스터와 수많은 랭커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조된 인공 생명체로, 웬만한 랭커도 단칼에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설계되었다.
본래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소환되자마자 마주한 존재가 이런 강적인 게 문제였다.
“킯킯, 밑친 인갉…….”
괴물은 핏발 선 눈으로 피데스를 노려보았다. 괴물이 바라보는 피데스는 상당히 기묘한 자였다.
우선 말하는 태도부터가 글러먹었다.
“음, 왜 안 죽지?”
“끄르륽!”
현시우의 혼잣말에 꿰뚥렉은 이를 갈았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저런 심드렁한 태도라니, 그것도 SSS급 던전인데?
꿰뚥렉은 던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는 지능형 몬스터였다. 그래서 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꿰뚥렉의 진가는 공포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애초에 꿰뚥렉은 ‘공포의 대악마’를 테마로 만들어진 몬스터였다.
<특성- 미지의 덫> : 상대가 자신에게 느끼는 공포심에 비례하여 스킬의 모든 위력이 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