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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95) (95/268)

095. 이번 화를 위해 츄르 맛을 아신다는 분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자아!”

-게엥?

하빈이 내민 츄르에 까망이는 상당히 긴장했다.

-게, 게용…….(이걸로 뭘 어쩌란 말이냐?)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츄르 봉지를 노려보는 까망이. 그의 의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까망이는 생전 한 번도 츄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 게오옭…….(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거냐?)

까망이는 필사적인 눈길로 강태서를 바라보았지만 강태서는 언제나처럼 무심한 얼굴이었다.

-께옹!(도움 안 되는 인간!)

역시 저 멍청한 인간에게 물어본 게 잘못이다. 까망이는 괜히 강태서를 향해 냥냥펀치를 한 번 더 날렸다.

퍽퍽!

-겡! 겡겡!(역시 이 몸이 더 똑똑하다! 난관은 스스로 헤쳐 나간다!)

“음? 마음에 안 드나? 안 먹네?”

마침 뱉은 하빈의 말에 까망이는 힌트를 얻었다.

-게옹? 게옹?(먹는 거란 말이지?)

다행히 먹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그동안 까망이는 태서와 함께 지내면서 꽤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었다. 전부 테이블 위에 남겨진 프레첼, 사탕 같은 군것질류. 원래 그림자라서 살아가는 데 음식 섭취가 필요 없었지만 나름의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께에엥!(나는 달달한 거 좋다!)

그동안 먹었던 것들은 죄다 과자와 사탕 종류였던 까망이가 새침하게 고개를 까닥였다.

킁킁.

탐색하듯 냄새를 먼저 맡아보는 까망이.

-께엙!(이게 뭔 냄새냐!)

그동안 먹었던 과자류와는 전혀 다른 생소한 향에 까망이가 주춤했다.

“어어? 경계하나 봐.”

“츄르 싫어하는 고양이도 있구나?”

하빈과 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에 까망이는 속으로 화들짝 놀라 굳었다.

츄르 싫어하는 고양이라고 놀라다니!

그건 까망이에게 이렇게 해석되었다.

-게, 게엙!(고양이는 이걸 무조건 좋아해야 하나 보다!)

-게에오옹……!(좋아, 먹어주지!)

어차피 그림자라 식음은 가리지 않는다. 돌이라도 꼴깍 삼켜버릴 수 있는 게 그림자 괴물의 본성.

까망이는 조심스레 혀를 내밀어 챱챱 츄르 봉지의 잘려진 끝을 핥았다.

챱챱, 찹찹찹.

-……에옹?!(이 맛은?!)

츄르를 핥아먹던 까망이의 눈이 그 순간 놀란 듯 커졌다.

“어? 마음에 드나 봐!”

“오오, 진짜 잘 먹는다!”

찹찹찹.

생소했던 첫인상과 달리 짭조름한 츄르는 까망이의 입맛에도 꼭 맞았다. 더 이상 츄르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핥은 까망이 도도하게 휙 고개를 돌렸다.

-겡!(흠흠! 꽤 먹을 만한 걸 가져왔군, 인간!)

“하나 더 줄까?”

-게오옭!(굳이 더 준다면 받겠다!)

그 말에 귀를 쫑긋한 까망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탁탁 움직였다. 처음에는 뭔지 몰라서 긴장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하나쯤 더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기에에…….(하나가 아니라 두 개쯤…… 세 개, 아니 다섯 개라도 먹을 의향이 있긴 한데…….)

“안 돼. 이제 가야 해.”

그 순간 칼같이 떨어지는 태서의 한마디.

-께옭! 께옭!(왜? 난 더 먹고 싶다!)

까망이가 뒤늦게 처량한 표정으로 츄르를 구걸했지만 태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를 들어 올렸다.

-께앍! 께앍!(놔라! 이 멍청한 인간! 난 여기 있을 거다! 놔라!)

까망 괴물은 열심히 품 안에서 바동거렸지만 태서의 힘을 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 난 다음 수업 준비를 해야 해서.”

“아, 그렇지! 태서도 여기 교원이었지.”

-께엥! 게에엥!

여전히 강태서의 품을 박박 긁으며 시위하는 까망이를 보며 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까망이는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이 녀석은 원래 이래.”

