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14) (114/268)

114. 거친 하빈과 불안한 학교와 그걸 지켜보는……. (1)

울림국제고의 교무회의는 원래 학생들 수업 다 끝나고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하는 일정이었다.

‘그래도 나름 다들 왔네.’

채남매는 둘 중 채지석이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강태서는 의외로 참석했고.

나머지 선생님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물론 참석해야 하는 거긴 하지만, 피데스, 강태서, 채지석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데 꼭 가야지.’

‘흠, 실물로 보니까 실감이 안 나네.’

‘회의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과연 교무회의도 잘 할까?’

한자리에 모인 랭커들을 본다는 게 나름 커다란 동기부여가 된 모양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 피데스는 교장으로서 해야 하는 교무회의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만 마지막 안건으로 하빈의 일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요즘 한 학생 때문에 교내에 여러 이야기가 많이 도는 걸로 압니다.”

“아, 맞아요. 현하빈 학생 말씀이시죠?”

학생부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냉큼 입을 열었다. 정령술을 가르치던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곁에 있던 다른 선생님도 말을 거들었다.

“처음 입학할 때는, A급 헌터라고 해서 그 부분이 문제가 될 줄 알았는데…….”

간혹 헌터로 구르다 늦게 입학한 학생의 경우, 바깥에서 가진 자신의 위치와 등급을 핑계 삼아 서열질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너희가 던전 들어가 봤어? 엉?’

‘나는 프로 헌터라고. 너희 같은 코 묻은 애송이들이랑 차원이 달라. 너희는 정식 헌터 면허증 없지?’

그런 이유로 학생들에게 쓸데없이 이상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선생님들은 현하빈이 입학한 후로 그쪽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학생도 그럴지 몰라.’

‘혹시라도 그럴 일 없게 주의하자.’

하지만 현하빈의 행보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저, 선생님. 제가 A급 헌터인 건 가급적이면 다른 학생들이 몰랐으면 좋겠어요.’

처음 반 배정으로 상담할 때부터 현하빈은 자신의 존재를 극구 숨기려 들었다. 아니, 애초에 하빈을 입학시키기 전, 입학 수속을 위해 보호자랍시고 찾아온 오빠도 그 부분에 대해 미리 당부를 했다.

‘워낙 학교를 조용히 다니고 싶어 하는 애라서요. 정식 헌터라든지 A급이라는 이야기는 웬만하면 안 나왔으면 합니다.’

듣기로는 입학생 장학금마저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정말 조용히 다니려는 건가?’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지만, 현하빈은 처음부터 F반을 선택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그 말을 스스로 증명했다.

‘F반? F반에 자진해서 들어갔다고요?’

‘듣자 하니, 다른 학생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일까지 겪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아요! 하빈 학생을 F급으로 착각한 학생들이 시비를 걸었다고…….’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잠자코 조용히 학교를 다닌 걸 보면…….

‘역시 대단한 인품이야!’

‘어른스럽군요.’

‘허세에 가득 찬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히려 자신을 낮추려고 하는 겸손함이란.’

덕분에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하빈의 평가는 굉장히 좋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별로 접점이 없었던 선생님들이 그렇게 평가할 정도인데, 하빈이 열심히 수업을 듣는 드라마 과목이나 웹툰 과목 선생님들의 평가는 어떠하랴.

“참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는데!”

앉아 있던 선생님 중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드라마 감상 수업을 담당하던 교양 선생님이었다. 그녀가 한껏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평가하는 현하빈은 대단한 모범생이었다. 매번 반짝이는 눈으로 영상자료-(드라마였다)를 시청하고, 적극적으로 학생들과 토론을 하던-(드라마 덕질 토크였다) 모범적인 학생!

A급 헌터인 데다 성인이니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도 지위도 한참 위일 텐데. 그런 거 하나 없이 잘 어울리며 성실하게 참여해 준 멋진 학생. 그녀가 보기에 현하빈은 그런 존재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그러니 하빈 양은 지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드라마 교양 선생님은 마치 자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라도 한 듯 슬픈 얼굴을 했다.

