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교사연구실 탐방 (2)
리베를 본 순간 강태서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하양이……?”
까만 고양이와 대비되는 새하얀 도마뱀이라니.
하빈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우리 삐약이의 이름은 리베라고. 멋진 이름이지!”
-삐이삐이.
고개를 끄덕이는 리베.
“역시, 우리 리베는 언제 봐도 귀엽다니까.”
하빈이 닭가슴살을 꺼내 리베에게 건넸다.
-삐이이.
냠냠 닭가슴살을 받아먹는 리베. 그 모습을 본 지석이 알은체를 했다.
“리베 오랜만이다!”
채지석은 신이 나서 도시락에 들어있던 스테이크 조각을 꺼냈다.
-삐!
리베가 신난 표정으로 그걸 받아먹었다. 닭가슴살을 톡톡 찢고 있던 하빈이 덧붙였다.
“그동안 까망이가 밖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리베가 생각나서.”
학교에서는 펫을 꺼내 다니는 게 교칙상 금지되어 있었다. 특별히 소환 계열이나 테이머 계열 헌터에게만 예외로 허락해 줬지만, 다른 클래스 학생은 교내에 펫을 데리고 다니는 건 어려워서 돌보려면 기숙사에서만 돌봐야 했다.
“선생님은 되고 학생은 안 되다니. 역시 고등학생의 삶이란!”
“……여기도 교내인데.”
교사연구실도 교내다. 원칙상 여기서도 리베를 꺼내서는 안 되었다. 태서의 지적에 하빈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에엥, 태서야. 설마 학생지도부에 이를 거야? 우리 리베가 너무 오래 펫 공간에만 있었던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꺼내봤는데, 너무하네!”
“…….”
“태서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야.”
“……안 이를 테니 그만해.”
강태서는 모른 척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어차피 그가 다른 교사들에게 일러바칠 성격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일부러 다른 교사들과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열을 내는 쪽은 다른 쪽이었다.
-게엥!(인간! 이건 무슨 상황이냐!)
까망이가 심기가 불편한 듯 꼬리를 흔들며 웨옹웨옹 울었다.
-게옹! 게옹!(잘 쓰다듬다가 손 떼는 건 어느 나라 예의냐! 빨리 다시 쓰다듬어라!)
방금까지만 해도 이 방의 인간들은 까망이에게 관심을 주던 상황이었다. 채지석과 채지세마저 강태서의 교사연구실에 오면 언제든 까망이를 챙겼다.
‘어머, 강 선생님이 고양이를 키우시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너무 귀엽네요!’
라며 장난감들을 가득 챙겨 주던 채지세와.
‘까망아, 이거 먹고 건강해라.’
올 때마다 꼬박꼬박 간식을 챙겨 주던 채지석.
‘까망이는 갈수록 귀여워진다니까!’
매번 와서 쓰다듬어 주는 현하빈까지.
-게에옹!(그뿐만이 아니다!)
까망이가 불만 어린 표정으로 꼬리를 탁탁 쳤다. 까망이는 이들 셋에게만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우와! 고양이다.’
‘강태서 선생님이 키우는 고양이래!’
‘뭐?’
‘대박……. 태서쌤 고양이…….’
강태서의 고양이라는 게 알려지자 까망이는 그야말로 학교 내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가는 곳마다 교사 학생 모두의 선망을 받는 삶.
‘너무 귀여운데?’
‘내가 본 고양이 중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아냐, 귀족 같은 품위와 도도함이 느껴진달까.’
‘역시 칼리고의 고양이야.’
-게웨오옹!(다들 보는 눈이 있군!)
‘강태서의 고양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다들 까망이에게 호의적으로 대했고, 대단한 존재인 양 치켜세워줬다. 그래서 까망이의 자존감은 날로 높아지는 중이었다.
-게엥, 게에엥!(인간들이 이렇게나 날 좋아하다니. 난 신이 틀림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조건 귀엽다고 칭찬해 주고, 하품을 해도, 기지개를 켜도 주변에서 감탄이 쏟아지는 삶. 가는 곳마다 간식과 장난감이 함께했다. 까망이를 막는 곳은 이 교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딱 한 명, 피데스는 까망이를 피했다. 나름 계산을 한 행동이었다.
