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27) (27/268)

027. 빛과 빚 (2)

제목: 와 어제 채지세 또 한 건 함

본문: 어제 헌터협회 국제회의에 참석한 채지세 (사진)

채지세가 독소조항 지적하지 않았으면 모르고 넘어갈 뻔.

너무 교묘해서 대형로펌 변호사들도 몇 번 검토하고 알아챘다던데...그냥 참관인으로 참석했다가 이런 활약을 해버리네.

└ 독소조항이 뭐임?

└ 안 좋거나 불리한 조항. 대충 그런 거. 우리 쪽 사기당할 뻔한 거 잡았다고.

└ 후반부에 영어랑 스페인어로 질답하는거 들었냐? 그거 번역 아이템 안 썼다고 함.

└ 난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채지세가 한국대를 괜히 들어갔겠냐고ㅋㅋㅋ그만큼 똑똑하고 열심히 한다는 거지.

└ 지인이 채지세 동기라서 건너건너 들었는데 요즘 잠을 거의 안 잔다고 하더라. 하나라도 더 꼼꼼히 준비하려고.

채지세는 일을 잘 했다.

격변한 세상과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당초 ‘얼굴마담’으로 앞세운다던 계획보다도 훨씬 할 일이 많았다. 그녀가 떠안거나 맡아야 하는 책임과 무게도 점점 커져갔다

한 사람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케줄이었지만, 실수하거나 피곤한 내색을 내비치기는커녕 매번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좋은 평판을 얻었다.

-[단독]채지세, ‘솔라리스’길드 창설. 친한 헌터들의 전폭적 지지 발언…….

-[인터뷰]채지세, 한국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헌터계가 나아갈 방향 연구…… ‘게이트 이후 시대의 미래를 꿈꾼다’

처음 몇몇 사람들이 어리다고 얕잡아본 것과는 다르게, 채지세는 주변의 인맥과 학벌, 본인의 능력을 연결하여 나름의 입지를 마련해 나갔다.

일반인 시절에 쌓아 두었던 한국대학교 동문과 교수, 선배들과의 교류.

헌터가 된 뒤에는. 힐러라는 포지션으로 맺은 여러 동료들과의 인연.

그것들을 모두 제 능력으로 잘 버무리고 알차게 활용하여 길드도 만들고, 사업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대박이 터졌다.

제목: 채지세 미래라도 볼 줄 아는 거 아니냐?

본문: 투자에 관심 가지고 있는 사람 있으면 채지세 사는 종목 따라 사라.

채지세가 이제껏 손댄 것마다 족족 대박남.

1. 게이트 사태 터지자마자 웹소설 시장에 투자해서 대박침

2. 그 이후로 SS급 제작계로 각성한 엘레메스 브랜드에도 투자해서 대박 터졌고,

3. 이번에 포션 제작기업 스텔레에도 투자했는데 진짜 초대박 터졌잖아...

이 외에도 투자해서 대박난 거 엄청 많음. 아마 우리 모르게 투자한 것까지 합하면 웬만한 재벌 이상일걸?

너네 코인이나 주식 사지 말고 무조건 채지세 사는 종목 사라. 아니면 그냥 채지세가 차린 사업 관련주에 투자하던가. 난 지금 풀매수 때리러 간다.

장담하건대 이 글은 곧 성지가 될 것임

└ ㅇㅇ...요즘 내 주변 주식투자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음. 채지세 투자 잘함. 어떻게 아직까지 실패가 없지?

└ 보는 안목이 좋은 거겠지

└ 진짜 예지 능력 있는 거 아님?ㅋㅋㅋ

└ 회귀자인듯...회귀자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전부 성공할 수가 없음.

└ 회귀자같은 소리하고 있네ㅋㅋㅋ 아무리 게이트 열렸다고 해도 그렇지, 현실적으로 회귀자가 어딨음?ㅋㅋㅋ 웹소설 그만 읽어라

└ 돈 많이 벌었겠다...어디에 쓰려고 저런대?

