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16) (116/268)

116. 거친 하빈과 불안한 학교와 그걸 지켜보는……. (3)

훈련 동아리.

다른 것도 아니고 훈련을 목적으로 한 동아리는 특이했다. 보통은 밴드부나 만화 동아리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택하는 편이었다.

하빈은 아무것도 안 하고 기숙사 가서 놀기 위해 자습부를 선택했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동아리는 꽤 재미있는 구석들이 많았다. 취미 활동, 봉사 활동, 혹은 생활기록부에 뭐라도 남겨주는 유익한 동아리들까지.

이 와중에 다른 것도 아니고 훈련 동아리를 택했다는 건, 헌터로서 자기계발의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꼭 강해지겠어!’

‘다음 대련 실습에서 반드시 상대를 이길 거야!’

‘졸업하자마자 좋은 길드에 들어가야지. 그러면 길드 입단 테스트는 통과할 성적이 되어야 하니까.’

나름대로 각자의 꿈을 안고 오게 된 동아리.

여서윤은 그중에서도 헌터로서의 가능성을 계발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헌터로 활약하려면 언제까지고 F급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F급으로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서윤의 목표는 그보다 위였으니까.

‘하빈 언니처럼 그런 굉장한 헌터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되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도 적어도 한 사람 몫을 하는 헌터가 될 거야.’

마침 주변에서는 서윤이에게 다가와 뭔가를 묻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쟤가 현하빈이랑 룸메이트라며?’

‘어제 기숙사가 뒤집어졌을 때 같은 방에 있었다던데.’

‘쟤라면 뭔가 더 알고 있는 게 있지 않겠어?’

하빈과 다르게, 서윤은 겉보기에 만만해 보이는 이미지였다.

하빈은 워낙 소문에서 비쳐지는 배경이 어마무시했고 A급 헌터라는 실제 지위도 있었으니 학생들은 하빈을 어려워해서 잘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여서윤은 달랐다. 학생들이 은연중에 무시하는 F반. F급 각성자.

‘설마 현하빈이랑 진짜로 친하겠어?’

‘계 탔네. 현하빈이랑 룸메이트라니.’

‘한 다리 건너 컨티뉴랑 인맥이 생긴 거잖아.’

‘일부러 먼저 알고 첫날부터 현하빈한테 계획적으로 접근한 거 아냐?’

‘어우, 그런 거면 소름.’

‘보기보다 영악한가?’

‘얼굴 보니까 맹해 보이는데? 어쩌다 얻어걸린 거겠지.’

‘F급이 운도 좋네.’

훈련부에는 A반부터 F반까지의 학생이 섞여 있었다. 어차피 동아리 활동이기에 등급 상관없이 신청자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동아리실 한구석에서 키득대던 그들 무리 중 한 명이 서윤에게 다가와 물었다.

“안녕, 서윤아!”

“응?”

“나 알지? 우리 동아리실에서 좀 봤잖아.”

“응…….”

서윤의 떨떠름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있지, 갑작스럽지만 내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네 룸메이트분, 진짜 코니 님의 손녀셔?”

곧바로 찔러 들어오는 질문. 그것을 시작으로 기다렸다는 듯 주변의 아이들이 끼어들었다. 그동안 눈치를 보다 이제야 마구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강태서 쌤하고는 진짜 아무 사이 아닌 거지?”

“채남매 쌤들이랑도?”

“코니 님 후계자면 돈 많을 텐데 비싼 옷이나 물건 갖고 있지?”

“어제 받은 코니 님 선물 같이 뜯어 봤어? 어땠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질문들. 서윤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도 잘 몰라. 그리고……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이도 아직 아닌 것 같고…….”

“에이, 그러지 말고.”

웃으며 대답하던 학생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뭐야. 현하빈 당사자도 아니면서 괜히 위세 떠는 거야?’

‘그 정도도 말 못 해 줘?’

‘비싸게 구네.’

‘좀 같이 붙어 다니더니 지도 현하빈급이라고 착각하는 거 아니야?’

그들은 이대로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분명 선생님들은 하빈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여서윤한테 묻지 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여차하면 여서윤 혼자 신나서 말한 거라고 둘러대면 끝이라고.’

계산을 마친 그들이 재차 서윤을 졸랐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알려줘 봐. 같이 지내다 보니 알게 된 것도 있을 거 아냐?”

“성격은 어때?”

“A급 헌터라며. 그 정도로 강해?”

“…….”

‘그냥 이 자리를 피할까?’

서윤이 눈을 굴릴 때였다.

“……야, 그만해. 모른다잖아.”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네발…… 아니, 송제희?’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서윤의 눈이 커졌다. 학생들을 제지한 건 다름 아닌 송제희였다. 제희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그런 거 함부로 묻지 마라. 알면 다쳐.”

