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21) (121/268)

121. 반전(反轉) (1)

SPES 킬스크린 지부에 테러범들이 난입했다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댔다.

“헐, 어떡해…….”

“또 마이너 패치가 나타난 거야? 저번에 피데스 님이 다 소탕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 죽었어?”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군.”

드라마 교양 선생님도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킬스크린 지부라면 위험한데.”

SPES는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 한국 지부는 물론 전 세계 웬만큼 국가 기반을 유지한 나라들엔 하나씩 지부가 설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SPES 지부 중에 가장 중요한 지부가 두 군데 있다.

뉴욕 지부와 킬스크린 지부. 이 두 곳이 본부로 여겨진다.

이번에 테러당한 곳이 킬스크린 지부니, 사실이라면 SPES에 꽤나 큰 타격이 있을 터.

“교장선생님이 곤란하겠어.”

그사이 피데스와 내적 친분을 많이 쌓았던 드라마 교양 선생님은 잠시나마 그녀의 상사를 걱정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 그럼 교장선생님 출동하시는 거야?”

“그렇겠지? 킬스크린 지부가 공격당한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무사해야 할 텐데…….”

다들 당연히 피데스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갈 거라 예측하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선생님과 학생들은 피데스와 얕은 친분이 생겼기에 걱정을 한 것일 뿐.

다른 행인들의 반응은 무척 차분했다.

“피데스가 알아서 또 잘 막겠지.”

“저번에도 저런 일 있었는데 갓데스가 막았잖아. 이번에도 비슷할걸?”

애초에 해외 뉴스로 뜬 사건이었다. 당장 한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비행기 타고 한참 날아가야 도착할 먼 태평양의 섬에서 일어나는 테러 사건이야,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에겐 딱히 심각하게 와 닿지가 않았다.

게다가 피데스가 그동안 일을 너무 잘했다.

뭔 일만 생겼다 하면 피데스가 나타나 기다렸다는 듯 사건을 해결하고 ‘네,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안심하세요.’ 하던 게 익숙해져서 요즘 사람들은 사건에 상당히 무감각해졌다.

현시우로서는 회귀 지식과 뼈를 깎는 노력을 동원해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매번 막아낸 사건들이었지만, 그런 고초 따위 주변에 절대 티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세계 최강자.

그런 굳건한 이미지가 있어야만 세계가 더는 혼란에 빠지지 않을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범죄를 일으키면 반드시 피데스에게 응징당할 것이고, 피데스는 결코 지지 않는다.’

이런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 둔 덕분에 세계가 안정된 것이다.

마치 슈퍼히어로 영화 볼 때마다 ‘에이 결국 주인공이 이기겠지.’라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근거 없는 믿음?

그래서 이제는 범죄자들도 ‘에이, 이러다 우리 피데스에게 잡히겠지’라는 마음으로 범죄를 사리게 되고, 시민들도 ‘에이 결국 피데스 님이 해결해 주실 텐데 뭐’ 하고 안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생겼다.

그동안 현시우가 퍼붓던 먼치킨 사이다 스토리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이제 피데스를 믿다 못해 안전불감증에 걸릴 지경까지 온 것이다.

피데스가 사건을 해결할 거라는 전제가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거물들의 싸움에 우리가 뭐 어쩌겠어.”

“그리고 피데스 님이라면 믿을 수 있지.”

이제껏 마이너 패치는 단 한 번도 피데스를 꺾은 적이 없었다. 회귀자로서의 압도적인 성장 독식과 미래 정보력, 자금력을 가진 현시우. 그리고 그가 열심히 모으고 발굴한 SPES협회원들의 협공 속에서 마이너 패치는 매번 쓰디쓴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마이너 패치가 멍청한 거지.”

“왜 매번 질 걸 알면서 자살행위를 하는지 몰라?”

매번 이기기만 하는 피데스와 매번 지기만 하는 마이너 패치. 그 구도가 정립되다 보니 사람들은 가끔 불평마저 했다.

“아니, 한 번에 다 죽였으면 됐을 텐데 피데스는 일 처리를 얼마나 찝찝하게 했길래 마이너 패치가 매번 살아나?”

“피데스, 생각보다 무능한 거 아니야?”

사실 피데스가 무능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피데스 정도가 되니까 이제껏 마이너 패치를 계속 막은 거다.

시스템 관리자에게 온갖 치트와 편애를 받아낸 사도들이 마이너 패치 소속. 당장 강태서와 에라타가 월드랭킹 2위와 3위다. 마이너 패치 간부들도 죄다 월랭에서 한두 자리 안에 꼽히는 강자들.

또한 현시우라 해서 미래의 모든 정보를 아는 것은 아니다. 또 회귀 이후로 달라진 수많은 변수들이 있다.

그러니 지금은 회귀 지식만 써서 막는 게 아닌, 본인의 진짜 능력과 전략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얘들아, 일단 걱정하지 말고 이쪽으로 오렴. 티켓 나눠 줄게.”

드라마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속보와는 별개로 뮤즈레예술제의 분위기는 전혀 죽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킬스크린에서 테러가 난다고 한들 한국 서울에 있는 그들이 대피할 일은 없었다. 도울 수 있는 일도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축제를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단체관광 온 울림국제고 학생들은 그래도 교장선생님의 일이라 조금 걱정했지만, ‘피데스 님이니까 잘 해결해 주실 거야’라는 선생님의 말에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하빈이 물었다.

“선생님, 저 저거 사 먹어도 돼요?”

학생들 사이 홱 손을 치켜든 하빈. 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건 조그마한 츄러스 판매 트럭이었다.

