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탐문 (1)
“던전 내에서도 와이파이를 터지게 할 수 있다고?”
하빈이 눈을 반짝였다. 지난번 하빈은 지세에게 던전 안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게 할 방법은 없을까 질문을 했었다.
“그걸 해내다니, 언니 역시 대단해! 어떻게 한 거야?”
그동안 던전 내에도 통신을 연결해 보자는 주장은 꽤 나왔었다. 특히 게이트 사태 초창기에 그랬다.
던전 안에 사람을 투입시키는 것이 상당히 두려웠던 시절. 바깥과 연결되는 통신이라도 있다면 작전을 세우기에도 용이하고, 던전에 들어가는 심리적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몇 번에 시도 끝에 실패했고, 지금은 수요가 적어서 본격화되지 않았지.”
이제는 던전과 던전 공략, 게이트 출입이 초창기 때보다 많이 보편화되었다. 예전만큼 미지의 두려움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어차피 던전 안에 들어가면 몬스터 썰기에도 바쁜데 굳이 통신망을 구축해야 되냐는 의견이 떠오르면서 던전 내 통신망 제공에 대한 논의는 흐지부지되었다.
이준휘 비서가 끼어들었다.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고 말입니다.”
던전이 열리면, 거의 차원이 분리되는 수준의 단절이 일어난다. 그 너머로 전파를 전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장 엘리베이터 안에만 들어가도 데이터가 안 터지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걸 게이트 너머 던전까지 연결한다니.
“다들 안 될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죠. 수요도 크지 않았고……. 하지만.”
이 비서가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따단, 채지세를 향해 손짓을 했다.
“우리 길드장님은 역시 해냈습니다!”
“흠흠.”
“솔직히 이 정도면 진작 할 수 있었는데 안 하신 거에 가까운 것 같네요.”
“그건 아냐. 나도 게이트 초창기 때는 만들려고 시도했었는데 재료가 없어 포기했었거든. 하지만 이번에 하빈이가 지적한 덕분에 새로 시도할 의욕이 생기더라고.”
말을 마친 채지세가 하빈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조그맣고 귀여운 사이즈의 기기였다.
생긴 게 꼭…….
“포켓파이?”
[포켓파이가 뭐냐?!]
‘이동식 와이파이! 원래 던전 밖 일상에서도 와이파이가 필요할 땐 이 기기를 써.’
“맞아. 일부러 포켓파이 형태로 만들었어. 그전과 똑같이 익숙하게 쓸 수 있도록.”
“이게 진짜 던전에서도 작동이 된단 거지?”
“물론. 던전뿐이겠어? 킬스크린에서도 작동되고, 저 지구 건너, 동굴 속, 바닷속까지도 작동될걸.”
“엥? 진짜?”
그런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하다니?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성능. 하빈의 놀란 표정에 지세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좀 희귀한 아이템을 재료로 썼어. ‘반쪽 점토’라는 재료 아이템 알아?”
반쪽 점토.
말을 마친 채지세가 테이블 위에 작고 하얀 덩어리 두 조각을 올렸다. 판판하고 네모난 컵 받침 모양의 덩어리들.
“자, 이 점토는 특이한 성질이 있는데 언제나 서로 쌍을 이루거든?”
지세가 똑같이 생긴 두 덩어리를 가리켰다. 그러곤 테이블 위에 있는 커터칼을 가져왔다.
“이 중 하나에게 이렇게 칼로 홈을 파면…….”
스으윽.
지세가 둘 중 하나에 칼을 꽂아 오각별 그림을 점토 위에 그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으윽-
똑같은 오각별 모양이 다른 쪽 점토에 나타났다. 시간적인 지체 없이, 거의 동시였다.
“어?”
“짜잔. 이렇게 이 한 쌍의 점토는 서로의 모양을 그대로 따라가는 습성이 있어. 그래서 신호를 주고받기에 아주 좋지. 한쪽을 던전 안에 던져놓고, 다른 쪽에 글씨를 써도 똑같이 적힌단 말씀! 이러면 완벽하게 닫혀 버린 게이트 안에도 신호를 보낼 수 있지. 이걸 응용한 거야.”