그녀도 이번에 이슈가 된 학교 게시글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신문부의 등쌀에 밀려 하빈이 수업도 못 듣고 도망쳤다는 증언을 들은 참이었다. 그녀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현하빈 학생이 얼마나 수업 참여도가 좋은 학생이었는데요! 하지만 이번 사건, 특히 신문부 때문에 수업도 못 듣고 도망쳐야 했어요!”

현시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참여도가…… 좋았습니까?”

채지석도 놀라서 그쪽을 돌아보았다.

‘현하빈이 수업 참여도가 좋다고?’

갑자기 몰린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드라마 교양 선생님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언제나 일찍 와서 다음 화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고 눈을 빛내던 학생이었다고요. 혹여나 스포일러라도 들을까 봐 경계하는 참된 감상자의 면모를 갖춘!”

‘……드라마 수업이었구나.’

[난 또, 어째 현하빈이 수업을 열심히 들었나 싶었다.]

네아이바가 그럴 줄 알았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증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있던 다른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요리 수업에서도 수업 태도가 아주 좋았습니다. 어찌나 먹는 것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지.”

“웹툰과 웹소 감상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르는 웹소가 없던걸요.”

연이어 쏟아지는 호평!

현시우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다 노는 수업을 듣더니, 정말 잘 놀았나 보다…….’

[이걸 적성을 잘 찾았다고 해야 하는 거냐? 이래서 사람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공부가 아닌 노는 순서로 따지면 모든 수업이 백 점 만점짜리 학생이었던 현하빈.

‘……어쨌든 좋은 소식이군요.’

현시우가 결론을 내렸다.

대체 어떻게 놀면서도 이 학교의 선생님들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현하빈, 좋은 선택을 한 걸지도?’

처음 시간표를 봤을 땐 꿀교양만 듣는 현하빈을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이 정도면 오히려 수완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전략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어찌 되었건 덕분에, 지금 선생님들의 반응은 현하빈에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다들 현하빈을 도우려는 의지가 가득해 보인다.

“평소에도 헌터라고 으스대기는커녕 자신의 신분을 숨겼던 학생이에요. 지금 상황에 많이 놀랐을 거예요.”

F반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술 선생님도 끼어들었다.

“정령계 스킬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령술 과목에 청강을 올 정도로 학구열 또한 대단하더라고요. 그에 비해 심성은 여려 보였고요.”

정령석에서 번쩍하고 빛이 났을 때 무섭다며 손을 올리길 주저하던 현하빈의 모습. 정령술 선생님은 그걸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도 겁을 먹고 있는 건 아닌지…….”

“저라도 갑자기 사람들이 주목하면 놀랄 텐데…….”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 덕분에 현시우는 쉽게 상황을 끌고 갈 수 있었다.

“우선, 학교 게시글은 모두 루머로 밝혀졌습니다.”

채지석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저희 남매와 현하빈 학생은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현하빈 학생이 솔라리스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고요.”

‘하빈이가 학교에서 친한 티 내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게 따라줘야겠지.’

강태서도 덧붙였다.

“저 역시 현하빈과 혈연이 아닙니다. 까망이가 하빈 양을 유독 따랐고, 잘 놀아주었기에 보답으로 빵을 준 것뿐입니다.”

-게옹! 게옹!(츄르 인간은 아주 훌륭한 인간이다.)

그 해명에 다행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았어요.”

“게시글의 내용은 부풀려진 거였군요.”

“익명 게시판이 뭐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게시판에서 봤을 때는 심각해 보이는 루머였지만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애들 장난처럼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코니 님과 현하빈 양의 관계는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도 아는 게 없잖습니까?”

“…….”

“…….”

