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22) (122/268)

122. 반전(反轉) (2)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던전.

그것 또한 마이너 패치가 연구 중인 새로운 던전 구조였다.

물론 던전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건 쉽다. 클리어 전까지 플레이어를 나가지 못하게 하는 던전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던전은 아직 나온 적 없다.

“……하지만 우리는 방법을 찾았지.”

마이너 패치의 아지트. 그곳에서 기다리던 에라타는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녀가 최종 완성 계획표를 손톱 끝으로 쓸었다.

플레이어가 진입할 수 없는 던전.

개발만 되면 세계 멸망의 도구로 쓰기 딱 좋은 물건이 아니겠는가? 몬스터가 끊임없이 던전 밖으로 나오게 설정해 두고, 공략하러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둔 던전이라면 인류에게 재앙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공략이 불가능한 괴물 무한 생성 포탈이나 다름없을 테니.

“다만, 이건 아직 미완성 방식이라 오래 붙잡아 둘 수 없어. 아직 미완성이라 길어봤자 3일 정도만 출입을 막아둘 수 있을 거야.”

곁에 있던 ‘세 번째’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덧붙였다.

3일 동안만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던전이라.

에라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3일이면 충분해. SSS급 던전인데, 일반인들이나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면 3일 안에 발버둥 치다 다 죽을걸.”

합정역 게이트.

이번엔 거기다 ‘플레이어가 진입하지 못하는’ 설정을 추가했다. 그 안의 시민들은 헌터들이 구조하러 오길 기다리겠지만, 이제 피데스와 채남매가 아무리 뒤늦게 구해주러 달려가도 소용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피데스나 채남매라면 일 터졌다는 소식 듣자마자 학생들 구하겠답시고 B급이라도 들어갈 게 빤한데.”

“맞아. 그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을 어떻게 외면해?”

“기껏 학교 밖에서 빼내 놨는데, 도로 들어가 버리면 게이트가 단기 공략될 수 있으니 그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게 맞지.”

피데스와 남매의 등급은 각각 SSS와 SS다. 아무리 SSS급 게이트라 해도 그런 최고위 랭커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꾸린다면?

게다가 셋만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각각 단체의 수장을 맡고 있으니 길드원들과 협회원들을 더 데리고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아니, 100%다.

“SPES랑 솔라리스가 공조해서 다른 헌터들까지 모아서 우루루 쳐들어가 봐, 그럼 말짱 도루묵 아냐?”

기껏 만들어낸 소중한 SSS급 게이트가 클리어되어 버리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그러니 다들 못 들어가게 하는 설정을 특별히 추가했지.”

에라타는 지도에 표시해 둔 합정역 부근을 톡톡 짚었다. 울림국제고를 포함한, 합정역 인근 지역이 죄다 포함 범위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 던전이 열리고 나면 안에 있는 학생들과 시민들은 구조의 희망도 없이 싸그리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거다.

“3일밖에 못 막아두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몰살당하고도 남을 시간이니까.”

“‘첫 번째’가 학교를 벗어나면 바로 실행하자고.”

그들이 만든 던전이지만 몬스터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공격한다. 그러니 강태서 또한 던전에 갇히게 된다면 퍽 곤란할 것이다.

이제 던전이 열리고 나면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할 테니 특별히 강태서에게도 상황을 알려주었다. 에라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근데 강태서 이 X끼는 나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왜 이렇게 미적대고 있는 거야?”

테이블 위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 * *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던전.

‘……이런 말은 사전 계획 때도 말한 적 없는 내용이었잖아.’

연락을 확인한 강태서는 칠판을 향해 돌아섰다. 학생들을 등지고 선 덕분에, 그의 동요가 감추어졌다.

“…….”

이제야 이런 치명적인 정보를 가르쳐 주다니.

하긴, 에라타를 포함한 마이너 패치는 강태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서로 협조는 하지만 언제나 견제와 껄끄러움의 대상. 비록 강태서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에라타 또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강태서가 모든 정보를 알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적대하지 않으면서 동조하지도 않는 그 차가운 경계선.

