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이 학교의 숨겨진 실세 (4)
“아니 여기 애들 동아리는 왜 죄다 진심이야?”
도서부도 그렇고, 신문부도 그렇고. 다들 너무 본격적이다. 도서부는 지역 명물 도서관을 직접 운영하는 중이고, 신문부도…….
‘카메라 보니까 장난 아니네.’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대포 카메라 총출동!
‘아무리 헌터고라지만 울림국제고 신문부가 저렇게 예산이 많나?’
혹은, 각성자 중에는 부자 집안도 많다더니 사비를 들였나? 현하빈의 추측은 이어졌지만 사실 모두 다 틀렸다.
울림국제고의 신문부와 방송부는 이번에 대대적인 외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너희 학교에 피데스 님 오셨다며!?’
‘학교에 채남매 떴다고?’
‘강태서?! 강태서가 학교에?!’
거물들이 온다는 소문은 학교 외부에도 퍼져 있었다. 그 덕에 신문부, 방송부 졸업 선배들은 물론, 주변 지인과 외부의 피데스, 칼리고, 솔라리스 팬클럽들이 앞다투어 울림국제고의 신문‧방송부에게 카메라를 빌려주었다.
‘다 필요 없고 제발 피데스 님 사진 잘 찍어주라. 그럼 이 카메라 맘껏 써도 돼…….’
‘채지세 님 사진…… 제발제발……! 여신님 사진 제발 부탁할게……. 보정은 내가 할게……!’
‘채지석 님이랑 강태서 님 이걸로 맘껏 찍어. 학교 행사할 때 뮤튜브에 고화질로 영상 올려줘야지!’
‘그분들이랑 하는 입학식, 체육대회, 뭐든 좋아. 신문부와 방송부에게 올인한다. 카메라 다 바꿔줄 테니 학교 계정 뮤튜브 열심히 올려줘!’
그들이 노리는 건 별다른 게 아니었다.
‘학교 행사 영상에 최애 헌터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
저화질의 아무 카메라로 찍었다간 학교 계정까지 찾아가도 저화질로 찍힌 피데스나 채남매, 강태서를 보고 눈물지을 것이 아닌가.
그럴 바에 그냥 카메라 빌려줄 테니 처음부터 잘 찍어서 뮤튜브에도 고퀄로 업로드해 달라 이 이야기다. 신문부는 인터뷰나 행사 사진을 고퀄리티로 올려달란 거고.
안 그래도 그 주제에 대해 SNS와 커뮤니티는 핫하게 달구어지는 중이었다.
└ 체육대회 하는 지세쌤 사진이라니 미쳤다. 체육대회 열리는 여름까지 존버한다!
└ 피데스 님 강의하는 사진은 없나요? 아니면 그냥 조용한 분위기로 학교 창밖 보고 있는 사진이라도 좋은데.
└ 난 피데스 님 훈화 말씀 영상 평생 소장할 거임.
└ 채지석 학생들이랑 축구도 같이 한다면서요? 그거 사진 올라온 곳 있다던데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이렇게 빕니다 ㅠㅜㅠ 같이 축구한 애들 개부럽다 진짜...
└ 강태서가 고양이랑 같이 찍힌 사진 방금 올라온 거 봤는데 분위기도 구도도 진짜 미쳤던데 고화질 본 갖고 계신 분 다급히 찾습니다.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면 볼 수 있나요!?
팬들이 사진을 공유하는 건 괜찮았다. 어차피 학교 공식 계정에 올라오는 공식적인 사진이고 서로 촬영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 건전한 상황이었으니까. 방송부와 신문부도 그 점에 있어서는 의욕이 넘쳤고, 셀럽 헌터들의 밀착 취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들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용도로 받은 카메라가 지금 하빈을 향해 들이대져 있다는 것이다.
“현하빈 씨!”
“루머에 대해 알고 있나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학교엔 어쩌다 오셨죠?”
다들 왜 이렇게 본격적이냐고!
아주 리타 스X터 저리 가라네! 진짜 기자라 해도 믿겠어!
장비가 고퀄로 업그레이드되다 보니 다들 진짜 기자가 된 것 같은 컨셉에 취한 모양이었다.
하빈은 곧바로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어허, 그 루머! 전부 아니거든요? 게다가 이거 사생활 침해예요! 다들 프라이버시 몰라요?”
‘노 코멘트!’를 외친 하빈이 재빠르게 소담관을 빠져나와 학교 본관으로 다시 뛰어왔다.
“저, 저기!”
“거기 서보세요!”
“뭐야? 왜 저리 빨라!?”
스탯 21억을 무시하지 마라!
