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15) (115/268)

115. 거친 하빈과 불안한 학교와 그걸 지켜보는……. (2)

“어? 뭐야. 이제 안 쫓아다니네?”

다음날 낮부터 현하빈은 변화를 느꼈다.

그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던 신문부가 싹 사라졌다.

현하빈은 늦잠을 자는 바람에 몰랐지만, 지난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선생님들이 직접 나서서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뛰어다닌 결과였다.

‘신문부 담당선생님의 특단 조치가 있었다지?’

‘방송부도 경고가 들어왔대!’

‘학교에서 나서서 루머라고 해명할 정도라니. 현하빈 걔 대체 뭐야?’

하빈에 대한 이야기들은 루머이며, 그걸로 현하빈을 귀찮게 하는 건 교칙 위반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했다고 한다. 신문부에도 두 번 다시 그런 행동은 안 된다고 경고를 주었고 말이다.

그렇게 현하빈에 대한 여러 설들은 일단락되나 싶었다.

딱 하나의 설만 빼고 말이다.

코니와의 관계.

강태서나 채남매에 대한 이야기는 꽤 사그라들었지만 코니의 손녀라는 설만큼은 죽지 않았다.

아니, 물밑에선 아예 그게 정설로 굳어진 모양새였다.

‘다른 가설은 다 틀렸고, 코니 님과 관계된 것만 진짜래!’

이렇게 굳어지는 것이다.

덕분에 흑막가문의 딸이니 대통령의 딸이니 강태서 채남매와 혈육이니 하는 소문은 싸그리 종적을 감추었다.

컨티뉴의 후계자라는 썰만 확실하게 남은 상황.

그것만으로도 물론 대단한 빽이긴 했지만, 원래 사람의 심리란 상대적인 것이다.

여러 추측들을 들고 와서 미지의 굉장한 존재로 부풀릴 때는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막상 무성한 소문에 비해 한 가지로 귀결되자 학생들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

‘에이 김샜네.’

‘여전히 굉장한 배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 식어버린 논란거리에 다시 불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마저도 선생님들에 의해 저지당하게 되어서 이제 완전히 사그라들 조짐을 보이는 것이었다.

코니의 예상치 못한 화려한 이벤트와, 웬일로 단합된 선생님들의 재빠른 대처. 그것으로 인해 다행히 소문들은 잠잠해졌다.

‘그 점에 있어서는 코니 할머니께 감사를 드려야 할지도.’

하빈은 뒤늦게 코니에게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에는 편지도 더 길게 쓰고 선물도 작게 챙겨드려야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결론을 내린 하빈은 등굣길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음…….”

예상보다 괜찮은데?

여전히 가끔가다 흘끔거리는 학생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예전만큼의 상황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하빈은 흡족스런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이 정도면 학교를 좀 더 다녀볼까?’

아직 학교에서 해봐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다.

‘다음 요리 교실에서는 잠발라야랑 감바스를 만들기로 했다고. 이번에 같은 조가 된 조원들이 다들 요리 스킬에서 한 가닥 하던데, 꿀맛 음식이 나올 게 틀림없어.’

그건 꼭 먹어봐야 한다.

‘<찰나의 시간> 드라마도 다 봐야 하고.’

게다가 이 학교 도서관의 멀티미디어실은 또 어떤가, 찾아보니 도서관 1층에는 작은 영화관을 꾸려놓은 멀티미디어실이 있었는데 보고 싶은 영화를 대여해서 볼 수 있게 시설이 무척 잘 되어 있었다. 하빈은 심심하면 그곳에 팝콘을 챙겨 가 영화 보는 걸 즐겼다.

‘게다가 급식 퀄리티도 예술이란 말이지!’

하빈은 자라나는 이 나라의 훌륭한 고등학생답게 학교 급식 메뉴를 다 외우고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 급식에는 무려 랍스터가 나온다니까!’

그건 진짜 꼭 먹어야 한다. 만에 하나 랍스터 급식을 못 먹고 학교를 자퇴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죽기 전에 한 번쯤 생각날지도.’

