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17) (117/268)

117. 거친 하빈과 불안한 학교와 그걸 지켜보는……. (4)

“선생님!”

“강태서 쌤!”

“태서쌤!”

-게에오웅…….(인간, 너는 꽤 인기가 많군. 대체 왜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

한편, 강태서는 오늘도 학생들에게 붙잡혀 반짝거리는 눈빛을 마주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건 제가 어제 열심히 구운 쿠키예요! 한번 드셔보실래요?”

“선생님! 엊그제 선생님께서 해주신 강의 덕분에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받은 표정으로 몰려든 학생들은 태서에게 쪽지와 선물을 건넸다. 모두 정성과 애정이 가득 담긴 것들이었다. 까망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옆에서 울었다.

-께오옭, 께옭!(이런 답답한 인간의 어디가 좋다고! 차라리 나한테 간식을 줘라!)

하지만 학생들의 애정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헉, 까망이 너무 귀엽다.”

“쌤! 저희랑 피구 한 판만 해주시면 안 돼요? 옆 반 채지석 쌤은 해주셨는데!”

“선생님! 계속 저희 선생님 해주시면 안 돼요?”

-게에옹, 게옹(다들 왜 까만 인간을 좋아하는 거냐? 인간들은 인간 보는 눈이 없나 보다!)

“…….”

같이 무언가를 해달라는 요청, 감사의 인사, 보내기 싫어서 매달리는 아쉬움의 말까지. 모두 강태서에 대한 애정과 선망에서 오는 말들이다.

‘맞아, 강쌤이 확실히 애들한테 인기가 많더라!’

현하빈이 했던 말이 문득 강태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 갔다.

“…….”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이건 모두 강태서가 쌓아 놓은 화려한 이력 덕분에 끌어모은 인기다. 강태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밀어내려고 했다.

애초에 그는 학생들과 잘 지낼 자격이 없었다. 학생들도 그의 실체를 알면 절대 이렇게 다가올 수 없을 것이다. 곧 마이너 패치가 이곳에 게이트를 열게 되면.

아마 이곳의 학생들은 전부…….

“…….”

태서는 대답 없이 꾹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현재 마이너 패치의 계획에 기여하고 있는 게 강태서 자신이다. 아무리 그의 목적이 따로 있다 해도 지금의 행동을 참작하거나 합리화할 수 없다. 그러니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착한 척 굴거나 정을 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무심하다 못해 무뚝뚝한 태서의 태도에도 학생들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저희 체육대회 준비한 거 미리 보실래요?”

“선생님! 저 지난번 과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잘했죠?”

“…….”

단지 유명인인 그에 대한 동경도 있었지만, 그 사이로 진짜 진심 어린 애정이 묻어나는 걸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오늘 강의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처럼 멋진 헌터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래도 마지막 말은 역시 더 들어줄 수 없었다. 강태서는 대답하지 않고 재빠르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학생들은 신이 나서 재잘댔다.

“쌤, 안녕히 가세요!”

-게에오웅!(너네도 안녕해라! 착한 어린 인간들!)

아무것도 모르는 까망이는 대신 대답하며 강태서를 총총 따라갔다.

* * *

“현하빈 학생!”

“넹?”

어느새 해먹에 누워 밀짚모자를 얼굴 위에 올려놓고 있던 현하빈. 그녀가 검술 선생님의 외침에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하빈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밀짚모자가 휘잉,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 모자는 또 뭐야!’

양복 디자인으로 각 잡힌 교복과는 영 동떨어진 디자인의 밀짚모자. 게다가 하빈은 입에 강아지풀을 물고 있었다.

“이, 입에 문 그건 뭐니?”

“강아지풀인데요!”

입에 문 강아지풀을 쏙 빼서 손에 쥔 하빈이 생각했다.

‘오늘은 방학을 맞아 시골에 소풍 온 한량 컨셉을 잡아보았지!’

그랬다. 하빈은 요즘 그냥 땡땡이치는 것도 질려서 매번 다른 컨셉의 땡땡이 시도를 했다.

옥상에서 낮잠 자는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 컨셉, 학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도서관에 잠입해 영화를 본다는 컨셉, 학교에서 작물을 키우는 농부 컨셉 등등…….

