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93) (93/268)

093. 게엥게엥 (1)

‘뭐야? 가면마법사 왜 저렇게 굳어있어?’

빛길 드립을 듣고 쩌적 얼어붙어 있는 피데스.

그 모습을 보며 하빈은 문득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어? 그러고 보니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가면마법사 놈을 만날 수 있잖아?”

지금은 수업 중인 피데스.

수업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이쪽 입구를 통해 나와야 할 테다.

그럼 도망갈 여지도 없이 현장 검거!

[기다릴 것이냐?]

“흐음…….”

잠깐 고민에 빠졌던 하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기다리기 귀찮아.”

수업은 이제 막 겨우 시작한 상황.

몇십 분의 수업을 겨우 그 이유를 위해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 같았기에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에 수업 땡땡이쳤을 때 심심하면 또 잡으러 오지 뭐.”

“뭐, 뭘 잡으러 와?”

“가면마법사.”

“왜 피데스 님을 잡으러 다니는데?”

예상하지 못한 발언을 들었다는 듯, 채지석이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빈이 대답했다.

“아까부터 저놈이 날 피해.”

“피데스 님이?”

“응.”

하빈이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피데스를 마주치는 건 귀찮은 일이지만, 저놈이 나를 피하는 건 두고 볼 수 없지!”

“……?”

‘청개구리 기질 어디 가나 했다.’

하빈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덧붙였다.

“아까부터 왜 날 피하는 거지?”

“기분 탓 아니야?”

“기분 탓인지 확인해 볼 거야! 아, 채씨, 혹시 저놈 독심술 써?”

“그런 능력은 없을 텐데…….”

“가면 홀라당 벗겨 버릴 거라고 한 말을 엿들었나?”

“……?”

왜 피했는지 대충 알 것 같은데.

“누구든 그런 기세로 노려보면서 다가오면 무섭지 않을까?”

‘아니, 그런데 피데스가 무서워하는 게 있다고? 그게 말이 되나?’

고개를 갸웃하던 채지석은 방금 하빈이 하던 말을 곱씹었다. 그러고 보니 현하빈은…….

가면을 홀라당 벗겨 버릴 거랬지.

“지, 진짜 가면 벗길 거야?”

사실 그동안 피데스의 가면을 벗겨보려는 시도는 한둘이 아니었다. 각 국가의 정보원들은 물론 거대 길드들마저도 피데스의 정체를 항상 궁금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피데스를 좋아하다 못해 집착하는 스토커 사생팬들도 피데스의 가면 한 번을 벗겨보고 싶어서 애를 썼다.

지금도 뮤튜브에 검색해 보면 피데스의 연설 도중 갑자기 괴한이 난입해서 피데스의 가면을 벗기려는 장면들이 속속 등장한다.

아니, 그뿐인가?

그의 가면을 향해 던져진 계란, 스킬, 폭발물들까지.

모두 가면을 벗겨보려는 테러 시도.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지.’

그 모든 시도들은 피데스의 가면을 벗기기는커녕 그에게 흠집 하나도 내지 못했다. 매번 피데스는 미동 없는 태연한 자세로 그 공격들을 대처했다.

괜히 월랭 1위가 아닌 것이다.

결국 그 누구도 벗겨보지 못한 피데스의 가면.

‘오죽하면 저 가면 자체가 얼굴이라느니, 저 가면이 본체라느니 하는 밈이 돌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런데 그 가면을 현하빈이 벗긴다고?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위의 사례들을 들어주면서 만류할 텐데, 하필 그 말을 한 사람이 현하빈이다.

‘현하빈은 할 수 있을……지도?’

그동안 언제나 상식을 벗어났던 그녀니까 말이다.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드디어 피데스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거냐며 눈을 반짝입니다!]

채지석의 성좌도 알아내지 못한 역대급 기밀.

‘나도 역시 궁금하긴 하지만.’

채지석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왜?”

“피데스 님한테 너무하잖아. 프라이버시인데.”

“흐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평소 개인정보를 소중히 생각하던 현하빈. 약관 동의도 ‘필수’만 체크하며 살아왔던 그녀가 솔깃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세를 몰아 채지석이 덧붙였다.

“그래, 다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 있는 법이라고.”

