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첫해 인수는 독일의 FA컵인 DFB-포칼을 따냈다. 리그에서는 바이에르 뮌헨과의 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하는 바람에 2위에 머물렀지만 두 번째 시즌 첫 경기인 DFL-슈퍼컵을 우승했다. 지난 시즌 놓쳤던 분데스리가 우승. 이번 시즌도 33라운드까지 치렀지만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 1점 차이로 살얼음 같은 순위경쟁을 이어갔다. 다른 3대 리그가 20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분데스리가는 18개 팀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34라운드가 마지막 경기였다. 그 경기가 1위를 놓고 다투는 바이에른 뮌헨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대박매치였다.
“그래도 일정은 우리한테 웃어주지 않아? 뮌헨이 오랜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라갔잖아.”
“우리도 어떤 멍청이가 급발진하는 바람에 출전 못 하는 건 마찬가지지.”
2년 전 인수의 영입에 성공한 레버쿠젠. 자유계약으로 인수를 잡은 레버쿠젠은 그해 영입시장에서 폭풍 영입을 보여줬다. 처음 월드클래스급 영입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20살 이하의 유망주들을 영입하긴 했다. 그러나 독일은 물론이고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가리지 않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인수가 레알 마드리드에 있을 때 특유의 카리스마로 유망주를 잘 이끈다는 평가를 믿은 결과였다.
지난 시즌 초반에는 적응하지 못한 유망주들 때문에 승보다는 무승부와 패가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나며 인수와 호흡이 맞아가며 DFB-포칼과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하며 레버쿠젠 보드진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가끔 터져 나오는 영건들의 단점.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지난 33라운드. 레버쿠젠과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주전 공격수인 토마스 벤더가 상대의 거친 수비에 발끈했다. 주먹을 날릴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지만 주심 앞에서 상대를 몸으로 밀어버렸다. 상대의 할리우드급 액션이 가미되어 있긴 했지만 주심이 이미 말로 경고를 했었기에 옐로카드가 나왔다. 이미 누적되어있는 카드가 있었고 결국 중요한 34라운드에는 출전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도 정이 있잖아. 정이라면 벤더의 빈자리를 채워주겠지.”
“워낙 기복이 커서 말이지. 잘할 때는 해트트릭도 하고 날아다니면서 못할 때는 경기장에 있는 줄도 모를 정도의 활약밖에 보여주지 못하잖아.”
인수는 한국에서 왔다는 정별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19살로 레버쿠젠 유스에서 올라온 스트라이커 자원이었다. 한국어로 소통이 됐기에 인수도 많이 챙겼던 선수였지만 여전히 기복이 있는 플레이는 같이 뛰는 선수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주사위 6이 나오길 기대해야지. 그래도 요즘은 괜찮았잖아.”
“그러는 너도 잘해야지. 지난 뮌헨전처럼 알까지 말고.”
지난 11라운드에서 맞붙었던 양 팀. 인수의 선제골과 추가골로 2:0으로 앞서나갔다. 후반 바이에른 뮌헨이 추격하는 골을 터트렸지만, 추가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점. 레버쿠젠에서 가장 믿는 수비수인 얀 뵈른의 실수가 나왔다. 그냥 걷어내기만 했어도 되는 쉬운 공을 가랑이 사이로 흘리고 말았다. 그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지며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무승부가 되어버렸다.
“네가 거기서 알만 안 깠어도 33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잖아.”
“내가 실수하고 싶어서 실수했냐고. 경기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잖아.”
뵈른은 인수의 지적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인수가 레버쿠젠에 영입되며 가장 기뻐했던 선수가 뵈른이었다. 레버쿠젠의 마지막 우승 후 주축선수들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대거 이적했다. 한순간에 약팀이 되긴 했지만 워낙 튼튼한 유스풀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찌어찌 수습하긴 했었다. 어떻게든 다시 우승하고 싶었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벽은 높았다. 드디어 7년 만에 다시 우승할 기회가 왔으니 반드시 우승을 가져와야 했다.
