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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40) (40/268)

040. 음악...그것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채지세가 남기고 간 편지.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채지석이 이준휘를 돌아보았다.

“비서님께 죄송하지만, 여기부터는 저희끼리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면 50층 방문이나 하빈의 진짜 실력 등등, 하빈이 숨기고 싶어 하는 내용까지 자연스럽게 나올지도 몰랐다.

이준휘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지만, 하빈에게 허락받지 않은 비밀을 까발리는 건 실례다.

이준휘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그럼 저 여기 뮤튜브로 노동요 틀고 일해도 되죠?”

그는 당장이라도 틀고 싶은 듯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물었다.

노동요라.

일하는 동안 음악 틀면서 하겠다, 그런 뜻이리라.

‘어차피 혼자 남아계실 방인데 노동요 트는 것쯤이야.’

당연히 안 될 리 없었다.

채지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트세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이준휘는 커다란 모니터에 뮤튜브 화면을 띄웠다.

팟-!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빨간 인형이 멍한 얼굴로 대폭발을 지켜보는 썸네일이었다.

심오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한 영상 화면.

곧이어 집무실에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모 마트의 2배속 주제가까지.

“흠흠…… 난난나…… 해피해피 G마트…….”

이준휘는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여전히 은은한 미소로 서류를 휙휙 넘기기 시작했다.

“…….”

[…….]

“이, 일단 나가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채지석은 자신의 얼굴을 짚으며 하빈을 옆방으로 안내했다.

* * *

옆방은 채지석이 근무하는 부길드장 전용 집무실.

소파에 걸터앉은 채지석이 덧붙였다.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이준휘 비서님, 저러셔도 은근 워커홀릭이셔. 퇴사 노래 부르시다가도 오히려 우리한테 일감 가져와서 같이 하자고 하실 때가 더 많거든. 복지재단 취지에 동감해서 함께하신, 창단 멤버시기도 하고.”

솔라리스 창단.

당시의 채지석도, 이준휘가 그의 누나, 지세를 찾아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는 비서님도 누나 계획을 못 믿었지. 그때도 지금도 예지 스킬은 말씀드리지 못했거든.”

채지석은 당시를 회상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세를 추궁하던 이준휘.

‘그러니까, 겨우 그 짧은 시간 안에 복지재단까지 만들고, 게이트 피해에 대한 복구를 70% 이상 회복시키겠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네. 말이 되게 할 겁니다.’

‘거기 들어갈 자금은?’

‘제가 벌 겁니다. 대충 몇 개월이면 될 것 같은데.’

‘……미쳤군.’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지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사하게 웃으며 상자를 꺼냈다.

‘하지만 기대를 걸어보셔도 될 겁니다.’

‘이건…….’

상자를 열자,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홀로그램 설계도가 허공에 펼쳐졌다. 도저히 지금의 기술력이라고는 볼 수 없는 광경.

그걸 멍하게 바라보던 준휘가 물었다.

‘이거…… 아이템으로 만든 겁니까?’

‘아뇨, 그냥 제가 만든 장치인데요. 정보 확인해 보시면 아이템인지 확인 가능하실 겁니다.’

이준휘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언론에서 떠들던 채지세가 천재라는 말, 그냥 언론플레이인 줄 알았는데.’

‘언론플레이죠.’

‘과소평가된?’

‘비밀은 지켜주실 거라 믿어요.’

지세가 손짓하자 허공의 설계도가 이리저리 바뀌었다. 지하 기지 설계도, 복지재단 설립 계획까지.

누가 봐도 중요한 정보들이었다. 이준휘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건 기밀일 텐데, 왜 아직 길드 가입도 안 한 제게 보여주시는 거죠?’

‘준휘 씨를 잡고 싶어서?’

지세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만들 솔라리스 길드의 목적은 부도, 명성도, 권력도 아닙니다. 오로지 구명, 지원, 복원.’

‘…….’

