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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18) (18/268)

018. BUG FINDER (1)

그로부터 며칠 뒤.

킬스크린 26층, 남쪽 입구.

칼리고와 솔라리스의 협동 공략 작전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강한 두 길드의 협업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한 이벤트.

26층.

그중에서도 ‘남쪽 입구’로 지정된 이유는, 탑이 가진 독특한 특성 때문이었다.

‘킬스크린’으로 불리는 탑은, 탑이되 탑의 모양이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 꼭대기까지 이어진 거대한 기둥. 폭포수가 흐르는 듯 흐릿하게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외벽.

또한, 층으로 표시되지만, 한 층에 던전이 하나만 생성되는 것도 아니었다.

동서남북으로 여러 개씩 생성되는 ‘입구’는, 어느 쪽으로 들어가도 상관이 없었다. 다만, 어떤 입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난이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탑보다는 복합상가나 아파트 구조 같다.’

‘웜홀이나 거대한 빌딩 느낌이다’

라는 수많은 평이 오가고 있는 그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역시 헌터물 소설이나 만화들의 영향이었다.

‘헌터물에서는 이처럼 층마다 공략하는 구조물을 탑이라고 불렀으니 이것도 탑이라 부릅시다.’

공략하는 이유도 헌터물의 영향이 컸다.

‘보통 헌터물에서도 탑을 공략하면 이야기가 끝나던데. 이것도 그러지 않을까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희망과 소망이 담긴 추측.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킬스크린은 다른 던전들보다 훨씬 좋은 아이템들이 보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모두들 공략에 열을 올렸다.

간혹 나온다던 전설급 아이템이나 ‘아우라이던’ 관련 아이템들도 모두 킬스크린에서만 발견된 것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인기만큼 위험하고, 위험한 만큼 인기 있는 킬스크린.

“……그래서, 보통은 특별 허가를 받지 않으면 일반인 출입이 잘 안 되거든? 아무나 들어왔다가 인명피해가 마구 생겨서 최근에 길드 차원에서만 접근할 수 있게 규정이 생겼어.”

킬스크린 26층 남쪽 입구 앞.

벽에 기댄 채로 뿅뿅 폰 게임을 하고 있던 하빈에게, 채지석이 물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들어왔냐?”

“그러는 님은?”

“연수원은 어쩌고?”

“……그러는 님은?”

“…….”

태연자약한 하빈의 태도.

별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 채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솔라리스-칼리고 협동으로 26층 남쪽 공략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온 거야. 연수원에는 말해놓고 왔어.”

혹시나 멘토인 자신이 갑자기 사라지면 놀랄까 봐, 다른 멘토들에게 현하빈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왔더니만…….

여기에 떡하니 나타날 줄이야.

“알다시피 내가 솔라리스 부길마잖아. 대표격으로 왔지.”

“아하.”

“아하, 할 게 아니라! 너는 어떻게 들어왔냐니까? 연수원 또 땡땡이쳤어? 게다가 여기 킬스크린이야! 초보가 올 수 없는데?”

“님이 솔라리스 쪽이라며? 그럼 난 칼리고 쪽으로 인맥 썼지.”

하빈이 고개를 까닥였다.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는 강태서가 보였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난 공략에 참여 안 할 건데? 명단에만 이름 올리고 여기서 드라마 볼 거임.”

하빈이 벽에 찰싹 등을 더 밀착시켰다.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리.

사과폰과 보조배터리만 있다면 몇 시간이든 버틸 수 있었다.

“이런 거 참여하면 연수원 실기 대체 된다길래, 그러려고 온 거지.”

“……뭐?”

그랬다.

하빈은 지난 칼리고 방문 때, 강태서의 제안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럼, 그 명단에 한번 올려줘 봐. 몇 번 써보고 괜찮으면 가입 진지하게 고려해 볼게.’

물론, 연수 기간이 끝나면 칼리고 가입할 일은 아마 없겠지만.

‘네가 말한 대로 명단에만 올리고 입구에서 놀기만 한다?’

