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Almost paradise~ (2)
“이, 일단 들고 들어와요! 다 드루와!”
하빈은 선물을 든 경호원들을 재빨리 기숙사 안으로 안내했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경호원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척척 선물을 가지고 하빈의 방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 어어?”
방 안에서 잠자코 기다리던 서윤은 그 광경을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
기껏해야 택배 하나를 받아올 줄 알았는데 웬 시커먼 무리를 데리고 온 상황이라니?!
서윤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경호원들과 선물을 확인하고, 그 와중에도 경호원들에게 꼬박꼬박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있었다.
“헉, 언니. 이건 다 뭐야?! 아, 안녕하세요!”
경호원들의 팔에 들린 선물들을 확인한 서윤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언니…… 이건?”
하빈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경호원들과, 컨티뉴의 인장이 찍힌 선물 상자들.
“이거 다 코니 님이 보내신……?”
“네, 맞습니다.”
한 경호원이 대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서윤의 동공 지진이 더 격해졌다.
“그, 이렇게 많이 주문했어?”
“……아니.”
하빈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경호원들을 향해 물었다.
“이것들 혹시 반품 안 되나요?”
“주문 물건이 아니라 순수한 호의의 선물이니 받아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서, 선물? 이게 다 선물?”
서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경호원은 현관에서 했던 말과 똑같은 대사를 읊었다.
“홀로 기숙사와 학교생활을 하는 하빈 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과…….”
“스, 스탑! 제가 그 이야기 그만하라고 했죠!”
하빈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경호원의 말을 급하게 막았다. 하지만 서윤은 그걸 다 들은 뒤였다.
“홀로, 기숙사 다니는 언니를 걱정해서 보냈다니……. 진짜 가족이 할 법한…….”
중얼거리는 내용을 들어보니, 역시 밖에 있는 신문부와 비슷한 오해를 했음이 분명했다. 서윤이 하빈을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진짜 아니라며.”
코니 님의 숨겨진 손녀 아니라며!
충격받은 서윤의 표정을 확인한 하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라, 될 대로 돼라.’
어차피 믿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한번 서윤이한테 장난 좀 쳐 봐?
하빈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후우……. 이런, 어쩔 수 없군. 들켜버렸나?”
“드, 들켜?”
“할머니와 나의 관계를.”
“역시 진짜 손녀?!”
“쉬이잇, 목소리가 너무 커.”
둘이 떠드는 동안, 마지막으로 화분을 든 경호원이 방에 들어왔다. 화분을 창가에 둔 그가 다른 경호원들에게 눈짓했다.
그 순간이었다.
척척척.
기다렸다는 듯 경호원들이 일제히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죄다 도청 방지, 방음 아이템들.
“……!”
서윤이 그걸 확인하고 놀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를 향해 한 경호원이 쉬잇, 하고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리며 문을 향해 손짓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서윤이 고개를 다급히 끄덕였다. 그녀가 하빈을 향해 외마디 소리쳤다.
“그, 그럼 난 나가 있을게! 이야기 나눠!”
“……?”
타닥타닥!
재빠르게 방 밖으로 나간 서윤. 하빈이 붙잡아 보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이미 방을 나간 뒤였다.
‘엇. 아직 오해를 안 풀어줬는데. 사실 장난이라고…….’
이대로면 서윤은 하빈이 코니의 손녀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하빈은 다시 서윤을 부를까 하다가 그만두고 방 안에 들어온 경호원들을 돌아보았다.
‘꼭 오해를 당장 풀어야 할 필요는 없지. 나중에 말해주면 되긴 하니까.’
당장 그보다는…….
이 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왔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점이다. 마침 아헤자르도 몰래 속삭였다.
[하빈, 그런데 이자들은 정확히 뭐 하는 자들인가? 기사단인가? 상당히 각이 잡혀 있다. 하나하나 실력자들로만 구성되어 있고!]
아헤자르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하긴. 잘잘이는 이런 걸 모르지?’
아까 기숙사 입구에서 외칠 땐 ‘하이틴 드라마’ 장면이라며 이해를 한 것 같았는데.
‘그래, 잘잘아. 너 하이틴 드라마 봤다며! 거기 나오는 부잣집 자제들이 이런 경호원이나 비서들을 대동하고 다니지 않던?’