‘진짜로 다쳐…….’

그랬다. 제희는 진짜로 그들이 다칠 거라고 확신했다.

‘이 녀석들은 현하빈의 진짜 모습을 모르니까 이렇게 날뛰는 거지.’

제희는 분명히 보았다. ‘네발로 기어라’라고 말할 때의 현하빈의 섬뜩한 눈웃음을.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스치듯이 마주했던 위압감을.

‘보통 강자가 아니었어. 이길 수 없다.’

힘으로도, 빽으로도.

무엇보다 유명 헌터 코니와 컨티뉴가 확실한 뒷배라니. 현하빈은 누구 하나 실수로 묻어 버리고도 덮을 수 있는 대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현하빈, 여서윤의 편을 들어 줬다고.’

지금 저렇게 여서윤에게 날뛰다가 잘못 걸리면 현하빈이 소환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그걸 모르니까 저렇게 막 나가는 거지.’

하지만 제희의 생각을 모르는 학생들은 투덜거렸다.

“아, 송제희 너 왜 그러냐?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게.”

“맞아. 물어볼 수도 있지.”

학생들이 슬금슬금 송제희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제희가 재차 말했다.

“선생님들께서도 현하빈 개인정보는 들쑤시지 말랬잖아. 이러다 문제 되면 어쩔 건데?”

“…….”

F급에 순한 인상인 여서윤과 달리, B급에 성깔 더럽기로 소문난 송제희.

게다가 여서윤 혼자를 상대하다 이제 두 명을 상대하려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졌는지 눈치를 보던 학생들은 다시 뿔뿔이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서윤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송제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워, 제희야.”

“어, 딱히 너 도와주려던 거 아니고 쟤네 불쌍해서 그런 거거든? 또 다른 네발 걷기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이라고.”

누구든 우물에 빠지려고 다가가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쯤 말리기 마련!

틱틱대던 송제희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기 왔으면 알아서 훈련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짜증 나게.”

“…….”

서윤은 제희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왜 또 자꾸 쳐다보는데?”

서윤의 의아한 표정에 대고 제희가 인상을 팍 썼다.

“아니…… 그게.”

‘저런 애가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제희는 현하빈에게 까인 이후로 다른 학생들에게 시비 거는 일을 그만둔 모양이었다.

훈련부에 자진해서 가입도 하고.

‘씨, 현하빈이 어떤 빽을 가졌는지 알 게 뭐람. 어차피 다 의미 없는 짓거리야.’

제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서윤은 모르는 일이었겠지만 제희는 하빈에게 깨진 이후로 혼자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의 B급이라는 등급으로 선망을 받았던 제희.

‘미성년자인데 벌써 B급 달았다고?’

‘급수저네 급수저. 등급 금수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았지만 제희는 그에 만족하지 못했다.

B급이니까.

S급도 A급도 아닌 애매한 B급.

일반인들이나 하위 급수 헌터들의 선망은 받지만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저 천상계 등급들, 그리고 까마득한 랭커들을 볼 때마다 허탈감이 드는 것이다.

특히 헌터고에 입학하고 나서 더 그렇게 느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각성자 학생들을 다 모아놓은 곳이다 보니, 희귀한 A급과 S급의 또래도 보게 된 것이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게다가 B급은 마의 등급이다. 아무리 낮은 등급으로 시작했더라도 피나는 노력을 하거나 기연을 얻으면 B급까지는 어찌어찌 올라갈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거기서부터가 크나큰 벽이다. A급과 B급 사이가 진정한 마의 구간. B급에서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 헌터들이 수두룩하다.

‘아마 내 한계도 여기까지일걸.’

오르지 못할 것 같은 A급도 S급도 다 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제희는 그 열등감을 삐뚤어진 방식으로 풀어왔던 것이다. 자신보다 다른 등급에게 유치하게 시비를 걸고, 속을 긁는 것으로.

‘쟤보단 내가 낫지. 쟤는 F급이잖아. 그럴 바에 이 학교 왜 다니냐?’

‘각성해서 망정이지. 비각성자면 이 세상 어떻게 살았겠어?’

‘난 B급이라 정말 다행이다.’

서윤에게 시비 건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서윤은 그저 우연히 수많은 화풀이의 타깃 중 하나가 된 것이었을 뿐.

‘F급 다닐 바에 학교 자퇴하지 그러냐?’

그렇게 말하면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으니까. 못된 짓이라는 걸 알아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역으로 현하빈에게 된통 깨졌다.

‘헌터를 으스대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꼭 급으로 서로 면박을 줘야겠어? 너희 그러려고 헌터 해?’

“…….”

여서윤에게 낯간지럽게 사과를 하고, ‘너희 그러면 안 된다’류의 말을 듣고 있으니 모처럼 현타가 밀려왔다.