사실 그동안 하빈은 뉴스 속보도, 학생들이랑 선생님의 심각한 분위기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중한 츄러스에 눈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빈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츄러스 트럭을 바라보았다.

“헉, 초코 츄러스랑 슈크림 츄러스까지 있잖아? 선생님, 저 진짜 빨리 사서 올게요!”

“어……. 이, 일단 티켓 받고 나서 사 먹으렴.”

“네!”

“…….”

* * *

한편 교장실에 있던 현시우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이너 패치가 SPES 본부에 나타났다고요?”

-네! 좀 있으면 이곳을 폭파시키겠다고 협박 중인데요?

“흠, 원래 저런 식으로 나오던 놈들이 아닌데.”

[그치. 평소에는 예고를 하지 않잖아.]

그냥 말도 없이 뻥, 터뜨려 버리거나 기습공격을 하는 게 마이너 패치의 주특기다. 가끔 유치하게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럴 때 그들이 요구하는 건 중요 데이터나 중요 아이템들.

“그런데 이번엔, 요구도 없이 협박부터 하고 있다니…….”

일부러 현시우를 불러내려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네아이바, 제가 혹시 상황을 너무 끼워 맞추고 있는 걸까요?’

[글쎄다…….]

멀찍이서 떨어져 보면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강태서는 그냥 별생각 없이 친구에게 티켓을 구해준 것이고, 채남매는 출근 안 하는 날이라 출근 안 한 것일 뿐이고.

현시우 역시 평소에도 SOS 콜이 많이 온다. 학교에 있는 동안만 동료나 수하들을 보내 일을 처리하고 있을 뿐 평소의 현시우라면 벌써 몇 번은 학교를 내팽개치고 출동해야 정상이었다.

-피데스 님, 일단 빨리 와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

-피데스 님?

수화기 너머에서는 재차 현시우를 찾는 외침이 들렸다. 현시우는 침묵에 잠겼다. 무려 SPES 본부가 테러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 수장인 피데스가 안 온다면.

그것도 학교 업무 때문에 못 간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마이너 패치도 그걸 노린 건가?’

만약 마이너 패치가 일부러 현시우를 끌어내기 위해 이 사건을 벌인 거라면.

‘게다가 저번에는 강태서가 학교에 무언가 좋지 않은 짓을 하는 걸 봤었지.’

저번에 현시우는 강태서가 허공에 손짓하는 걸 보고 ‘뭐 하는 짓이냐’며 멈춰 세운 적이 있었다.

‘사도들은 관리자 모드를 쓸 수 있으니까.’

그냥 상태창을 보는 것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느낌이 쎄한 게 왠지 관리자 모드 써서 뭔가를 하는 모양새였다.

“흠…….”

현시우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필 학교에서 관리자 모드를 쓰던 강태서, 그리고 나를 억지로 학교에서 끌어내려는 마이너 패치.’

게다가 지난 회차, 학교에서 터졌던 합정역 참사.

“……설마.”

현시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합정역 참사는 마이너 패치의 음모였나.’

[뭐?]

‘일부러 여기에 인공 게이트를 제작하는 게 마이너 패치의 본 목적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합정역 참사에 나왔던 게이트는 상당히 이상한 점이 많았죠.’

처음에는 B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SSS급이었던 합정역 게이트.

‘그런 게이트는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합정역 사건 이후로는 여러 곳에서 등급을 속인 함정 게이트가 종종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합정역 사건 당시에는 그런 일이 처음이었던지라 사람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게이트가 B급일 것이라 믿었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그럼 어떻게 해? SPES본부로 가, 말아?]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문제고, 가면 가는 대로 문제고…….’

만일 SPES의 호출을 쌩깠는데 정작 학교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다.

그리고 SPES 본부에 달려간 그 순간 게이트가 이곳에 터지면 그것도 문제일 터. 거기까지 계산한 현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사실 이러려고 생각해 둔 게 있는데…….”

결론을 내린 그가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 * *

-강태서, 우리 곧 거기다 게이트 열 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빨리 빠져나와.

“…….”

마이너 패치의 연락을 받은 강태서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다. 학생들에게 작문 과제를 내준 덕에 교실은 사각사각 샤프심이 종이를 긁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제 곧 여기 게이트가 열린단 말이지.

‘B급을 가장한 SSS급.’

마이너 패치가 계획한 게이트 등급은 분명 그랬다. 겉에서 측정하면 B급이지만 실제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SSS급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지금쯤 에라타가 보낸 테러 요원들이 SPES를 점거하고 있을 것이고.’

아마 피데스를 비롯한 고위 랭커들은 SPES 본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B급 게이트 공략조에는 B급이나 A급 헌터들만 여럿 추려지겠지. 합정역은 번화가이기도 하니 운이 좋으면 S급도 몇몇 나서 줄 것이다. 하지만 겨우 B급 게이트를 막는 데 피데스 같은 거물을 동원할 리는 없다.

공략조가 학생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 부분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강태서가 나름 손을 써 둔 부분이 있으니, 조금의 기대를 걸 수는 있을 테다.

생각을 마친 그가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연달아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첫 번째. 너 근데 진짜 빨리 나와야 해.

-이번 게이트, 계획 변경됐거든.

‘계획이 변경되었다고?’

비록 강태서가 계획에 일조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코드 발동 계획과 외부 작업은 모두 마이너 패치가 담당했다. 특히 이번 작업은 ‘네 번째 사도’가 주축이 되어 작업했다. 마이너 패치는 강태서를 꽤 견제했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막판에 알려주고는 했다.

때마침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 게이트 속성 바꾸기로 했어.

-한번 발동되면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던전으로.

“……!”

강태서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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