[그 정도냐?!]

‘물론이지! 이런 걸 다 즐기기 전까지는 학교를 다녀야 한단 말이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교에 너무 많은 정이 들어버렸다.

[급식과 드라마에 정든 것이 아니냐…….]

‘흠흠, 무슨 소리야 잘잘! 너도 요즘 학교 도서관에서 웹소 빌려보느라 정신없으면서!’

[그건……! 그건 다 캐시를 아끼기 위한 나의 특단의 결정이다! 덕분에 네 돈을 덜 쓰잖느냐!]

‘여기만큼 좋은 도서관이 없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저께의 잘잘이는 어디 갔지?’

[크흠, 확실히 여기 도서관이 최고긴 하다만…… 예전 연수원에서 빌려보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느니라.]

하빈은 아헤자르를 돌아보았다. 단단하게 매 놓은 검집 위로 새하얗게 드러난 손잡이가 보였다.

그랬다.

하빈은 처음으로 아헤자르의 본모습을 그대로 검집에 끼워 들고 왔다.

“……효과가 좋네.”

아헤자르는 생긴 것도 생긴 거지만,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아우라가 있다.

강해 보이는 것 같은 본능적인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딱 봐도.

‘저거 뭐 있네.’

‘저거 뭔가 세 보인다!’

같은 느낌을 주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코니에게 받은 검집에 끼우자 거짓말처럼 그 존재감이 싹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나를 흘끔댈 뿐, 검에는 신경을 안 쓰고 있어.’

현하빈의 소문을 듣고 하빈의 얼굴을 흘끔대는 학생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하빈의 검이 바뀌었다는 점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실 네가 그동안 검술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냐?]

‘……그럴 수도 있고?’

그동안 검술 수업은 신청만 해놓고 운동장 스탠드에서 낮잠 자던 현하빈.

덕분에 아헤자르는 철검으로 위장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다른 모두들 앞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래도 꽤 대단하단 말이지.’

검집은 코니가 제작한 검집답게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별다른 어그로가 안 끌린다는 게.

검집이 가진 ‘인식 편광’의 효과겠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좋은 점은 검집이 충분히 단단하다는 거야.”

어젯밤, 하빈은 검집을 놓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크라이오제닉 프리징!’

아헤자르에게 끼워 놓은 채로 마신의 마법을 사용해서 얼리고, 태우고, 마력을 실어 내리쳐도 보고.

우우웅-

나중에는 아헤자르 자체에 마력을 실어 검집을 검기로 둘러 봤다.

‘어, 언니. 그렇게…… 해도 괜찮아?’

그 꼴을 지켜보던 서윤은 놀라서 물었다.

하긴. 물건을 배송받자마자 마구 내려치고 얼리는 사람은 처음 볼 것이다. 하빈은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당연하지! 무상 A/S라니까! 원래 제품은 구매하자마자 하자가 있는지 봐야 돼. 그래야 무상 교환 반품을 받을 수 있단 말씀!’

‘앗,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다.’

-삐아악!

리베도 거들어주겠다는 듯 아장아장 다가와 검집을 와앙 깨물어 보았다. 하지만 단단하기로라면 어디서 빠지지 않는 용의 이빨에도 검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오, 대단한데?’

놀랍게도 검집은 마신의 스킬과 아헤자르의 스킬을 모두 버텨냈다. 흠집 하나 나지 않고 깨끗한 자태를 자랑하는 검집을 보며 하빈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의 위력을 내는 검집이 또 있을까?

‘물론, 이 효과는 전부 아헤자르가 검집에 끼워져 있을 때에 한해서지만.’

검집의 재료는 스페키 진주조개.

감싸고 있는 아이템의 성능에 비례해서 효력을 낸다. 즉, 지금 이 검집의 무시무시한 강도는 아헤자르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위력.

코니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였다.

‘검을 감싸고 있을 때는 위력이 좋지만, 검이 빠져나온 이후에는 그 효과가 사라질 테니 주의해 주세요.’

