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2044년 5월 16일. 영국 사우스햄튼 공항에는 수많은 기자로 발 디딜 틈이 빽빽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6년간의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유로 2044를 위해 귀국하는 인수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었다. 그 뒤로는 인수의 귀국을 환영하려는 팬들로 시끌벅적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국제선 입국장의 문이 열리고 인수가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레이와 나란히 걸어 나왔다. 첫째를 낳고 이 년 후 둘째를 낳은 인수와 레이 부부. 두 아이는 쏟아지는 플래시에 눈살을 찌푸리며 칭얼거렸다.
“6년간의 스페인 생활에 대해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다음은 분데스리가가 될 것이라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이적할 팀은 정해졌습니까?”
“이번 시즌 선발출전보다 교체 출장이 많았습니다. 스페인 이적 후 처음으로 득점왕을 놓쳤는데 토레스 감독에게 하실 말씀 없습니까?”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동안 처음으로 무관의 해를 보내셨는데 이에 대해 한마디 해주시죠.”
기자들은 인수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통제선 안으로 몸까지 내밀며 마이크를 뻗었다. 스페인에 파견 나가있던 기자들이 한 마디도 못 들었다고 전해왔다. 여기서까지 한 마디도 듣지 못한다면 데스크에서 가만있지 않을 터였다.
“인터뷰는 내일로 예정된 기자회견장에서 밝히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사진만 찍고 그만하시죠.”
스페인부터 따라온 랭커리지는 통제선을 넘어오려는 기자들을 막아서고 재빨리 인수와 일행을 주차되어있는 차로 안내했다. 크지 않은 사우스햄튼 공항이었다. 마중을 나와 있는 팬들이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공항을 이용하는 다른 승객을 위해 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공항 정상화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왜 직접 나와서 그 고생이에요. 이제 쉴 만한 나이도 됐으면서.”
“우리 슈퍼스타께서 재계약을 해주지 않으니까 직접 나왔지. 에이전트가 챙겨야 하는 일이잖아.”
“유로 끝나고 재계약하기로 했잖아요.”
“요즘 네 주변에 알짱거리는 녀석들이 많다고 들어서 말이지. 독일, 스페인 심지어 프랑스 애들까지 기웃거린다면서.”
얼마 후면 인수와 랭커리지 사이의 에이전트 계약이 끝나는 시기였다. 아직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유럽의 특급 에이전트들이 인수에게 계약서를 보내왔다. 그중에는 랭커리지보다 훨씬 좋은 조건들도 있었지만, 인수는 모두 거절의 메일을 보냈다. 인수가 프리미어리그에 막 데뷔했을 때부터 인수의 계획에 찬성을 보내준 에이전트였다. 에이전트가 이적료의 비율로 수수료를 받는 것을 생각할 때 FA로 이적하는 인수는 월드클래스급 선수를 데리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그 조건들을 모두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에이전트를 버릴 이유가 없었다.
“전부 거절했어요. 믿지 못한다면 지금 당장 사인하고요.”
“에이 농담이지. 뻔히 알면서 그래.”
“오늘 저녁에 올 거죠?”
인수의 귀국에 맞춰 에디가 준비한 파티가 준비되어있었다. 소튼 최고의 식당 중 하나이자 에디의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인 존앤애니를 전세 내 열리는 파티였다. 물론 예약은 에디가 했어도 돈은 인수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기이한 파티이긴 했지만.
“당연히 참석해야지. 내 고객들이 얼마나 많이 참석하는데.”
처음에는 이번에 결혼한 볼과 세도로프 감독이 해임한 이후 소튼에서 코치 생활을 하는 로카 정도가 참석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에디가 어떤 소문을 냈는지 레쉬포드 감독은 물론이고 대표팀 동료들까지 참석하면서 가게 전체를 전세 낼 정도의 규모로 커지게 되었다. 그 선수들 대부분이 랭커리지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하는 소리였다.
“그래요. 와서 고객관리 좀 해요. 다른 선수들도 더 영입하고.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을 전부 랭커리지가 관리하는 것에요. 멋지지 않아요?”