지금은 비활성 상태지만 어쨌든 스탯 2천의 민첩을 가진 현하빈.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그 장소를 벗어났다.
마침내 현하빈은 본관을 지나 학교 바깥으로 나와 숨을 골랐다.
“에휴. <찰나의 시간> 그거 봤어야 했는데. 다음에 선생님한테 따로 부탁해야겠다.”
일부러 길을 돌아 돌아 왔으니 여기까지 쫓아오진 못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학교 밖이니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현하빈을 쫓아오지 못한다.
“이게 바로 땡땡이의 메리트란 말씀!”
학교 담을 넘어본다더니, 이렇게 다 넘어보네!
학교 담장을 바라본 하빈이 뿌듯한 얼굴로 숨을 들이쉬었다.
“휴, 모두가 등교할 때 나 홀로 학교 밖에 있는 이 여유로운 기분이란.”
그녀가 저 멀리 보이는 학교 창문을 바라보았다.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건너편 건물들에는 출근해서 일하는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가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는 평일의 오전 타임.
“그 와중에 나 혼자 탈출해서 거리를 걷는 거. 이거 진짜 해보고 싶었거든?”
[땡땡이는 항상 하지 않았느냐?]
“노노. 그동안은 땡땡이를 쳐도 기숙사에 있었지만 이번 건 진짜 찐으로 학교를 벗어났단 거지! 완벽한 프리타임!”
햇살을 한껏 만끽한 하빈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왔다.
“어딜 먼저 가볼까……. 아, 그래! 지세 언니한테 조언을 구하자!”
현하빈이 이렇게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건 채남매 측에도 벌써 소식이 들어갔다. 채지석과 채지세도 걱정이 되었는지 괜찮냐며 아침에 톡을 남겨둔 참이었다.
다만 채지석은 오늘 오전부터 학생들 특강이 있으니 지금은 강의하느라 붙잡혀 있을 테고, 채지세의 경우엔 오늘 특강 일자가 아니니까 솔라리스 집무실에 있을 것이다.
“좋아, 솔라리스로 가야지!”
하빈이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 * *
“언니!”
“하빈아? 웬일이야! 지금 학교에 있을 줄 알았는데.”
“……도망 왔어. 애들이 하도 따라붙어서.”
에휴.
하빈이 푸욱 한숨을 내쉬며 하겐더즈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역시 속이 탈 때는 차가운 게 최고다.
“맞아. 나도 그 글 봤어. 엄청나던걸?”
지세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너무 자주 하빈이한테 놀러 가서 그것 때문에 일이 커진 거겠지?”
지세의 태도에 하빈이 손사래를 쳤다.
“엥? 아냐. 그게 왜 언니 탓이야? 그걸로 사람을 귀찮게 한 쪽이 잘못한 거라구!”
정리글과 추측글까지 올려가며 뒤집어댄 학교 여론, 교실까지 찾아온 신문부.
“에휴. 그것만 아니었어도 드라마 수업 들었을 텐데.”
하빈은 이래 봬도 드라마 감상 수업을 상당히 좋아했다. 왜냐면,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도, 선생님도 드라마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드라마를 감상하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든 시간이 다 즐거웠기 때문이다.
‘어어? 너도 이 드라마를 봤어?’
‘호오? 볼 줄 아는 녀석이군. 그럼 이것도 봤나?’
‘헉, 이거랑 같은 배우 나오는 이 드라마가 있는데 이것도 꿀잼이야! 배우가 대본을 좀 잘보나 봐!’
이렇게 학생들의 대화에 끼기만 해도 좋은 정보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가끔 하는 수업조차도 드라마 덕질 토크에 가까웠기 때문에 말 다 했지, 뭐.
‘왜 저 장면에서 철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요?’
‘철수가 사실 살아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 숨겨진 쌍둥이가 대신 죽은 설정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점 찍고 돌아오는 결말로는 못 냈던 걸까?’
‘그럼 개연성이 없잖아!’
‘다들 정말 열정적인 토론을 잘 해주었어요!’
치열한 덕톡을 ‘작품감상 토론활동’이라며 점수에 반영해 주던 선생님.
“정말 개꿀 수업이었는데.”
하빈이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와작, 깨물었다.
[그럼 역시 자퇴로 마음을 잡은 것이냐?]
아헤자르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마침 집무실에는 채지세 말고도 이준휘 비서가 있었기에, 아헤자르는 그쪽에 들리지 않게 매우 주의하며 말을 삼가고 있었다. 하빈이 대답했다.
“으음, 자퇴는 아직 싫은데.”
하빈은 전날 영화를 보며 서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던 질문을 기억했다.
‘언니……. 근데 진짜 자퇴할 거야?’