[그래. 항상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행동을 한다! 저번에는 그, 뭐냐. 갑자기 모종을 뒤뜰에 심었잖느냐!]

‘응! 사과나무 묘목을 심어 봤어. 가을 되면 사과 따 먹을 거야!’

[여긴 학교인데 허락도 없이 그런 걸 함부로 심으면 되느냐?!]

‘에엥. 허락받았는데.’

물론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던 하빈은 사과나무를 심기 전에 교장실 앞에 있는 건의사항 수리함에다 편지를 친절하게 써서 넣었다.

편지 제목: 사과나무 좀 뒤뜰에 심겠습니다.

“……?”

그걸 본 현시우와 네아이바는 기함했지만 말이다.

[이, 이게 뭐냐?]

‘어, 어쩐지 이 상황 언제 한번 또 겪은 것 같은데.’

[사과나무? 사과나무를 심어? 이건 뭔 뜻이냐? 도전장이냐? 협박장? 혹시 사과나무라는 게 너희 둘 사이의 암호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난 또, 저번에 카톡으로 생존 여부 묻길래 그런 건 줄 알았지.]

‘애초에 현하빈은 제가 교장인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암호를 씁니까? 이건 그냥 이 학교의 교장에게 하는…… 뭐랄까. 일종의 통보인 겁니다.’

[사과나무 심겠다는 통보?]

‘그런 셈이죠…….’

그래도 다행히 박력 넘치는 제목과 다르게 본문에는 꽤 멀쩡한 사과나무 파종 계획과 사과나무가 왜 학교에 필요한지 나름 설득력 있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현하빈……. 사과나무 심는 데 진심인 건가?’

하긴 처음 아헤자르 받았을 때도 ‘난 사과나무나 심을 거임’이라고 했던 현하빈이었다.

‘네풀릭스랑 뮤튜브를 넘어 실제 사과도 심고 싶은 건가…….’

어쨌든 현시우는 고심 끝에 이번에도 허락을 했다. 뒤뜰에 사과나무 묘목이 생긴다고 해서 딱히 학교에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현하빈, 꽤 건전하게 지내네.’

사고 쳐봤자 나무에 해먹 걸고 사과나무 키우는 것 말고 딱히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 외에 학교 담 넘기나 시비 걸던 애들 겁주기, 교사연구실 상습 침입 정도는 있었지만…….

[흠, 그 정도면 뭐 애교로 봐줄 수 있지.]

‘그러게요. 생각보다 큰일은 없네요.’

물론 이건 현시우와 네아이바 둘 다 하빈의 교장실 침입 계획을 몰랐기 때문에 하는 태평한 소리일 뿐이다.

창문을 깨고 교장실에 잠입할까 고민했던 현하빈의 야심찬 계획을.

* * *

“현하빈 학생! 어쨌든 강아지풀인가 뭔가는 치우고 빨리 내려와!”

“아앗, 이렇게 귀엽고 착한 강아지풀에게 너무하시네요, 선생님…….”

“…….”

휘릭, 탁.

하빈은 멋진 낙법으로 해먹에서 뛰어내렸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운동장을 향해 걸어간 하빈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네에……. 선생님,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오늘은 너도 훈련에 참여해라.”

“오늘 저 아픈데요…….”

하빈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마음이 흔들릴 처량한 꾀병 페이스.

하지만 검술 선생님은 그 모습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크흠! 양호 선생님에게 전해 들었다. 저번에도 양호실 간다고 빠져 놓고 정작 양호실엔 가지도 않았다며? 그동안 대체 왜 수업을 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얄팍한 거짓말로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나?”

검술 선생님은 이미 다른 과목 선생님들에게서 하빈의 태도를 다 듣고 있었다. 저번 교무회의 때 특히 잘 들었고 말이다.

하빈은 드라마나 웹툰 관련 수업에는 아주 성실한 학생이었다. 아픈 척을 하지도 않았고, 결석도 잘 안 했다.

‘결국…… 내 수업만 무시한단 거지.’

