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07) (107/268)

107. Four Knights Game

‘죽일까.’

[야, 뭘 그런 걸로 죽여?]

‘……그냥 해본 말입니다.’

현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사실 그는 매번 강태서를 죽여야 할지 고민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 시작은 1회차 때부터였다. 1회차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된 강태서의 정체.

‘강태서가, 시스템 관리자의 끄나풀이었다고?’

겉으로는 월드랭킹 2위에, 한국의 자랑스런 랭커로 떠받들어지는 헌터였던 강태서. 성격이 조금 무뚝뚝하고 차갑긴 해도 할 일은 착실하게 했기 때문에 다들 그를 좋게 생각했다.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강태서가 관리자의 수하였어?’

‘……마이너 패치와 내통한 게, 강태서야.’

그 사실을 현남매가 처음 알았을 때. 그들이 받았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걸 들은 현하빈이 뭐랬더라?

‘시바……. 태서야. 그렇게 안 봤는데 대체 세상에 어떤 불만이 있었니?’

‘…….’

‘그렇게 착하고 여렸던 애가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속이 무척 탔는지, 불막창과 치즈닭발, 사이다를 야식으로 시켰던 현하빈은 즉석에서 밤새 회의를 했었다. 음식을 시켜놓고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걸 봐선 현하빈의 충격이 꽤 컸던 모양.

‘그럼 이제 어쩔 거야?’

‘흐음…….’

그때 현시우가 내놨던 대안이 그거였다.

‘현하빈, 네가 강태서랑 예전에 친했던 건 알지만 그래도 적은 적이야. 이제 돌이킬 수 없어.’

‘그럼 뭐, 걔를 죽일 거야?’

‘……그래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현시우는 강태서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이너 패치가 했던 악행도 악행이었지만 당초 사도들의 목적은 세계의 오류인 현하빈을 죽이고 관리자의 계획대로 멸망을 실현시키는 것.

저쪽을 죽이지 않으면 이쪽이 죽는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저쪽을 죽이고 우리가 살아야 한다.

그 생각으로 마이너 패치를 소탕했다.

아무리 강태서라 해도 봐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믿었던 상대이기에 더 괘씸했다.

‘강태서 그 녀석, 그동안 관리자가 저질렀던 학살 사건에도 죄다 참여했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관리자의 일곱 사도. 그동안 그들을 족치면서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사도는 필연적으로 관리자를 배신할 수 없다.

배신하는 순간 소멸형에 처해지니까.

‘그럼…… 억지로 명령을 따르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현하빈은 그렇게 물었다.

소멸 패널티 때문에 억지로 관리자에게 이용당한 포지션일 수도 있다는, 그런 가정.

‘미련이 남나 보네.’

현시우는 그 물음에서 동생이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도 믿었던 친구였고 함께 던전에서 싸웠던 동료, 강태서.

그가 그동안 보여줬던 모든 모습이 가식이고, 본질은 더러운 관리자의 끄나풀이자 스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현시우는 냉정하게 말했다.

‘아무리 목숨이 걸렸다 한들, 제정신이라면 그동안 저질렀던 관리자의 학살극에 동참할 수 없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억지로 명령을 따를 바에 소멸을 택했을 거야. 아니면 애초에 선발 자체가 되지 않았거나.’

현시우는 다른 관리자의 사도를 추적하다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사도’의 선발 과정이 상당히 끔찍하다는 것.

인륜과 인간성을 저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고 실행해야만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걸 모두 통과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거라며, 다섯 번째 사도는 그렇게 낄낄댔었다.

‘그러니 참작의 여지는 없어. 이제 우린 강태서를 믿어선 안 돼.’

‘흐음…….’

‘그동안 우리 정보를 빼돌린 것도 강태서의 짓이었을 거야. 관리자가 이쪽에 보내 놓은 스파이. 그게 바로 강태서였다고!’

현시우의 말을 듣던 하빈. 그녀는 침묵 끝에 조용히 덧붙였다.

‘……그럼 왜 강태서는 나를 안 죽였을까?’