“그러다 칼 맞아. 안 그래도 영국 선수들 내가 다 가로챈다고 하고 있는데 다른 에이전트들도 먹고살아야지.”
“네, 네. 그러셔야죠.”
“저녁에 보자고. 난 내일 기자회견이 있는 호텔 좀 체크하고 저녁에 식당으로 갈게.”
“좀 이따 봐요,”
***
“이번 시즌은 좀 아쉽던데. 아스널하고 겨우 승점 1점 차이였잖아.”
소튼은 이번 시즌 7위인 아스널과 승점 1점 차이로 유로파 진출에 실패했다. 4위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도 겨우 승점 5점 차이였다. 그만큼 시즌 막판 상위권이 요동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프리미어리그였다.
“말도 마. 우리가 언제부터 유로파 진출이 당연했다고 언론들이 죽일 듯이 달려들던데. 특히 랄라나가 공격을 많이 받았지.”
에디는 몸서리를 치며 아직 계속되고 있는 언론들을 욕했다. 2년 연속 유로파에 진출하며 지난 시즌에는 4강까지 진출했던 소튼이었다. 이번 시즌 유로파와 병행하느라 선수들의 체력 문제로 7위 안에 들지 못한 소튼이었다.
“언론이야 잘할 때는 띄워주지만 물어뜯을 것만 있으면 바로 달려들잖아.”
“하긴 너도 이번 시즌 무지 당했지.”
레알 마드리드의 토레스 감독 2년 차. 토레스 감독은 인수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수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날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코어가 될 마린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린과 새로 영입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시즌을 치렀고 인수는 선발보다 교체로 더 많이 뛴 시즌이었다.
“뭐 그 덕에 계약서를 더 꼼꼼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 랭커리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배제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한 팀에 있는 것도 괜찮다니까.”
인수와 같이 데뷔했기에 소튼에서만 8년째 뛰고 있는 에디였다. 아직 24살이었지만 소튼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연차였다.
“그래. 넌 계속 세인트에서 뛰면서 우승컵은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와 그 전에 우승컵을 하나 가져오긴 해야지. 그나저나 계약서에 사인은 했어?”
서로 비밀이 없는 두 사람이었기에 에디는 인수가 다음에 갈 팀을 알고 있었다.
“아직 검토하는 중. 어차피 세부 내역만 검토하면 되는 상황이라 유로 시작 전에 사인할 거야.”
“와 레버쿠젠이 그 까다로운 조건들에 오케이 하다니 급하긴 급했나 보네.”
FA가 되기 6개월 전부터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있는 보스만룰에 따라 랭커리지는 물밑에서 분데스리가의 팀들과 계약을 조율했다. 몇몇 팀과 조율 끝에 최종적으로 남은 팀은 레버쿠젠과 도르트문트, 라이프치히 세 팀이었다. 그 중이 도르트문트는 주급 문제로 일찌감치 손을 털었고 남은 레버쿠젠과 라이프치히의 경쟁이 치열했다. 라이프치히가 높은 주급을 제시하긴 했지만 5년이라는 계약기간과 레드불에 대한 광고모델을 꾸준히 제시했다. 2년에서 3년을 생각하고 있던 인수 측과는 전혀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에 레버쿠젠이 선택됐다. 바이에른 뮌헨에 밀려 2인자와 3인자를 오가는 레버쿠젠. 5년 전 분데스리가 우승이 마지막이었기에 인수를 FA로 영입하며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유로가 끝나고 선수들 간의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면 분데스리가에서도 우승을 노려볼만한 스쿼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레버쿠젠이 우리 쪽 조건들을 다 들어줬으니까. 랭커리지가 마지막으로 조율하고 있으니 난 사인만 하면 되는 거지.”
“하여튼 너 알아서 하고 4년 후에는 다시 세인트로 돌아오는 거지?”
“응. 아마도. 우승컵을 다 따면 돌아올 거야.”