그나마 던전 열리기 직전에 강태서에게 알려준 것도 같은 ‘사도’로서 일말의 의무적 동료심으로 알려준 것일 테다.

‘역시 마이너 패치가 이 정도로 넘어갈 리가 없었어.’

피데스가 킬스크린에 주력하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멀쩡히 지구상에 있다. 게다가 학교의 교장까지 맡았다.

만에 하나 합정역에서 무언가 일이 터지면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만사 제치고 달려올지도 모른다.

그걸 가정하고 일부러 수를 쓴 게 분명했다.

“…….”

강태서는 마저 남은 수업을 위해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이 수업만 끝나면 이 자리를 떠야 할 것이다.

침착해야 했다.

그의 예상이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애초에 그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하든 이건 처음부터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었다.

예정된, 그리고 확정된 참사.

여기서 강태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강태서가 없었거나 협조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그리고 관리자는 어떻게든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강태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들키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손을 보는 것뿐.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초반 게이트 진행을 느리게 하는 정도로 몰래 조정해 두었던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하지만 그 안배마저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학생들이 몇 시간 더 버틴다 해도, 던전 안에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 골든타임 안에 학생들을 구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됐어, 포기하자.’

그가 결단을 내린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강태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었다. 이 이상 그가 손대는 건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반역이자 월권이었다. 들키면 곧장 소멸될 뿐.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학생들에게 이타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이타적이어서도 안 된다.

그런 것에 휘둘리다 보면 끝이 없을 테니까. 정말로 중요한 순간 중요한 목표를 놓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딩동댕동!

바로 그 순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강태서는 교실을 나서기 위해 수업교재를 챙겼다. 기계적으로 평소 하던 인사를 학생들에게 건네려고 했다.

“그럼 남은 건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다.’라는 말이 나오려다 목에 걸렸다.

“…….”

강태서는 그냥 말을 끊고 교실을 나섰다. 뒤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학생들의 인사도 언제나처럼 무시했다.

-게엥! 게에옹!(왜 인사도 끊고 가냐? 너 인사 아직 다 안 했다!)

감사했다거나 안녕히 가시라는 말들, 평소 같은 편지 세례들을 피하며 강태서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웅성거림 사이로 뒤에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

밝은 톤의 목소리로 보아 장난으로 던진 말이 분명했다. 평소에도 학생들은 ‘다음 수업도 쌤이 해주시면 안 돼요?’ 같은 말로 강태서를 조르곤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평소처럼 무시할 수 있어야 했다.

‘정신 차리자.’

강태서는 잠깐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빠르게 놀렸다. 이제 정말로 이 학교를 벗어나야 했다.

* * *

강태서는 학교를 떠나기 전, 그에게 배정되었던 교사연구실을 들렀다.

무언가 잊어버리고 남겨놓은 소지품 따위가 있나 마지막으로 점검할 요량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교사연구실의 문을 연 순간, 강태서는 여길 괜히 들렀다고 생각했다.

-게옹!

까망이가 교사연구실 구석에 마련된 방석에 가서 몸을 비볐다. 저 방석은 원래 강태서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강태서는 이 공간에 흔적을 남길 생각이 없었다. 칼리고에 있는 그의 집무실조차도 언제든 비울 수 있게 텅텅 빈 자리로 남겨져 있었다. 그처럼 이곳도, 개인적인 소지품 같은 건 애초에 둘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의사와는 달리 여기서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채워두었다.

-게엥, 게엥.

까망이가 뒹구는 저 방석은 고양이 동아리에서 선물로 준 것이었다.

‘태서 쌤도 학교에 간식거리 정도는 채워 두셔야죠!’

책상 위에 놓인 군것질들은 다른 선생님들이 챙겨주었다. 학교와 관련된 일을 가르쳐 줄 때도 무척 친절했던 사람들.

‘태서야 너 책상에 뭐가 없다……. 엥? 포스트잇도 없어? 이건 사실 오빠가 나 쓰라고 사줬는데 난 공부 안 하니까 특별히 너 줄게.’