코니와의 사진은 이 소문에서 상당히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다른 가설은 모두 카더라로 그쳤지만, 코니와의 일만큼은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가 있었기 때문.

현시우와 채지석도 순간적으로 입을 딱 다물었다.

‘진실을 말해, 말아?’

컨티뉴에서 물품을 주문했다는 것, 현하빈이 VIP라는 것. 둘 다 꽤나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긴 하다.

‘이거, 현하빈 동의 없이 말해도 되나?’

현하빈이 코니의 손녀라는 루머보다는 훨씬 못 미치지만 말이다.

그들이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쾅-!

교무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지금, 지금 기숙사 앞에!”

“……?”

“컨티뉴에서 온 사람들이, 현하빈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엥?”

[……?]

* * *

그렇게 된 현재.

[대체 현하빈은 왜 가는 곳마다 사건을 만드는 거냐? 코난이야?]

“일단 이 부분은 컨티뉴 측에…… 제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현시우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진정시켰다.

‘컨티뉴는 채지석이랑 같이 갔다고 들었는데, 혹시 채지석은 아는 게 있나?’

현시우는 채지석을 힐끔 봤다. 하지만 채지석 또한 물음표 가득 띄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채지석 측도 몰랐던 일인가 봅니다.’

[코니와 현하빈의 사이를 말이지? 아무도 몰래 어느새 둘이 친해졌나 보군.]

“…….”

[생각해 봤는데, 현하빈은 너 빼고 다 친한 것 같다. 혈육인 너 빼고.]

‘대체 왜 갑자기 시비를 거시는 겁니까? 저희 나름…… 사이좋은 가족이거든요!’

비록 현하빈과 5년간 연락 못 하다가 죽빵 맞고 멱살 잡혔던 과거가 있긴 하지만…….

피자 사 주고 화해했잖아. 학교 준비물도 챙겨주고, 100억도 쏴줬고!

‘세상에 이런 오빠가 어디 있습니까? 어디 한번 나와보라고 하시죠?’

[그래그래. 너처럼 가면 쓰고 사는 랭킹 1위 오빠는 지구상에 너뿐일 것 같긴 하다.]

‘그거 칭찬 맞아요?’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정령술 선생님이 손을 들었다.

“이제는 하빈 양이 학교를 잘 다닐 수 있게 우리가 도와주는 일만 남았군요. 특히 가장 문제 되는 부분은 신문부의 월권행위니까 신문부를 엄중히 타일러야 할 텐데…….”

“그 부분은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 보겠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문부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냉큼 끼어들었다.

“제 불찰이에요. 미리 학생들 지도를 잘 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학기 시작한 지 아직 얼마 안 되었으니, 학생들이 들떠서 실수할 수도 있죠.”

“방송부도 주의를 주겠습니다.”

자진해서 나서는 신문부와 방송부 선생님들. 교감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다른 루머 쪽도 각 반의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에게 고지하고 애써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이죠.”

열정적인 선생님들과 피데스의 훌륭한 중재 덕에, 교무회의는 꽤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다.

* * *

‘……이러면 예상과는 많이 달라지는데.’

교무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홀로 남은 강태서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현하빈의 뒷배로 컨티뉴가 나섰다니.’

이건 그래도 좋은 소식이다.

아마 이제부터 에라타는 현하빈을 쉽게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겨우 CCTV에 찍힌 여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컨티뉴’의 인물을 건드리는 건 바보짓이니까.

하지만.

‘이대로면 현하빈의 자퇴도 물 건너갈 것 같단 말이지.’

예상외로 현하빈을 감싸는 선생님들. 그리고 잠잠해지려는 상황들. 이대로면 정말 현하빈이 계속 학교를 다닐 분위기다.

‘뭔가 확실한 수를 더 써야겠어.’

-게에옹(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군, 답답한 인간.)

“……현하빈이 좋아하는 게 드라마랑 웹소설이라고 했지?”

강태서가 결심을 굳힌 듯, 비장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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