‘이거 진짜 연수원 실기 대체 되는 거 맞지?’

결과는 모두 오케이.

하빈은 순조롭게 발급받은 연수 실기 대체 서류를 흡족한 얼굴로 집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당장 가고 싶지만, 혹시라도 감사가 뜨거나 증언이 나오면 불리해지니까, 대기조라는 명목으로 입구에서 드라마 정주행하면서 쉬기로 했어.”

“그러니까, 결국 연수원 땡땡이치려고 무려 킬스크린까지 왔다는 거야?”

“물론이지.”

“…….”

이 인간은 이제껏 날 봐놓고도 모르나? 하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채지석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인데, 네가 말하니까 너무 설득력이 있다…….”

“아니, 부길마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한참 찾았잖아요!”

마침 그 타이밍에, 채지석을 찾던 인원들이 나타나 그를 데려갔다. 질질 끌려가듯 사라지는 지석을 보며 하빈이 경쾌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채씨는 킬스크린 공략 파이팅!”

“야, 너…….”

“잘 다녀와!”

언제나 남 일에는 관대한 하빈이었다. 진심 담은 응원까지 덧붙인 하빈이 다시 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래서 인기인이 되면 안 돼. 책임자가 되는 것도 골치 아프고.’

다른 쪽에서는 이번 공략의 총책임자를 맡은 강태서가 마지막으로 작전을 점검하고 있었다.

“……단, 이번 공략에서 낙오자가 발생할 경우, 공략 완료나 중지 전까지는 찾으러 가지 않는다.”

“그럼 그때까지 구조 기다리면서 버텨야 해?”

“그래. 하지만 이대로만 잘 따라오면 낙오할 일은 없을 거다. 낙오할 가능성이 있는 지점도 모두 상대적 위험도가 낮아 자력으로 버티기 쉽고…….”

‘저 녀석, 저러다가 말투가 저 모양이 되었군. 쯧쯧.’

이제 보니 두 길드의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솔라리스는 서로서로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지만, 부길마라 해도 만만하게 끌고 가 버리는 허물 없는 분위기.

반면, 칼리고는 서로 말에 격식이 없고 거칠지만, 위계와 상명하복 개념은 철저한 느낌.

중요한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대충 흘려듣던 하빈이 고개를 돌렸다. 사람 구경은 이 정도로 충분히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게 보이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건가?’

마침내 혼자가 된 하빈이 스윽 근처 벽의 모서리를 노려보았다.

파직-

벽 사이사이로 보이는 지직거리는 현상. 그래픽이 깨진 듯한 기묘한 일렁임.

‘이건 뭐지?’

그동안 ‘킬스크린’을 매체에서만 접하고 정작 직접 와 본 적이 없었던 하빈.

그녀는 킬스크린의 실물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이렇게 지직거리지 않았는데.’

마치 게임 그래픽에 문제가 생겼거나 버그가 발생해 깨지는, 그런 류의 부자연스러움.

그게 벽이든 바닥이든 천장이든 사이사이에 희미하게 보였다.

더 수상한 것은, 그걸 하빈 외에는 발견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척 봐도 확실히 이상하다 싶은 구간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사람들.

혹시나 싶어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여기 이거, 이 부분 원래 이래요?’

‘뭐가?’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의아하다는 눈빛뿐.

‘잘잘이도 안 보여?’

[무엇을 말이냐?]

“…….”

하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사람들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다. 채지석은 저쪽으로 끌려갔고, 강태서도 회의하느라 정신없는 와중.

지금이었다.

하빈은 몰래 근처의 지직거리는 곳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에게 새로운 알림이 떴다.

[!! 킬스크린 생성 이후 최초로 오류를 인지하였습니다 !!]

[히든 타이틀 ‘버그 파인더’를 획득합니다.]

[당신의 특수한 행동으로 인해 스킬이 생성됩니다.]

<오류시(誤謬視)>(패시브)

세상에 존재하는 오류를 감지할 수 있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 살아있는 오류인 당신은 곳곳에 존재하는 다른 오류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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