‘강태서의 고양이라면 분명 무언가 있을 거야. 정찰용으로 쓰고 있겠지.’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피데스는 교장실을 기웃거리는 까망이를 볼 때마다 멀리 쫓아내었다.
“쉬이, 여긴 보지 말고 나가라.”
-……게엥.(인간들은 날 좋아하는데.)
-게엥, 게엥!(날 안 좋아하다니, 저건 인간이 아닌가 보다!)
피데스의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자존감 높았던 까망이는 그렇게 넘겨버렸다.
어찌 되었든 까망이의 인기는 피데스를 제외하고는 다 통했기에, 강태서로도 좋은 일이었다. 강태서는 굳이 교사연구실을 나서지 않아도 학교의 모든 곳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각 선생님과 학생들의 관계, 소문, 학교의 비밀 장소들까지.
‘예상외로 정찰을 잘하는군.’
강태서로서는 기꺼운 일이었다.
-게옹, 게옹!(그런 나를 향한 관심을, 네 녀석이 빼앗아 가다니!)
까망이가 리베를 향해 경계 어린 하악질을 했다.
-게엥!(희한하게 생긴 주제에!)
까망이가 리베를 노려보았다. 저 도마뱀은 까망이처럼 따뜻한 털도 없고 말랑한 젤리도 없다.
-게옹, 게옹!(못생긴 게! 넌 내 상대가 안 된다!)
분명 지금 리베를 향한 관심도 일시적일 뿐, 다시 사그라들 것이다. 까망이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곳에서 가장 예쁨받는 위치를 내줄 수는 없었다.
-삐이?
한편 리베는 까망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리베에게 까망이는 태어나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털. 말랑한 발바닥, 쫑긋거리는 귀. 살랑거리는 꼬리까지.
-삐이이?
눈을 빛낸 리베가 아장아장 까망이를 향해 다가갔다.
“어어어?”
그 모습을 본 하빈과 지석이 감탄을 흘렸다.
-께옭!(뭐냐!)
“리베가 까망이가 마음에 드나 봐!”
“친해지려는 건가?”
“얘들아, 서로 인사해!”
-삐!
까망이가 당황한 듯 성큼 물러섰다.
-게옹, 게옹……!
까망이는 주춤거리며 리베를 살폈다. 멀리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가까이 보니까 이빨도 꽤 뾰족해 보이고, 발톱도 날카로운 게…….
-게엥……?(도마뱀 맞아?)
까망이는 학교 뒤뜰에서 진짜 도마뱀을 발견한 적 있었다. 도마뱀이란 놈들은 하나같이 까망이를 발견하자마자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겡겡.(한입거리였는데.)
하지만 이 도마뱀은 뭔가 달랐다. 지금은 조그맣고 귀엽지만, 조금만 더 크면 강력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드는 것이다.
-게에……(뭐냔 말이다…….)
묘한 아우라가 있는 도마뱀이다. 까망이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찬찬히 리베를 뜯어보려 했다. 하지만 리베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삐!
고개를 까닥까닥 숙이더니, 발을 내밀어 쓰윽 무언가를 까망이에게 내밀었다.
리베가 먹고 있던 닭가슴살이었다.
“어어어?”
“우와!”
“언니 이거 봐! 리베가 지금 닭가슴살을 까망이한테 건넸어!”
“친해지려나 보네!”
“리베 착하다!”
주변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까망이는 심통이 났다.
-게옹.(조그만 게 제법이군!)
주변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잘 아는 모양이다. 이 구도면 착한 리베와 꽁한 까망이의 이미지 구도가 굳어진다.
-게엥, 게엥!(그럴 수는 없지!)
어딜 가나 까망이가 제일 멋진 위치에 있어야만 한다. 까망이는 자신이 숨겨 두었던 간식용 소시지를 꺼냈다.
-……겡!(넌 이거나 먹어라!)
까망이가 스윽 소시지를 리베한테 건넸다.
“어어?”
“우와, 까망이가 소시지를 리베한테 줬어!”
“둘이 물물교환하는 것 같아!”
“까망이도 착하다.”
“똑똑해.”
-게웨오옹!(봤냐, 인간들?)
까망이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이대로면 귀엽고 착한 이미지로 리베한테 밀리지 않는다.
