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교사연구실 탐방 (1)
“그런 일 없어.”
강태서는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까망이를 주워들었다.
-게옹!(또 방해냐, 인간!)
“너도 수업 들어가 봐. 수업 중일 텐데.”
“어어, 태서야!”
대화를 피하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휙 사라지는 강태서. 하빈은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에휴, 까망이 귀여웠는데.”
태서의 사연을 듣지 못한 하빈이 중얼거렸다. 아마 강태서는 피데스와 있었던 일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애가 참 속이 깊지. 상사한테 까인 걸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녀석이 아닌가 봐.”
[그렇느냐? 나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다만.]
“물론 강태서 쟤는 원래 언제나 석연치가 않지. 내 말이 결국 맞았잖아? 애가 국랭 1위 찍고 사회성도 잃어버리고, 어두워진 것 좀 봐!”
[……?]
“저래서 높은 자리는 석연치가 않은 자리야. 그런 자리 있어봤자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고. 오늘도 저것 봐. 월랭 2위면 2위대로 1위한테 까이는 삶이란 거야.”
[그런…… 것이냐?]
“그래! 그러니까 잘잘이는 굳이 피라미드 정점에 서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뭐든 중간이 제일 안락하고 좋다니까?”
[뭔가 묘하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팔짱을 낀 하빈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강태서, 역시 가면 마법사의 갑질에도 교사 생활을 하느라 참 힘든가 보네! 종종 찾아가서 격려해 줘야겠어.”
* * *
그래서 그 이후로도 하빈은 심심하면 강태서를 찾아왔다.
“태서 안녕! 이건 저번에 킬스크린에서 사 온 기념품이야. 예쁘지?”
킬스크린 야시장서 얻은 ‘별의 조각’을 내미는 현하빈. 강태서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그걸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고맙다.”
“내가 준 선물이니까 당연히 소중히 해야겠지? 버리면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아!”
“…….”
부빗부빗. 기다렸다는 듯 하빈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는 까망이.
“아이, 까망이는 볼 때마다 더 귀여워진다니까! 얘가 애교가 늘었어!”
-게에엥…….(츄르는?)
“내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너무 나만 따르는 거 아니니, 까망아?”
-게엥. 게에엥!(인간! 너 말고, 츄르는 어딨냐?)
“우리 까망이, 보고 싶었쪄? 짜식. 알아, 다 안대두?”
까망이를 부여잡고 얼굴에 부벼대는 하빈을 보며 강태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게 며칠 째인지.’
거의 매일같이 찾아오는 현하빈의 태도. 강태서 입장에서는 고역이 따로 없었다.
‘이러다가 명령어를 제대로 입력할 시간이 없겠어.’
인공 게이트를 발동시키기 위해 학교 곳곳에 코드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럴 틈마다 현하빈이 찾아오는 바람에 계속해서 일정이 미뤄지고 있었다. 이대로면 게이트를 여는 걸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
게다가 너무 늦어지면 마이너 패치 측에서도 강태서에게 불신을 가질 것이다.
‘아무래도 현하빈을 쫓아내야겠어.’
강태서는 결단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현하빈. 왜 자꾸 찾아오는…….”
“여기가 아늑하고 좋다니까! 우리 까망이도 있고!”
-게옹!(츄르!)
“아니면 강태서, 혹시 학생이 상담하러 와도 무시하는 나쁜 교사상인가? 지금 나, 학생으로서 상담하러 교사연구실에 온 거잖아!”
“……무슨 상담이지?”
“선생님, 고양이를 너무 잘 키우셨네요.”
-게오옹!
“고양이가 너무 예쁘게 잘 컸어요!”
-게엥! 게엥!(이 인간이 보는 눈이 좀 있다!)
“……에 대한 고찰이지! 어떻게 이렇게 잘 키웠는지 궁금해서 상담을 하려는 거야!”
“남의 고양이 문제로 상담을 하는 학생은 없어.”
“그럼 내가 최초겠네!”
현하빈은 이제 나름 요령이 생겼는지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가 아무도 없을 때만 몰래 교사연구실에 찾아왔다. 주변 학생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론 강태서도 그를 따라다니는 팬층이 없는 게 아니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도 꽤 있었지만.
“짜잔. 교사연구실 랜딩.”
착.
창문으로 휘리릭 들어오는 방법을 쓰면 다른 학생들 눈 피해서도 입장 가능!
‘이걸로 피데스나 지세 언니한테도 방문할 걸 그랬어. 지세 언니는 교사연구실에 안 있어서 문제지만.’