“그러다 우승 못 하면. 솔직히 4연패 중인 바이에른 뮌헨이 있는데 레버쿠젠으로 우승할 수 있겠어? 레버쿠젠이 영입한다는 선수들도 아직은 루머일 뿐이고 이적시장이 열려봐야 알 수 있잖아.”
“뭐 어떻게든 우승 할 수 있게 만들어야지. 레버쿠젠 감독님이 직접 찾아와서 시즌 구상까지 말했으니까 믿어봐야지.”
“하여튼 4년 후에는 꼭 돌아와.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은 세인트에서 들어야지.”
“당연한 소리를 뭘 그렇게 비장하게 말해. 세인트가 아니라면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올 필요성도 없어.”
인수와 에디는 다시 한번 다짐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똑같이 아들만 낳은 인수와 에디. 인수 가족이 스페인에, 에디 가족이 영국에 머물며 몇 번 보지 않은 사이였지만 공 하나를 가지고 다투지도 않고 잘 놀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날 때가 딱 저맘때 아니었어?”
“그렇지. 내가 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 네가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잖아.”
“와 기억 조작하는 거 봐. 혼자 놀고 있는 네가 불쌍해서 내가 같이 놀아준 거지. 무슨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
옛 기억을 서로 편할 대로 해석하며 티격태격하던 둘은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축구 시킬 거야?”
“뭐 자기가 한다고 하면 시켜야지. 넌?”
“나도 뭐. 그러긴 할 건데. 애들은 당연히 소튼 유스로 보내야지?”
“당연하지. 유스에 들어갈 때쯤이면 나도 소튼으로 돌아올 거니까.”
“그래. 이제 시간 다 됐다. 식당으로 가야지.”
“응.”
***
2042 독일 월드컵. 8강에서 홈팀 독일을 만난 잉글랜드 대표팀은 홈 어드벤티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잉글랜드가 8강에서 탈락하며 레쉬포드 감독은 대표팀감독을 사임했다. 다시 빈자리가 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자리. 수많은 감독이 후보에 올랐지만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다시 한번 레쉬포드에게 돌아갔다. 유로 첫 우승을 시킨 감독이었고 월드컵에서는 홈 어드벤티지라는 암초에 걸렸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대표팀 선수들이 협회에 레쉬포드 감독의 유임을 원했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협회에서는 밝히지 않았다.
레쉬포드 감독하에 유로 2044에 출전한 잉글랜드. 제재가 풀린 러시아와 러시아의 동맹국들이 유로에 출전하며 본선 진출팀이 24개국으로 늘어났다. 조별리그에서 1위로 통과하며 건재함을 자랑한 잉글랜드. 16강에서 오랜만에 유럽 무대에 모습을 보인 러시아와 만났다. 러시아의 16강전에서 인수의 멀티 골과 에디와 크레토가 골을 기록하며 클린시트를 만들어 냈다. 오랜만에 유럽 무대에 모습을 보인 러시아에 치욕을 안긴 잉글랜드대표팀은 8강에서 독일을 만났다. 지난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탈락시킨 독일이었지만 기세가 오른 잉글랜드를 막을 수 없었다. 존의 헤더 골로 포문을 연 잉글랜드는 에디의 골과 인수의 골까지 더해 3:1로 독일을 제압했다. 월드컵에서의 복수에 성공한 잉글랜드.
4강에서 이번 대회 최대 언더독으로 평가받던 크로아티아를 만났다. 월드컵에서는 준우승까지 했지만 유로에서는 4강 진출이 처음이던 크로아티아. 잉글랜드를 상대로 선제골과 추가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인수의 헤트트릭을 포함해 존의 멀티골까지 내주며 5:2로 무릎을 꿇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유로 2040 결승전에서 만났던 프랑스와 다시 만났다. 4강에서 스페인과 연장까지 가는 혈전 끝에 결승에 진출했기에 선수들의 체력이 문제였다. 지난 유로 2040의 복수를 부르짖었지만 결국 잉글랜드에게 3:1로 무너졌다. 스페인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러피언 챔피언쉽에서 2연패를 기록한 잉글랜드. 피파에서 랭킹을 선정한 이후 처음으로 1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