***
레버쿠젠에 위치한 바이아레나. 3만 5천에 이르는 좌석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7년 만에 분데스리가 우승에 도전하는 홈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가. 홈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잖아.”
인수는 킥오프가 되자 쏜살처럼 바이에른 뮌헨의 진영을 휘저었다. 이번 시즌만 벌써 4번째 대결하는 양 팀. DFL-슈퍼컵에서는 레버쿠젠이 승리하며 팀 사상 첫 번째 수퍼컵을 가져왔다. 분데스리가 1차전은 2:2로 무승부를 거두었고, DFB-포칼은 8강에서 만나 바이에른 뮌헨이 3:1로 승리를 가져갔다. 이번 시즌 1승 1무 1패로 치열하게 싸운 양 팀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놓고 다퉜다.
“하인스를 막아. 하인스만 막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던지.”
인수는 자신을 막아서는 수비수를 제친 후 전방을 침투하는 정별에게 패스했다. 13살에 독일로 축구 유학을 와 지역인들에게 슈테른 정이라 불리는 정별. 대한민국의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고 있었지만, 아직 기복이 심한 플레이가 단점이었다. 컨디션이 좋다면 인수가 뒤에서 찔러 준 패스를 어떤 식으로든 처리할 것이었다.
“형.”
프리미어리그와 라리가를 거쳤지만, 처음으로 한 팀에서 만난 한국 선수가 정별이었다. 필드에서는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했지만 언제나 형이라고 부르는 녀석이 싫지 않은 인수였다.
인수가 보낸 공을 뒤꿈치를 이용해 앞으로 돌려놓은 정별은 수비를 떨치며 좌측으로 파고드는 인수에게 리턴했다. 바이에른 뮌헨 깊숙한 곳에서 이루어진 2:1 패스. 순식간에 수비가 뚫린 바이에른 뮌헨은 최종수비수가 인수와 정별을 막아섰다.
인수는 왼쪽 사이드를 파고드는 퉁가에게 공을 넘겼다. 인수와 함께 레버쿠젠에 영입된 퉁가. 가나 출신으로 레버쿠젠에서 2년을 뛰며 수준급의 윙포워드로 발전했다. 더 발전할 수 있는 기량을 갖췄다는 평가답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퉁가였다. 인수의 패스를 받은 퉁가는 사이드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크로스를 올렸다.
“걷어내,”
“마무리를 지어.”
골문 앞으로 올려온 공을 서로 처리하려고 하는 양 팀. 서로의 견제 속에 이루어진 정별의 헤더. 정확히 이마에 맞추지 못했기에 크로스바를 크게 넘어가고 말았다.
“좋아. 잘했어.”
인수는 마무리를 지은 정별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자신의 패스를 받은 모습이나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수들을 뚫고 헤더하는 모습까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한 스트라이커의 컨디션이 좋다는 것은 인수가 가지는 부담을 줄여 주었다,
분데스리가 10연패의 기록도 가지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은 다시 그 기록을 달성하겠다는 듯 원정이었음에도 무섭게 레버쿠젠을 몰아붙였다. 서로 강 대 강으로 맞붙은 양 팀의 경기. 승부는 사소한 실수로 균형이 무너졌다.
바이에른 뮌헨의 1번이자 독일 대표팀 주전 골키퍼인 하베르츠. 전반 추가시간이 거의 지나고 주심이 휘슬을 불기 직전 공을 처리하기 위해 수비수에게 공을 던졌다. 달려드는 정별을 보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한 하베르츠. 중간에 공을 끊은 정별은 그대로 드리블해 바이에른 뮌헨 골문 앞으로 달렸다.
