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Pin&Skewer (1)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믿을 수 없어합니다!]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승부 조작을 의심하며 삿대질합니다!]
광분하고 있는 성좌, ‘가장 가까운 빛’.
‘승부 조작?’
채지석이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방법을 썼다면 몰라도, 예지 능력을 썼는데 4등이 한계라니?
“나는 괜찮은데? 원래 바라는 건 얻었으니 됐어.”
반면 하빈은 쿨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4등 상품 중에 있는 ‘별의 조각’을 가리켰다.
“저는 저걸로 주세요.”
“네? 네, 넵.”
점원이 재빠르게 별의 조각을 포장해서 하빈에게 건넸다. 포장된 상품을 확인한 그녀가 채지석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용건도 끝났으니 빨리 다른 데도 둘러보자고! 시간이 없으니까!”
“그걸로 괜찮겠어?”
"어차피 재미로 한 건데 뭐. 산 복권도 다 썼고."
하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복권 36장을 구매한 걸로는 그녀의 잔고에 티도 안 난다.
“나는 지나간 일엔 미련을 두지 않지. 앞으로 올 미래가 너무 중요하거든! 야시장 닫기 전에 먹어야 할 리스트가 산더미야! 우리 아직 기념품도 안 산 거 알아?”
재빠르게 인파 속으로 채지석을 끌고 가는 현하빈.
“소, 손님. 잠깐만요!”
이미 사라져 버린 둘의 모습을 보며 카지노에 남아 있는 점원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 손님, 정체가 뭐야!’
꿀꺽, 침을 삼킨 점원은 숫자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저 사람, 36장으로 1등을 10번이나 했어!’
게다가 2등은 12번, 3등은 14번을 했다.
카지노 측에서 숫자 조작만 안 했다면 분명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었다.
‘숫자 조작을 하는 바람에 저 손님이 5등과 4등만 하고 돌아가야 했지만.’
그랬다. 사실 하빈이 산 복권은 카지노에서 자체적으로 조작을 하고 있었다. 1등 당첨자의 비율은 물론, 그 아래 등수 비율까지도.
그건 카지노 복권이 특수한 용지였기 때문이다.
용지에 숫자를 적으면 그걸 인식해서 몇 등인지 미리 알아보고, 전광판에 띄울 숫자를 한 번 더 조작하는 방식.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그가 알기로 카지노 역사상 이렇게 많은 당첨을 낸 사람은 없었다.
“억세게 운이 좋지 않고서야…… 설마 행운 스탯인가?”
하지만 말이 안 되었다. 그동안 행운 스탯을 찍은 헌터들도 그걸 자랑하며 복권을 사 갔지만, 실질적으로 행운 스탯은 복권에 미미한 영향밖에 끼치지 않았다. 행운 스탯은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발동할 뿐 일상적인 영역에서는 매우 낮은 비율로 반영되었으니까.
그럼 답은 하나뿐.
‘예지 능력?’
마지막 선택지를 떠올린 점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가 다급한 표정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보, 보스!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제가 예지 능력자를 발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예지 능력자?”
소파에 깊게 몸을 묻고 있던 여자.
새빨간 컬이 들어간 단발머리의 그녀는 나른하게 처진 눈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눈꼬리 아래엔 눈물점이 포인트처럼 찍힌 얼굴. 그녀가 다시 수화기에 대고 신경질적인 어투로 물었다.
“지금 농담해? 예지 능력자가 왜 거기 나타나?”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시 복권 판매대를 담당하던 녀석의 말로는 그 여자가 복권 1등을 연달아 했다던데요.
“1등을 연달아?”
-정확히 말하면 1등 10번, 2등 12번, 3등 14번이요. 1등에서 3등만 주구장창 했습니다! 36게임에서요.
“흐응, 그건 대단한걸.”
흥미롭다는 듯 여자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녀는 손에 들린 잔을 휘휘 돌리며 물었다.
“목격자가 술에 취해 헛소리했던 건 아니고? 진짜란 말이지?”
-거짓말을 하는 놈은 아닙니다.
“예지가 아닌 다른 능력을 사용했을 리는 없고?”
-그것까진 확인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능력은 전혀 추측되지 않았습니다.
탁.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잡아야지, 왜 안 잡고 전화질이야?”
-곧 뒤따라갔는데, 추적을 따돌리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실력자인가 보군.”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읊조렸다. 하빈이 방문했던 킬스크린의 카지노. 그곳은 사실 그녀의 조직이 운영하는 곳.
마이너 패치.
전화를 받은 여자의 정체는 바로, ‘마이너 패치’의 보스.
‘에라타’였다.
“……이래 봬도 ‘마이너 패치’의 조직원들인데 그 여자 하나를 못 잡았다니.”
에라타가 조소를 흘렸다.
마이너 패치의 산하 카지노. 악명 높은 범죄조직답게 그곳에서 일하는 딜러는 물론, 복권 판매 점원조차 꽤 실력 있는 헌터들로 추려놓았다.
그런데 그걸 다 따돌렸다라. 도망친 여자가 실력자거나, 카지노에 상주한 인원이 형편없다거나. 둘 중 하나겠지.
‘군기가 빠졌군. 언제 한 번 들러야겠어.’
