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Continue? (6)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정말 현하빈의 방에 굴러다니다가 발견된 것이냐며 궁금해합니다!]
[…….]
무슨 질문이 이 모양이냐?
아헤자르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처음 현하빈을 만났을 때…….
그냥 눈떠보니 현하빈 방이긴 했다. 아헤자르는 그냥 솔직하게 긍정했다.
[그래, 맞다.]
하빈이 ‘현시우가 가져다 놨다’고 이야기하는 걸 듣긴 했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그 이야기까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은 그걸 그대로 채지석에게 전달했다.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아헤자르도 하빈의 말에 동의했다고 답합니다!]
‘아니, 진짜란 말이야?’
진짜 현하빈이 아헤자르를 본인 방에서 처음 만났다고?
‘아헤자르 님까지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은데.’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자기가 듣기에도 거짓말 같진 않았다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갸우뚱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좌가 방구석에서 나오는 거냐?’
도대체 하빈의 집은……?
채지석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외국에서야 가끔 그런 일이 있기도 했다. 오래되고 낡은 저택 골동품 사이에서 성좌를 발견하는 경우.
하지만 그건 뉴스에도 나올 정도의 아주 희귀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현하빈의 집은 평범한 한국의 아파트로 알고 있는데.’
“그럼 대체 누가 거기 가져다 놓았다는 거야?”
채지석의 중얼거림에, 하빈이 태평하게 대답했다.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하나? 지금 내가 갖고 있으면 됐지!”
“…….”
그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코니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일단 본격적인 검집 제작과 관련된 질문으로 들어갑시다.”
코니가 얇고 부드러운 천을 꺼냈다. 그 위에 아헤자르를 살며시 올려놓은 그녀는 다시 한번 감탄을 내뱉었다. 조명 아래 드러난 검의 자잘한 디테일을 재확인한 코니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아무리 봐도 완벽하군요! 살면서 이런 검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정도의 검과 어울리는 검집이라니, 꼭 제작해 보고 싶어졌어요!”
창작욕으로 불타는 장인의 눈빛이었다. 의욕이 넘치는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우선, 검집에 대해 특별히 원하는 느낌이 있나요?”
“음…….”
질문을 받은 하빈이 생각에 잠겼다.
‘평범한 모습을 했던 건 검을 숨기려는 의도였지.’
그러나 막상 마왕성에서 아헤자르의 블랙 버전을 가지고 다녀 보니, 이렇게 멋진 검에게 매번 평범한 철검으로 위장하고 다니게 하는 게 좀 미안하긴 했다. 게다가 철검 형태가 너무 허접해 보여서 오히려 어그로가 끌렸기도 하고.
“무난하게 해주세요. 보는 사람 모두가 무심코 다 지나쳐 버릴 정도로.”
그러자 아헤자르가 발끈했다.
[뭐어? 그게 뭐가 그렇게 성의가 없느냐! 무난? 무난하게라니! 이게 무슨 점심 메뉴도 아니고 ‘무난’, ‘아무거나’ 같은 단어를 붙이는 건 용납할 수 없느니라! 무려 대륙제일검, 본인이 들어가 있는 검집인데!]
“……뽑았을 때는 아우라가 드러나겠지만, 적어도 꽂아 두었을 때는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함으로요.”
검을 검집에서 뽑았을 때만 진면목이 드러나고,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기 쉽도록.
그 말을 들은 코니의 표정이 묘해졌다. 잠깐 검의 사이즈를 가늠해 보던 그녀가 의견을 덧붙였다.
“무난하다라. 좋아요. 어느 시대든 지나고 보면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으니.”
후우.
깊게 고민에 빠진 듯 한숨을 쉰 코니가 잠깐의 침묵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딘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고급스러운 구석이 드러나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이런 검에게 멋진 검집을 주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아서 말이죠.”
[역시! 이 제작자가 보는 눈이 있는 모양이다!]
“흠……. 고급스럽게요?”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다 갈아 넣어 보고 싶은데……! 흠흠.”
여전히 반짝이는 코니의 눈빛.
“심플하고 무난한 것에도 다들 디테일의 차이가 있는 법이랍니다. 같은 무지 흰색 티셔츠라도 브랜드마다 핏과 색이 다르듯이.”
“으음…….”
‘너무 고급스러우면 또 어그로 끌리는 거 아니야?’
하빈이 고심하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그 기색을 눈치챈 코니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눈에 띌 걱정은 하지 말아요. 이번엔 이 재료를 써볼 생각이니까.”
드르륵.