바닷속이든, 던전 안이든. 세상 어디에 있든 한쪽 점토가 다른 쪽 점토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습성.
“그것을 응용해서 와이파이와 다른 전파 신호도 점토에 남긴 흔적으로 치환하고, 그걸 또 다른 쪽 통신기랑 치환하면…… 흠, 설명하다 보니 말이 어렵네.”
신이 난 듯 설계도를 펼치고 기술용어를 늘어놓던 지세가 헛기침을 했다.
어차피 와이파이를 잘 쓰는 게 중요하지, 이런 복잡한 설명을 듣는 건 지루할 것이다. 지세는 뒷부분 설명을 생략하고 결론을 말했다.
“어쨌든 이 아이템이랑 결합해서 와이파이를 던전 안에도 통할 수 있도록 연구해 봤어! 결과는 성공적이었지.”
지세가 완제품인 포켓파이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가리켰다.
“이건 첫 번째 시제품인데, 하빈이를 위한 선물로 지금 줄게. 네 의견 덕분에 만들게 된 거니까.”
“오? 정말?!”
하빈이 신난 표정으로 포켓파이를 받아들었다. 이제 이거라면 마계에 놀러 가도 실시간 네풀릭스 생중계를 볼 수 있다!
[카카페 어플도 접속될 것이고!]
‘그럼 웹툰도 볼 수 있고!’
뮤튜브 프리미엄도 볼 수 있겠지!
하빈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 자퇴 걱정하던 근심 걱정은 싹 사라진 얼굴.
“고마워 언니!”
“아직 베타테스트 중이라 변수가 남았을 수도 있어. 오류 생기면 바로 수정할게. 아, 그리고…….”
지세가 무언가 곤란한 말을 하려는 듯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빈아, 혹시 이거 베타테스트 끝나면. 상용화를 해볼까 고민 중인데, 그래도 될까?”
던전용 포켓파이의 상용화.
지세는 거기까지 계산했다. 이제 제대로 된 제작법을 알았고,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지금의 생산공정이라면 충분히 보급이 가능할 것이다.
‘만일 이게 상용화된다면…….’
여러모로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질 것이다. 던전에 선발대로 들어간 헌터가 후발 헌터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경고를 남길 수 있다. 그 외에도 쓸 방법은 무궁무진하겠지.
적어도 그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는 방면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채지세가 제작한 것이니 스스로 결정해도 될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세는 하빈에게 의견을 물었다.
제작하자고 먼저 제안한 건 현하빈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써도 되냐는 질문이지? 그런 거야 뭐, 당연히 써도 되지.”
하빈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이 왜 고민할 거리가 되냐는 듯 아주 당연하단 표정이었다.
“그래? 그럼 이참에 시제품 몇 개 더 가져갈래? 나중에 하빈이가 팔고 싶으면 팔거나, 만일 고장이라도 날 때를 대비해서 예비용으로!”
지세가 인벤토리에서 포켓파이를 몇 개 더 꺼냈다. 하빈에게 준 ‘첫 번째 시제품’은 특별히 신경 써서 고급스러운 외관과 ‘하빈’이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지금 꺼낸 것들은 오로지 베타테스터용이라 단순한 플라스틱 외관을 하고 있었다.
“사용법은 어떻게 되냐면…….”
지세는 포켓파이를 켜서 상세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게이트 바깥으로도 데이터 연결이 돼. 갖고 있는 핸드폰이랑 연동해서 쓰는 건 다른 포켓파이랑 동일해.”
“올.”
“꼭 던전 아니라도, 평소에는 일반 포켓파이로도 쓸 수 있어. 데이터 요금은 내가 내고 있으니 걱정 마. 베타테스터용으로 미리 개통해 놨던 거라서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약정 기간 동안 누구 하나라도 쓰는 게 이득이거든.”
“앗, 그럼 기숙사에도 갖다 놔야지!”
공용 와이파이보다는 개인 와이파이가 있으면 더 빠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던전용 특별제작 포켓파이는 그렇게 하빈의 기숙사 방 전용 포켓파이가 될 예정이었다.
