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82) (82/268)

082. 편법 (便法)

합정역 참사.

그건 1회차에서 그들이 겪었던 수많은 사건 중 하나다.

-속보입니다. 오늘 갑작스레 발생한 게이트로 서울시 마포구 합정역 인근이 던전에 휘말렸습니다. 위험도 등급은 B급으로, 다행히 근방의 시민들은 대부분 대피를 하였으나 게이트의 중심이었던 울림국제마법고등학교 학생들은 한 사람도 빠져나오지 못해…… 여전히 학부모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오늘의 뉴스입니다. 합정역 게이트가 발생된 지 2일째, 그러나 던전 공략에는 여전히 진척이 없어…….

-투입된 헌터 35명 중 1명 생환. 그러나 생환자도 극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증언과 진술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속보입니다. B급인 줄 알았던 던전 위험도가 실제로는 SSS급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3일째입니다. 여전히 게이트 공략에는 진척이 없으며 국제적인 원조를 요청했으나 게이트의 등급이 너무 높아 지원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속보입니다! 방금 막 킬스크린에서 돌아온 헌터 현하빈이 급히 합정역으로 향한다는 소식입니다! 홀로 게이트에 진입할 예정이라고 하며……!

-게이트 진입 두 시간 만에 공략 완료.

-던전 공략 결과 이미 현하빈 외의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이었던 헌터들은 물론, 자라나는 학생들이 한 끝 차이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난리도 아니었었죠.’

현남매를 포함한 많은 고위 헌터들이 함께 분노했던 사건이다.

당시 국내 S급 이상 헌터들이 곧바로 나서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현하빈, 채남매, 강태서를 비롯해 한국의 명망 있는 헌터들은 킬스크린 공략에 참여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이끌었던 게 현하빈이었고.

당시의 모든 헌터들이 다 안타까워했던 대처였다. 특히 현하빈은 더 강하게 분노와 자책을 표했다.

‘내가 이틀, 아니 하루만 더 일찍 돌아왔어도! 다들 살았을 거란 말이야! 왜 연락하지 않았어?’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SPES 관리국을 추궁했다.

‘던전 안까지 통신이 터지게 하는 기술을 내가 왜 개발하자고 주장했는데? 바로 이런 순간 때문이었다고!’

던전 안에 통신이 터지도록 하는 기술.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채지세와 협업해서 개발 중인 특수 기술이었지만 당시에는 베타테스트 단계라 현하빈만 통신기를 지니고 갔었다. 그리고 SPES 관리국의 누구도 킬스크린에 있던 현하빈에게 합정역 참사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

‘킬스크린 공략이 더 중요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B급 게이트였으니까요.’

‘……하!’

합정역 게이트 최초 측정 등급은 B급. 대한민국과 SPES가 판단하기에 월드 랭킹 (실질적)1위의 현하빈은 엄청난 거물이었다. 겨우 B급 게이트로 오라 가라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겠지.

B급은 A급 헌터들로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등급이니.

게다가 현하빈은, 그 던전에 학생들이 갇혀 있다는 걸 알았다면 킬스크린이고 뭐고 만사 제치고 달려왔을 테니까.

어쩌다 열린 중급 던전보다 킬스크린 공략을 훨씬 인류에게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던 각국의 뒷배들과 윗사람들 입장에선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사람 목숨 몇백 명은 큰일도 아니었고, 초기 측정이 낮게 뜨는 바람에 어차피 잘 진압될 거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몇 번을 다시 해도 빤한 선택이었다. 후에 듣자 하니 정치계 쪽에서 SPES에 뇌물과 스파이를 심어 사사건건 압력도 넣은 모양이었지만 이건 나중에 밝혀진 일.

어쨌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 비록 다 지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하빈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이후로도 한참을 그걸로 앓았다.

‘……내 잘못이야. 내가 킬스크린 안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인터넷에 접속했으면 사태를 알았을 텐데.’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절대 그 기간에 킬스크린에 가지 않았을 거야. 혹여나 갔더라고 해도 수시로 바깥 상황을 확인했을 거고,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달려왔을 거고…… 아니, 이딴 가정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날 이후로 현하빈은 정말로 던전 안에도 폰을 꼭 챙겨갔다. 혹시라도 그런 사고가 또 발생하면 언제든 달려가기 위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습관이었다.

* * *

[……그런 일이 있었군?]