죽일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게다가 관리자는 사도들에게 그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현하빈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현시우가 반박했다.

‘애초에 이 지구상에 널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능력치가 상대가 안 돼.’

‘아냐. 관리자 모드 접속 권한을 가진 게 강태서야. 무려 첫 번째 사도라고. 아무리 내 스탯이 미쳐 날뛴다지만 저쪽이 치트를 한계까지 끌어다 썼다면, 그리고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못할 것도 아니었어.’

강태서는 하빈의 최측근이었으니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하빈이 방심할 기회가.

그리고 하빈은 처음부터 이렇게 강했던 게 아니다. 초기 스탯은 2억 대에서 시작했으니 그때 공격했다면 더 쉽게 일을 끝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해를 입히기는커녕 매번 도와준 강태서였지.’

‘그게 다 연막이었다고. 일부러 신뢰를 주려고 그렇게 해온 거라니까.’

현시우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그는 동생이 가끔 본인이 아끼던 사람에 한해서 물러지는 게 우려스러웠다.

‘……지금이라도 강태서를 처리해야 해. 마음 약해지지 마.’

현시우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로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강태서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현시우도 그를 좋은 동료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의 친구, 믿음직한 랭커로. 나름 형 동생 하던 사이였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여전히 믿기지 않더라도 그게 모두 가식으로 밝혀진 이상, 판단을 해야 한다. 현시우는 침착하게 의견을 덧붙였다.

‘아직 그쪽은 우리가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는 걸 몰라. 지금이 바로 방심하고 있는 기회야. 이 순간을 놓치면 더 어려워질-.’

‘알겠어, 내가 다녀올게.’

‘뭐?’

하빈이 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내가 해결할게. 어차피 지금 강태서랑 맞붙어서 확실히 이길 만한 게 나밖에 없잖아?’

‘관리자 모드를 쓸 수 있는 녀석이야. 조심해야 해.’

게다가 현하빈은 아직 강태서에게 미약한 정이 남아 있을 테니.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른다.

그 머뭇거림을 눈치챘는지 하빈이 덧붙였다.

‘나 혼자 가는 게 못 미더우면 지세 언니랑 같이 다녀올까? 힐링에 예지력까지 있으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가 되잖아.’

‘괜찮겠어?’

‘응.’

현하빈의 단호한 대답. 그 눈빛에 서려 있는 결의에 현시우도 그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강태서와 일대일 면담을 하고 온 현하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이거 받아, 이게 바로 그동안 관리자 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던 치트를, 프로그램 용어로 풀이해서 정리한 거야.’

‘뭐? 이건 어디서 났어?’

‘……강태서가 줬어.’

현하빈은 강태서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서 관리자에 대한 정보를 넘겨받았다.

‘이걸 제대로 연구하면 우리도 치트를 응용하거나, 역으로 시스템을 전복시킬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관리자 모드 기능 중 아직 해금되지 않은 끝판왕 치트가 있는데, 그걸 쓰면 아예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해.’

강태서를 회유한 건지, 협박한 건지. 대체 어떻게 그 정보를 넘겨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빈의 뜻은 강경했다.

‘강태서를 죽여서는 안 돼.’

‘왜?’

‘……이제 우리 편에도 협조하기로 했으니까.’

‘뭐?’

‘설득했어. 물론 관리자의 눈에 띄지 않고 정보를 빼돌리려면 태서도 우릴 돕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는 강태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필요해. 그러니 죽인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마.’

‘……너는 그 새끼를 믿어?’

‘…….’

그때 그 장소는 갑작스레 마련한 SPES 산하 호텔 룸이었다. 하빈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놓여 있던 체스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체스판 말의 흑도 백도 다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던 광경. 그때 하필 하빈이 들고 있던 게 검은 나이트였던가.

‘내가 생각해 둔 게 하나 있는데, 어쨌든 강태서는 섣불리 죽이지 마. 이번 회차도, 혹은…….’

만에 하나 혹시라도 다음 회차가 있더라도.

‘강태서는 보류해 놔. 알겠지?’

‘…….’