* * *
-게에옹!(뭐냐,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하냐?)
“…….”
자퇴서를 들고 교수연구실로 돌아온 강태서. 그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게옹, 게옹.(저 종이는 뭐냐? 에이……. 먹는 거 아니네.)
혹시나 간식이 있나 싶어 졸졸 따라온 까망이. 까망이가 실망한 기색으로 곁에서 열심히 울었지만 강태서의 신경은 다른 데 팔려있었다.
‘학교 게시글은…… 터질 게 이제야 터진 거겠지.’
현하빈은 정말 상상 이상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채남매와 친한 건 물론이고, 코니와 편지까지 주고받을 줄이야. 그건 강태서도 예상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 정도로 거물들의 중심에 있었으니 언젠가 한 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하지만 시기와 상황이 최악이다.
지금은 하필 마이너 패치가 울림국제고에 신경을 쓰고 있는 상태. 그러니 학교 게시글쯤이야, 진작에 그쪽도 봤을 거다.
안 그래도 에라타에게서 아침부터 미친 듯이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강태서는 신경질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제야 받네.
“수업 중에는 전화 못 받는다고 말했을 텐데.”
-아주 수업에 열심이야? 누가 보면 교사가 꿈이었던 놈인 줄 알겠어?
한껏 비꼬는 말투였다.
“헛소리할 거면 끊…….”
-잠깐.
재빠르게 강태서를 제지한 에라타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지금 네가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아? 학교가 다 뒤집어졌던데? 할 말 없어?
“무슨 말을 해야 되는데?”
-태서 캉……! 너…….
에라타는 상당히 심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잠깐 침묵하던 그녀가 본론을 꺼냈다.
-너 진짜 학생 빵셔틀 하고 다녀?
“…….”
-푸큽, 푸하하! 하핰! 강태서가! 빵셔틀! 하하!
에라타는 비웃음 섞인 광소를 터뜨렸다. 강태서는 대꾸하지 않았다. 한참 혼자서 웃음을 터뜨리던 에라타가 뒤이어 물었다.
-대체 그 학생이 뭐길래 온갖 추측이 나돌까? 진짜 네가 빵 갖다 바쳐? 미쳤어?
안 그래도 이 부분을 물어볼 줄 알았다. 에라타의 질문 수준은 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강태서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갖고 있던 빵을 달라고 졸라서 그냥 줬던 게 와전된 것뿐이야. 아마 채남매에게도 그런 식으로 해서 주변의 주목을 끌었겠지.”
-그럼 코니는? 코니와의 관계는?
“조사해 보니 그 녀석은 컨티뉴에 최근 주문을 한 적이 있어. 제작 사항과 관련된 편지였을 뿐 별다른 관계는 아니었다.”
-……맞아, 거기까진 내가 조사한 거랑 똑같네.
그 순간이었다. 에라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채씨 남매랑은 연수원 때부터 면식이 있어서 친한 거라고 전해 들었어. 코니의 경우 최근에 컨티뉴를 다녀왔으니 고객과 사장의 관계로서 연락을 주고받아도 별 이상할 게 없지. 하지만…….
에라타의 목소리는 점점 섬뜩할 정도로 낮아졌다. 그녀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 현하빈이라는 학생, 강태서 너랑 동창이라며.
“…….”
-면식이 있는 사이였으니 친하게 굴었던 모양이야? 아, 혹시 갑자기 울림국제고에 자원한 것도 걔 때문인가?
“그럴 리가. 나는 걔가 여기 온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강태서는 동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흔들린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게 바로 에라타가 원하는 것일 테다. 원래 에라타는 어떻게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고자 했다. 그게 그녀의 습관이자 습성이었다.
이번에도 뭐 하나 걸려라, 싶은 심보로 찔러보는 게 다일 것이다. 강태서는 평소처럼 무심하게 대답했다.
“또 무슨 소설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현하빈 쪽에서 동창인 거 걸고넘어지면서 계속 귀찮게 따라붙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 때문에 게시글도 올라간 거고.”
그 말에, 에라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적했다.
-……귀찮으면 제거하는 게 강태서 네 방식 아니야? 네가 웬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