-께엥! 께엥!(모함하지 마라, 인간! 당장 츄르나 더 내놔라!)

“안는 걸 싫어하는 고양이인가 보네. 태서가 집사 노릇 하느라 고생이 많구나.”

“…….”

“그럼 다음에 봐!”

끄덕.

짧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끝낸 태서가 곧장 몸을 돌렸다. 바동거리는 고양이와 흔들림 없는 태서의 뒷모습을 보며 하빈이 덧붙였다.

“까망아! 다음에 내가 또 츄르 줄게! 태서 너무 괴롭히지 마!”

-게에엥……!

* * *

쾅.

세게 닫힌 문과 함께 교사연구실에 도착한 강태서. 그는 곧장 주변의 소리와 염탐을 차단하는 아이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모두 칼리고의 집무실 그 이상으로 공을 들여 설치된 것이었다.

-게엥…….

교사연구실로 돌아온 까망이는 츄르가 못내 아쉬웠는지 심통 난 표정으로 휙 소파에 돌아누웠다.

-게엥, 겡겡!(이번만 봐 준다, 인간! 다음에는 츄르 얻는다!)

하지만 강태서는 그쪽에는 관심도 없는 듯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쌓일 대로 쌓인 부재중 연락을 보고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던 그는 어딘가에 연락을 했다.

-뚜르르. 달칵.

-그래, 태서 강! 연락 한번 받기가 참 힘들다, 그치?

발신자와 수신자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전화. 그 상대는 에라타였다. 1분 간격으로 들어와 있는 전화 목록을 흘긋 쳐다본 태서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조급하지?”

-걱정되잖아. 나름 우리가 공들여 준비한 최대의 프로젝트인데. 너 하나만 보냈다는 게 마음 쓰여서.

“쉴 틈 없이 전화를 거는 건 오히려 방해니까 그만해.”

-내가 도울 거 있어?

“없어.”

-아아, 그러지 말고. 너 혼자 보내고 나니까 계속 궁금해서 그래. 그쪽 상황은 어떤지, 피데스 반응은 어떤지 등등!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난 네 수하가 아니다. 일일이 보고할 의무도 없고. 중요 사항이 생기면 알아서 전달하도록 하지.”

-허. 정말? 진짜로 전달해 줄 거야?

“지금도 피데스랑 솔라리스 눈 피해서 게이트 발동 준비하느라 바빠.”

-호오? 꽤 열심이잖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에라타가 잠시 침묵했다.

-……어쨌든 너, 이번에 게이트 발동 못 하면 너부터 관리자 님한테 목 달아날 테니 각오해. 아무리 예쁨받는 너라도 그 책임은 피할 수 없겠지.

“그래. 나도 이참에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할 계획이다.”

-오……?

“그러니 너도 적당히 해라. 이 이상 더 방해하면 오히려 네 쪽이 피데스의 끄나풀이 아닌가 나도 의심스러워질 것 같거든.”

-하! 내가 왜 그놈이랑 손을 잡아? 서로 죽이려고 매일 벼르고 있는데!

“그러니 선을 지켜.”

뚝.

그걸로 강태서는 전화를 끊었다.

* * *

“개X끼. 또 지가 먼저 끊었어!”

에라타가 핸드폰을 탁, 내려놓으며 술잔을 들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여섯째?”

“저요? 제 생각 물으신 겁니까?”

“두 번 말 하게 하지 마.”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여섯 번째’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의 앞에 놓인 안주를 집어 들었다. 얇은 하몽 햄으로 감싼 메론 조각. 그걸 바로 베어 물기 전, ‘여섯 번째’가 느릿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뭐……. 강태서 그X끼가 인성이 별로긴 한데, 솔직히 여기 있는 저희 모두 인성 하난 다 터졌지 않나요?”

“하하학! 그것도 그래!”

덩달아 끼어 있던 ‘다섯 번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긴 전부 개X끼들밖에 없잖아? 안 그래?”

“개소리하지 말고.”

“이걸 어쩌나. 우린 개X끼라서 개소리밖에 못 해. 왈왈!”

“하.”

‘관리자님은 대체 뭐 이딴 놈들을 데리고 세상을 엎길 바라나?’

동료들의 상태가 영 별로다. 에라타는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빙빙 돌렸다.