아헤자르가 뽑히고 나면, 검집의 강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이게 이 검집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물론, 세계 최고의 제작자로 불리는 코니의 실력이 들어갔으니 검집 단독으로도 상당한 강도와 위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웬만한 최상급 아이템 수준의 강도를 자랑하겠지.

‘하지만 마신의 마법을 이겨낼 정도의 강도는, 아헤자르에 끼워져 있을 때만 발휘된다는 말씀.’

[그럼 검집을 뽑고 나서는 애지중지해야겠군]

‘아니지, 잘잘아. 검집을 뽑고 나서 혹시 문제가 생기면 무상 A/S를 받으면 된단다.’

[……!]

‘내가 이래서 그것부터 물어본 거라니까?’

역시 소비자는 꼼꼼하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하빈이 뿌듯한 얼굴로 검집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구매였다.

* * *

‘어제 일어난 일들…… 꿈이 아니었겠지.’

하빈과 헤어져 훈련부 동아리실에 도착한 서윤. 그녀는 어제 일어났던 상황들을 멍하니 떠올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컨티뉴의 경호원들과 기숙사 입구를 둘러싼 신문부. 거기다 하빈이 주문한 검집까지.

‘여기 입학한 후로 계속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엄마한테도 하나도 못 털어놨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 언니가 강태서랑 친구, 채남매랑도 친구. 거기다 컨티뉴에서도 VVIP로 대접하는 정식 헌터라니.

‘어, 엄마. 내가 무려 컨티뉴의 코니 님이 직접 보내신 케이크 먹어 봤어!’

차마 카톡창에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이건 누구한테 말해도 못 믿을 거다.

‘거기다 컨티뉴에서 보낸 경호원들도 봤고, 거기서 주문제작한 아이템도 봤어!’

전 세계에서 컨티뉴에 주문 넣어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서윤은 죽었다 깨어나도 상상도 못 해볼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눈앞에서 매번 버젓이 일어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제일 놀랐던 건 그거지.’

서윤은 어젯밤, 자기 전에 하빈이 꺼낸 대화 주제를 떠올렸다.

‘아, 맞다 서윤아! 우리 이제 공용 와이파이 말고 이걸로 쓰자!’

하빈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포켓파이를 서윤 앞에 쑥 내밀었다.

‘어? 개인 와이파이로 쓰게?’

‘응. 선물 받았어.’

거기까지는 서윤도 끄덕끄덕했다.

‘공용 와이파이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포켓파이 비밀번호를 가르쳐준 하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뱉었다.

‘서윤아, 근데 이거 던전 안에서도 터진다?’

‘뭐, 뭐?’

던전 안에서 터지는 와이파이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서윤은 귀를 의심하며 그대로 굳어 있었다.

‘농……담이지?’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껏 던전 안에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하는 아이템은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하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엥? 농담 아닌데. 이거 진짜 던전에서 터질 걸? 지세 언니가 만들었거든.’

‘채, 채지세 님?!’

‘아직 베타테스트 중이라 세상에는 공개 안 되었긴 한데.’

‘그, 그런 걸 지금 우리 방 와이파이로 써도 되는 거야?’

‘웅. 써도 된다던데.’

‘…….’

그것도 무려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신제품이라니!

서윤은 잠시나마 자신이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건 아닌가 의심에 빠질 지경이었다.

‘채, 채지세 님이 만드셨으면 성능은 확실하긴 하겠다…….’

‘그치? 공용 와이파이보다 속도 더 빠른 것 같아! 개꿀!’

‘…….’

서윤은 단박에 하빈의 말을 믿었다. 이미 믿지 못할 광경을 한참 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못 믿을 건 없었지만…….

“야, 넌 아까부터 왜 계속 멍을 때리고 있어?”

그때였다. 같은 훈련부 동아리 소속의 학생이 삐딱하게 물었다. 정신이 잔뜩 팔려있던 서윤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으응? 제, 제갈네희 안녕?”

“네발제희거든! 아, 아니 이게 아니라 내 이름은 송제희라고!”

운동장을 네발로 걸을 뻔했던 그 아이.

제희도 같은 훈련부 동아리였던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