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이 학교의 숨겨진 실세 (2)
여기저기 퍼뜨려진 현하빈에 대한 학생들의 소문과 추측.
그건 하루 만에 울림국제고 학교게시판을 핫하게 불태웠고, 수많은 가설을 낳았다.
그리고 그 가설은 가장 유력한 세 가지로 좁혀졌다.
1. 현하빈은 강태서의 숨겨진 가족이다.
2. 현하빈은 채남매의 숨겨진 가족이다.
3. 현하빈은 국가원수급 권력자의 숨겨진 가족이다.
마지막 글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글로 인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제목: ㅎㅎㅂ미스터리 이걸로 종결한다.
본문: 걔 강태서 가족이니 채지세 가족이라고 난리인데 내가 이걸로 딱 정리한다. 내가 기숙사 우편물 관리 담당 맡아서 우연히 발견했거든
(사진)(사진)(사진)
이거 무려 SS급 제작계 헌터이자 컨티뉴의 대표 코니님의 편지임.
ㅎㅎㅂ은 코니님이랑 비밀리에 사적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다. 코니님의 숨겨진 손녀라는게 정설.
게시글에는 코니가 현하빈에게 보냈던 크림색 봉투와 버건디 실링이 찍힌 편지 사진이 찍혀 있었다. 버건디 실링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새겨져 있었는데, 누가 봐도 제작계 공방 컨티뉴를 상징하는 고급스러운 문장이었다.
그걸 본 학생들은 또 뒤집어졌다.
└ ....미친?
└ 이건 생각도못했네
└ 야 이거 찍어도 됨?
└ 글내려라;;
└ 개인정보 보호 같은 거 생각도 안해? 이런 거 올리면 안 돼...글내려....
└ 누군지 특정되어서 징계먹을 듯
└ 게시글 신고했다 다들 한 번씩 신고 눌러주고 가!
└ 아왜ㅋㅋㅋㅋ개꿀잼인데
└ 우와 근데 진짜 미쳤다 나 제작계 클래스인데 너무 부럽다 진짜 코니님이야? 컨티뉴의 코니님이지?? 와 미쳤다....나 ㅎㅎㅂ이랑 친해질래....
└ 코니님한테 가족이 있었어?
└ 그분 신상 거의 안 알려진 걸로 아는데 성도 불명이고
└ 그럼 이게 최초 아님? 우리학교 학생이 최초로 코니님의 숨겨진 가족을 밝혀낸 거?
└ ㅋㅋㅋ와 애들 추리력 어디까지냐 국제헌터고 말고 국제탐정고로 이름바꿔
└ ???잠깐만... 말이 안 되는데? 코니님 외국인이잖아? 그분 원래 한국인이 아님 게다가 ㅎㅎㅂ이랑 생긴게 안 닮았어....
└ ㅎㅎㅂ이 혼혈인가보지 조부모 대부터 내려온 쿼터면 가능성있음
└ 아....맞네
└ 아무리 헌터고라지만 과학 좀 배우셈 유전 안 배움?
└ 응 그거 몰라도 잘 살아 그리고 그게 유전법칙이랑 뭔 상관?
└ ......어쨌든 코니님의 숨겨진 손녀라면 이해됨. 칼리고도 솔라리스도 컨티뉴랑 계약 맺은 게 있을 테니까 친근하게 대했나 보지.
결국 현하빈에겐 제작계 헌터 코니의 손녀라는 설이 또 추가되었다.
하지만 기존 가설 지지자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제목: 아니야 반대로 강태서나 채지세의 가족이라서 코니님도 신경 써서 친히 편지를 보내는 거임
본문: 코니님은 원래 주변 사람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구매한 고객들한테 케어도 잘 해주시는 편이고. 특히 VIP급 되는 분들이면 인맥 관리 측면에서라도 열심히 챙기겠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제작계라서 컨티뉴 입사하는 게 오랜 꿈이었거든
코니님 덕질로 모은 정보라서 확실해
아 물론 진짜로 ㅎㅎㅂ이 코니님의 손녀분이실수도 있으니 앞으로 그분 발닦개 자처할 예정
└ 막줄ㅋㅋㅋㅋㅋㅋ벌써부터 줄을 서네
└ 제작계 이름 먹칠하지 마라 나도 제작계인데 이렇게 음흉한 생각 안 함 그래도 코니님이랑 친한 거 부럽다
└ 오오 그럼 진짜로 ㅎㅎㅂ이 채남매의 가족일 수도 있겠네
때문에 가설 지지는 4파전으로 흘러가는 양상이었다.