‘?’
‘그…… 아냐.’
서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지만, 하빈은 어쩌다 보니 봐버렸다. 서윤이 일기장에 몇 가지 목록을 죽죽 줄 그어 버리는 것을.
-언니랑 수학여행 가기
-체육대회
-졸업사진 찍기
[언제 그런 계획을 세운 것이냐?!]
‘그러게 말이다?’
사람 마음 짠해지게 정말.
어차피 유급이 목표니 제대로 된 졸업을 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뭐, 당장 자퇴하기엔 이미 룸메이트도 급식 메이트도 다 정해진 마당에 서윤 혼자 남겨두고 학교를 떠나기가 마음에 걸리긴 했다.
“다른 친구들 사귈 때까지는 좀 지켜봐 주는 게 낫겠다 싶었지.”
게다가 애초에 하빈이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고등학교 학적이라는 꿀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안은 그 어떤 기관도 정부도 강제동원을 못 한다!
“수업도 꿀잼에 급식도 맛있었고. 참 평화로웠는데.”
하빈이 끄으응, 하는 얼굴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런 하빈을 위로하고 싶었는지, 지세가 입을 열었다.
“하빈아,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네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어!”
“어? 뭔데?”
하빈이 고개를 들었다. 채지세는 물론이고, 이준휘 비서까지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준휘 비서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저희는 결국 완성하고야 말았습니다.”
“완성이요?”
“던전 안에도 와이파이 터지게 해 달라고 길드장님께 부탁했다면서요?”
이준휘 비서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즐거운 미래를 상상하는 듯 밝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런 게 있으면 길마님도 부길마님도 다들 던전에 가셔서도 업무를 보실 수 있을 테고…….”
“자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세가 이 비서의 말을 끊었다. 그녀가 인벤토리를 뒤지며 하빈을 돌아보았다.
“어쨌든 하빈이 덕에 제대로 완성하게 되었으니까…… 완성품, 한번 볼래?”
던전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게 하는 신개념 발명품!
“당연하지! 이리 줘 봐!”
그 말에 하빈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조금 밝아졌다.
* * *
한편, 하빈이 솔라리스에 가 있던 그 시각.
심각하게 회의를 하던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대체 이게 뭔…….’
[내 이럴 줄 알았다.]
현시우와 네아이바는 탄식을 뱉었다. 그들도 현하빈에 대한 게시글이 온 학교를 다 뒤집어 놓은 걸 알고 있었다.
‘이대로면 현하빈, 확실히 자퇴하겠죠?’
[당연하지! 자퇴한다에 천 원 건다!]
‘그새 판돈을 두 배로 키우셨군요?’
현시우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힘들게 입학시킨 동생이 자퇴를 하게 된다니.
‘어쩌다가 이렇게…….’
[시작은 강태서였지.]
‘하.’
그러고 보니 소문의 근원도 ‘강태서가 현하빈의 빵셔틀을 한다더라’부터 시작되었다. 강태서가 현하빈 소동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 셈!
‘강태서 그 X끼는 정말 사사건건 도움이 안 되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다. 회귀 전의 지식이 맞는다면, 강태서는 지금도 마이너 패치와 손잡고 뭔가를 하고 있을 터.
하필 이 시기에 그 녀석이 학교에 온 것도 찜찜했다.
‘역시 회귀한 직후부터 강태서를 죽이고 시작했어야 했나?’
현시우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벌컥-
때마침 교장실의 문이 열렸다. 현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하필 지금 교장실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강태서였다.
“…….”
“…….”
둘은 말없이 서로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잠깐 침묵했다. 현시우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 X끼는 또-’
“왜 왔냐?”
“……서류만 가지고 갈 거다.”
“노크하는 예의는 어디다 팔아먹고?”
“…….”
부스럭 부스럭.
강태서는 대답 없이 서랍을 뒤졌다. 그쪽은 교장 전용 캐비닛이 아닌, 학교의 기타 서류를 보관하는 보관함이었기에 현시우도 딱히 제지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강태서가 서류를 찾아내 집어 드는 순간이었다. 강태서가 집어 든 서류를 확인한 네아이바가 소리쳤다.
[야, 야! 저거! 쟤가 찾은 서류!]
-자퇴서
[자퇴서다! 자퇴서! 설마 저거 쟤가 직접 현하빈에게 갖다 주려는 거 아니냐?]
‘뭐요? 자퇴서요?’
현하빈 학교 다니게 하려고 준비물도 사주고 설득하느라 애먹었는데!
강태서 저 자식이 또 내 계획을 망쳐?
현시우는 인상을 팍 구기며 생각했다.
‘그냥 저 자식…… 지금이라도 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