[아, 그걸 경호원이라고 부르느냐? 난 또 가문의 사병인 줄 알았다!]
‘사적으로 고용하는 건 비슷하긴 해. 현대적인 사병이라 볼 수 있겠지. 이것도 다 직장 생활하시는 거지만.’
코니 할머니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시네.
하빈은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둘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경호원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착착착 구석구석에 아이템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경호원이 깍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것들은 컨티뉴에서 제작된 특별 방음 아이템이니 지금부터 정보가 새어나갈 일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현하빈 고객님.”
다른 어디도 아닌 컨티뉴의 물건이라면 정말 믿을 수 있는 퀄리티가 맞았다. 저번에 컨티뉴를 방문했을 때, 대장간의 소리조차 음소거 기능을 시켰던 대단한 방음 아이템 기능을 자랑했던 컨티뉴.
그러나 하빈이 주목한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잠깐만요. 아까 밖에서는 저한테 ‘현하빈 님’이라고 부르시더니, 이번엔 ‘현하빈 고객님’이라고 부르시네요?”
“눈치채셨습니까? 역시 코니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리하시군요!”
경호원이 웃음을 지었다. 하빈이 말을 이었다.
“거기다 이렇게까지 방음 장치를 까시고. 무슨 본론을 꺼내려고 저녁부터 이러세요?”
“예? 저녁부터…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표현에 어리둥절한 경호원을 앞에 두고, 하빈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좀 있으면 저녁 먹어야 할 시간인데. 배고프게.
‘이분들도 저녁 못 먹고 이게 뭐 하는 거람.’
하빈은 우루루 모여있는 경호원들을 보자니 어쩐지 짠해져서 소파와 카펫을 손짓했다.
“에휴. 일단 앉으시죠. 앉아서 이야기해 보세요. 뭐라도 마시실?”
가끔 힘들어 보이는 배달 기사님께는 음료수를 챙겨 드리던 현하빈이었다.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척척 비타700을 꺼내 경호원들에게 건넸다. 그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그, 어, 감사합니다. VIP고객님.”
“밖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마시고…….”
“그럼 아까처럼 현하빈 님이나 현하빈 아가씨라고 불러드릴까요?”
“에엥. 진짜!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해하잖아요!”
“아까는 일부러 눈치 채고 장단 맞춰주신 줄 알았는데요.”
사람들 앞에서 ‘할머니’라고 발언한 현하빈. 거기다 하빈에게 ‘현하빈 님’이라며 깍듯하게 대하는 경호원들의 태도까지.
누가 봐도 하빈을 코니의 가족이라 의심하기 충분했다.
‘흠? 잠깐?’
아까는 일부러 눈치채고 장단 맞춰준 줄 알았다니? 하빈은 경호원들의 설명을 듣자 확신할 수 있었다.
“일부러 그걸 노렸다는 건가요?”
“예?”
“일부러. 코니 님과 제 관계, 보통 사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러셨단 말이죠?”
“저희는 그렇게 전달 받았…… 아, 아니 잠시만요. 그리고 저희는 원래부터 두 분, 보통 사이 아니신 걸로 알았는데요…….”
경호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하빈을 흘끔거렸다.
“원래 두 분, 각별한 사이 아니셨습니까?”
각별한 사이?
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빈은 VIP 고객으로 등록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니면, 그 외의 관계라고 해봤자…….
“편지를 주고받긴 했죠. 저희는 평범한 펜팔이라구요. 펜팔!”
“페, 펜팔요? 코니 님이랑요?”
경호원의 목소리가 당황한 듯 높아졌다.
펜팔이라니.
[펜팔이 무엇이냐?]
‘편지로 주고받는 친구 관계를 말하는 거지!’
하빈은 아헤자르에게 펜팔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경호원의 얼굴도 놀람으로 바뀌었다.
‘펜팔이라니?’
편지 주고받는 친구 관계?
바쁘신 코니 님과 편지를 자주 주고받는다고?
이제껏 수많은 주문 요청과 연락 때문에 사람을 가려 받는 게 코니였다. 아무나랑 직통 연락을 주고받는 인물이 아니다. 경호원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 애초에 펜팔을 그렇게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신지라…….”
