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Continue? (4)
컨티뉴의 대표, 공방의 책임 제작자.
세계 최고의 제작계 헌터 중 한 명.
코니.
정확히 말하면 코니는 그녀의 이름, ‘콘스탄스’의 애칭이다. 성씨는 불명.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언젠가 어렵게 잡은 인터뷰에서 ‘그냥 친근하게 코니라고 불러주세요.’ 했던 것만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코니라고 불렀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여유가 될까요?”
첫인상은 인자한 할머니 같았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꼿꼿한 자세와 카리스마 있는 눈빛이 노익장(老益壯)이 따로 없었다.
코니의 손짓에 따라 주변 셀러들이 재빠르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온실 속에서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테이블보와 티 세트가 차려지는 데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침 자리에 앉은 코니가 채지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솔라리스의 마스터들을 정말 만나보고 싶었는데, 오늘 채지석 씨가 방문 중이라 들어서 한달음에 달려왔지요.”
채지석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저를 만나러 일부러 오신 건가요? 말씀 주시면 기꺼이 저희 측에서 일정 맞춰 찾아왔을 텐데요. 아, 저 예전에도 방문했었는데 그때 말씀 주셨어도…….”
“그때는 저도, 채지석 씨도 바빠서 도무지 서로 만날 틈이 안 나 보여서 말이지요.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을 방해하는 건 내 취미가 아니라서.”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한국어에서는 내 말이 존칭으로 번역되고 있나 보군요.”
코니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톡톡, 자신의 귀걸이를 두드렸다. 아마 그쪽에 통역 아이템을 착용한 모양이었다.
통역 아이템은 게이트 사태 초창기엔 아주 귀한 물건이었지만, 제작 방법이 상당히 많이 퍼져 대량생산이 시작된 요즘은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도 마음먹으면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이었다. 조금 비싼 블루투스 이어폰 취급 정도?
“저는 그저 평소처럼 편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바꾸는 게 더 불편하겠어요. 그리고 저도 웬만하면 상대를 존중하는 뉘앙스를 좋아해서, 이해 부탁하지요.”
“그럼요, 물론입니다. 저도 코니 님이 편하신 쪽이 좋습니다.”
이후로는 채지석과 코니 사이에 다소 비즈니스적인 대화가 오갔다.
대충 정리하자면, 그동안 솔라리스 측에서 컨티뉴의 재료들을 많이 구매해 주어서 고맙다는 내용, 그리고 솔라리스 측에서는 좋은 제품을 항상 준비해 주어 언제나 믿고 맡긴다는 내용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비즈니스 대화에, 구석에 있던 하빈은 깜빡 졸음이 왔다.
“……쿨.”
꾸벅꾸벅.
꼬르륵 숙여지는 머리.
턱.
“현하빈, 자?”
“헛! 아, 아니!”
갑자기 이마를 받치는 따뜻한 촉감에 하빈이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아니긴 무슨? 너 방금 목 꺾일 뻔했는데.”
“아, 아니라고! 다 듣고 있었거든……? 그저 깊게…… 생각에 잠긴 거지.”
그녀가 재빨리 변명했지만, 채지석은 전혀 믿어 주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마를 받쳤던 손가락을 뗀 채지석이 다시 코니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얘가 어제 일정이 상당히 고단했거든요. 새벽까지 잠을 못 자서. 물론 회복 포션은 있었지만 심적 소모가 있었을 겁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열심이라니까. 어제도 역시 바쁜 일정이 있었군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감탄하는 코니.
“네…….”
‘다 노는 일정이었지만…….’
양심이 찔린 채지석은 뒷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킬스크린 야시장을 다 쏘다녔던 현하빈. 불꽃놀이까지 알차게 보고 새벽엔 드라마 달리겠다고 했던 현하빈.
‘격렬하게 놀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체력이 좋은 것과 잠을 자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니까 말이다. 저번에 그도 이준휘 비서랑 140시간 넘게 잠 안 자고 포션으로만 축내고 일을 한 적 있었지만 체력적으론 문제가 없어도 관성적으로 잠을 자고 싶은 기분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쪽 아가씨는?”
코니가 마침내 비즈니스 토크를 다 끝낸 듯 하빈에게 관심을 가졌다. 채지석이 말을 받았다.
“아, 사실 오늘 방문은 제가 아니라 이 친구가 하자고 해서 따라온 거였거든요.”
“호오.”
코니가 눈을 빛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솔라리스 부길드마스터가 어쩐 일로 우리 샵을 오래 둘러보나 싶었는데, 아가씨 덕이었군요. 이름이?”
“현하빈입니다.”
하빈이 대답했다. 그녀가 재빠르게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정말 졸지 않았어요!”
“……일단 입가의 침부터 닦고 말하자.”
채지석이 재빠르게 속삭였다. 하빈이 태연한 동작으로 냅킨을 집어 들어 입가를 슥 닦았다.
“흠흠, 과자 부스러기가 묻었나?”
딴청을 피운 하빈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여기 정말 멋진 것 같아요! 멋진 광경을 많이 봐서 즐거웠어요. 보석관은 물론이고, 온실은…… 안 왔으면 후회했을 것 같네요.”
“언제 들어도 즐거운 칭찬이군요.”
환한 미소를 지은 코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셀러분들에게 듣자 하니, 검집을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지금 가지고 있는 그 검인가요?”
“……!”
‘왜 저런 얼굴을?’
채지석은 흠칫했다. 평범한 질문인 것 같았지만, 그 물음을 던진 코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맞다면, 좀 더 안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전용 제작실이요.”