‘제길.’

짜증 나지만 솔직히 다 맞는 말이었다.

화풀이를 하거나 시비 털 시간에 훈련이나 하는 게 맞는데. 그동안의 행동이 얼마나 유치했는지 공개적으로 다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제희는 고민 끝에 큰맘 먹고 훈련부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냥 내 일이나 잘 하자.’

이제 제희는 훈련에 참여해서 직접 실력을 키워 볼 생각이었다. 더는 안 오를 잠재력으로 훗날 밝혀진다고 한들, 이제 더는 시비나 걸면서 스스로의 실력을 외면하고 정신승리나 하는 짓은 그만둬야지.

* * *

한편 그 시각.

하빈은 신청해둔 검술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하빈이 유일하게 신청해둔 수업다운 수업!

검술 클래스 수업.

기초 과목을 하나 이상은 필수로 수강해야 된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 신청한 과목이었다.

“흠, 햇살 좋고, 새 소리 좋고!”

짹짹.

물론 하빈은 오늘도 수업에 참여하기는커녕 훌륭한 자세로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좋아, 오늘은 알람 맞춰 놓고 자야지. 이다음 수업은 요리 수업이라서 늦으면 안 되니까!”

흔들거리는 바람과 흔들거리는 해먹, 나무가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까지.

그야말로 완벽하고 꿀 같은 휴식!

하빈은 저번에 계획한 대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나무에 걸 수 있는 해먹을 주문했다. 그리고 운동장 옆 아름드리나무와, 뒤뜰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잘 걸어 두었다.

그리고 검술 수업 시간마다 하빈은 선생님에게 몸이 안 좋아서 검술을 못 하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아늑한 해먹에 누워 있는 것이다.

‘……대체 누가 저기 해먹을 걸어 둔 거야?’

그 모습을 보며 검술 수업 선생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틀림없이 현하빈 저 학생이 건 게 틀림없어!’

어차피 제대로 쓰는 사람이 현하빈밖에 없으니 말이다.

‘저거 저렇게 걸어 놔도 되는 거야?’

검술 선생님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저 자리가 해먹이 딱 어울리는 자리라 한들, 무단으로 학교 나무에다 해먹을 설치하다니!

게다가 그걸 수업 땡땡이용으로 쓰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기서 내려오라고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검술 선생님은 차마 제지할 수 없었다.

저 해먹을, 무려 교장 피데스도 허락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 누군가 무단으로 나무에 해먹을 걸었습니다!’

‘하하, 뭐 그런 게 있으면 학생들이 놀거나 쉬기도 하겠네요.’

이야기를 듣자 아주 흔쾌히 허락해 버린 피데스의 태도에 검술 선생은 더 이상 태클을 걸지 못했다.

‘역시 깨어있으신 분이다. 교칙보다 학생들의 즐거움을 생각하시는 피데스 님의 큰 그림…….’

감명을 받은 검술 선생님.

물론 교장 현시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현하빈이 또 희한한 짓을 하고 있나 보다.’

[왜 해먹을 학교에 걸고 있냐!]

‘에효……. 저거라도 걸어서 네가 자퇴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라졌다면 됐다, 동생아.’

물론 현하빈의 자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일의 일환이었다.

어쨌든 결국 태평하게 해먹을 차지한 현하빈의 모습. 그걸 바라보는 검술 선생님의 인상은 여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다들 왜 저렇게 현하빈을 감싸는 거야?’

그랬다.

비록 교무회의에서는 선생님들이 현하빈의 편을 드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지만, 현하빈을 좋지 않게 생각하던 선생님도 있었다.

바로 검술 선생님이었다.

‘수업 태도가 좋긴 뭐가 좋냐! 매일 땡땡이만 치는데!’

좋아하는 요리나 드라마 웹툰 수업은 꽤 잘 참여한 하빈이었지만, 검술 수업은 필수 이수 시간만큼만 딱딱 지켜서 왔던 것이다.

게다가 오면 아프다며 해먹에서 낮잠이나 자고!

그러니 검술 선생으로서는, 도대체 다들 저 학생의 어떤 면을 보고 좋게 평가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하빈의 빽이 대단해 보이니, 다들 줄이라도 설 생각인 건가?

‘하지만 여긴 헌터고다.’

현하빈, 네가 밖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든 여기서는 굴러야 한단 말이다.

비록 교무회의 시간에는 다들 하빈을 향한 우호적인 반응이 많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에야말로 한마디 해야겠어!’

매일 아프다고 뺀질대거나 결석하는 걸 어디까지 봐줘야 하나 생각했는데 오늘에야말로 단단히 혼을 낼 것이다. 결심을 굳힌 선생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현하빈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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