‘이준휘 씨도 저랑 같은 목적이신 것 같아서 제의를 드린 겁니다. 그동안 수많은 길드 창단, 가입 제의를 모두 거절하셨다고요. 본인 취지랑 안 맞는다는 이유로.’

‘그쪽도 나랑 안 맞을 수 있는데.’

‘네. 그렇죠. 저희랑 안 맞으면 언제든 손 터셔도 됩니다.’

‘글쎄, 지금에야 복지재단 설립하겠다 어쩐다 하지만, 사실 그게 다 입바른 소리일 수도 있잖습니까? 나중에 길드가 잘 되고 나서 당신도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난 이제껏 그런 사람들 수도 없이 봤습니다.’

이제껏 이준휘를 영입하려던 길드들은 수없이 많았다. 다들 위대한 이상을 가진 척하면서, 실상은 본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한 단체들.

그것을 꼭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준휘가 원하던 결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만약 1년 안에 복지재단 설립 못 해내면, 그냥 계약 해지하고 나가셔도 됩니다. 위약금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드리죠. 붙잡지도 않을게요.’

‘…….’

‘어쩌시겠어요,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

긴 침묵 끝에, 이준휘는 그의 앞에 내밀어진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미리 경고하지만, 전 빈말 안 합니다. 안 맞으면 바로 나갈 테니 그렇게 아시죠.’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다행히 퇴사 없이 일하고 계시지. 알다시피 누나가 진짜로 복지 사업 제대로 했잖아.”

옆방에서 가져온 콜라를 마시며 채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비서님이 가끔 술 취하면 말씀하시는데, 그때 누나가 웃는 얼굴이 좀 사기였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은근히 당한 기분이라나.”

“인정. 언니 얼굴은 반칙이지.”

하빈이 동의했다. 솔직히 저번 현하빈을 영입하려 할 때도 그렇고 채지세는 꽤 상습범(?)이었던 모양이었다. 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사실 나는 다들 뭐가 그렇게 반칙이라고 난리인지 모르겠는데.”

지세의 유일한 혈육, 채지석이 흘긋 책상 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쳐다보았다. 그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누나는 그냥 누나 얼굴인데. 화나면 특히 무섭고.”

그 말을 들은 하빈이 지석을 콕 찔렀다.

“채씨! 배가 불렀어? 어떻게 언니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별명이 경국지세인데!”

경국지세.

그 단어를 듣자마자 지석이 콜라를 뿜었다.

“컥, 경국……?! 뭐라고? 미친 거 아냐?”

“그치. 미쳤지. 언니는 나라를 기울게 하는 게 아니라 살리는데. 잘못된 별명이야.”

“아니 그 문제가 아니라! 이분들이 진짜, 주접을 하셔도 정도가 있지! 우리 누나가 미모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런 말 듣는 저는 가끔 항마력 딸리거든요?!”

채지석이 어딘가에 있을 채지세 팬클럽을 향해 외치는 듯, 허공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다음엔 이걸로 누날 놀려봐야겠다.”

“그걸로 언니를 놀린다고?”

“아, 뭐. 누나도 저번에 나한테 달린 주접 댓글 읽으면서 나 놀렸단 말이지. 반격해야 돼.”

앞으로 이름 대신 경국지세 님이라고 부르면 하지 말라고 총 들고 올 듯.

신이 나서 대답하던 채지석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물론 누나가 돌아오고 나서.”

50층에 간 채지세. 지금은 그녀의 귀환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석은 본론으로 돌아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우선 보안 문제 말인데, 여기라면 이야기해도 괜찮을 거야. 우리나라에서 우리 시설만큼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실제로 그들이 있는 부길드장 집무실은 연수원장실과는 비교도 안 될 보안을 자랑했다.

원체 현하빈만큼 기밀이 많은 남매였기 때문에 건축을 할 때부터 오로지 보안에 심혈을 기울여 지은 장소.

