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각성자 검사 (2)
[그래서 검사는 언제 받으러 가느냐? 오늘? 내일?]
“잘잘아……. 조용히 하자.”
[내 이름은 잘잘이가 아니라 아헤자르다! 왜 자꾸 잘잘이라고 부르느냐!]
‘……이거 음소거 기능은 없나?’
하빈은 시스템 창을 뒤져봤지만 안타깝게도 ‘성좌 알림 차단’ 같은 기능은 없었다.
하루 종일 아헤자르의 잔소리를 흘려듣던 하빈이 턱을 괴었다.
“그래 김잘잘. 잘잘이가 싫으면 짤짤이는 어때?”[……그냥 잘잘이라 불러라.]
“잘잘이가 확실히 어감이 좋지?”
[아니! 안 좋다! 감히 내 우아한 이름을 이렇게 바꾸다니!]
또 앵알거리는 아헤자르를 뒤로하고, 하빈은 공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각성자 검사 안내서…….
……불응 시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으며…….
일명 각성자안전관리법.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게이트 사태 직후의 한국이라면 감히 이런 법안을 통과시킬 엄두도 못 냈을 거다.
각성자가 가진 무력은 각 국가의 힘을 아득하게 상회한다. 어떻게 겨우 법률 따위로 강제하겠는가.
그래서 게이트 사태 직후에는 공권력 눈치 안 보고 마구 날뛰는 무법자 각성자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오히려 국가들이 각성자들의 눈치를 보고, 법률 시스템은 망가지고, 무법자 헌터 세력들이 판을 쳤던 과거.
하지만 한순간에, 그 모든 상황을 뒤집을 반전의 인물이 나타났었다.
현 세계 랭킹 1위, ‘피데스’의 등장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마법사. 갑자기 등장한 세계 최강자 ‘피데스’는 각성한 범죄자들이나 무법자들을 있는 대로 찾아가 숙청했다. 공개적으로 각 민주 국가들의 법률과 사회 시스템을 지지했고, 비각성자들의 인권을 보호했다.
‘세계가 바뀌었다고 해도, 인류가 지켜야 할 가치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 운동가들이 피로써 지켜온 민주적 결과물입니다.’
‘이 역사를 다시 약육강식의 원리로 뒤엎으려는 무법자가 있다면, 제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하빈은 그 부분을 헌터위키에서 읽다가 어쩐지 닭살이 돋아서 팔을 문질렀다.
“……왜 갑자기 오글거리지? 이거 내가 아는 사람이 했으면 소름 돋아서 못 들었을 듯.”
‘피데스의 12월 연설’로 불리는 이 발언은 아주 유명했다.
12월 연설 이후로 ‘피데스’는 전 인류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게 되었으니까.
인기도 엄청 많았다. 헌터넷 게시글은 심심하면 피데스 글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제목 : 야 피데스 가면 벗으면 존잘일 듯
└ 목소리도 잘생겼어
└ 목소리도 음성변조 아님?
└ 발음부터가 개고급짐
└ 그거 번역 아이템 쓴거일듯.
└ 윗댓 질투봐라ㅋㅋㅋㅋ 아무튼 대존잘임. 내 친구가 피데스 코앞에서 봤는데 진짜 진심으로 분위기와 아우라부터가 탈인간급이었다고 함. 걍 존잘이랬음.
└ 피데스 직접 본 거 개부럽다...대체 어디서 봄? SSS급 랭커 되면 볼수있냐ㅠ
└ 헐 나도 보고싶음! 어디서 봄? 일부러 던전에라도 들어가야 되나
└ 윗댓 미친; 너같은 애들 때문에 다른 멀쩡한 헌터들이 고생하는거다
└ 일부러 무국적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정의로운 마법사....맨날 얼굴 떡밥 도는데 사실 얼굴을 떠나서 그냥 존멋임ㅠㅜㅠㅜㅜㅠ
└ ‘세계가 바뀌었다 해도 인류의 가치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크으....
└ 윗댓 그거 틀리게 적음 감히 피데스님의 연설을 외우지 않다니. 다시 보고오셈.
그가 없었다면 한국은 다시 국가의 모습을 되찾기는 어려웠을 테다. 헌터협회도 이렇게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규칙들을 재정비하지 못했을 테고.
다시없을 인류의 영웅.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나의 원수일 뿐!”
하빈이 화면에 뜬 피데스의 사진을 노려보며 외쳤다.
“네놈 때문에 대한민국이 각성자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힘숨찐 감방에 넣을 수 있는 법안 만들 수 있었던 거 아냐! 나 같은 선량한 힘숨찐들은 어쩌라고! 정의로움도 적당히 했어야지, 적당히!”
딱 약간의 숨통 트일 자유를 줄 수 있을 정도로만, 힘을 숨길 자유 정도만. 그거면 되는데!
끄응. 절망에 빠진 하빈이 책상에 엎드렸다.“……피데스 이 자식은 대체 왜 스스로 정의의 사도를 자처해서 열일을 하는 거지?”
하빈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실 얘가 흑막인 거 아닐까? 보통 소설 같은 거 보면 그렇던데. 제일 깨끗한 놈이 반전으로 뒤가 구리고. 알고 보면 최종 보스고.”
[오, 그러하냐?]
아헤자르가 흥미롭다는 듯 끼어들었다. 하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흔한 클리셰지……. 아무리 저래도 내 눈을 속일 순 없어. 어딘가 하찮고 익숙한 냄새가 난다고. 겉으로는 정의의 사도인 척하지만 사실 집에서는 동생 피자나 뺏어 먹을 것 같은…….”
전 세계의 피데스 팬들이 들었으면 당장 들고일어났을 발언. 하지만 하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야야, 넌 정체가 뭐냐.”
하빈은 사심을 담아 가면 쓴 피데스의 사진을 콕콕 찔렀다.
“휴…….”
물론 그래봤자 이 참담한 현실이 변할 리 없었다. 하빈은 침착하게 머리를 짚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했다. 근본적인 문제.
“……어쨌든, 이제 집에서 버티기는 끝났다는 거야. 더 완벽하게 힘을 숨길 방법을 찾아야 해.”.
하빈이 폰을 두드렸다.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힘을 숨겨야 했다. 각성자 검사까지 통과할 수 있는 완벽한 ‘힘숨법’이 필요하다.
마침 며칠 전 집을 나섰던 현시우가 웬일로 그녀에게 팁이 적힌 카톡을 보내주었다.
현시우 새번호
야 이거 내 지인 중에 힘숨기고 다
니던 애가 쓰던 팁인데 참고해라
1. 직업명부터 어떻게 할 것. 비공개로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거나.
2. 힘이 새어나오는 건 컨트롤 능력이 뛰어날수록 숨기기 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