코니가 옆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극세사 천을 쥔 그녀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부드러운 우윳빛 조각.
거기에는 희미하게 무지갯빛 광채가 돌고 있었다.
“킬스크린 25층에서 구할 수 있는 스페키 진주조개의 자개예요.”
채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스페키 진주조개요? 구하기 힘든 재료인데……. 그리고 진주가 아닌, 자개를 쓴다고요?”
“맞아요. 사실 사람들은 스페키 진주조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요, 특히 자개 부분이 가진 대단한 점을 말이죠.”
스페키 진주조개.
사람보다도 더 큰 몬스터 조개를 지칭하는 것으로, 25층 던전, ‘망각의 바다’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재료였다.
“보통은 조개 안의 진주만 챙기지만, 나는 자개에 주목했어요.”
스페키 진주조개에서 나는 진주는 무척 강력한 마력을 품은 데다 웬만한 공격을 다 이겨낼 정도로 단단하다는 특성까지 가지고 있어서 무기의 제작재료로 엄청난 각광을 받았다. 수량도 적어서 부르는 게 값일 정도.
하지만…….
“이건 진주가 아닌 조개껍데기의 자개인데요.”
채지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진주는 단단하다고 정평이 나 있지만, 정작 그 조개껍데기는 그 정도의 강도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코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껍데기만 떼어놓고 보면 평범한 강도입니다. 하지만…….”
우윳빛 조각을 불빛 아래에 비춘 코니가 말을 이었다.
“정작 스페키 진주조개와 전투를 할 때는 껍데기도 단단하지 않던가요?”
“……그렇네요? 생각해 보니 전투 중에는 껍데기도 강력했던 것 같아요.”
스페키 진주조개는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단단한 껍데기는 물론 뛰어난 은신술과 입을 벌리면 뿜어져 나오는 파괴적인 광선까지.
“살아 있을 때는 강력하지만, 막상 잡고 나면 껍데기가 약해진다는 특징이 있는데. 죽으면 껍데기의 위력이 사라진다는 게 그동안의 정설이었죠.”
조개가 살아 있을 때만 단단한 껍데기.
그게 ‘스페키 조개’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
“……그러나. 만약 그게 아니라면?”
코니가 신이 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온 얼굴에 생기가 도는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을 소개하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스페키 조개의 껍데기를 연구한 끝에, 껍데기가 가진 중요한 효과를 발견했죠!”
“중요한 효과요?”
“스페키 조개껍데기는, 안에 강력한 아이템을 머금고 있으면 자신도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
채지석이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강력한 것을 품고 있으면 그에 비례해 위력을 발휘한다라.
살아 있는 동안에는 스페키 진주를 품고 있어서 껍데기도 단단했던 것이다. 죽은 후에는 헌터들이 진주를 분리해 버려서 껍데기가 약해진 것이고.
“즉, 이 껍데기들은 강력한 아이템을 감싸고 있으면,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하죠. 그만한 강도를요.”
“검집을 만들기에 최적이군요……! 특히 검이 강력할수록 더더욱.”
채지석이 감탄을 흘렸다. 만약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스페키 조개의 껍데기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저희한테 알려 주셔도 됩니까?”
채지석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스페키 조개의 비밀이라니, 이걸 코니가 맨 처음 알아낸 것도 그렇고 그 가치도 그렇고, 컨티뉴의 일급 영업비밀이나 다름없는 정보.
“그럴 가치가 있는 손님에게만 공개하는 거지요.”
코니가 미소를 지으며 쉿, 하는 동작으로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믿을 만한, 재능 있는 고객들에게만. 어차피 이런 부분을 감수하지 않으면 제작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요.”
말을 마친 코니가 하빈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가씨는 검집째로 공격을 할 때도 있겠죠? 검을 뽑지 않고서도요.”
“음, 죽이지 않으려면 그게 더 안전하긴 하죠. 지금까지 검집이 아헤자르의 힘을 버텨줄지가 걱정이긴 했지만요.”
‘하지만 스페키 조개껍데기는 품고 있는 아이템의 위력에 따라 달라지니까…….’
아헤자르의 무지막지한 힘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게다가 그 효과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스페키 조개는 은신술에 능한 몬스터예요. 그래서 껍데기에도 그 효과가 어느 정도 남아 있답니다.”
“은신술?”
그 물음과 함께 자개 위로 작은 상태창이 떠올랐다.
[인식 편광(認識 偏光)]
포식자와 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려던 스페키 조개의 특성.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미처 못 보고 지나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