‘포스트잇도 너한테 가는 걸 더 고마워할 거야! 쓰이는 보람이 있을 거잖아?’

책상 한구석에 놓인 포스트잇은 현하빈이 억지로 준 거다.

짐이 너무 많았다.

그가 가져가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너무 많아서, 그냥 하나도 안 가져가는 게 나아 보였다.

“……이리 내려와.”

결론을 내린 강태서는 억지로 까망이를 방석에서 떼어내었다.

-게옹! 게옹!(뭐냐! 왜 이러냐!)

“이제 떠날 거야.”

-게엥?!(이 말랑한 방석을 두고?!)

방석에 애착이 많았는지 까망이가 충격과 공포에 빠져 처량한 얼굴로 강태서를 올려다보았다. 까망이가 시위하듯 허공에 파바박 손을 흔들었다.

-께앍! 께아아아앍!(난 이제 이거 없으면 못 잔다!)

“…….”

-께엥!(여기 있는 간식은!? 간식도 두고 가냐?!)

까망이가 다급한 얼굴로 도도도 책상으로 뛰어가 서랍에 넣어 둔 간식들을 챙겼다.

-께, 께에에엥…….(난 이거 없으면 못 산다…….)

까망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울었다.

후두두둑.

서랍을 마구잡이로 뒤지는 바람에 안에 든 내용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툭툭 떨어지는 고양이 간식들 사이에서 색색의 봉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태서 선생님께.

-제가 누구보다 존경하는 멋진 헌터 강태서 선생님.

강태서는 그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굳었다. 봉투들은, 차마 버리지도 읽지도 못한 채 서랍 한구석에 쌓아 두었던 학생들의 편지였다.

‘강쌤! 강쌤이 확실히 애들한테 인기가 많더라!’

언젠가 들었던 현하빈의 말이 머릿속에 스쳤다.

하.

강태서는 편지를 다시 서랍에 담을 엄두도 못 낸 채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까망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께옹!(자! 멍청한 인간 대신 내가 간식을 챙겼다! 인간은 방석 챙겨라!)

까망이는 여전히 간식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발톱마다 간식 봉지를 알차게 꽂아 넣은 까망이가 우쭐한 얼굴로 턱을 쭉 들었다.

“…….”

한참 동안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태서. 그는 침묵 끝에 까망이를 덥석 안아 들었다.

-께? 께아앍(뭐, 뭐하냐 인간! 방석은?!)

그대로 벌떡 일어선 강태서는 교사연구실 밖으로 걸음을 향했다. 거침없다 못해 조급하게까지 느껴지는 태서의 행동에 까망이는 경악한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께엥! 께엥!(내 방석! 방석 가져가야 한다니까!)

* * *

쾅.

잠겨 있던 교장실 문이 한 번에 열렸다. 강태서는 교장실 의자에 앉아 있는 피데스를 확인했다. 방금 속보를 확인했는지 아직 학교를 떠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슨.”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태서를 알아본 피데스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그대로 비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강태서는 자신의 옆에 놓인 상태창을 힐끔거렸다.

[L:WIDDFdsjkwwd. dhfb오f:ㄹ:ㅠ 발생! 당장 디버기ㅇ하시!]

강태서는 관리자의 사도. 시스템 관리자가 그의 성좌나 다름없다.

관리자는 마음만 먹으면 강태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다만 현재 벌여 놓은 던전들과, 다른 사도들까지 감시하다 보면 언제고 강태서만 감시할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공백이 생기기 마련.

강태서는 그 공백을 잘 알았다. 그리고 억지로 공백을 만드는 법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억지로 만들어낸 공백이다. 현재 그가 시스템 관리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건 단 몇 초뿐이다.

그러니 몇 초 안에 말해야 한다.

“……SPES로 가면 안 돼.”

상대가 알아들을지 여부도,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을 느끼며, 강태서는 지체 없이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테러, 그거 함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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