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현하빈과 마법사의 돌 (2)
“우리 딸, 입학 축하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 끝나면 전화해!”
마침 하빈이 덩그러니 서 있는 교문에서는 수많은 목소리가 섞여 들리고 있었다. 이제 막 입학하는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의 대화였다.
현하빈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눈에 띄니까.’
원래라면 채남매가 오려고 했었다. 채지세가 특히 오고 싶어했다.
‘하빈이 교복 입어? 교복 입지? 울림국제고 교복 진짜 멋지다던데! 유명한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고 뉴스까지 난 곳이잖아?’
‘하빈이 입은 거 보고 싶다! 가서 사진도 찍고! 학교 마치면 외식도 하고!’
‘누나,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야? 내가 입학할 때는 안 그랬으면서?’
‘그래 주길 원했냐?’
‘아니, 전혀! 어쨌든 누나가 가면 시선이 너무 끌릴 테니까 내가 하빈이랑 다녀올게!’
‘야, 너도 시선 끌리는 건 마찬가지거든!’
둘이서 계속 자기가 갈 거라고 싸우길래 하빈이 ‘둘 다 어그로 장난 아니게 끌릴 테니 안 와도 된다.’고 주장해서 둘 다 안 오게 되었지만.
그리고 또 오고 싶어 했던 건…….
현시우.
‘학교까지 데려다줄게.’
‘버스 타면 금방인데 뭐. 근데 차가 있었어?’
‘아…… 맞다!’
차 있냐는 말에 엄청 찔리는 표정을 짓던 현시우.
‘택시! 택시는 탈 수 있어.’
‘그럼 택시비 줘. 나 혼자 다녀올게.’
‘…….’
‘오빠 바쁘잖아. 그냥 입학식인데 뭐. 그리고 하루 만에 자퇴하고 올 수도 있는걸?’
‘진짜 자퇴할 거야? 교복도 샀는데?!’
‘연근마켓에 올리면 팔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대화를 하다가 늦어지는 바람에 현하빈은 아침밥 대신 식빵을 물고 나와야 했다.
“밥 대신 식빵을 물고 나오다니, 그것만큼은 꼭 클리셰의 정석 같은 첫 등교였어.”
정말 그것뿐이었다. 현하빈은 식빵을 물고 택시를 탔기 때문에 오는 길에 아무랑도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택시 아저씨의 질문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울림국제고로 가주세요.”
“아이고, 학생 울림국제고 학생이야? 교복 보니 맞네! 울림국제고 어때?”
“저도 오늘 처음 가봐서…….”
“오늘 입학하는구나? 가족들이 좋아하시겠네! 각성자라서 가는 거지? 요즘 각성만 하면 집안을 다 먹여 살린다던데! 학생은 어떤 각성자야? 울림국제고는 마법 계열 학생들이 들어간다는데 역시 마법 계열이지? 헌터 할 거야?”
“헌터는 안 할 거예요.”
“그럼 헌터 특례입학으로 대학 가려고 입학하는구나? 공부 열심히 해야겠어!”
껄껄 웃는 택시 아저씨에게 하빈이 고개를 저으며 야무지게 대답했다.
“아뇨, 저는 유급을 노리는데요?”
“허허. 입학식 날부터 그런 농담하면 못 써!”
그렇게 도착하게 된 현하빈. 홀로 있는 게 조금 쓸쓸해 보일 수 있지만.
[쓸쓸하긴 무슨! 내가 있는데!]
‘그래, 고맙다. 김잘잘 내겐 너밖에 없어!’
[크흠…….]
‘뭐 그래도 현시우랑 같이 안 오길 잘했어.’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현시우도 너무 눈에 띄어!’
예전 현하빈이 중학교에 다닐 때 현시우가 엄마 심부름으로 그녀가 깜빡 잊은 수행평가 준비물을 챙겨 준 적 있다.
그때부터 현시우랑 혈연관계란 소문이 난 이후 현하빈은 틈만 나면 주변에서 오빠 소개시켜달라는 염불을 들어야 했다.
‘네가 현시우 동생이라며!’
‘진심 존잘이더라.’
‘혹시 오빠 연락처 줄 수 있어?’
‘여친 있대?’
“…….”
‘아니 대체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서 굳이 현시우를?’
현하빈으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확실한 사실을 알았다.
현시우는 만만찮게 어그로가 끌리는 외모다.
적어도 밖에 나오면 주변 사람들 이목이 꽤 집중되는 외모가 맞는 듯했다.
‘시선이 조금이라도 몰리는 건 사양이라고!’
역시 같이 안 오길 잘한 것 같다.
‘자, 준비물은 대충 인벤토리 안에 던져 넣었고, 소중한 블루투스 이어폰이랑 태블릿, 폰이랑 혹시 모를 압수를 대비한 공기계까지 챙겼다! 완벽해!’
인벤토리를 점검한 하빈이 마침내 교문 안으로 당당하게 발을 들였다.
* * *
“흐음.”
“길드장님, 왜 그 서류를 그렇게 오래 보고 계시죠?”
서류를 한참 보고 있는 채지세를 향해 이준휘가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이 비서님 눈치는 백 단이라니까.’
“그냥 보는 겁니다.”
채지세가 눈을 돌리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이준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뇨, 제가 알기로 그 서류는 겸임교수 제의 서류인 걸로 아는데요. 원래 학교 같은 거, 투자할 때 빼고는 관심 없었잖습니까?”
“관심이 생길 수도…… 있지.”