안타깝게도 겸임교원이었던 채남매는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극히 짧았다. 교사연구실에 있는 시간보다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 너무 많아서 아는 척은 앞으로도 할 엄두가 안 난다.
다만 강태서는 시스템 관리자의 사도로서 이 학교에서 해야 할 임무 수행이 많았기 때문에 일부러 풀타임에 가깝도록 학교에 오래 머무는 중이었다. 주변 인물들을 알아서 물리고 혼자 잘 다니기도 했고.
그래서 하빈이 찾아갈 만한 빈틈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또, 학교에 이상할 정도로 오래 머무는 랭커가 또 있지!’
강태서 외에 학교에 오래 머무는 인물은, 바로 가면마법사 피데스였다.
피데스는 학교의 교장을 맡아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SPES 본부보다 이곳 학교 교장실에 더 오래 머문다는 설이 돌았다.
‘왜 자꾸 나를 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물론 하빈이 다가갈 때마다 계속 사라져서 아직 못 만났다.
[우연 아니냐?]
‘흠 우연인가? 확실히 알아보려면 직접 만나서 추궁해 보는 게 나은데. 강태서 방 들어올 때처럼 가면마법사 방에도 창문으로 들어가 볼까?’
[그럼 교장실을 창문으로 뚫고 진입하겠다는 소리잖느냐!]
‘우리 잘잘이, 예리한걸?’
[그러다가 그, 무슨, 죄로 잡혀 간다! 선도부나 학교징계위원회! 그런 곳이 열린다고 들었느니라.]
‘음……. 듣고 보니 그래. 놀란 가면마법사가 특수절도나 주거침입? 대충 그런 죄로 고소를 먹일지도 몰라. 그건 좀 곤란하긴 하지. 그나저나 잘잘이도 이제 법을 신경 쓰는 나이가 되었구나! 언제 그걸 다 알았대?’
[제발 학생으로 왔으면 학생답게 수련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교장실 침입과 땡땡이에만 정신 팔린 현하빈의 삶이란.
발끈하던 아헤자르는 곧이어 무언가가 떠오른 듯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너는 이공간 진입이라는 스킬이 있지 않느냐? 그걸 쓰는 게 잠입에는 더 편할 텐데.]
이공간 진입.
오류만 있다면 그 사이로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기술. 저번에도 그걸 사용해 킬스크린으로 진입한 전적이 있다.
하빈도 당연히 그 생각을 안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공간 진입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어서 안 돼.’
[약점?]
‘우선 첫 번째는, 교장실 안에 오류가 없을 수 있다는 점.’
오류가 있어야 그 사이로 진입을 할 텐데, 교장실 안에 오류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
‘그리고 두 번째는, 사실 두 번째가 제일 중요한 점이야, 김잘잘.’
하빈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다고! 무엇보다 인간 세상엔 CCTV라는 아주 무서운 기기가 있단다.’
혹시라도 이공간 진입을 사용하다 촬영이라도 된다면?
아주 곤란한 일.
‘차라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미친 학생으로 보이는 게 훨씬 낫지!’
[……?]
‘그럼그럼.’
결론을 내린 하빈이 다시 까망이에게 손을 뻗었다.
“어쨌든, 우리 까망이를 볼 때마다 자퇴를 하겠다는 의지가 사그라든다고. 까망아, 네가 이 누나의 희망이다!”
-꼐오옭?(가,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빈에게 들려 있는 까망이. 하빈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직장이나 학교가 아무리 뭣 같아도 그걸 헤쳐나갈 소소한 행복만 있다면 다 이겨낼 수 있는 거다.
“그래그래. 그러니까 강태서도 힘내자! 혹시 상사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하고!”
토닥토닥, 강태서의 등을 두드려주는 현하빈.
“…….”
강태서는 모르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현하빈이 같이 있는 덕분에 피데스는 이제껏 단 한 번도 강태서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건 강태서에게도 기꺼운 일이었다.
다만, 그 못지않은 문제가 새로 생겼다.
쾅-!
“하빈아!”
“현하빈 여기 있지?”
정적을 깨고, 강태서의 교사연구실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냉큼 뛰어 들어온 채남매.
“…….”
강태서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채남매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들도 며칠 전부터 계속 현하빈을 따라오잖아.’
강태서는 채남매들을 향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제가 배정받은 연구실인데.”
하지만 그 말에 물러설 채남매들이 아니었다.