주변을 둘러보고 보안을 확신한 하빈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니가 어떤 편지를 남겼는데?”

“……유서.”

“뭐?”

“정확히 말하면 지금부터 7일 뒤에 나와 비서님께 공개되도록 설정된 유서.”

“무슨 내용인데?”

채지석이 한숨을 쉬며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그러자 스크린에 좌르륵 데이터 목록이 떴다.

“떠나고 나서 며칠 뒤에 전달되도록 시간 설정이 된 메시지인데, 일하다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우리가 먼저 찾아내 버렸어.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얼굴을 쓸었다.

“요약하자면 7일 안에 귀환하지 못하면, 그때쯤에는 본인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라는 내용이야. 평소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매 공략에 임하긴 했지만, 누나가 이렇게 제대로 매뉴얼과 기밀문서, 유서까지 정리해서 데이터베이스로 남겨놓은 건 처음이야.”

“…….”

“그만큼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한국 랭킹 2위, 채지세다.

그런 사람이 죽음을 염두에 둘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위험한 곳인 거야?

집무실에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하빈이 물었다.

“그래서, 언니 따라가려고?”

“…….”

걱정 어린 만류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걱정 말라며 50층으로 떠난 채지세.

이렇게 유서를 숨겨놓고서 마지막까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던 그녀.

채지석은 그런 누나를 막지 못한 걸 자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좀 이상한데.’

하빈은 고개를 기울였다.

채지세가 정말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 맞을까?

만약 채지세가 50층 원정대가 몰살될 수준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

채지세의 성격상, 애초에 원정을 가기는커녕 오히려 안 된다고 모두를 말렸을 것이다.

이건 그녀 혼자만 참여하는 원정이 아니기 때문에.

50층 공략은 피데스와 강태서를 포함한 수많은 귀중한 랭커들이 참여하는 원정이다. 여기서 참여한 랭커 중 한 명이라도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인류의 커다란 손실. 채지세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말리지 않고 참여했단 말은, 언니도 이걸 꽤 도전해볼 만한 것이라 생각했단 건데.”

“맞아. 유서는 그냥, 정말 만약의 만약을 위해 남겨놓은 것일 뿐일지도 몰라. 하지만.”

채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더 말을 잇지 않고 입을 다무는 채지석. 그 모습에 아헤자르가 덩달아 외쳤다.

[그래도 퍽 누이가 걱정이 되는가 보군. 그 마음, 이해하느니라.]

한껏 공감하다 못해 감격한 목소리였다. 만약 아헤자르가 인간이었다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눈시울을 붉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위험한 곳에도 누이가 걱정되어 따라가고자 한다니, 정말 기특한지고! 그렇다면 당연히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걱정이 되면 잠깐 50층에 들렀다 와볼 수도 있고! 무얼 망설이느냐, 어차피 현하빈 너는……!]

“잘잘아, 진정.”

[…….]

아헤자르의 열변을 꾹 멎게 한 하빈이 천천히 대답했다.

“……일단 사실부터 말하면, 나는 채씨를 50층에 혼자 보내줄 수 없어. 그럴 방법이 없거든.”

[그게 무슨 소리냐! 끝까지 모른 척을 할 셈이냐!]

그 발언에 아헤자르는 분통이 터졌고.

“……역시 그랬구나.”

채지석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 사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찔러본 게 맞아. 너는 매번 상식을 뛰어넘기도 하고, 저번에 50층 이야기도 꺼내길래 혹시나 싶어서. 하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아니,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채씨. 난 어디까지나 그쪽 ‘혼자’ 보내는 건 안 된다는 뜻이야.”

“뭐?”

하빈은 턱을 괴었다. 그녀가 옆에 뜬 스킬창을 훑어보았다.

<이공간 진입(액티브)>

근처에 오류가 있다면 그 틈새로 이공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낮습니다. 시전자 포함 최대 동반 2인까지만 진입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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