말을 마치고 나이트를 툭, 판 위에 올려놓는 하빈을 보며 현시우는 괜히 볼멘소리로 덧붙였다.

‘야 근데 너 원래 체스 룰 하나도 모르잖아? 뭔 폼을 잡고 있냐?’

‘엥, 나 그래도 좀 할 줄 아는데.’

‘그럼 체스에서 제일 센 말이 뭔데?’

‘……그딴 거 없어. 걍 판을 엎는 내 주먹이 제일 세면 됨.’

‘…….’

‘수틀리면 판 엎고 상대 멱살 잡으면 된다 이거지!’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다시 돌이켜 보면, 그땐 어이없는 말에 웃어넘길 때가 아니었다.

‘현하빈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믿어볼까.’ 라고 혹하는 건, 더더욱 위험했다. 현시우는 그때 그걸 몰랐다.

회귀 전 마지막 순간에 강태서는 한 번 더 그들을 배신했으니까.

한동안 그들의 편에 서서 관리자의 정보를 넘겨주던 강태서. 그러나 어느 날 강태서의 연락은 끊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쳤다.

‘이건 강태서가 쓰던 스킬 아닌가요?’

‘이게 왜 여기에?’

‘설마 강태서가 배신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아군의 편이 아닌 적군의 스킬로 사용된 ‘그림자 필드’. 그로 인해 아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게 현시우가 가진 강태서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이후 강태서는 실종되어 영영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

그래서 현시우는 처음 회귀하자마자 강태서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

‘배신자 새끼는 미리 싹을 잘라 놔야지.’

그렇지만 지난 회차에 부탁했던 하빈의 말이 걸렸던 것이다.

‘강태서를 죽여서는 안 돼.’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는 필요해.’

‘만에 하나 다음 회차가 있더라도, 강태서는 보류해 놔.’

‘…….’

정말 비논리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잖아?]

‘체스 못 두면서 똥폼 잡던 동생의 주장을요?’

[흠……. 갑자기 훅 신빙성이 떨어지긴 하군.]

‘설사 이유가 있더라도, 그 이유를 제대로 말을 해줘야 알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저도 설득이 안 된단 말입니다.’

그래도 정말 혹시 모르니까 현시우는 동생의 부탁에 따라 강태서를 살려두었다.

어차피 강태서가 살아 있다 해도, 그가 관리자의 편에 서서 무슨 짓을 한다 해도, 이번엔 현시우가 다 막아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악역이었기는 해도 어쨌든 명망 있는 헌터를 가장해야 했던 강태서가 각성 이후부터 한국에 수많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을 구했고, 경제 성장과 길드 설림, 국가 안정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거물 랭커였기 때문에 너무 이른 시기에 강태서가 빠진다면 그로 인해 얻는 부정적인 여파가 훨씬 클 것이다. 현시우가 알고 있던 미래가 모두 틀어지기도 하고.

아마 강태서를 미리 죽인다 해도 관리자가 강태서 대신 다른 사도를 뽑아 버리면 오히려 모든 일이 다 틀어진다. 강태서는 그나마 위선이라도 떨던 헌터였고 현하빈에게 위해를 끼친 적은 없었지만.

관리자가 강태서 대신 뽑은 다른 사도도 과연 그럴까?

그리고 그로 인해 달라져 버릴 미래를 현시우가 방비할 수 있을까?

그래서 현시우는 강태서를 죽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꾹 참아가며 저놈 면상을 계속 보는 건데.’

지금 눈앞에서 팔락팔락 자퇴서를 흔들고 있어?

선 넘네?

‘네놈은 현하빈 부탁만 아니었으면 나한테 20번은 죽었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 강태서는 이미 교장실을 나가고 있었다. 네아이바가 현시우를 독려했다.

[야, 네가 참어. 여긴 보는 눈도 많아서 싸우면 안 돼.]

현시우는 닫힌 교장실 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압니다. 어차피 저 녀석 족친다고 해서 지금 이 사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죠.”

현시우는 학교 게시글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쨌든 대충 수습은 해야겠지.

“일단 이걸 해결해야 하니, 교무회의부터 소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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