‘네.’

1회차 내내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들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가끔 모든 사건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현남매를 포함한 많은 랭커들이 트라우마를 느끼곤 했다.

이 사건 역시, 홀로 게이트를 공략하며 살리지 못한 학생들을 마주하는 심정이 어땠을지, 공략 이후에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느꼈던 그 마음이 어땠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후 현하빈은 던전 내 통신망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덕분에 이후로는 킬스크린에 진입한 후에도 외부에서 심각한 상황이 생기거나, 마이너 패치가 수를 쓰면 바로 달려가서 처리했었죠.’

뼈아픈 교훈을 남겼던 사건이다. 대신 절치부심한 현하빈은 더 빈틈없는 인터넷망과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세계 각국의 던전 정보와 사건사고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근데 그건 그때고, 지금은 쟤가 그걸 원하겠냐?]

“…….”

부스럭.

“뭐 해? 비켜. 오빠 지금 TV 가리고 있거든?”

“…….”

청소 끝냈답시고 소파에 철푸덕 누운 현하빈. 손에는 감자칩을 들고 와작 먹고 있었다. 네아이바가 그 모습을 보며 암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쟤가 이번 회차에서도 합정역 참사를 막고 싶어 하겠냐고.]

‘네. 당연하죠.’

현시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방탕하게 굴어도 1회차 현하빈과 지금의 현하빈은 동일 인물. 진심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쉬고 있어도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벌떡 일어나 달려가겠지.

‘게다가 요즘 하는 행보를 보세요. 킬스크린 50층까지 공략했다니까요? 얘가 만약 저희에게 비밀로 하고 헌터 활동을 하고 있는 거라면!’

[그런 거라면?]

‘나중에 저희보고 왜 진작 합정역 참사 때 자신을 부르지 않았냐고 역으로 화낼 수도?’

원래는 현시우 혼자 어떻게든 수습해 볼 계획을 세웠었다.

처음에는 합정역에 학교가 들어서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었다.

그러나 학교 설립은 한국의 국가적인 사업. 무국적자인 피데스의 영향력으로는 학교 설립을 저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너무 눈에 띄게 접근하는 것도 어려웠고.

그래서 결국 헌터학교가 그곳에 설립되고 말았다.

하지만, 만약 현하빈이 거기 학생으로 들어가 있는다면?

당시의 현하빈도 두 시간 만에 공략해 버렸던 합정역 던전이다.

‘지금이 더 강한 것 같으니, 현하빈이 있을 때 게이트 열린다면 초기 진압이 가능해질 테고.’

[그럼 학생들이 생존할 확률도 올라가겠군?]

‘그렇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정해졌다.

‘1회차 동생의 원을 풀어주면서, 놀고 있는 현하빈의 진심도 떠볼 수 있고. 참사도 막고.’

무엇보다 합정역 던전의 공략법은 회귀자인 현시우도 모른다. 현하빈 혼자 들어가서 두 시간 만에 공략했기 때문에.

무려 SSS급.

‘혹시라도 나랑 상성이 안 맞으면, 혹은 현하빈만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었다면.’

현시우는 그대로 개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던전.

‘그래도 막아보려 합니다. 전회차 하빈의 신념을 떠나 저 역시도 그때 막지 못한 게 무척 뼈아팠거든요. 이번엔 준비도 많이 했고……. 설마 제가 그걸로 죽겠어요?’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해도, 해야만 하는 일.

‘어차피 저도 원래 ‘피데스’로서 초빙 교원으로 학교에 들어가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열리는지는 기억하냐?]

‘당연하죠. 하지만 요즘은 워낙 1회차와 달라진 게 많아서 나비효과 때문인지 중요 게이트가 열리는 날짜도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미리 들어가 있으려고 했죠.’

계산을 마친 현시우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울림국제고 들어가는 건 어때? A급이면 프리패스로 들어갈 수 있어.”

“나이 상관없이?”

바사삭. 하고 감자칩을 베어 문 하빈이 물었다.

“헌터양성 목적의 특목고는 나이 상관없어. 아, 물론 고등학교 과정 이수를 아직 안 한 사람에 한해서만 받아.”

헌터특별고등학교들은 다른 고등학교와 결이 다르다. 공부를 잘해서 입학하는 것도 아니고, 예체능을 잘해서 입학하는 것도 아니다.