1. 현하빈은 강태서의 숨겨진 가족이다.
2. 현하빈은 채남매의 숨겨진 가족이다.
3. 현하빈은 국가원수급 권력자의 숨겨진 가족이다.
4. 현하빈은 제작계 헌터 코니의 숨겨진 손녀이며 컨티뉴의 후계자다(new!)
* * *
“어디 보자…….”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서윤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책상 곁에는 타닥타닥 타는 벽난로 아이템이 효과를 발하고 있었다. 덕분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쌀쌀하기는커녕 따스한 온기가 기숙사 방을 감돌고 있었다.
‘정령 조사 과제는 다 끝냈고. 음……. 중간고사는 미리 준비하려면 노트 필기 복습부터 해야겠다.’
생각을 마친 서윤이 노트북을 열어 학교게시판에 접속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서윤은 평소에도 학교게시판을 자주 들락거리는 편이었다. 혹시 과제나 중간고사와 관련된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루에 한 번은 꼭 확인했다.
탁. 타닥.
로그인을 끝낸 서윤이 게시판에 접속했을 때였다. 화면 상단에 커다랗게 뜬 핫 게시글이 보였다.
오늘의 HOT 게시글!(NEW!)
F반 ㅎㅎㅂ의 정체 정리한다.(추가)
“어……?”
F반에 ㅎㅎㅂ초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서윤이 알기로 단 한 명뿐이다.
‘하빈 언니……?’
꿀꺽.
글의 제목을 확인한 서윤은 잔뜩 긴장했다. 이렇게 핫게에 올라올 정도의 일이라면 대단히 좋은 일이거나 대단히 나쁜 일.
하지만 익명 게시판의 특성상 좋은 일이 핫게시판 1위를 차지하는 것보단 안 좋은 구설수가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기 마련이다.
‘설마 언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글을 쓴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저번에 제희 무리를 따끔하게 면박 주었던 현하빈이다.
‘수업도 매번 땡땡이친다고 그랬고…….’
그런 허술한 태도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분명 있었겠지.
‘안 좋은 글이 올라온 거면 어떡하지?’
서윤은 슬금, 하빈이 있는 쪽을 보았다. 현하빈은 오늘도 기숙사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하, 코니 님도 네풀릭스 볼 줄을 아시네. 주변에 채씨 말고도 좋은 추천요정 님이 생겼어! 개꿀!”
토독토독. 마침 비가 내리는 창문에는 저녁 어스름이 비치고 있었지만 현하빈의 침대는 그것과 대비되어 훨씬 아늑해 보였다.
침대 곁에 있는 주황색 무드 등과 빈티지한 벽지, 예쁜 카펫은 물론 폭신한 침구까지 그 광경에 포근함을 더하고 있었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하빈이 휙 서윤을 돌아보았다.
“음? 서윤이 심심해? 그럼 이 빵도 먹어볼래? 앙버터인데 이것도 친구한테 받았어.”
강태서한테 받은 빵들 중 하나였다. 하빈이 예고 없이 빵을 휙 던졌다. 서윤은 엉겁결에 툭, 받아들었다.
“으, 으응.”
‘일단 지금 당장 언니에게 말하지는 말자.’
서윤은 다시 책상 위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렇게 신나 있는데 당장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내가 먼저 확인해 보고 천천히 알려주는 거야.’
먼저 홀로 게시글을 확인해 보기로 한 그녀. 서윤은 비장한 마음으로 딸각, 글을 클릭했다.
‘안 좋은 글이면 당장 신고 누르고 반박 댓글 달아야지……!’
서윤은 눈을 부라리며 글을 확인했다.
하지만 막상 그 글은.
‘어……?’
서윤의 예상을 한참 빗나가는 내용이었다.
제목: F반 ㅎㅎㅂ의 정체 정리한다.(추가)
본문: 오늘 하루 내내 올라왔던 글들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늦게 온 사람들 이거 읽으면 이해될 듯(실시간으로 추가중)
1. 처음 시작은 이 글부터 시작되었음.....
라는 글은 그동안 하루 종일 학생들이 던졌던 핫게시판 추측글을 다 캡처해서 타임라인으로 모아놓은 정리글이었다.
덕분에 서윤은 그 발언이 처음 시작된 ‘강태서를 빵셔틀로 부리는 현하빈’ 목격담부터, ‘채남매와 숨겨진 국가원수의 가족’이라는 루머부터 마지막으로 올라온 코니와의 펜팔 사진글까지 모두 쭈우욱 볼 수 있었다.
