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이러다 들키겠어! (2)
번-쩍!
뒤뜰에 있는 모든 초목이 순간적으로 환하게 빛났다. 잠깐 뒤뜰에 번개가 친 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강렬한 효과였다.
‘이게 왜 이래?!’
놀란 하빈이 바로 손을 내린 덕분에 그 발광은 다행히 0.1초 정도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슉! 하고 일어난 일.
‘서, 설마 나 때문인가?’
하빈이 눈치를 살폈다. 스킬명도 안 외쳤고 실제로 손을 댄 것도 아니니 상당히 애매했다.
‘그래도 실제로 빛났던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으니까 금방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눈치 못 챈 거였으면 좋겠건만. 하빈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담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당연히 그럴 리는 없었다.
‘지금 뭐가 일어난 거야?’
‘번쩍하고 잠깐 환하지 않았어?’
‘뭐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학생들. 선생님도 당황한 표정으로 돌을 다시 체크하고 있었다.
“이게 왜 이러지? 잠깐 너 혹시 다시 손을 올려 볼래?”
“……!”
낭패였다. 쉽게 넘어가려고 대충 했던 거였는데 이대로면 제대로 다시 한번 하게 생겼다.
‘왜 정령 계열이 먹히는 건데!’
하빈은 당황한 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자신의 스탯창을 힐끔거렸다. 하빈의 끝없는 스탯 행렬에서 ‘정령 친화력’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스탯 없었는데…….’
다른 게 뛰어나면 정령 친화력도 영향을 받는 걸까? 하빈이 눈을 찌푸릴 때.
바로 그 순간, 하빈의 눈에 스탯창 맨 마지막, 가장 아래에 있는 작은 글씨가 들어왔다.
-더 상세한 스탯 목록은 관리자 모드에서 확인 가능.
깨알같이 적혀 있는 주의사항이었다.
“…….”
‘그럼 스탯창에 없는 스탯들도 더 존재한다는 의미 아냐? 얼마나?’
만약 그중에 정령 친화력 같은 스탯이 있었다면.
‘설마 그것도 21억은 아니겠지?’
스탯이 존재하더라도 비활성 상태니 2천으로 조정되어 적용되었겠지만 그것 또한 어마어마한 수치.
‘하…….’
그럼 얄짤 없이 지난번 마력 측정기 폭발 사건처럼 미친 수치로 측정되고 말 것이다. 그때는 폭발 났을 때 어찌저찌 둘러대었다지만, 이번에는 보는 눈도 너무 많고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현하빈 학생? 내 말 안 들려?”
선생님이 계속 재촉했다. 하빈은 일단 뒷걸음질을 쳤다.
“서, 선생님!”
“왜 그러지……?”
꿀꺽.
둘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 끝에 하빈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허억……. 선생님!”
“……?”
“저 무서워서 손 못 올리겠어요! 이거 위험한 거 아니죠?!”
‘엄살 작전으로 간다!’
하빈이 호들갑을 떨며 눈썹을 처연하게 내렸다. 누가 봐도 겁먹은 학생의 연기였다.
당황한 선생님이 현하빈을 달랬다.
“어, 저기……. 이건 위, 위험한 거 없으니 그냥 해도 되는데…….”
“역시 너무 무서워요! 방금 그건 뭐죠? 이 돌은 안전한 게 맞나요? 이 수업은 무엇을 위한 수업이었죠!? 제가 청강생이라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해서 겁이 많이 나네요!”
“…….”
보통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그쯤에서 정신이 아득해져 ‘그래……. 들어가 봐라…….’라며 포기했을 정도의 연기였다.
하지만 상대가 정령술 선생님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생활지도부장까지 맡고 있었던 베테랑. 학생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려 본 적 없는 경력자였다.
‘게다가, 방금 그 빛을 다시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잘못 본 건가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간 빛이었다. 하지만 정령술 선생은 잠깐 동안 그게 얼마나 넓은 지역을 빛냈는지 보았다.
‘그 정도면 이 학교에 있는 모든 정령을 깨우고도 남을 정도의 어마무시한 정령 친화력인데.’
만약 그게 오류가 아닌 진짜라면.
‘이 학생은 정령술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D반과 F반의 학생들만 모여 있다고 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를 발견했다.
‘정령술 스킬이 하나도 없다고 했었지.’
아직 정령 계열의 스킬을 습득하지 못해서 다들 모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때로 어떤 특별한 스탯 수치는 그쪽 직업을 얻는 순간에서야 스탯창에 제대로 표시된다.
‘만약 천재라면 꼭 열심히 가르쳐서 그 재능을 빛내 줘야 해!’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그녀의 의욕에 불을 지폈다. 선생님은 하빈의 결과를 다시 꼭 확인하고 싶었다.
“현하빈 학생, 이 돌은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하급 아이템이야. 전혀 피해 입을 일이 없어. 다시 천천히 손을 올려 봐.”
‘젠장.’
핀치에 몰린 하빈은 머리를 굴렸다.
‘하긴, 언제까지나 이런 측정을 피해 다니기만 할 수는 없어.’
그동안 하빈은 은잠술로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해 마력 측정기를 속였다. 처음에는 힘 조절을 잘못해서 A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감이 온다.
하지만 정령 친화력은 또 다른 부분이다. 기운이 새어나가는 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친화력’이기 때문이다.
정령들과 교감할 수 있는 체질. 소리를 더 잘 듣고, 시력이 더 좋은 것처럼 체질 자체가 좋은 걸 어떻게 바꾸겠는가? 그러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파훼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렇게 해볼까.’
그래도 엄살 스킬을 쓴 덕분에 하빈은 제대로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마침내 고민을 끝낸 하빈은 스킬을 썼다.
‘허무의 전염.’
<허무의 전염>
시스템의 판정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상대의 스탯 중 하나를 지목하여 무시합니다. (1일 2회 사용 가능)
<허무의 전염>
상대의 스탯 중 하나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스탯을 지정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