아플 거면 다른 수업도 공평하게 빠지던가. 어째서 검술 수업만 그렇게 땡땡이를 치냔 말이다.

‘다른 학생도 아닌 킬스크린 방문 이력이 있는 A급 헌터인데!’

사실, 처음 현하빈의 정체에 대해 들었을 때 검술 선생님은 꽤나 기대를 했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겠군!’

이곳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만 들었을 뿐 실제적인 헌터 생활에 대해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눈앞에서 정식 헌터와 함께 수업을 받는 건 그 자체로도 학생들에게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던전에서의 대처법이나 팁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실전에서의 순발력과 위기관리 능력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학기 초부터 열심히 지켜보았다.

‘어디, 현하빈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는지 볼까?’

그리고 현하빈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여기가 제일 낮잠 자기 좋더라고.’

‘매점 빵 중에서 초코롤이랑 앙버터가 제일 맛있더라.’

‘오늘 급식은 납작당면을 넣은 치즈찜닭이랑 한우갈비살구이래! 수업 끝나면 달려가자!’

‘네풀릭스 오리지널 이번에 새로 나온 거 봤어? 꿀잼!’

‘전부 도움 안 되는 조언뿐이었잖아!’

전투나 헌터 생활과는 전혀 관련 없는 꿀팁들의 향연! 쉬는 시간에 나누는 다른 대화들도 별다를 건 없었다.

‘뭐어어?! 너 도서관 대출 1위 책 빌렸다고? 다 읽었어? 아직 반납 안 했다고? 헉, 잘 됐다! 그럼 나 하루만 빌려주라! 내 친구 김잘잘이 그거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대서. 응? 김잘잘이 누구냐고? 어, 잠깐만. 갑자기 배가…….’

‘나 주말에 룸메랑 놀이동산 갈 건데 공짜 티켓이 남아서 말이야. 혹시 여기 중에 또 같이 갈 사람? 간만에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 타야지!’

‘……쟤는 학교에 놀러 온 건가?’

아무리 돌이켜 봐도 노는 이야기 말고는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검술 선생님은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는 넘어갈 수 없어.’

사실 선생님은 그동안 고민을 했다. 왜 현하빈이 유독 자신의 수업에만 참여도가 낮은지에 대해.

‘수준이 안 맞아서 그런가?’

간혹 밖에서 헌터로 구르다 온 최상위급 실력자들은 학교의 강의를 못 견디는 경우가 있었다. 너무 수준이 낮은 반복 학습이라 지루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네가 지금 이 수업이 지루해서 그러는 거라면, 오늘은 다른 방식의 수업을 하지.”

그렇게 생각한 선생님이 결연한 표정으로 현하빈에게 제안했다.

“다른 방식이요?”

“……대련이다.”

“네에?”

대련.

그 단어에 하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피하고 싶어 했던 대련이라니!’

차라리 그냥 훈련을 받는 게 낫지, 대련은 정말 위험했다.

‘이건 나 혼자 운전연습하느냐와 거리에 나가 도로주행하느냐의 차이라고!’

[그게 무슨 차이냐?]

‘혼자 운전연습은 별일 안 생기겠지만, 실수로 도로에 나가서 남의 차를 받기라도 해봐, 교통사고 나면 큰일이라고! 내가 까딱 힘 조절 못 하면 멀쩡한 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니까?’

하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슬픈 한숨.

그러나 하빈은 얼마 지나지 않나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괜찮아. 이럴 줄 알고 나는 다 생각해 둔 게 있다고.’

하빈이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F반인걸요.”

“그게 뭐가 문제지?”

“F반은 대련하면 안 되는 게 교칙으로 정해져 있어요.”

“……!”

그 점을 생각 못 했다는 듯 치켜 올라가는 선생님의 눈썹. 하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저는 선량한 학생이고 싶은걸요! 그래서 교칙을 어기는 그런 몰상식한 행위는 할 수가 없어요…….”

학교 담을 넘고 교사연구실에 상습적으로 침입하며, 무단으로 해먹을 걸고 사과나무를 심었던 현하빈.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교칙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어필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얄짤없이 대답했다.

“……교칙 위반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허락했다고 하면 되니까.”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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