└ 야 근데 이 글 믿고 함부로 채지세가 사는 종목 따라 사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채지세가 몇 번 성공한 건 맞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음

└ 윗댓이 맞음. 투자는 신중하게 해야 함...

└ 그냥 채지세가 운이 좋은 거였을수도

└ (글쓴이)ㅋㅋㅋ그래 아무튼 난 풀매수 한다. 난 어쨌든 말해줬음

(6개월 뒤)

└ 성지순례왔습니다 로또당첨되게해주시고 우리가족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 성지순례왔습니다. 올해 헌터공무원시험 꼭 합격하게 해주세요ㅠ

└ 와 그래서 이 글쓴이 지금 재산 얼마임? 저 때 천만원만 투자했어도 지금 얼마야?

└ 난 저때 천만원은 없었지만... 이글 보고 진짜 백만원만 투자했어도ㅠ

└ 중간에 안 팔았으면 대박일듯

└ 정말로 채지세가 이 정도로 투자에 성공할 줄이야ㅋㅋㅋ고작 몇 개월 만에 몇백 배가 넘게 불어났네. 이젠 따라 사려고 해도 못함.

사람들이 다 알아버려서 채지세가 뭐 한다고 하면 알아서 우루루 몰림ㅠㅜㅜ

└ 형님...치킨 한 마리만...부탁드립니다.... 제 계좌는...

└ 성지순례왔습니다 이번에 국제헌터고 합격하게 해주세요

└ 성지순례왔습니다 제발 저 좀 각성하게 해주세요...

사실 채지세는 진짜로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채지세와 채지석. 두 남매의 핵심 전력이 바로 예지 능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적 비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알차게 예지 스킬을 활용한 그녀는 공격적 투자로 무지막지하게 돈을 불렸다.

“……사실상 비공식적 헌터 재산 1위가 아닐까요?”

“재력 하나만큼은 월랭 1위를 제친다는 소문이 돌던데.”

“돈에 환장했나? 왜 저렇게 투자에 집착하는 거야?”

“생각보다 사람이 속물일지도 몰라. 엘레메스랑 헌터 전용 백화점 같은 럭셔리 분야에도 엄청 투자했다잖아!”

사업에도 능력 있다는 호평과, 돈에 환장했다는 악평 사이.

‘대체 언제까지 성공하는지 보자.’ 식의 시기어린 이목이 쏠렸다.

‘얼마 못 갈 거야.’

‘헌터 말고 재벌이 꿈이었나?’

‘정의로운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돈이 목적인가?’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돈을 긁어모은대?’라는 궁금증이 정말 극에 달할 때쯤에서야, 채지세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제가 모은 돈이 조금 됩니다.”

‘조금이 아니잖아…….’

“실례가 안 된다면, 왜 그렇게 투자에 관심이 많은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돈을 그렇게 모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네. 사실 그 부분 때문에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채지세는 입을 열었다. 그동안 채지세가 모은 돈을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그동안 우리가 게이트 사태로 입었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쓰고 싶습니다.”

“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피해 복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채지세는 그날로 직접 복지 재단을 설립해 게이트 사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사용했다.

잘 곳이 없는 사람,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사람,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버린 사람들.

특히 가장 많은 지원을 한 대상은, 게이트 사태로 부모님을 잃은 미성년자들이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괴물들의 세상에 뚝 떨어져 버린, 나이 어린 가장들.

‘……바로 나 같은 경우 말이지.’

현하빈이 쪼로록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턱을 괴었다.

부모님을 잃고 홀로 남아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막막했던 시절.

꼴에 자존심과 경계심만 가득해서 어디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 못 하고 홀로 버티고 끙끙 하루를 버텼던 나날.

[현하빈 님도 지원 대상자입니다. 저희 재단 쪽에 한 번 방문해 주시겠어요?]

포기할까, 생각한 순간. 예상치 못하게 받았던 따뜻한 도움.

당시 일면식도 없던 채지세에게, 재단을 통해 받았던 지원금이, 정말 한 줄기 위로가 되었었다.

‘당연히 돈 벌자마자 받은 만큼 재단에 다 돌려줬지만.’