애초에 카지노는 곁다리 사업이라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방심한 사이에 허를 찔린 기분이다. 에라타가 씁쓸한 목소리를 감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건 일단 넘어가더라도……. 어쨌든 너희 말로는 예지 능력자가 어린 여자애라는 건데. 남자일 가능성은 없어? 피데스랑 비슷한 점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유명한 헌터도 아닌 모양입니다.
피데스 쪽이 아니라고?
“그럼 얼굴은? 혹시 여자라면…… 채지세처럼 생겼다거나? 채지세가 변장하고 갔을 가능성은?”
-채지세와 닮지도 않았고, 그 시각엔 채지세와 피데스 모두 회의에 참석해 있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하?”
에라타가 헛숨을 뱉었다. 그동안 에라타는 예지 능력자에 대해 나름의 추측을 한 상태였다.
‘피데스나 채지세가 수상해.’라고.
미래를 알기라도 하는 듯 척척 계획을 수립해 나가며 사람들을 이끄는 피데스와, 손대는 것마다 대박을 내는 솔라리스의 황금손 채지세. 만약 예지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적어도 이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인물이 또 나타났다?
‘이게 무슨…….’
에라타는 눈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시스템 관리자가 그녀에게 넘겨준 정보에 따르면 예지 능력은 많아봤자 전 세계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한 위험한 능력. 그러니 능력자가 이렇게 널려 있을 리는 없는데.
‘그럼 반대로, 피데스와 채지세가 예지 능력자가 아닐지도 모르지.’
그 둘 뒤에 있는 진짜 배후의 누군가가 있다면? 둘에게 예지 능력으로 정보를 알려주는 진짜 예언가가 둘의 배후라면?
“아니, 그렇다 해도 왜 갑자기 그 인물이 복권을 사러 오겠어?”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가 뭐하러 최고 상금 10억 정도밖에 안 되는 길거리 싸구려 복권을 사냔 말이야?’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에라타가 재차 물었다.
“카지노에 CCTV 설치되어 있을 텐데. 얼굴은?”
-애초에 복권을 카지노 안에서 산 게 아니라, 입구의 가판대에서 산 거라 방범용 보조 카메라에 찍힌 얼굴이 다입니다. 저화질이에요.
“결제 내역은 있을 거 아냐?”
-현금 결제였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한화로 계산했어요. 한국인인가 봅니다.
“한국인?”
-네. 언어도 한국어 같았습니다.
“흠, 그럼 사진 전송해봐.”
띠리링.
에라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으로 재깍 CCTV 촬영 캡쳐본이 도착했다.
지직거리는 노이즈 안에 담긴 작고 가녀린 여자애.
에라타는 그 모습을 잠시 내려보다가, 그녀의 근처에 있는 인물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봐, 태서. 너도 한국인이지? 혹시 이 여자 알아?”
“몰라.”
차갑게 떨어지는 대답.
“아, 보기나 하고 대답해. 하여튼 성격 더럽다니까. 이 여자, 예지 능력자 같은데 한국인이래.”
억지로 화면을 강태서의 시야에 갖다 대는 에라타.
“……!”
“아는 사람이야?”
우연히 화면을 확인한 강태서가 현하빈의 얼굴을 확인하고 흠칫 얼굴을 굳혔다.
* * *
“예쁜 쓰레기! 이건 태서 줘야지.”
한편, 다시 야시장. 별의 조각을 인벤토리에 넣은 하빈이 흠흠 콧노래를 불렀다.
“태서 그 녀석, 은근히 챙겨줄 맛이 난다니까? 저번에 사탕 하나 줬는데 카톡 감동 메시지를 답장으로 준 거 있지? 하여튼 그 녀석이 참 알면 알수록 애가 착해.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어?”
하빈은 마침 여행 기념품을 고르고 있었다.
“저건 지세 언니 거, 이건 리베 거, 이건 박원두, 아연이, 옆집 아주머니, 이건 연수원 조교님, 이 비서님, 임시 멘토님, 이제 채씨 것도 사야 하고 오빠 것도 사야 해. 잘잘이 건 마지막에 사자. 내가 다 생각해 둔 게 있거든!”
“내 것도 사는 거야?”
[내 것도 사는 것이냐?!]
“뭐? 그럼, 당연하지! 자고로 여행을 갈 때는 넘칠 정도로 선물을 사야 한댔어. 혹시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건 어디서 들은 이야기냐?]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
출장을 갈 때마다 한가득 선물을 손에 안고 오던 그녀의 어머니.
‘왜 이렇게 많이 샀어?’라고 물으면 ‘선물은 나눠 주다 보면 또 줄 사람이 생기더라고.’라며 웃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아, 옆집 아주머니 줄 선물을 깜빡했네. 역시 하나 더 샀어야 했는데!’
‘아, 이번에 신세를 지게 된 동생이 있는데 저번에 코코넛 오일을 더 사 올걸 그랬어. 그거라도 선물로 주면 딱인데.’
“어쨌든 기념품이란 그런 법이니까, 난 여기 온 김에 더 살 거야……. 헉! 저건 어때? 사토리아 비누!”
하빈이 주렁주렁 새끼줄에 매달린 비누들을 가리켰다.
<사토리아 비누>
킬스트린 5층에서만 나는 희귀한 해초의 기름으로 만들어진 비누로 향이 아주 좋습니다. 피로한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