-삐!
소시지를 받은 리베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아까보다도 더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삐이, 삐이.
“리베가 까망이가 마음에 들었나 봐.”
까망이의 호의를 허락으로 여겼는지, 성큼 다가와 까망이에게 치근덕대는 리베.
-게, 게엥!(저, 저리 비켜라. 귀찮다!)
까망이가 울음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으나 먹힐 리 없었다.
-삐이이!
-겡겡! 겡겡겡!(비키라니까! 에효, 하긴 이 녀석도 내 말은 못 알아듣는 모양이다!)
곤란한 얼굴로 리베를 바라보던 까망이는 결국 포기한 표정으로 리베에게 곁을 내주었다.
“둘이 친해져서 정말 다행이야. 앞으로도 종종 데리고 놀러 와야겠어.”
그 모습을 보며 하빈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채지석이 하빈에게 도시락을 건넸다.
“애들 보는 것도 좋은데, 와서 점심 마저 먹어. 이러다 수업 시작할 것 같은데?”
“괜찮아, 다음 수업은 결석하면 되거든!”
하빈이 해맑은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물론 그 소파 또한 강태서의 교사연구실에 비치된 소파였다.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까먹는 지세와 지석, 하빈.
‘여긴 내 교사연구실인데.’
그리고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는 강태서.
“강쌤도 드시라니까요!”
“…….”
짠.
지세가 도시락을 건넸다. 잘 포장된 스테인리스 도시락은 3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1단에는 정성들여 포장된 김밥과 떡볶이, 튀김, 순대.
2단에는 등심 스테이크와 투움바 파스타.
3단에는 과일과 조각 케이크가 알차게 들어 있었다. 모두 양을 조금씩 배분해서 한 사람이 다 먹을 수 있도록 적당하게 구성되어 있는 정교한 안배가 돋보였다.
“……감사합니다.”
일단 강태서는 사양하지 않고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어차피 식사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결국 이 사람들도 다 원래 자리로 돌아갈 테니 아슬아슬하게 임무 수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참자.’
마침 하빈이 도시락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떡볶이를 콕 찍어 올린 하빈이 쫄깃한 떡을 우물우물 씹을 때였다. 지석이 물었다.
“하빈이 너 원래는 네 룸메이트랑 같이 밥 먹는 거 아니었어?”
“아, 걔가 어제 동아리에 가입을 해서 오늘은 동아리 멤버들끼리 환영식 겸 치킨 파티 하기로 했대.”
지금은 마침 동아리가 결정되는 시기였다. 여서윤은 고민 끝에 훈련과 관련된 동아리에 들었다. 도서부로 갈지 거기로 갈지 마지막까지 조금 고민했지만, 그래도 스킬 수련을 더 하고 싶다는 마음에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지세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하빈이는 동아리 어디 들었는데?”
“나는 자습부!”
“자습부? 하빈이 공부해?”
“현하빈이 공부를 한다고?”
채지석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하빈을 돌아보았다.
“너 공부 싫어서 과목 전부 교양으로 신청했잖아?!”
“엥? 알고 있네?”
“그…… 뭐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 어쨌든 공부할 마음은 전혀 없던 거 아니었어?”
“당연하지.”
하지만 자습부는 자율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장려하는 동아리.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대부분의 부원들은 기숙사 책상이나 도서관 자습실에서 대학 진학 공부를 하겠다고 계획서를 적어 냈다.
“그리고 나도 계획서를 착실하게 적어 냈지. 난 그 시간에 드라마에 대한 공부를 할 거야. 장소는 기숙사 침대에서!”
“그냥 놀 거라는 뜻이잖아!”
“흠흠. 이게 다 인생에 대한 공부라는 거지.”
“……그게 왜 인생 공부야?”
“흠흠! 그런 게 있다구.”
하빈은 자습 계획서를 팔락거리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팔랑팔랑 흔들리는 종이 사이로 무언가가 휙 떨어졌다. 채지세가 그걸 주워들었다.
고급스러운 크림색 편지봉투. 얼핏 보아서는 평범한 편지봉투처럼 보이겠지만 종이의 질감과 편지에 찍혀 있는 버건디색 실링왁스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빈아, 이건 뭐야? 편지……?”
“앗……!”
하빈이 웬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