피데스의 정체에 대해서 여러 소문이 돌았지만 요즘은 이런 가설들도 힘을 얻고 있었다.

제목: 피데스가 얼굴을 숨기는 이유

너네 피데스 얼굴 너무 궁금해하지 마라.

내가 들은 정보인데 얼굴에 끔찍한 흉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함.

└ ㅋㅋㅋㅋㅋ이런 찌라시 믿는 호구 아직도 있냐

└ 드라마나 만화의 흔한 클리셰; 좀 참신한 가설 없음?

└ 루머 자제 좀. 진실은 피데스가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임.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

└ 솔직히 다들 존잘이라고 기대하니까 부담스러워서 얼굴 못 까는 거임ㅋㅋㅋ

└ 이게맞다

└ 어휴 얼굴 까서 다들 실망 한 번 해야 잠잠해질텐데 요즘 피데스 빠들 하는 짓이 도가 지나쳐서

└ 응 피데스 미만 잡 피데스는 얼굴 상관없이 이미 어나더클라스 아무도 못 비빔

└ 그래ㅋㅋ 왜 안나오나 했다

└ 피데스는 그냥 가면이 본체라는 게 정설

└ 혹시나 하고 들어왔는데 역시나 다들 헛소리만 적어놨네

시간 있으면 헌터 분석 전문 뮤튜버 넛지 채널 보고 와라 그분 공신력 있는 거 알지? (링크)

강력한 힘을 얻는 패널티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함.

└ 오 ㅁㅊ그럴듯하다

└ 어떤 스킬이나 성좌에겐 이해할 수 없는 패널티가 존재하긴 하지.

‘스킬이나 성좌에 대한 패널티라는 설.’

채지석도 이 가설을 알고 있었다.

간혹 너무 강력한 스킬이나 성좌에는 패널티가 붙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랭커는 궁극 스킬을 한 번 사용하는 대가로 1년 내내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패널티를 겪었다고 한다.

채지석의 경우 ‘찬란의 답습’에 평생 3회만 사용할 수 있다는 패널티가 붙어있고.

그러니 ‘피데스의 패널티는 얼굴을 감추는 것이다’라는 가설도 그럴듯하다.

만약 혹시라도 저 가설이 진짜라면.

겨우 얼굴 한 번 보려다 ‘피데스’라는 인류 최고의 패를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채지석은 현하빈을 더 만류해 보기로 했다.

“그래. 개인정보는 소중한 거니까 우리 좀 더 지켜주자.”

“흐음…….”

“자, 그럼 이제 우린 누나가 수업하는 거 보러 저쪽으로 가볼까?”

“엥……?”

“자자, 가보자!”

채지석은 다급히 화제를 돌리며 현하빈의 어깨를 붙잡고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덕분에 그들은 피데스의 교실을 뒤로한 채 채지세의 교실로 다시 향할 수 있었다. 하빈이 질질 붙잡혀 가며 변명처럼 덧붙였다.

“아니…… 채씨, 이렇게까지 조급할 필요 없어.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나 가면마법사 가면 벗기는 거 조금 미뤄 줄 거라니까?”

“미룬다고 했지 아예 안 한다고는 안 했잖아?!”

“앗, 채씨! 꽤 날카로운걸?”

“자, 어쨌든 여기가 누나 교실.”

도착이었다.

채지세가 수업하는 교실.

마침 수업은 한창 진행중이었다. 교실 너머 복도까지 채지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마법학교 학생들이니, 힐링 스킬만 가지고 있진 않죠? 전부 듀얼 클래스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은 마법사 클래스 중에서도 힐링 계열 스킬을 보조로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채지세는 그들을 위한 특강을 하고 있는 거였다.

‘크, 역시 언니. 강의까지 잘한다니까!’

프로페셔널한 제스처와 흠잡을 데 없는 발성, 학생들을 향한 따스한 미소까지.

완벽한 선생님이 따로 없다.

하빈이 감탄을 흘리며 교실 안을 흘끔댔다.

‘그냥 특강 한 번쯤 들어볼 걸 그랬나?’

마침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채지세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이번 기회에 제가 가진 힐러로서의 전략을 알려드릴게요.”

“헉, 채지세 님이…… 아아니, 채지세 쌤의 전략이라니!”

