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98) (98/268)

098. 이러다 들키겠어! (1)

“창문 환기 좀 시키고! 반장? 여기 출석부 어딨어?”

정령술 선생의 잔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책상에 엎드려 있던 학생들이 주섬주섬 일어나자,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야외 수업이다. 다들 뒤뜰로 집합!”

“아이……. 귀찮은데.”

하빈은 쎄한 느낌에 얼굴을 찡그렸다. 괜히 이 수업을 들었다는 불길한 기분이 벌써부터 슬금슬금 밀려들고 있었다. 아헤자르가 물었다.

[이상하다. 어차피 야외로 불러낼 거면서 왜 불도 켜고 환기도 시킨 거냐?]

‘형광등 점검과 환기 확인하는 거, 그게 한국 교실의 국룰이라는 거다, 잘잘아. 이참에 알아두렴!’

“자자, 빨리 안 나가고 뭐 해?”

‘역시 탈주할까?’

꾸역꾸역 떠밀리듯 나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하빈은 탈주를 꿈꿨다. 지금이라도 복도 옆 계단으로 빠져나가 기숙사로 곧장 뛰면 완전범죄 가능!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하빈은 결국 나가지 않았다.

‘뭐, 책까지 빌려온 수고가 있는데 무슨 수업인지 들어나 보자.’

자신을 위해 도서관까지 함께 가준 서윤이의 성의가 있다. 게다가 옆을 보니 정작 서윤은 야외 수업으로 신이 난 것 같고.

각 반의 학생이 대충 열 명 내외로 적다 보니 중간에 땡땡이치기에도 정말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빈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 * *

“오늘 왜 야외 수업을 하자고 했는지 아나?”

마침내 뒤뜰로 학생들을 집합시킨 선생님이 호기롭게 입을 열었다. 하빈 옆에 있던 서윤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호, 혹시 오늘 정령을 소환하나요?!”

잔뜩 기대가 어린 표정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출석부를 넘겨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긴 F반이랑 D반만 모여 있는 반으로 아는데? 너희 수준으로 정령 소환을 어떻게 해? 여기서 누구 성좌나 정령이랑 계약 맺어본 사람?”

“…….”

정적.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물론 하빈은 이미 성좌가 있었지만, 그녀는 손을 들기는커녕 모른 척 뒤뜰이나 구경했다.

‘오? 뒤뜰 예쁘다.’

마침 잘 가꾸어진 뒤뜰에는 연초록색 잔디와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고등학교치고는 꽤 공을 들여 조성한 모양이었다. 하빈은 가장 큰 고목을 보며 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다음에 저기 해먹을 사서 걸어 둬야지. 땡땡이치고 누워 자기에 딱 좋겠어!’

아무도 대답이 없었기에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그래, 아무도 없지? 그러니 오늘은 정령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너희들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만 적당히 확인해 보고자 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간단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정령’이라고 하면 실제로 우리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소환체를 생각하지?”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손을 딱, 튕겼다. 그러자 스륵, 하고 허공에서 반투명한 녹빛의 정령이 나타났다.

“헉!”

“우와! 진짜 정령……!”

반짝이는 정령이 학생들 사이를 한 바퀴 휙 돌고 지나갔다. 정령이 지나간 곳마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그들을 스쳤다.

“고마워, 실피.”

선생의 인사를 받은 정령이 다시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선생이 말을 이었다.

“방금 본 모습이 우리가 흔히 아는 정령 소환이지. 하지만 이렇게 현신할 수 있는 정령 외에도, 정령의 속성을 가진 것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든 있어.”

말을 마친 선생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근처의 초목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

은은한 후광을 내뿜는 풀과 나무들. 그 모습을 보며 서윤이 놀란 표정을 했다.

“여기도 정령이 있다고요?”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정령’이 아냐. 그 전 단계지. 이게 바로 실체화되지 못한 정령들의 기운이다.”

‘실체화되지 못한 정령?’

‘그게 뭐지?’

학생들은 아직 감을 잡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걸 확인한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냥 직접 해보는 게 더 빠르겠어.”

그녀가 쓰윽,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돌을 꺼냈다.

[아이템 - 무늬숲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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