“수많은 학교 중에서 굳이 울림국제고를 보고 있는 거 보면 빤히 답이 나오는데요?”
“무슨 답?”
“현하빈 따라가려고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이준휘는 살기 어린 표정으로 상사를 추궁했다.
“에이, 비서님도 참 정 없게 그러신다. 하빈이 학교인데 좀 더 고민해 볼 수도 있죠. 비서님 이번에 하빈이한테 킬스크린 기념품도 덥석 받았으면서?”
“…….”
그 말에 이 비서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도비 이즈 프리’ 티셔츠는 현하빈이 킬스크린 야시장에서 사준 것이었다.
‘이유는 ‘그냥 보니까 생각나서’였다나?’
선물을 챙겨주면서 ‘우리 언니랑 채씨 잘 부탁드려요, 비서님!’ 하고 인사하던 현하빈. 지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빈이가 그렇게까지 우릴 생각해 주다니, 정말 감동이었어.’
왜 하필 준 선물이 퇴사 독려 티셔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을 마친 채지세가 팔락, 하고 들고 있던 서류 종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곁에 있던 채지석이 슬금 종이를 확인했다. 이준휘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그리고 거기! 조용히 끼어드는 부길마님도 멈추세요. 두 분 다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진짜로 고등학교에 교사 하러 가시게요?”
“……가볼 때도 됐는데.”
“그러게 말이야.”
채남매는 천연덕스럽게 서로 등을 돌린 채 말을 보탰다. 채지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그동안 겸임교수 제의는 다 거절만 한 것 같아. 국가적으로 인재 양성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렇지.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얼마나 많은데!”
“밑밥 깔지 마시죠!”
이준휘는 필사적으로 둘의 계획을 저지하려고 애썼다.
“두 분 다 빠지면 저는 어떡하라고요!”
“일은 꼬박꼬박 서류 전송 드릴게요. 이번에 원격으로 했을 때도 꽤 합이 잘 맞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지만…….”
흔들리는 표정의 이준휘. 잠시 고민에 빠진 그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주장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두 분 안 계실 때는 결국 제가 솔라리스 대표로 얼굴 비춰야 되잖아요! 저한테 맡기는 거 안 불안하십니까?”
“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전혀 안 불안하다.”
“와, 비서님이라면 정말 믿을 수 있죠.”
“이분들이 진짜!”
“너무 걱정 마세요, 비서님. 저희 진짜 ‘겸임’으로 잠깐씩만 다녀올 예정이에요. 서류 확인해 보니 특강 편성만 가끔 맡으면 될 것 같고, 실질적으로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적을 것 같아요.”
채지세가 서류를 다시 집으며 설명을 이었다.
“안 그래도 교육부에서 요즘 조금씩 눈치를 주기도 하고요. 그동안 실력 있는 헌터들을 모시기 힘들다 보니 이론 위주로만 흘러가는 교육과정이 문제로 떠올랐거든요. 진짜 현장을 알고 있는 헌터들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생생한 강의가 필요하다나?”
“그거에 꼭 길드장님이 참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모범을 보이라는 의미겠죠.”
‘무려 채남매도 나서서 헌터 학교에 특강을 해준다’는 사실. 그건 전체적인 분위기와 문화를 조성하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그것도 있지만…… 만일 제가 학교에 특강을 가게 된다면 저도 제가 가진 지식이 조금이나마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진심을 다할 생각이에요.”
그동안 채지세는 헌터로서 중요한 노하우나 팁을 공략집이나 공식적 발표 형식으로 대중에게 전달했다. 볼 사람은 알아서 찾아볼 수 있도록.
일일이 들어오는 특강 요청을 다 받아내기에는 스케줄상 불가능하기에 선택한 차선이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강의를 꼭 해보고 싶었다니까요, 그렇지 지석아?”
“물론이지.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는 건 좋은 일이니까.”
“두 분 지금 합리화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준휘 비서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지만 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채지세가 신난 표정으로 서류에 도장을 쾅 찍었다.
“그럼 되는 걸로 해놓고 신청해 두자! 하빈이한테는 비밀로 하고. 깜짝 놀래켜 주는 거야.”
어떤 반응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걸.
지세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톡톡 건드렸다.
그 행동이 불러올 나비효과는 꿈에도 모른 채.
* * *
“이런, 국기에 대한 경례랑 훈화 말씀이 있다는 걸 잊었어. 입학식에는 쓸데없는 절차가 너무 많아!”
국기에 대한 경례!
빰빠바밤-
울려 퍼지는 익숙한 멜로디 사이로 하빈이 빼꼼 고개를 들었다.
“근데 나 몇 반이더라?”
[반도 확인 안 하고 오면 어떡하느냐!]
“귀찮은데 그냥 집에 갈까.”
벌써부터 1차 자퇴 위기에 봉착한 현하빈. 네아이바가 들었다면 본인 말이 맞았다며 폭소를 터뜨렸을 발언이었지만 아헤자르는 그걸 절대 넘기지 않았다.
[안 된다! 모름지기 학교, 학업은 그렇게 쉽게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무 가볍게 보지만 말고 이번 기회에 진중한 학생이 되어 볼 생각은 없느냐?]
“끄응, 일단 반부터 찾고 시작하자.”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학생들이 열을 맞추어 선 강당은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높은 천장은 물론, 바닥재까지도 신경을 쓴 티가 났다. 하빈은 톡톡, 하고 바닥에 발을 디뎌 보았다. 이건 평범한 목재 같아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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