헌터로 각성한 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곳.

각성자로 각성한 학생들이 일반인 학생들과 함께 초중고를 다녔다간, 아직 도덕 관념을 완전히 배우지 못한 사춘기의 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각성자 학생과 비각성자 학생이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몸싸움이라도 했다간 누구 한 명 바로 죽어 나갈 테니까.

그래서 각성자 학생들은 따로 모아서 교육을 받도록 한 것이 시초였다.

“헌터 특목고들은 능력을 감시하고 제어해 줄 교원들이 많이들 있을 테니 그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지.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마련되어 있고, 또 각성자 조기 교육 역할도 하고. 겸사겸사지.”

어린 나이에 각성자로 각성한 소중한 인재에게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제공하기도 했다.

각성자의 성장 루트는 전투와 레벨업을 통해 강해지는 방법도 있었지만, 클래스에 따라 수련이나 스킬북을 통해 강해지는 방법들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그런 방면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서 미리부터 어린 각성자들을 육성하는 데 공을 들였다.

“으음, 이 나이 먹고 학교 생활이라니?”

“거기 급식 맛있대. 최고급.”

“음…….”

“어차피 법령 피하려고 들어간 거니까 수능 준비할 필요도 없고 출석도 대충하고 시험도 대충 칠 수 있고!”

“흐음? 뭐야, 오빠 그 학교랑 무슨 커넥션 있어?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

[예리하네?]

“그리고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내가 강제동원 싫다고 덥석 고딩 행세를 할 정도로 뻔뻔해 보였어?”

“…….”

‘역시 좀 무리수였나?’

현시우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생각해 보니 연수원도 싫어하는 현하빈이 학교를 순순히 갈 리가 없었다. 거기다 본인보다 한참 어린 고등학생들이랑 함께 학교생활은 힘들겠지.

“알겠어, 그냥 꺼내 본 말…….”

현시우가 한숨을 쉬며 대답할 때였다.

“그렇게 봤다면 잘 봤어!”

“엥?”

“난 양심 없음! 시험 안 봐도 되고 급식 잘 나오고 결석해도 되는 학교라면 환영이지! 오늘부터 고딩 행세 가능이야. 아, 응애임!”

“…….”

“역시 학적은 이용만 하는 거라니까, 이용만! 어딜 가도 학생 대우가 최고라고. 학생 할인도 있고, 학생이면 각성자라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고! 내가 왜 저런 생각을 못 했는지 몰라?”

신이 난 듯 감자칩을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린 현하빈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별로다 싶으면 바로 자퇴해야지!”

“…….”

“개꿀. 역시 뭐든 쉽게 반품 가능한 게 좋아. 그래서 말인데 저 홈쇼핑 채널 마저 봐야겠으니 오빠 좀 더 비켜 봐. 저건 7일 내로 언제든 환불이 된대! 일단 구매해야지!”

“…….”

현시우는 마지못해 게걸음으로 슥슥 옆으로 비켰다.

어째 잘 풀린 것 같은데…… 잘 풀린 거 맞겠지?

[현하빈, 첫날부터 학교 자퇴한다에 내가 오백 원 걸게.]

‘제발 쓸데없는 복선 좀 깔지 마시죠!’

* * *

다음날.

현시우는 말 나온 김에 학교 입학 준비물부터 사자고 쐐기를 박았다.

‘마음 바뀌기 전에 당장 밀어붙이자!’

“입학 수속은 내가 바로 밟아줄게. 넌 연수원 수료하고 얼마 안 가 입학식 있을 테니 교복 맞추고 준비물이나 사자.”

“……그런데 입학은 3월 아니야? 입학할 날짜 지났잖아?”

“국제고등학교라서 한국이랑 학기 체제가 좀 달라. 여긴 4월 입학이야.”

울림 국제마법고등학교.

줄여서 ‘울림국제고’라고 더 많이 불리는 학교.

“일단 거긴 분류상 마법학교니까 마법서 아이템을 좀 구매해야겠지?”

아이템 샵을 둘러보는 둘. 현시우가 막힘없이 척척 아이템을 골라 카트에 던져 넣었다.

[아이템 - 마법의 길(중급)

헌터고등학교 커리큘럼을 위해 국제 교과위원회에서 연구 끝에 대량으로 제작한 마법서입니다!

주로 헌터고등학교 기본 교과서로 자주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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