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친구를 잘 사귀면 인생이 편하다. (4)
‘으아아악!’
‘끄으윽! 잘못했습니다!’
‘사, 살려……살려주세요……!’
‘너 체력 얼마나 남았어?’
‘10! 10밖에 안 남았습니다! 더 맞으면 저 진짜 죽습니다! 제발……!’
‘걱정 마. 여기 포션이야, 마셔!’
‘끼야악!’
‘차라리 죽여 줘!’
하빈은 혹시나 상대방이 죽지 않도록 체력이 얼마인지 물어가며 때려주었다.
“정말 죽이지는 않으실 겁니까?”
크릭샤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빈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내가 태서를 정말 아끼긴 하지만, 걜 위해 살인죄를 저질러줄 정도는 아니라서. 이건 내 지향점이랑 너무 다르기도 하고.”
[네게 지향점이란 게…… 있었느냐?]
“내 목표는 선량한 힘숨찐인걸! 살인은 선량하지 못해.”
방금 전까지 폭행을 저지른 하빈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선량한’ 힘숨찐이 목표임을 강조했다. 크릭샤가 나섰다.
“직접 못하시는 거면, 제가 대신 처리하죠!”
‘제발 빨리 죽이고 집에 가라고!’
크릭샤가 금방이라도 일당들의 목을 그어버릴 듯 자세를 취했다. 하빈이 고개를 저었다.
“노놉. 그건 살인 교사죄.”
“…….”
[어째서 범죄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것이냐?]
“험난한 인생을 선량하게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상식이지.”
하빈은 다시 기절한 황마로를 내려다보았다. 툭툭, 발등으로 황마로를 건드린 하빈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실 큰일이긴 해.”
하빈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갈등하는 듯 턱을 괴었다.
“하필 태서 일이라서 나서 버렸지만, 이 녀석들, 내가 한 걸 까발리고 다니면 곤란한데.”
그랬다.
막상 소중한 친구인 강태서가 당했단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앞뒤 생각할 것 없이 호쾌하게 나섰지만.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녀석들을 살려두는 건 좀 위험했다.
만약 풀려난 황마로와 일당들이 하빈의 원래 실력을 떠들고 다닌다면?
“누군가는 날 랭커라고 의심할 거 아냐. 그럼 내가 열심히 지켜온 조용하고 아늑한 인생이 물 건너간다고.”
하빈이 크릭샤를 돌아보았다.
“크릭샤야, 넌 이래 봬도 마왕인데 괜찮은 스킬 없어? 기억 소멸 스킬, 아니면 입막음용 스킬. 발설이나 발언을 못 하는 저주계열 스킬이라도.”
마왕 크릭샤.
이제껏 하빈의 기에 눌려 있었지만, 마왕은 마왕이다.
온갖 주술과 흑마법, 비급의 절정에 선 고수.
킬스크린의 한 층 보스를 담당하는 최강자. 그가 뻐기듯 턱을 들어올렸다.
드디어,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줄 때가 왔다.
“흐음, 솔직히 기억을 제거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발설 못 하게 하는 저주라면…… 후후, 그 정도쯤이야 당연히 있죠.”
크릭샤가 비뚜름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짓에 시커먼 연기가 그의 손가락을 휘감았다.
“이건, 지정한 무언가를 말하거나 글로 적으려 하거나, 심지어는 떠올리려고만 해도 끔찍한 고통을 주는 저주입니다.”
이 저주에 걸리면 뭔가를 알고 있더라도 절대 누군가에게 발설할 수 없다.
“제대로 알려주기도 전에 거품을 물고 기절할 테니까요. 글로 적으려 해도, 몸짓으로 알려주려 해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오, 꽤 쓸 만한걸?”
“꽤 쓸 만한 정도가 아니죠! 이래 봬도 위대한 마왕의 저주인데!”
“상태이상 해제 스킬로 해제해 버릴 수도 있잖아?”
하빈이 예리하게 지적했다. 크릭샤는 고개를 저었다.
“고대의 저주는 원래 시전자와 같은 급의 술사여야만 풀 수 있었습니다. 즉, 저보다 약한 자는 못 푼다는 말이죠!”
괜히 마왕의 저주가 아니다.
예로부터 마왕이 직접 내린 저주는 마왕이 직접 해제해 주거나 마왕급의 능력자에게 해주를 부탁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크릭샤는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지만, 하빈은 여전히 인상을 찡그렸다.
“으음. 그래도 크릭샤보다 강한 사람은 풀 수 있다는 거 아니야? 허점이 있네.”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마왕인 저보다 강한 사람은 없……!”
발끈해서 없다고 이야기하려던 크릭샤는 하빈과 눈을 마주치고 입을 다물었다.
‘젠장. 눈앞에 있네.’
“에휴, 어쩔 수 없지.”
하빈은 손을 움직여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마왕의 비급서]
등급: 판정 불가
마왕이 가진 스킬 중 하나를 지정하여 획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