“하빈이 볼 틈이 너무 없어서요! 잠시만이라도 보고 갈게요! 하빈아, 우리 도시락 싸온 거 한번 먹어볼래?”
“네, 정말 잠깐만 있다 가겠습니다, 강 선생님! 선생님도 저희 도시락 같이 드실래요?”
“이거 완전 맛집만 모은 건데! 같이 먹읍시다, 강 선생님!”
‘강 선생님……?’
그동안 칼리고 길드장으로만 불렸던 강태서로서는 상당히 생소한 호칭이라 아직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대답 없는 그를 뒤로하고 하빈이 말을 받았다.
“맞아, 강쌤! 강쌤이 확실히 애들한테 인기가 많더라! 이것 봐!”
하빈은 강태서의 테이블에 놓인 수두룩한 편지들을 훑으며 감탄을 흘렸다.
읽어보지 않아도, 조심스레 싼 봉투의 모습만 봐도 그 안에 적힌 마음이 전해지는 법이다. 편지 봉투에는 꾹꾹 눌러쓴 수신인이 적혀 있었다.
-강태서 선생님께
-제가 누구보다 존경하는 멋진 헌터 강태서 선생님.
-선생님저는칼리고랑태서쌤이제일좋은거아시죠? ㅇ.<♡
-선생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을 보면서 헌터의 꿈을 길렀고요, 제가 만약 미래에 칼리고에 입사한다면 믿음직한 신입사원이 되어 회사에 뼈를 묻을 것을……!
-태서쌤 언제나 감사합니다!
“…….”
‘중간에 이상한 게 끼어 있는 것 같지만.’
하빈은 아기자기한 글씨들을 보며 짐짓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빈이 받은 건 아니었지만, 강태서를 향한 학생들의 따뜻한 진심과 순수한 동경이 느껴지는 편지들이었다.
실제로도 강태서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복도에서 강태서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학생들을 하빈도 자주 보았다.
‘꼭 까만 독수리를 따라가는 귀여운 병아리들 느낌이었지.’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종을 헷갈린 거 아니냐? 그럼 쫓아가다 잡아먹힌다만?]
‘……참 훈훈한 광경이었어.’
하빈은 아헤자르의 지적은 듣는 체도 안 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녀석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태서는 누가 뭐래도 국내 원탑 랭커다. 국랭 1위, 한국의 자랑. 그 팬덤이 어디 가지 않았다.
‘강태서가 열심히 한 것도 있지.’
미성년자 때부터 온 힘을 다해 던전 공략 작전들에 참가해 온 그였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도움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강태서를 영웅으로 생각하곤 했다.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그 활약상을 익히 들으며 컸을 테고.
그러니 살아있는 영웅이 눈앞에 있는 셈.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여기에 있다. 하빈이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크으으, 강쌤, 5월 되면 스승의 날 때 선물 참 많이 받겠어!”
“…….”
강태서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서류만 확인했다. 아주 찰나,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5월까지 여기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전에 게이트를 열어 학교를 포함한 이 일대를 던전으로 집어삼키는 게 그들의 프로젝트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강태서는 이미 이 학교를 빠져나가고 없을 것이다. 울림국제고도 그날부로 지도상에서 사라지겠지.
“넌 학교 계속 다닐 건…… 아니, 계속 다닐 거야?”
그가 하빈에게 떠보듯이 물었다.
‘자퇴한다는 말을 달고 다니니까. 그만둘지도 몰라.’
아까도 까망이를 보며 자퇴하려는 마음을 누른다고 했던 현하빈이다. 학교 수업도 자주 빠지고 여기 오는 게, 학교를 진지하게 다닐 마음도 없어 보였다.
‘이왕이면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학교를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현하빈까지 던전에 휩쓸리는 건 곤란했다. 비단 현하빈뿐만이 아니다. 채남매나 피데스가 학교에 있을 때 게이트가 열리면 그것도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기에 에라타가 그 부분을 상당히 경계했다.
‘그 녀석들 없을 때 터뜨리는 걸로 해. 만에 하나, 피데스와 채남매가 힘을 합쳐서 기껏 열어버린 게이트가 공략되어 버리면 곤란하다고.’
강태서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현하빈, 채씨 남매, 피데스. 그들 모두가 학교에 없는 순간을 노리려면…….’
“태서야! 여기 봐봐!”
그때 하빈이 해맑은 목소리로 강태서를 불렀다. 강태서는 무심고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하빈이 까망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처럼 간식거리를 꺼내 주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까망이 옆에 새하얀 도마뱀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던 것이다.
-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