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화약을 내던진 로저스는 물론이고, 광장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마저 폭발력에 주춤거리며 떠밀렸다.
“이게 무슨…….”
매캐한 냄새, 피어오르는 연기와 먼지 바람.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모두가 멍청한 얼굴로 왕이 서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깜짝 놀라 커다래진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던 어린애가 제 어미의 품에서 장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폭발음 뒤, 적막이 가라앉은 공간의 비현실감과 사고의 정지를 깼다.
“국왕, 국왕 폐하께서는 무사하신가?”
널브러져 있던 사내 중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근위병들이 저지선을 다시 사수하며 폭탄을 던진 로저스를 붙잡았다. 옆으로 나가떨어졌던 밀리언이 황급히 잿빛 먼지 아래로 드러나는 인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폭발의 여파로 무너진 계단 앞. 먼지로 더러워진 안경알 너머, 흐릿하게 겹쳐진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화상과 등이 터지는 상처를 입으면서도 왕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코멧의 두툼한 몸 아래로, 눈을 감은 로비엔의 얼굴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흐를 것처럼 아름다웠던 탐스러운 금발을 적신 핏방울이 낙엽처럼 바닥으로 낙화했다.
“폐하!”
비명처럼 찢어지는 목소리가 로비엔을 불렀다.
로비엔은 무사하다면 응당 괜찮다고 대답해 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은 그저 굳게 닫혀 있을 뿐,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았다.
“뭐?”
의자에 기대어 책을 읽던 로잘린이 움직이던 손을 멈춘 채 되물었다.
“국왕 폐하께서 암살 위협을 당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신다고…….”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맡게 된 라나는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되는 양, 처참한 표정으로 간신히 말을 이어 나갔다.
삽시간에 로잘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들고 있던 책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 공간 안의 누구도 책을 주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암살 위협을, 왜?”
로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위협 따위를 받을 사람이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장난이냐고도 묻고 싶었지만, 마찬가지로 울상인 아랫것들을 보는 순간 까마득한 현실감이 찾아들었다.
“……폐하께선 어디에 계시지?”
손이 달달 떨렸다. 로잘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격렬한 감정을 내리눌렀다. 로비엔 앞이 아닌 곳에서 우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익숙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였다.
라나는 왕궁으로 달려온 하인에게서 들은 소식을 로잘린에게 그대로 전해 주었다. 긴급히 처치한 후, 의사와 함께 왕궁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했다고.
“폐하, 아직은 도착하지 않으셨어요. 조금만 진정하시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로잘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라나가 자신을 지나쳐 가려는 로잘린을 만류하려던 순간이었다. 로잘린의 눈동자가 라나에게로 향했다.
“비켜, 라나.”
라나가 로잘린의 시녀가 되고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로잘린은 결코 그녀에게 말을 편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길게 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라나를 배려하는 일조차도 버겁다는 듯 명령하는 로잘린에게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혼란과 절망의 냄새가 났다.
결국 라나가 옆으로 비켜서자마자, 로잘린이 망극하게도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평소에는 예민할 정도로 조심하는 계단을 구르듯 달려 나가는 왕비의 뒤로 사용인들이 다급하게 따라붙었다.
“폐하, 그러다 넘어지세요. 조금만 천천히……!”
실내용 슬리퍼도 달리는 도중에 벗겨졌다. 망극하게도 맨발로 내달리는 왕비를 보며 모두 기함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감히 붙들지도 못했다.
“…….”
그 순간, 온통 흙먼지로 엉망이 된 밀리언의 등에 업힌 로비엔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사랑스러운 금발이 온통 피로 젖은 것은 꽤 먼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움직임 없이 늘어진 몸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발견한 로잘린이 휘청거렸다.
“폐하!”
라나가 다급히 로잘린을 부축했다. 밀리언이 마땅한 예조차 갖추지 못하고 로비엔을 업은 채 내달리는 모습을 발견한 로잘린이 비척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라나의 손길은 뿌리친 채였다.
“깨끗한 물을 주십시오.”
다급히 든 궁의가 침대 위에 뉜 로비엔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죽은 것처럼 눈을 감은 자신의 사내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저 그 순간을 스치는 의미 없는 움직임일 뿐.
“로단테 백작.”
그 무의미함 가운데, 로잘린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밀리언을 발견했다. 침통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서는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물씬 풍겼다.
“왕비님.”
“폐하께선 어떤 상태이신지…….”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끔찍하게 목이 타고, 고통스러운 통증에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부에 고여 있을 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곤 해도 모든 것을 감출 순 없었다. 밀리언은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는 로잘린의 눈동자를 발견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마차에서 내려 인사하던 로비엔, 갑작스레 무너진 저지선, 그를 향해 던져진 폭발물, 그리고 로비엔의 의식불명.
“코멧 경이 온몸으로 감싸, 폭발로부터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만, 계단에서 떨어지며 머리를 부딪치신 것으로 보입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를 해한 자를 향한 격렬한 분노가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송구합니다, 폐하. 제가 국왕 폐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로단테 백작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아요.”
그러나 죄 없는 이를 원망하고 꾸짖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잘린은 괜히 누구라도 붙잡고 패악질을 부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다잡았다. 그것은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저 온유한 사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폭발물을 던진 자를 잡아 가둬요.”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로잘린은 여전히 떨리고 있는 손을 맞잡아 그 떨림이 외부로 보이지 않도록 잡아 가두었다. 그 순간이었다.
“폐하!”
로잘린의 고개가 로비엔이 누워 있던 침대 쪽으로 휙 돌아갔다. 간신히 힘을 줘 눈을 뜬 그의 눈썹께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로잘린이 서두른 걸음으로 로비엔의 침대로 향했다.