순간 당황한 하베르츠가 정별을 막기 위해 앞으로 튀어나왔다. 침착하게 하베르츠까지 제친 정별은 가볍게 공을 밀어 골문 안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레버쿠젠은 전반 종료 직전 정별의 골로 1:0으로 앞선 채 하프타임에 돌입했다. 바이아레나에 모인 레버쿠젠의 팬들은 7년 만에 다가온 팀의 두 번째 우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으로 시작된 후반. 우승을 놓칠 수 없었던 바이에른 뮌헨은 라인을 끌어올리며 레버쿠젠을 밀어붙였다.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는 뮌헨. 그럴수록 뮌헨을 막으려는 레버쿠젠의 선수들과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
“슈테른. 저것들 점점 앞으로 나오는 것 보이지. 손으로 좌우 표시할 테니까 내가 공 잡으면 무조건 뛰어 들어가. 네 장점은 공간침투와 스피드야. 벤더와 넌 달라. 네가 가진 장점을 살려. 벤더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려고 하지 말고 말이야.”
“알았어요. 스피드라면 자신 있어요.”
“자신 있다는 소리는 에디나 이기고 말해. 지난 휴식기에 단 한 번도 못 이겨놓고 말이야.”
지난 시즌을 마치고 소튼에서 열린 훈련캠프. 인수는 레버쿠젠에서 만난 유망주 두 명을 합류시켰다, 프로 1군 무대에서 첫해를 보낸 정별과 퉁가. 인수가 레버쿠젠에 이적했을 때부터 따랐던 선수들이었다. 스피드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정별이었지만 에디와 같이 훈련하며 벽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도 믿어봐요.”
계속해 밀어붙이는 바이에른 뮌헨. 시간이 지나가며 조급함이 눈에 보였다. 앞으로 찔러 주는 패스를 중간에 끊은 뵈른. 뵈른은 공을 바로 전방으로 보냈다.
“돌아가.”
뵈른으로부터 시작된 역습. 중간다리를 거쳐 인수에게 연결됐다. 인수가 공을 잡자마자 뛰기 시작하는 정별. 바이에른 뮌헨이 펼쳐놓은 오프사이드트랩을 뚫어내고 인수의 패스를 잡은 정별. 바로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오른쪽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봐. 하인스도 체크하고.”
정별과 침투하는 선수들을 번갈아 보며 수비진에 지시하는 하베르츠. 공을 몰고 들어오는 정별보다 무서운 것이 후방에서 침투하는 선수였다. 눈에 보이는 선수는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수 3, 그리고 레버쿠젠의 공격수 2이었다. 언제든지 땅볼 크로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정별이 골라인을 따라 페널티지역까지 침투해서야 수비가 정별에게 다가섰다.
자신에게 달려오는 수비를 본 정별은 바로 중앙으로 공을 빠르게 찼다. 첫 번째 목표는 바이에른 뮌헨 수비 앞에서 뛰고 있는 헤튼. 헤튼이 여의치 않으면 뒤에 따라붙고 있는 인수가 두 번째 목표였다.
“끊어.”
정별의 컷백플레이에 몸을 날리는 헤튼과 수비수. 하베르츠가 간절하게 외쳤지만, 공은 두 선수를 모두 비켜났다. 뒤에 따라붙는 인수에게 연결된 공. 골을 내줄 수도 있는 위기였기에 바이에른 뮌헨의 최종수비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 마.”
하베르츠가 간절히 외쳐봤지만 이미 늦었고 인수가 수비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삑.
인수가 넘어지자마자 재빨리 달려온 주심이 페널티 포인트에 손을 찍었고 바로 이어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완벽한 골 찬스에서 들어온 태클이었기에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들도 항의할 생각도 못 하는 완벽한 반칙이었다.
후반 37분. 인수는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2점 차로 점수를 벌렸다. 추가시간까지 계산해도 10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더군다나 퇴장으로 한 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추격할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10분이 지난 후 주심이 길게 휘슬을 불었고 레버쿠젠은 7년 만에 마이스터 샬레를 되찾아왔다. 팀 창단 이후 두 번째 마이스터 샬레였고 인수의 영입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우승이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레버쿠젠과 계약이 끝나는 인수는 분데스리가에서의 목표였던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