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SSS급 던전 공략 (1)
[비상 대피령을 내렸어야 했나?]
‘내렸으면 던전을 나중에 열었겠죠.’
현시우는 학교가 순식간에 던전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창틀에 놓인 손을 꽉 쥐었다.
어차피 허울뿐인 교장이라 휴교령도 비상 대피령도 명분 없이는 쓸 수 없었다.
‘휴교는 해봤자 소용없기도 하고.’
평일 휴교 땐 학생들이 본가에 돌아가지 않고 기숙사에 머문다. 그러니 던전화가 되면 거기 휩쓸릴 수밖에.
그리고 비상 대피를 실행했다면 마이너 패치는 그 눈치를 보느라 아예 던전을 여는 걸 미룰 것이다. 그럼 현시우는 아무 일도 없는데 일단 비상 대피를 내린 꼴로 보인다. 마이너 패치도 어떻게 던전이 열릴 걸 알고 대피시켰는지, 현시우를 본격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고.
‘강태서가 경고까지 한 걸 보면, 이번 던전은 확실히 마이너 패치 소행이었어.’
현시우는 강태서의 단 두 마디를 듣고도 바로 진상을 파악했다. 합정역 던전은 마이너 패치가 억지로 연 던전인 게 확실하다. 그러니 휴교령 남발은 의미가 없다.
휴교해 봤자, 나중에 현시우가 없는 틈을 타 또 던전을 열려고 하겠지. 현시우의 교장 임기가 끝나는 날이라도 맞추어서.
‘차라리 지금 열린 게 나을 수 있다.’
제대로 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현시우가, 제때 이곳에 있는 지금.
[어찌 되었든 강태서의 말이 맞긴 했군…….]
“…….”
현시우는 홀로 남은 교장실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 강태서는 갑자기 교장실에 난입해 SPES 본부 테러가 함정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테러 쪽은 자기가 손을 쓸 테니, 학교에서 벌어질 일이나 막아보라고 했지.’
그러고는 말을 붙일 새도 없이 사라졌다.
[함정이었을까?]
현시우가 알기로 강태서는 마이너 패치의 편.
오히려 현시우를 여기 남게 해서 던전에 휩쓸려 죽여 버리려는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 한 번, 막아 보던가.’
그때 그 표정은 도발이라기보다는-
‘뭔가 좀…….’
부탁? 아니면 분노?
순간적으로 1회차의 강태서를 떠올릴 뻔했다. 잠시나마 그들의 편에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했던.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종잡을 수가 없네, 참. 에휴, 주변에 뭔 생각인지 모를 녀석들만 넘쳐나서 힘들다, 힘들어.]
‘그러게요.’
[너도 포함이거든?]
‘제가 왜요?!’
[난 항상 너희 남매가 제일 미스터리야, 미스터리. 둘 다 사고방식이 좀 남달라.]
‘뭐가 남달라요? 현하빈 혼자 도른자거든요? 비교당하는 쪽이 섭섭합니다.’
[걔는 확실히 도른자고…….]
아무튼, 강태서의 의도가 어떤 쪽이든 간에 현시우는 학교에 남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으니까.
생각을 마친 현시우는 교장실에 있는 마이크를 붙잡았다. 교내 방송 시스템과 연결된 것이었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현시우의 입에선 꽤 매끄러운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침착하게 잘 들으십시오. 지금은 비상사태입니다. 학교를 포함한 합정역 인근이 던전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현시우는 방금 전 던전 정보를 확인했다. 이건 공략 전까지 나갈 수 없는 던전이었다.
한 번 던전화가 시작되면 그 범위 내의 사람들은 던전이 공략되기 전까지 나갈 수 없다. 그러니 지금 학생들을 던전 밖으로 빼내는 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차선책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현시우가 손짓을 하자 학교 곳곳에 심어 두었던 마법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학교 밑에 마련된 지하대피소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마법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학생들을 보호해 줄 마법들, 몬스터들의 발을 묶어놓는 마법들이 추가되어 있다. 종류가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현시우가 공을 들여 보강해 둔 것이었다.
[에효, 마력 펑펑 다 쓰겠네. 괜찮겠어? 너 이거 학교 말고 지하철역에도 다 뿌려뒀던데.]
대답할 시간은 없다. 현시우는 지체 없이 방송을 이었다.
“던전화가 완료되기 전에 지하대피소로 모여 주세요. 각 반의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인솔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교탁 밑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마련해 놓은 아이템들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사용하도록 하세요.”