“그게 뭐예요?”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채지세는 그 반응을 즐기는 듯 눈웃음을 짓더니,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따라 하죠. 최고의 힐러는…….”

“최고의 힐러는!”

“아군이 공격받기 전에 적을 먼저 제거하는 겁니다!”

“아군이 공격받기 전에…… 네?”

“맞기 전에 상대를 다 죽여 버리면 다칠 일이 없잖아요?”

“…….”

“그게 바로 최고의 힐링!”

“……?”

예상하지 못한 발언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지석이 탄식과 함께 눈을 가렸다.

“왜 저기서도 저 말을 하고 있냐…….”

당황한 학생들을 둘러보며 채지세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농담이에요, 여러분.”

‘농담 아닐 거면서!’

채지석은 무엇보다 잘 알았다. 그의 누나는 그 신조로 적들을 일단 다 쓸어버리는 편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부상자를 기가 막히게 챙기는 순발력을 보여 그녀와 함께라면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마침 채지세가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방법이죠. 여러분은 듀얼 클래스니까요. 힐링 스킬이 메인이 아닌 이상, 힐링에 의존하기보다 결국은 공격을 제대로 먹게 하면서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먼저 무게를 두는 게 효율적입니다. 공격 과정에서 감당할 수 있는 대미지를 계산해서 극적인 순간에 힐링을 쓰는 효율도 상당히 중요하고요. 그러니 오늘은 보조 힐링 스킬을 적시에 쓸 수 있는 계산법.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다행히 뒷부분은 멀쩡하구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채씨. 우리 언니도 다 생각이 있었을 거라고!’

‘저게 생각이 있는 발언이었다는 게 나는 더 반전인데?’

한창 복도에서 잡담을 하던 그들.

그 순간,

살금, 살금.

무언가가 조용히 다가오는 소리에 그들이 휙 고개를 돌렸다.

“……!”

“뭐지?”

-게, 게에…….

그들의 시선 끝에 포착된 것은.

-게엥, 게엥.

묘한 울음소리를 내는 새까만 동물.

“……고양이?”

하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동물은 조그맣고 통통한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빈이 눈을 반짝였다.

“야옹아 이리 온! 우쭈쭈!”

-게, 게에엥!

그러나 까만 고양이는 오히려 하빈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겁에 질린 듯 바들바들 떨었다.

“어어?”

“야, 너한테 쫄았나 봐.”

“뭐?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얼마나 동물들한테 인기가 많은데?”

이래 봬도 마계에 갔을 때 크릭샤의 반려동물과도 잘 놀았던 하빈이었다.

‘머리 셋 달린 강아지. 귀여웠었는데.’

하빈만 보면 끼잉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말던 강아지.

‘켈베라고 애칭도 붙여줬다고!’

다음에 마계에 놀러 가면 개껌도 들고 가기로 약속한 참이었다. 어쨌든 하빈은 몸을 낮추고 고양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흐음, 이상하다. 어디서 본 느낌이 나는데?”

-게……엥!

그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고양이. 그러나 하빈은 오히려 의심이 갔는지 고양이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게다가 저 녀석, 우는 소리도 이상하지 않아?”

“어? 그렇네?”

채지석도 덩달아 눈썹을 치켜올렸다.

우는 소리도 이상하고, 덜덜 떨고 있는 고양이라니.

“혹시 어디 아픈가?”

“왜 게엥 하고 울지?”

그들이 고개를 갸웃대자, 까만 고양이는 눈치를 살살 보며 슬그머니 다시 입을 열었다.

-게에……오오옹!

“어?”

-게에옹! 게웨에옹!

보란 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왜옹대는 고양이. 하빈이 다행이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제 좀 고양이처럼 운다! 아깐 그냥 우리한테 겁먹었었나 봐.”

“그런가 보다.”

-게웨옹! 게옹!

그들의 결론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면서 마음껏 소리내는 고양이. 그 모습에 하빈이 슬쩍 고양이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때였다.

“……여기 있었네.”

그들을 향해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하빈과 지석은 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복도 끝에 강태서가 서 있었다.

“어? 태서?”

“……!”

하빈을 발견하고 잠깐 굳었던 그가 척척 고양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까만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 강태서를 향해 우다다 달려갔다.

-게엥! 게에……옹!(왜 이제 오냐, 인간!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태서랑 아는 고양이였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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