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33) (33/268)

033. SPES 회의 (1)

사실 킬스크린 26층 공략이 성공한 날. 의심을 품은 것은 강태서뿐만이 아니었다.

“피데스 님, 26층 공략에 칼리고와 솔라리스가 성공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럴…… 잠깐, 뭐라고요?”

지구 반대편, 뉴욕.

태평하게 대답하려던 피데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반문에, 보고를 하던 정보원이 재차 설명했다.

“킬스크린 사상 최단 시간 공략기록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보스가 다른 층으로 도망쳤다고…….”

“그게 사실입니까?”

당황한 현시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도 안 돼.”

26층의 보스, 마왕 크릭샤.

회귀 전에 인류가 맞닥뜨렸던 최악의 보스 중 하나. 네아이바가 끼어들었다.

[최악의 보스?]

‘26층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죠. 50층은 가야 제대로 나오는 일곱 마왕 중 하나인데……. 회귀 전에는 현하빈을 앞세우기 전까지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솔라리스와 칼리고도 어련히 실패할 거라 예상했다.

그때를 틈타 자신이 대신 나서려고 했는데.

‘이렇게 쉽게 공략되었다고?’

그것도 최단 시간으로?

현시우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내가 알던 미래가 바뀌었다.’

대체 왜?

현시우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였다. 정보원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감시하라고 하셨던 표적 말입니다만…….”

‘아, 현하빈.’

정보원이 말하는 표적은 현하빈이었다. 현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보원이 마저 이야기를 했다.

“그 표적이 마침, 그때 킬스크린에 있었다고 합니다.”

“……!”

현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마침 현하빈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회귀 전과 다르게 최단 시간으로 클리어된 26층.

바뀌어 버린 미래.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현하빈?

현시우는 천천히 손을 입가로 올렸다.

‘설마, 현하빈이 나서서 26층을 클리어한 건가?’

그렇다면 말이 된다.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26층을 클리어할 실력의 헌터는 현시우 본인과 현하빈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현시우도 월랭 1위의 실력과 더불어 회귀 전의 공략 팁을 써먹어야 가능할 일인데.

‘맞아, 현하빈이다. 아무리 봐도 이건 현하빈의 실력이야. 아무리 한국 랭킹 1위인 강태서라도 한 번에 26층 공략에 성공했을 리 없어. 게다가 최단 시간 클리어라니, 역시 현하빈이 뭔가 했나 본데…….’

생각을 마친 현시우는 정보원에게 물었다.

“그 표적, 킬스크린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아봤습니까?”

“넵.”

“무슨 일을 했죠?”

“그게…….”

현하빈의 행보.

현시우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정을 모르는 정보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무지 왜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음, 대기조로 입구에서 핸드폰만 봤다고 합니다. 그러다 딴짓한다고 잔소리 들었는데, 그거 피하려다 낭떠러지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고…… 다행히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다입니까?”

“다입니다.”

“…….”

현시우는 조용히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기껏 거기 가서 폰만 보고 있었다고?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럴 거면 애초에 킬스크린은 왜 간 건데……!”

현시우의 혼잣말을 듣던 정보원이 냉큼 끼어들었다. 이런 것까지 알아낸 자신을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흠흠, 듣자 하니, 연수원 활동에 참여하기 싫어서 킬스크린 공략 참여로 대체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결론은. 땡땡이치려고 갔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킬스크린에?”

“네. 저도 믿기지 않아서 확인했습니다만, 아무리 털어 봐도 그것밖에는 나오지가 않습니다.”

“…….”

‘도대체 현하빈은 무슨 생각이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지만, 현시우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고는 했다.

‘현하빈이 사실 복귀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래 놓고 우리 모두를 속이는 것이라면?’

논다고 한 것은 다 핑계고, 사실 혼자 짊어질 생각을 하고 뒤에서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면.

추측과 상상, 그 사이.

[그건 너무 행복회로 아니냐? 난 현하빈 걔, 그냥 땡땡이쳤단 거에 건다.]

네아이바가 팩폭을 때렸다. 단칼에 내리꽂는 결론에, 현시우가 반문했다.

‘이유는요?’

[저번에 집에 가보니까 딱 그래 보이던데. 그동안 많이 찌들려가지고, 이젠 놀 생각만 아주 가득해 보였어. 그리고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지.]

‘……네. 사람은 쉽게 안 변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제가 의심하는 겁니다.’

1회차 때.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냈던 현하빈이다.

주변의 수많은 위기와 방해를 무시하고, 나중에는 솔로 플레이로 탑의 70층을 깨부수었던 인류의 마지막 희망.

1회차의 승리를 위해 평생을 갈아 넣고, 마지막엔 목숨까지 걸었던 현하빈.