“네. 일단 알겠습니다. 어쨌든 그 부분은 이해했고요. 이렇게 어그로를 끈 거엔 뭔가 이유가 있으셨던 모양인데.”
하빈이 선물 상자들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받은 선물들은 죄다 케이크와 포션처럼 소모품들. 겉으로 화려하지만, 그리고 컨티뉴의 물품이니 값이 꽤 나가긴 하겠지만.
결정적인 아이템이 없다. 하빈이 주문한 검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기색을 느꼈는지 경호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사실 저희는 배달 명목으로 하빈 님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화분과 케이크를 가져온다는 명목으로, 보는 눈 없는 방 안에 들어오기.
그게 그들의 목적 중 하나였다.
“몰래 들어오는 방법은 더 수상해 보일 테니, 아예 대놓고 화려한 게 낫지 않습니까?”
덕분에 방 안은 이제 경호원들과 현하빈만 남은 상황.
경호원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쑤욱 꺼냈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하얀 상자였다.
“……!”
[저건……!]
상자의 크기나, 모양으로 보나.
“내가 주문했던 검집?”
“네, 맞습니다. 고객님의 주문 물품입니다.”
경호원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배송 시스템을 쓰기에는 너무 귀한 물건이라 저희가 직접 가져오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물건을 주문했는지에 대해서도 프라이버시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일부러 입구에서는 다른 물건들을 전달해 혼선을 만들었죠.”
친절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요즘 중요한 아이템은 프로 헌터들이 팀을 이루어 직접 인벤토리에 넣어 가져오는 배송 방식을 쓰고 있었다. 혹시나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아도 갈취당하지 않게. 웬만한 상위 랭커들도 다 이길 수 있는 프로 헌터들로 구성된 배달팀.
게다가 다른 선물들과 섞어 배달하는 것 또한 어떤 아이템을 준 것인지 혼선을 빚게 할 수 있다.
나름 그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리무진과 함께 경호해 가며 난리를 쳤는지에 대해 설명을 한 모양.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빈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어, 일단 배송받은 건 좋긴 한데. 이렇게 열심히 애써주신 것도 다 감사하기는 한데요.”
하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택배는 받으면 다 좋은 거긴 하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하빈이 열불 터진 목소리로 외쳤다. 경호원이 낭패라는 얼굴을 했다.
‘마, 마음에 안 드셨나?!’
보통 고객이 배송을 받고 싫어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배송 서비스에 대한 불만.
제품에 대한 불만.
‘그러나, 지금은 제품을 뜯기도 전이니까 배송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다!’
경호원의 머릿속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재빠르게 덧붙였다.
“우선, 배송이 늦어진 점에 대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특별제작 상품이다 보니.”
“아아니, 늦어진 건 괜찮아요! 그래, 늦을 수 있지. 주문 제작 상품은 원래 오래 걸리고, 배송 지연은 택배 시스템에서 아주 흔한 일이니까…….”
마의 옥천 허브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배송 지연을 숱하게 겪어본 프로 쇼핑러 현하빈은 그 정도야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죠!”
하빈이 본론을 꺼냈다.
“아무리 혼선을 빚으려고 하는 거라도, 왜 이렇게까지 하셨던 건데요?!”
리무진과 풍선, 케이크, 경호원 팀을 동원한 프러포즈 수준의 대형 이벤트. 거기다 일부러 코니와 하빈의 관계가 친밀함을 과시하는 지시까지.
“이러면 어그로가 더 끌리잖아!”
아이템에 갈 어그로가 현하빈에게 끌렸을 뿐, 어그로는 어그로다. 그녀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차라리 저보고 직접 컨티뉴에 가지러 오라고 하든가!”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을 공부 외의 일로 오가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 들었다고 하시던데요.”
“……그건 맞지만.”
[……그, 그건 맞는 말이로다. 슼하이캐슬에서도 모두가 고등학생의 눈치를 보았느니라.]
“으음…….”
잠시 누그러진 분위기에 경호원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뭐 그것도 이유 중 하나고,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지금 설명드릴 테니 한번 풀어 보시겠습니까? 검집 말입니다.”
경호원이 재차 하얀 상자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