“폐하. 제가 보이세요?”
로잘린이 떨리는 손을 로비엔의 볼에 갖다 댔다. 힘없는 얼굴로도 그가 간신히 웃어 주었다.
저도 모르게 두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 맺혀, 로비엔의 얼굴이 자꾸만 흐릿하게 보였다.
“……괜찮으니까.”
“…….”
“울지 마…….”
정신도 아득해 간신히 붙잡고 있는 꼴로, 고작 하는 말이라곤 그뿐이었다. 마치 로잘린이 이처럼 불안해할 것을 알아 온 힘을 다해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안 울게요.”
로잘린이 그렇게 대답하기 무섭게 로비엔이 기운이 다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 로잘린은 사르르 소리 없이 감기는 눈을 애통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다. 로잘린을 믿고 있으니, 큰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믿고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꾸준히 달려오기만 했으니까.
“로단테 백작.”
“예, 폐하.”
그러니 흔들리지 말아야지. 공포에 잠식되어 여태 그가 해 온 일을 망치는 우스운 일은 하지 말아야지.
로잘린이 힘주어 눈을 감았다 떴다.
“폭발물을 던진 자를 잡아 가둬요. 그 후에 공범이 있는지, 여죄가 있는지를 찾아 처벌하도록 하고.”
사실은 로비엔에게 폭발물을 투척했다는 자를 세워 두고, 당장 총살하라 명하고 싶었다. 시체는 조각조각 내어 들판에 버리고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만들고 싶었다.
“취조한 내용은 신문사들에 퍼뜨려요. 전국 방방곡곡, 이 참상을 모르는 이가 존재하지 않도록.”
물론 그렇듯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가치는 로비엔이 추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로잘린이 아는 한, 높은 확률로 아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복수는 그가 막을 수 없는 법이었다.
“특정 정치사상을 옹호하는 자라면, 그를 강조해 부정적인 인상을 퍼뜨려야 할 테고.”
다만, 그런 복수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그 시기는 조금쯤 늦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로잘린의 시선은 파리한 안색으로 다시 눈을 감은 로비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밀리언은 그 안타까운 모습을 침울하게 살피다가 묵례한 후 로비엔의 침실을 떠났다. 이후에는 처치를 마친 궁의도 물러났다.
‘외상은 크게 없으나 계속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시니, 폭발의 여파로 머리를 부딪친 탓인 것 같습니다.’
그의 머리를 적신 피의 대부분은 코멧의 피를 덮어쓴 것이었다. 다만, 외상이 크게 없어도 그가 깨어나지 못하는 만큼 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고.
로잘린은 침대 옆에 둔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로비엔을 응시했다. 흙먼지로 옷이 엉망이 되고, 하얀 침대보가 피로 얼룩져 피비린내가 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폐하.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물려요. 그리고 폐하의 몸을 닦아 드려야 하니까 깨끗한 수건과 물을 가져와요. 갈아입을 옷도.”
주저하며 다가온 라나가 저녁 시간임을 일렀으나, 로잘린은 단박에 식사를 내쳤다. 대신 로비엔의 몸을 정돈할 수 있는 물건과 그와 홀로 남을 시간을 요구했다.
“초에 불만 붙여 두고 가겠습니다, 폐하.”
라나가 로잘린을 살피며 이야기했다. 로잘린은 대꾸하는 대신, 마른 수건을 깨끗한 물에 적셔 로비엔의 얼굴을 꼼꼼히 닦았다.
어스름한 노을빛이 깔렸다가, 어둠이 바닥부터 밀도 높게 로비엔의 침실을 메우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촛불은 그 사이에서 간신히 제 몫을 수행하고 있었다.
“돌아오면 같이 목욕을 하자 하시더니.”
“…….”
“깨어나셔도 한동안은 무리겠어요.”
로잘린이 직전보다 훨씬 깔끔해진, 창백해진 제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농담을 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꾸 없는 적막이 낯설었다.
“폐하께서 제 습관을 잘못 들이신 것 같아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로잘린은 더욱 열심히 입을 놀렸다. 생각나는 대로 입을 열고, 이야기했다. 조금이라도 그 목소리가 그의 귓가로 스며들어, 그가 눈을 뜨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바라며.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저를 봐 주지 않으시니 낯설고 어색해요.”
로잘린의 가느다란 손끝이 로비엔의 이마에 난 긁힌 상처를 미약하게 더듬었다. 의식이 없어 아프다는 것도 모를 사람인데도, 혹여라도 그가 통증을 느낄까 두려워하는 행동이었다.
“어서 일어나서 저를 꼭 끌어안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폐하께서 안아 주시면 무척이나 안정감이 들거든요.”
그 품 안에만 있으면 어떠한 풍파도 없을 것처럼 안심이 됐다. 지금도 매한가지였다. 이 사내의 품에 안겨만 있을 수 있다면.
로잘린이 로비엔 곁에 누우려고 의자에서 일어서다 멈칫했다. 드레스 아래, 지저분한 맨발이 시선에 잡혔다.
“……윽.”
갑자기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안 돼. 안아 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울지 마.
“무서워요. 나 지금, 너무 무서워…….”
그렇게 생각해도 하릴없었다. 로비엔이 보았다면 당장에 달려들어 깨끗하게 닦아 주고, 실내용 신발을 신겨 주었을 더러워진 맨발이 그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나만 홀로 남겨 둔 채 떠나면? 이 사랑이 기어코 나를 절름발이로 만들면 어떡하지?’
어느 날 그에게 두서없이 털어놓던 두려움이 다시 찾아들었다. 로잘린은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꼈다. 어깨의 작은 떨림은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