‘……그랬던 애가 2회차 때 180도 달라졌다는 게, 생각할수록 수상하단 말이지.’

무엇보다, 이번 킬스크린 공략은 현하빈이 캐리하지 않고서는 깰 수 없는 난이도가 확실하다.

‘아무리 숨겨도 소용없다, 동생아!’

실제로 현시우는 어릴 때부터 하빈의 거짓말을 잘 간파해내고는 했다.

‘현하빈, 너 컴퓨터 몰래 썼지?’

‘……안 썼는데.’

‘본체에서 열남. 좋은 말 할 때 제대로 불어라!’

‘기분 탓임. 아무튼 기분 탓.’

‘기분 탓에 온도가 올라가겠냐고! 이거 아주 뜨끈한 게 달걀후라이도 익을 온도거든? 온도계 가져온다? 지금 잰다!’

‘미친. 무슨 이런 거에 온도계를 가져와? ……근데 온도계 어디서 남?’

‘엄마 화장대 서랍. 쫄리면 뒤지시든가.’

‘아, 진짜……! 이상한 데서 쓸데없이 집요하네. 오키, 컴터 쓴 거 맞음. 그래서 엄마한테 이르게?’

‘아니? 나도 지금부터 게임하려고. 오늘 서로 컴퓨터 한 거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기다!’

‘콜! 역시 우리 오빠임. 이럴 땐 말이 잘 통해서 좋다니까.’

‘……그렇게 서로의 이익 실현을 위해 어둠의 담합을 하고는 했죠.’

[그냥 둘이 짜고 부모님 몰래 몰컴했다는 뜻이잖아?]

‘흠흠. 물론 세간에서는 그런 용어로도 부릅니다.’

[…….]

어쨌든 결론을 말하자면, 현시우는 현하빈의 거짓말쯤은 간파해 낼 자신이 있었다.

‘두고 봐라, 현하빈. 내가 이래 봬도 이번 회차에선 월랭 1위니까. 이참에 1위의 클라스를 보여줌.’

현시우는 이후 며칠간 킬스크린 26층 공략과 관련된 정보를 열심히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킬스크린 공략에 참가했던 칼리고 인원 전부가 퇴사했다고요?”

“넵. 조사해 보니 이전부터 강태서와 뜻이 맞지 않았던 자들이라고 합니다. 예전부터 삐걱대다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음…… 그 외에는?”

“그 외에는 아무 특이 사항이 없는데요.”

“현하빈은요?”

“병결을 내고 연수원을 안 가고 있다고 하는데…….”

병결.

그 단어에 현시우는 귀를 의심했다.

“병결? 걔가 아프다고?!”

현하빈이 아프다니.

‘그게 말이 되나?’

지금 가진 기본 능력이랑 체력부터가 지구상의 랭커들을 다 바를 텐데.

어디 그뿐인가? 웬만한 보스들도 상대가 안 되고, 상태이상에도 꽤 저항력이 높을 테고. 만에 하나 부상을 입더라도 포션 쓰면 다 낫고.

그런 현하빈이 다칠 수도 있나?

그게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전 지구의 위기다.

현시우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대체 누가 한 짓이지? 설마 시스템 관리자가 직접 나서기 시작했나……? 벌써?’

그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반면 정보원은 별일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심각한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평소에도 꾀병이 많았답니다. 그냥 연수원 가기 싫어서 병결 낸 거라던데요.”

“…….”

“그래서 쉬는 김에 솔라리스 길마 집에도 놀러 간답니다.”

“…….”

잠깐의 정적.

다행히 현시우는 페이스를 잃지 않고 해야 할 질문을 끝냈다.

“놀러 가서 뭘 하는지는 알아냈습니까?”

“아시다시피 솔라리스의 보안과 정보 장악력이 엄청난지라…….”

현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라리스라면, 지하에 숨기고 있는 게 있으니까, 정보 보호에 철저하긴 하지. 아마 현하빈 때문이 아니라 지하 기지 때문일 거야.’

“하지만 그리 대단한 활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솔라리스 길드에 가입하지도 않았고요.”

말을 마친 정보원이 고개를 숙였다.

“열심히 알아냈지만 아쉽게도 이게 전부입니다. 이상입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후우. 한숨을 내쉰 현시우는 정보원을 돌려보냈다.

마침내 혼자 남은 그가 홀로 머리를 쓸었다. 작은 움직임에서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하, 진짜 아무것도 아닌가……?”

[거봐, 진짜 노는 거라니까.]

“아, 저 나름 촉 좋은 편인데. 확실히 뭔가 있다니까요. 뭔가가.”

현시우가 의심스런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까똑-

그의 폰이 울렸다.

도른자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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