“코니님 전용 제작실이면…… 원래 쉽게 공개하지 않는 곳이라 들었는데요?”
“VIP들을 위한 특권이라 치죠.”
“……저는 VIP가 아닌데요.”
하빈이 끼어들었다. 코니가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부터 VIP 명단에 등록해 드리죠. 제 질문에 몇 가지 답만 해주신다면요.”
* * *
코니의 전용 제작실.
노란 불빛이 은은하게 밝히고 있는 방은 목재와 고벽돌로 꾸며진 아늑한 곳이었다. 수많은 설계도와 제작 비법서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모두 기밀문서지만, 오늘 손님들은 비밀을 잘 지켜주시는 분들이라 믿죠.”
“저, 사실 전 봐도 잘 모릅니다. 제작계 계열이 아니라서.”
채지석이 안심하라는 듯 덧붙였다. 코니는 아무도 뒤따라오지 않도록 셀러들을 물렸기 때문에 방 안에는 그들 세 명만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 안의 방음 상태를 점검한 코니가 입을 열었다.
“나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손님의 재량에 달린 거지만, 어차피 살날 얼마 안 남은 노인네인지라 입 하나는 무겁답니다.”
그녀는 꽤 단호하고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님과의 의리를 목숨보다 더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주문제작 전문.
그것도 최상위 헌터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작 아이템들이 주문의 대부분이라, 모든 주문 하나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각 길드, 혹은 국가적인 기밀과 관련된 의뢰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기밀 유지에는 도가 텄죠. 저는 단 한 번도 고객의 비밀을 유출한 적 없습니다.”
채지석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절대 범죄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적도 없으시죠. 그쪽 의뢰는 처음부터 받질 않으신다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입니다. 말했다시피 얼마 살날도 없는 제가 지킬 건 신념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래도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죠!”
하빈이 끼어들었다. 그 말에 코니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코니가 인자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하빈을 돌아보았다.
“그럼, 손님의 검을 왜 위장하고 다니는지부터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
[……!]
“네?”
채지석이 당황한 탄식을 흘렸다.
‘대체 어떻게?’
하빈의 스킬, ‘기만자의 소망’은 꽤나 위력이 대단했다. 무려 암살자 클래스 랭커인 채지석의 스킬로도 간파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자신조차도 간파가 어려운 스킬은 처음이었다며 탄식합니다!]
‘성좌로서도 어려울 정도인가? 그것도 예지 능력과 관련된 성좌인데?’
그런데 코니는, 한눈에 하빈의 검이 스킬로 위장되어 있다는 걸 간파하다니.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하빈이 물었다.
“일반적으로 전투에 쓰는 검 치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 조잡한 구석이 보였으니까요. 평범해 보이지만 디테일이 어설픕니다. 이런 검이면 제작 단계에서 불량품으로 버려지거나 아예 장식품이나 소품으로 쓸 용도가 맞는데, A급이나 되는 각성자가 오히려 애지중지 가지고 다닌다는 말은, 실제로 전투에 사용하거나 아끼는 검이라는 뜻이죠.”
“…….”
코니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비밀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던진 물음입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일부러 평범한 척 눈을 가렸거나.”
‘역시 일류 제작계 헌터의 눈은 다르다는 건가.’
채지석이 심각하게 수긍하고 있을 때, 하빈은 끄응 한숨을 쉬었다.
‘젠장. 내가 너무 안일했어.’
너무 허접한 무기로 골랐나 보다. 좀 더 꼼꼼히 알아보고 고를걸.
‘아니면, 오히려 적당히 있어 보이는 무기를 카피했어야 그럴듯했을지도?’
[그러게 내가 이 모습은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흐음 역시 야구 배트로 바꿨어야 했나.’
[뭣이라?!]
‘그럼 아무도 의심조차 못 했을 텐데!’
[……이잇!]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잘잘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공개하는 게 좋겠지.’
어차피 검집을 만들려면 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봐야 할 것 아닌가?
아헤자르의 생김새는 너무 값나가게 생기면 주변에서 쓸데없이 어그로가 끌릴까 봐 평범하게 위장한 것이었으니.
채지석의 반응도 그렇고, 하빈이 직접 본 코니의 이미지도 꽤 믿을 만한 기분이 들었다. 인자하게 웃을 때는 어쩐지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네.’
아헤자르가 가진 결정적인 비밀은 강력한 성좌라는 것뿐이다.
‘잘잘아, 너만 조용히 하면 돼. 할 수 있지? 우리 김잘잘 할 수 있다!’
[너무 작위적으로 격려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럼 오랜만에 마리아나 해구를 생각해 보자! 할 수 있다, 김잘잘!’
아헤자르가 조용히 입만 다물어 준다면 성좌라는 걸 들키지 않고, 그냥 ‘아주 좋은 검’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
스르륵.
생각을 마친 하빈이 ‘기만자의 소망’을 해제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하얀 검. 그 주변에 빙하처럼 시린 푸른 기운까지.
그 광경을 본 코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템을 봤지만 이건…… 정말 완벽하다 못해 경이로운 명검이군요!”
[크흠. 바로 앞에서 저렇게 평을 하다니 남사스럽구만.]
“어디서 구하신 검인가요? 아, 곤란하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음…….”
하빈은 문득 아헤자르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현시우가 하빈의 방에 갖다 놨던 것.
‘그렇다고 여기서 현시우 이야기를 꺼내기도 뭐한데?’
고민 끝에 하빈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말할 수 있는 사실만을 정확히!
“저희 집 방구석에 굴러다니던데요.”
“……?”
“……?”
방 안에 싸한 침묵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