[아이고, 그거 다 네 돈으로 산 거잖아. 아주 아낌없이 주는 나무네, 나무!]
‘돈으로 막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죠.’
아마 지금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교탁 밑에 숨겨둔 값비싼 아이템들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템빨 무시 못 하지.’
게임은 장비빨. 좋은 장비를 끼면 목숨을 구할 확률이 확 뛴다.
[너무 좋은 장비들이라 누가 빼돌리는 거 아닐지 몰라.]
‘그럴 분들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 그 정도로는 잔고에 별 타격 없는데요?’
[그래그래, 돈 많은 회귀자 납셨다!]
‘흠흠.’
매지컬 캐시 파워!
이래서 회귀자의 통장 잔고를 무시하면 안 되는 거다. 그것도 투자에 맛 들인 회귀자다. 신중하고 공격적인 자산관리에 히든피스 독식까지 다 한 회귀자 현시우는 학생들 보호에 아낌없이 돈을 써뒀다.
‘돈 모아 뒀다 어디 씁니까? 다 이럴 때 쓰라고 버는 거죠. 어차피 제가 다 들고 있어봤자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다 못 쓸 텐데.’
생각을 끝낸 현시우는 곧장 교장실을 나섰다. 이제 그가 짜 놓은 판을 활용해 학생들을 보호하고 인솔하는 역할은, 다른 훌륭한 교사님들이 해주실 거라고 믿는다. 그동안 현시우가 지켜본 이곳의 교사들은 모두 실력 있는 헌터였고, 학생들을 아끼는 좋은 분들이셨다.
[그럼 너는…….]
‘보스를 잡아야죠.’
현시우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합정역 게이트에서 그가 아는 유일한 정보가 있다면, 그건 보스가 학교 옥상에 강림했다는 것이다.
“보스가 소환되자마자 잡아서 이 사태를 바로 끝내버리겠습니다.”
현시우가 결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 *
SSS급 던전이라니.
“이거…… 나만 보고 있는 거 아니지?”
제희가 희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SSS급……이라고 떴어, 나한테도…….”
그들은 체육 창고에 일단 다시 들어갔다. 학교 쪽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무언가 방송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정말로 큰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지하대피소에 가야…….”
가야 하는데, 라는 말을 뱉으려고 보니, 대피소로 가는 길목들에 어느새 커다란 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었다. 제희가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서윤이 빼꼼 문틈을 확인했다. 밖으로 보이는 운동장 이곳저곳에서 꿀렁꿀렁 네발로 기어 다니는 몬스터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끄어어어어-
제희는 흙이라도 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일단 여기 숨어 있자.”
“……그래.”
정적이 흘렀다. 깜빡거리던 체육 창고 조명이 얼마 안 가 훅 하고 꺼졌다. 게이트와 몬스터들 영향으로 학교의 중요 전력 장치라도 망가진 모양이었다.
“이제 어쩌지?”
“우리가 여기 있는 거 다들 알까?”
서윤의 물음에 제희가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아니, 아마 다들 도망치느라 바쁠 거야.”
그들은 단둘이서만 체육 창고에 온 것이었다. 그것도 동아리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준비물을 가져오려다 이런 참사가 터졌다. 따로 다녀오겠다고 말도 안 하고 왔다는 게 큰 문제였다.
“……그럼 구조대가 와도.”
“지하대피소를 우선적으로 갈 테니, 아마 우린 가장 늦게 구조되겠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대피소에 있는 인원을 구조하는 게 상식이다. 그 외에는 교실과 기숙사를 살피는 게 다음 순서겠지.
이런 체육 창고는 정말 마지막에서야 찾아볼 것이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어딘가에 알리지 않는 이상은.”
거기까지 말을 뱉은 제희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 근데 이 와중에 뭘 어떻게 알려? 소리라도 질렀다간 몬스터 어그로가 끌릴 테고, 여긴 데이터도 안 터지는데.”
“……데이터?”
“던전 안에서는 통신 안 터지잖아, 모르냐?”
“아, 아니. 알지.”
알지만.
‘이게 뭔 줄 알아? 던전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포켓파이다?’
서윤은 그 순간 하빈이 줬던 특별한 포켓파이를 떠올렸다.
던전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신기술.
만약 그 말이 진실이었다면!
“……!”
서윤이 번뜩 고개를 들었다.