무언갈 받으면 반드시 받은 만큼 돌려주고 깔끔히 끝내는 게 하빈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은인은 은인이긴 해.’

채지세는 현하빈이 은인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빈은 괜히 머쓱하게 흠흠, 시선을 피하곤 슬쩍 치즈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아헤자르가 끼어들었다.

[오오, 채지세, 그런 좋은 일을 한 인간이었군. 영웅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지.]

‘오랜만에 맞는 말 하네, 잘잘이.’

[크흠, 기분이 묘하군.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해하는 그를 뒤로하고, 하빈은 아헤자르가 언급한 영웅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영웅, 자랑, 빛.

세계의 사람들은 피데스를 인류의 ‘영웅’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람들은 강태서를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가장 강하니까. 괴물들을 처치하고 질서를 지켜내는 모습이 대단하고 멋있으니까.

하지만 채지세는 영웅도, 자랑도 아닌 ‘빛’으로 불린다.

모두에게 그렇게 불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금발이라서 붙은 별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빈은 그 호칭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그 많은 돈을 길드 확장이나 다른 개인적 용도로 더 사용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어쩌다 피해 복구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다짐하셨나요?’

‘지세 양도 현재 게이트 사태로 부모님을 잃고 동생과 단둘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기부를 선택하신 겁니까?’

앞다투어 쏟아지는 질문들. 당시 채지세는 이렇게 답했다.

‘일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이요?’

‘괴물을 막아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제대로 자고, 제대로 먹고, 소중한 사람과 살아가는 삶. 정작 그걸 지키지 못하면 제대로 세상을 지켰다고 말할 수 없겠죠.’

세상을 구하는 헌터가 아닌, 일상을 구하는 헌터.

그런 점에서 채지세의 ‘국민힐러’라는 별명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졌다.

최강의 힐러 포지션 랭커라는 의미와, 사람들의 일상 회복에 크게 기여한 헌터란 의미.

한국이 국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오랫동안 망가진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채지세가 마련한 지원사업은 그야말로 구원이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캠페인, 무료급식, 그 외의 여러 지원 사업들까지.

그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헌터넷에는 채지세를 함부로 까는 글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제목: 채지세 깎아내리지 마라.

본문: 어제 인터뷰 봄?

잠도 못 자고 길드 운영, 기부 사업, 국제 회의 참여해서 힘들지 않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저 힐러잖아요. 스스로 힐 하면 돼요’ 하면서 웃던데....ㅠㅜㅠㅜ 어떻게 그런 사람을 이유 없이 까냐?

└ ㅋㅋㅋ극성이네 채지세가 님 집이라도 지어 줌?

└ ㅇㅇ....지어 줌.....

└ 아....

└ ㅋㅋㅋㅋㅋㅋ이왜진...

그러니 기껏해야 피데스vs강태서, 강태서vs채지석 글은 종종 올라와도, 까는 글이나 비교 글에 채지세는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언터처블.

그 영향으로, 동생인 채지석도 글이 올라온다 싶으면 ‘채남매’로 묶여 칭찬과 쉴드가 많았으니 말 다 했다.

“어쨌든, 그래서 나도 되게 좋아해요, 언니. 팬이라니까.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구해야 한다니. 정말 명언이셨는걸.”

하빈의 극찬에 채지석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팬? 진짜 우리 누나 팬이야? 정말로?”

채지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빈과 지세를 번갈아 보았다.

“왜?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네가 누군가의 팬을 자처한다는 게…… 뭔가 적응이 안 돼서.”

하빈이 실망이라는 듯 눈을 찌푸렸다.

“엥, 채 씨. 나 이래 봬도 좋아할 건 확실히 좋아하는 사람이야. 재미있는 드라마를 가져다주시는 네풀릭스 사장님의 팬이고, 영상의 바다를 선사해준 뮤튜브 사장님의 팬이고. 이번에 그 뭐냐, 새로 알게 된 맛집카페 사장님 팬도 할 거야. 거기 초코라떼 존맛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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