‘강태서, 정말 본인 성과를 내보이려고 간 걸까?’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세 번째’가 물었다.

“근데 걔는 진짜로 고등학교에서 교사 하고 있대?”

“교사?”

“크으, 잠입하려고 애썼네.”

“와, 애X끼들 다루기 X나 힘들 텐데.”

히히덕거리는 조직원들 사이, 여섯 번째가 말했다.

“제가 들은 정보인데, 강태서가 사실 고등학교 시절을 못 보낸 아쉬움이 있나 봐요.”

“오?”

“맞아. 걔 SSS급으로 각성하면서 학교 그만뒀댔어.”

“그럼 그것 때문에 자원한 건가?”

“…….”

‘학교를 못 다닌 아쉬움이 있다고?’

에라타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의외네.”

‘뭔가에 대해 아쉬움 같은 거 가질 녀석으론 안 보였는데.’

하지만 그 마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누구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녀가 한때 그랬듯이 말이다.

‘지금은 미련 따위 하나도 없지만.’

잔을 홀짝인 에라타가 팔짱을 끼었다. 여전히 조직원들은 낄낄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봐, 근데 잘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소름 돋지 않냐?”

“뭐가?”

“우리 계획은 그 학교 학생들 다 죽이는 건데. 강태서는 학교에 미련 남아서 간다는 게.”

그 무엇보다도 모순되는 점이다.

“혹시라도 거기 학생들한테 정이 들면 어떡해? 걔 마음 약해지면?”

“그럴 리 없어.”

다섯 번째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선발된 과정을 잊었어? 그 녀석, 그냥 심심해서 학교에 발 담가보는 게 다일걸? 막상 계획 실행하면 눈 깜짝 안 하고 죽일 거야.”

“와, 잔인한 X끼네. 죽일 학생들한테 매일같이 친절한 교사인 척?”

“그걸 즐기는 거라니까.”

“호오, 놀 줄 아는 녀석인가?”

“내가 보기엔 ‘첫 번째’가 우리 중 제일 개X끼야. 낄낄.”

“그러니 ‘첫 번째’겠지!”

가만히 듣고 있던 에라타도 끼어들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가지고 싶었는데 못 가진 걸 보면 더 망가뜨리고 싶잖아?”

“자기소개하시나?”

“닥쳐.”

차갑게 쏘아붙인 에라타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술기운 때문에 쓸데없이 녀석들의 말에 휘둘려 안 해도 되는 말을 뱉은 기분이었다.

“뭐, 그래. 이번은 내버려 두자. 안 되면 강태서 그X끼가 알아서 다 책임질 테니까.”

질렸다는 듯 말을 뱉은 에라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다음날.

“미친 거 아니야?”

“으응?”

평화로운 기숙사의 아침. 하빈의 외마디 혼잣말에 서윤이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침에 날아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신입생 일부 필독 사항!]

-필수 전공과목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정정 기간에 재신청을 권고합니다.

-현하빈 학생은 재신청 대상자입니다.(필수과목 학점 이수 미달)

-자세한 재신청 방법은 학교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링크)

재신청?

재신청이라고?

교양만 신청한 게 교칙을 위반한 거였던 모양이다.

“아악! 왜 이 학교는 날 내버려 두지 않는 거야!”

하빈이 현실을 부정하는 듯 침대에 도로 돌아누웠다. 그동안 아늑한 기숙사에서 뒹굴거리며 놀던 행복했던 시간들은 이제 끝인 건가? 수업 안 듣고 드라마와 웹툰 보고 맛있는 것만 잔뜩 먹었던 해피 스쿨 라이프의 한계가 드디어 찾아온 것인가.

“어쩐지 그동안 너무 즐겁다 했어.”

하빈이 뚱한 표정으로 상세 안내를 확인했다. 다행히 전공과목을 많이 들을 필요는 없었다. 딱 하나만 기본으로 들으면 인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수업 신청 뭐 하지?”

‘마법 수업 들으면 가면마법사 놈이랑 마주치려나? 흠, 헌터 특강 수업을 신청하면 지세 언니의 특강을 가끔 들을 수 있을지도.’

하빈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걸 들었는지 옆에 있던 서윤이 물었다.

“언니, 그럼 내 수업이라도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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