“헉…….”
서윤은 읽는 내내 헉, 하고 숨을 들이쉬기도 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너무 놀라 눈이 화등잔만 해지기도 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기도 했다.
마침내 그걸 모두 읽은 서윤이 삐걱삐걱 현하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 언니……!”
“응? 왜?”
“언니……. 언니……. 그게, 어, 그러니까!”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던 여서윤, 그녀는 참지 못한 듯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어, 언니가 컨티뉴의 차세대 후계자야? 후계자 수업 받고 있어? 사실 혼혈이야?”
“엥?”
“언니 사실 대통령의 숨겨진 친척이거나 채선생님들의 가족이야?”
“읭?”
“지, 진짜로 강태서 선생님 빵셔틀 시켰어?”
“으음?”
마침 서윤은 방금 현하빈에게 받았던 앙버터를 한 손에 든 채였다. 그녀가 생각났다는 듯 외마디 외쳤다.
“이, 이거! 그러고 보니 이거!”
여서윤이 손에 들고 있는 앙버터 빵을 기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이, 이 빵이 강태서…… 님이 빵셔틀로 갖다 바친 빵……?!”
후두둑.
충격을 받아 힘이 풀린 여서윤의 손 사이로 앙버터가 맥없이 떨어졌다.
* * *
“…….”
“…….”
[…….]
-삐이.
정적이 오가는 기숙사 방. 하빈은 서윤이 진정할 수 있게 조금 기다려 주었다. 마침내 심호흡을 한 서윤이 물었다.
“진짜 아니야? 진짜로?”
“아, 정말 아니라니까.”
하빈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윤이 알려준 학교게시판의 글을 읽고 있었다. 글을 읽던 하빈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에엥? 내가 강태서랑 가족?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걘 그냥 고딩 때 친구야.”
“치, 친구?”
“그리고…… 어디 보자, 채씨랑 지세 언니랑 가족? 에이, 말도 안 돼. 집에는 자주 놀러 가긴 하는데.”
“채, 채씨? 지세 언니? 방금 언니 채지세 님을 지세 언니라고 불렀어? 집에 자주 놀러 간다고?”
해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 여서윤은 진정하기는커녕 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게시글을 넘겨보던 하빈이 말을 이었다.
“대통령 가족? 이건 또 뭔 소리야. 그럼 경호원이 따라붙었겠지……. 세계급 암흑 명문 재벌가의 숨겨진 아가씨? 엥? 이건 뭔 로판웹소 제목임?”
“……언니.”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서윤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컨티뉴의 코니 님이랑은…… 진짜로 편지…… 주고받은 거야?”
서윤은 매일 밤마다 하빈이 미소 띤 싱글거리는 얼굴로 사각사각 편지를 쓰던 걸 기억했다. 웬일로 과제를 하나 싶어서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일기 쓰냐?’고 물으니 ‘아니, 편지!’라고 대답하는 걸 보고 가족끼리 편지를 보내는 애틋한 사이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무려 킬스크린 컨티뉴에서부터 날아온 코니 님의 편지였다니…….’
“아, 응!”
하빈이 마침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인벤토리에서 편지를 꺼냈다. 크림색 봉투에 버건디 인장이 박힌 문제의 그 편지봉투!
“컨티뉴에 주문제작을 했던 물건이 있어서 그 내용으로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어.”
“컨티뉴에…… 주문을 넣었다고?”
컨티뉴에 주문을 넣었다니. 그것만 해도 최상위급 헌터나 엄청난 부자가 할 수 있는 일인데.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주문한 물건을 위해 코니가 개인적으로 장문의 편지를 여러 번 주고받을 정도의 특별 손님.
“짠. 그러니까 여기 글은 다 헛소문이야!”
하빈이 걱정 말라는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여서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 언니. 근데 이거 헛소문이 문제가 아니야. 오히려 해명하면 더 일이 커질 것 같아. 글이 조금씩 엇나갔을 뿐이지 진실도 그 이상으로 대단해서…….”
“그치? 문제겠지?”
“응…….”
“그러니까 착한 서윤이는 비밀로 하자?”
“무, 물론이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서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윤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어…… 그럼 이제 어떡해? 핫게시글까지 된 이상 이미 학교는 뒤집어졌을 텐데…….”
“흐음.”
당장 내일 등교가 걱정되긴 하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