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어느 실험 (1)
쿠구궁-
흔들리는 마왕성과 주변으로 퍼지는 불길한 기운.
-경고. 마왕의 분노가 발동되었습니다.
‘저 자식 진짜 미쳤나?!’
크릭샤는 눈을 의심했다. 저건 마왕들이 최후의 궁극기를 쓸 때나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만약 이게 정말이라면, 헤르밋은 진짜 마신을 죽일 각오로 힘을 꺼내든 것이리라.
“진짜 마신님이든 말든 상관없지. 어차피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게 섭리잖아?”
헤르밋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손을 튕겼다.
“내가 널 이기면 그때부터는 내가 마신으로 불리는 건가?”
[저 녀석, 말하는 것 좀 봐라! 저급한 짓을 하다 걸린 주제에 어디 저렇게 눈을 건방지게 뜨고! 당장 본때를 보여줘야 하느니라!]
그나마 그동안 조용히 있었던-하빈은 정체가 들킬 수 있으니 그동안 아헤자르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다.-아헤자르가 맞서 기운을 내뿜었다. 헤르밋의 새카만 기운이 주춤, 사그라들었다.
“이게 무슨……!”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힘에 헤르밋이 눈썹을 움찔했다. 하빈이 물었다.
“근데 날 이길 수는 있고?”
“이이익!”
잔뜩 화가 났는지, 헤르밋의 머리에 핏줄이 섰다. 하빈은 곁에 있던 이프시네를 붙잡아 등 뒤로 보냈다.
이대로라면 이프시네는 물론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마족들이 모두 휩쓸릴 모양새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크릭샤. 거기 있지?”
‘또 뭐 시킬 건데!’
크릭샤는, 조용히 헤르밋 죽는 꼴 구경하려고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하빈이 자신을 부르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착실하게 대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 넵! 부르셨습니까?”
“뭐? 크릭샤?”
그 꼴을 본 헤르밋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 마왕인 크릭샤가 저렇게 깍듯하게 대답하다니.
“뭐지? 크릭샤 너도 한패냐? 마신 뒤꽁무니나 졸졸 쫓아다녀서 얻는 게 뭐라고!”
그가 손가락으로 하빈을 삿대질했다.
“게다가 이 자식, 마신 아닐지도 몰라! 기운이 미묘하게 다르니까! 내 감이 분명……!”
“어허! 불경한 노옴! 감히 우리 위대한 마신님께!”
의심의 말을 뱉는 헤르밋에게 크릭샤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호되게 꾸짖었다.
그리고는 쪼르르 하빈의 곁에 달려갔다. 그가 잔뜩 간사한 표정으로 하빈에게 일러바치듯 소곤거렸다.
“들으셨죠, 마신님? 저 불경한 놈을 없애버리셔야 합니다!”
“일단 이프시네 챙기고 물러나. 다들 안 다치게 신경 쓰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 크릭샤만 믿으십쇼! 아가씨는 이쪽으로 오시고…….”
음흉한 표정을 지은 크릭샤가 고개를 재차 끄덕이고 이프시네를 챙겨 물러났다.
같이 싸우라고 하거나 불똥 튈까 봐 걱정했는데 여전히 헤르밋이 얻어터지는 걸 구경할 수 있다니.
‘손 안 대고 코 풀겠군!’
와작와작.
크릭샤는 근처 마족이 건네주는 과자를 뜯어먹으며 신난 표정을 지었다.
“마신님…….”
반면 이프시네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상황은 마왕성 내에서 내분이 일어난 꼴이 아닌가. 그것도 자신 때문에. 이프시네가 분한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빈이 헤르밋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얼마나 노답인지는 솔직히 관심 없어. 귀찮아 죽겠는데 네 인성 노답인 것까지 내가 굳이 관심 가져야 해?”
하빈이 한 손으로 아헤자르를 쥐었다.
“근데. 가만히 있던 이프시네를 건드리면 안 되지. 그것도 내가 아낀다고 공표까지 했는데.”
마계에 도착했을 때부터 시종일관 하빈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이프시네다. 험난한 마계 탐험 대신 7성급 호캉스를 제공해준 이프시네!
‘이렇게 소중하고 착한 이프시네를 감히 끌고 가려 해?’
하빈이 인상을 찡그렸다. 헤르밋이 입을 열었다.
“주변을 챙길 시간까지 있나 보지?”
무시도 정도가 있지. 그는 지금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것도 지금뿐이다!”
헤르밋이 손을 뻗어 스킬을 썼다.
화아악-
-세 번째 마왕 ‘헤르밋’의 고유 스킬 ‘비틀린 권위’가 발동됩니다.
-지금부터 행동에 치명적인 제약이 생깁니다.
*제약 수준은 시전자와 피시전자의 매력 스탯과 정신력 스탯에 따라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