* * *
그 시각.
현시우는 학교 옥상에 도착해 있었다.
[저게 보스인가?]
옥상 위를 장악하는 압도적인 불쾌함과 불길한 어둠. 수십 개의 눈을 가진 짙은 검은색의 커다란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고! 던전▨ 쩳№떯흙헰ㅇㅢ ㅈ 가11ㅂ*ㅗ스, 꿰뚥렉입$니다!]
‘상태창 상태 봐라.’
딱 봐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던전이네, 이거.
이름도 제대로 못 띄우는 걸 봐서는 급하게 완성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네아이바를 든 현시우가 뚜둑 몸을 풀었다. 강력한 보호 스킬과 버프를 스스로에게 걸어 둔 덕분에 현시우의 주변은 스킬 효과로 오색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 빨리 끝내자.”
“꿹꿸렉?!”
보스 괴물이 당황한 듯 멈칫했다. 아무래도 소환되자마자 플레이어를 봐서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시우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공격을 밀어붙였다. 그가 네아이바를 괴물을 향해 겨눈 순간.
콰과광!
괴물 위로 빛나는 섬광이 쏟아졌다. 어두워진 하늘을 가르고 내리꽂는 환한 낙뢰는 압도적이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의 빛나는 기둥을 만들어냈다.
“께, 껠뤱!”
[피해!]
현시우는 몸을 숙였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로 슈슉, 괴물의 액체공격이 날아왔다.
치이익-
대신 공격을 맞은 옥상 구조물이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꿻……인간……감힓…….”
꿀럭꿀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괴물에게서 기괴한 목소리가 한 자 한 자 내뱉어졌다.
“겁읿……없늟냛……?”
비웃는 것 같은 낇낇낇 소리가 함께 섞여 있었다 누가 들었다면 그 섬뜩함에 소름이 끼쳤겠지만,
현시우는 무시하고 공격만 계속했다.
쾅, 콰직, 콰광.
[뭐래?]
‘뭐라는 거야?’
어쨌든 알 바 아니었다. 현시우는 괴물의 말은 깡그리 무시하고 스킬만 마구 퍼부었다.
슈쾅! 파지직!
그의 무심한 손짓 하나하나마다 SSS급 스킬이 난사되었다. 적당히 학교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상대방만 정확히 공격하는 스킬들로 엄선한 것이었다. 속성을 탈 수도 있으니 종류도 다양하게 해보았다. 광선 마법, 전격 마법, 화염, 빙결 마법…….
‘어느 게 제일 잘 먹힐까?’
그래서 괴물은 입을 열기도 전에 전류를 맞고, 빙결을 맞고, 불에 지져졌다. 한참 얻어맞기만 한 괴물은 화가 난 것 같았다.
“끼……잃! 낿 맗을 졺!”
괴물의 몸에 있던 눈들이 부리부리한 표정으로 현시우를 노려보았다. 누가 봤다면 기절할 법한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현시우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흠, 잘 안 죽네요. 역시 SSS급 던전이라 그런가?”
[성가시군.]
“끼잃!”
공격을 받던 괴물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부들부들 떨었다. 괴물이 살기 어린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감히읿……대앍마인 나르으읇……농랅햃?”
“악마?”
[악마?]
“낋힑헰헰!”
현시우가 그 소리에 멈칫하자, 괴물은 먹혔다는 듯 흡족스럽게 웃었다. 정말로 사악하고 끔찍한 웃음소리였다.
예로부터 악마는 인간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 외국 영화를 보면 공포영화의 최종보스는 죄다 악마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 사실까지는 괴물이 몰랐지만, 적어도 괴물이 알기로 인간은 악마를 무서워하는 게 맞았다.
“낋힗헰! 이젥 모둙 어둚곽 비탄엙 빠졀락……!”
“흠…….”
하지만 현시우는 굉장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다음 스킬을 캐스팅하며 귀찮은 듯이 말했다.
“야, 네가 어느 쪽 종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내 동생이 마왕 한 마리를 따까리로 데리고 있거든……?”
“뭙……?”
현시우는 떠올렸다.
마왕 크릭샤를 따까리 삼아 마계에 놀러 다니던 현하빈. 마신에게 맵닭볶음면 소스 먹이면서 사악하게 웃던 현하빈.
그걸 회상한 현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악마 그거, 별거 아닌 듯?”
“……그, 긇게 무슨 솛릭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