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2041-42시즌도 이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만 남겨뒀습니다. 2038-39부터 3년 연속 라리가 우승을 차지한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이번 시즌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죠?”
“그렇습니다. 리그 중반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이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13라운드 AT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모라타가 부상을 당했죠. 3년 전 국가대표전에서 당했던 부상과 똑같은 부위를 부상 당하면서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17라운드 발렌시아전에서 마린이, 21라운드에서는 소아레스 등 주전 선수들의 부상 악재가 잇따랐습니다. 모라타 부상 이후 주장 완장을 이어받은 하인스를 중심으로 버텨봤지만 리빌딩이 완벽하게 끝난 바르셀로나에게 우승을 넘겨주게 되었죠.”
“세도로프 감독. 이번 시즌을 끝으로 완전히 은퇴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는데요. 결국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세도로프 감독을 잡지 못한 모양새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39-40시즌부터 3년 계약을 맺은 세도로프 감독입니다. 이번 시즌이 계약의 마지막 시즌이라며 시즌 시작 때부터 은퇴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죠. 임기 마지막 시즌을 화려하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주전들의 부상으로 계획대로 되지 않았죠. 코파 델 레이 8강 탈락. 라리가는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고 이제 남은 것은 챔피언스리그뿐입니다.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3번째로 3연패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이후에는 두 번째로 도전하는 기록이죠.”
“지난 두 시즌 동안 세도로프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가 보여준 파괴력은 무시무시했죠?”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25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프로구단으로 선정됐죠? 모두 성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결과죠. 무려 2년 연속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했으니까 말이죠. 그 중심에는 세도로프 감독의 지도력이 있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지난 2년간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입한 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자리가 생겨도 카스티야와 후베닐에서 보충했죠. 세도로프 감독이 처음 공언한 대로 말이죠.”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이번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모라타와 마린이 부상 당했을 때 겨울 이적시장의 큰 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죠. 그런데도 세도로프 감독은 이적시장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후베닐에 있는 18살의 어린 코타를 불러 올렸습니다. 처음 몇 경기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그때의 3연패가 결국 준우승에 머물게 만들었죠. 세도로프 감독의 후임으로 내정된 우나이 토레스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가 다시 이적시장의 큰 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으니까요.”
“그런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상대로 바르셀로나를 만났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와는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입니다. 3년 전 세리에A에서 뛰던 존 에딩의 영입부터 시작해서 무려 1억 6천만 유로를 들여 스쿼드를 완성시켰죠.”
“우선 절대 자기가 에이스가 되지 않으면 이적하지 않겠다던 프랑스 국가대표였죠. 시코를 유로2040이 끝나자마자 바로 8천만 유로에 데려왔습니다. 예스파뇰의 주전 수비수인 콜마르를 2천만 유로에, 터키의 페네르바흐체의 골키퍼 얀다시를 3천만 유로에 영입했죠. 지난 시즌 다시 영입 전쟁에 나서면서 지금의 스쿼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안수 파티의 이적료로 긁어모은 영건들이 제 활약을 해주며 스쿼드를 더 단단하게 해주고 있죠?”
“유럽의 영건들을 긁어모은 바르셀로나의 후안 회장이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은퇴했었죠. 바르셀로나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도 위대한 클럽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요. 후안 회장이 남긴 유산이 바로 그 영건들이고 제 확약을 해주며 후안 회장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양 팀의 첫 번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대진입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만날 뻔했던 양 팀이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죠?”
“그렇습니다. 드디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엘 클라시코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대진이기도 했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엘 클라시코. 그만큼 기다렸던 대진이 41-42시즌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영국축구의 성지인 웸블던에서 말이죠.”
“꼭 누가 써 놓은 각본처럼 딱딱 들어맞는 대진과 장소이지 않습니까? 그런 역사적인 장소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시작되겠습니다.”
***
“왜 긴장돼?”
인수는 중앙에 서서 시야가 좁아져 있는 마린에게 다가갔다. 이번 시즌은 인수가 겪었던 어떤 시즌보다 어려운 시즌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모라타의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자신의 파트너인 마린도 부상을 당했다. 오프 시즌마다 함께 몸을 만들며 호흡을 맞춰왔던 마린이었다. 챔피언스리그도 2번이나 우승했던 그가 긴장한다는 건 그만큼 엘 클라시코가 주는 부담감이 크다는 것을 뜻했다.
“어차피 우리는 승리해야 해. 다른 생각은 하지만 앞에 놓인 이 공을 적의 골문 안에 처넣는 것만 생각해.”
“…….”
“그리고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저 늙은이 가는 길에 꽃은 깔아줘야 하지 않겠어?”
모라타의 부상으로 이번 시즌 내내 고생했던 사라비아였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자연인으로 살아가겠다던 사라비아. 소시오 회장까지 노린다는 취중진담이 있긴 했지만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엘 클라시코에서 진다면 사라비아가 보일 난동을 막을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산체스가 있긴 했지만 이제 골문을 주니오르에게 내주고 한발 물러서 있었기에.
“지금은 나만 보고 뛰어. 앞으로는 네가 너만 보고 뛸 선수들에게 해줘야 할 말이겠지만.”
43-44시즌이 끝나면 이적하게 될 인수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수의 자리를 마린이 이어받게 되어있었다. 마린도 능력이 있었기에 보드진도 마린을 중심으로 스쿼드를 바꿔나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인수는 마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센터서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소아레스 부상 이후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역할은 인수에게 주어졌다. 마린이 로테이션으로 휴식을 취할 때는 다시 중앙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지만.
***
레알 마드리드의 킥오프로 시작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자 엘 클라시코. 경기 시작 전부터 피 튀기는 혈전이 되리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할 것이라는 뜻이었지 진짜 피가 튀길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픽션을 뛰어넘는 법이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며 레알 마드리드의 골대 쪽으로 뛰어왔다. 바르셀로나가 찬 코너킥에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주니오르를 포함해 5명의 선수가 뒤엉켰다. 옆으로 굴러떨어진 공을 브왕가가 재빨리 걷어내긴 했지만 중요한 건 뒤엉켜 넘어진 선수들이 일어나지 못했다.
“주니오르.”
“존.”
“가르시아.”
“마르체나.”
“콜마르.”
시코가 찬 코너킥에 존과 주니오르, 가르시아가 동시에 뛴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후방에 있던 콜마르가 뛰어 들어오면서 따라온 마르체나가 공중에서 뒤엉켰다. 중심을 잃은 콜마르와 마르체나가 나머지 세 선수를 밀치며 다섯 명이 동시에 뒤엉키는 사고가 발생했다.
골키퍼가 다친 상황이었기에 바로 경기를 중단시킨 주심. 나머지 선수들은 외상은 없었지만 마르체나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기에 선수들은 금방 털고 일어났고 마르체나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경기장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미 피를 본 양 팀. 경기는 더욱더 난투로 치달았다. 그 중심에는 최전방 스트라이커였지만 마린과 자리를 바꾼 인수가 있었다.
“어딜.”
“손 쓰지 마.”
“너나 몸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이야기해.”
세계에서 제일 손을 잘 쓰는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 축구를 배운 인수. 난투에는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절묘하게 어깨부터 팔꿈치만으로 상대를 뿌리치는 통에 주심도 반칙을 주지 않았다. 한 번 선이 그어진 반칙의 범위. 인수는 이걸 최대한 이용해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농락했다.
전반 40분. 다시 공을 잡은 인수는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농락했다. 오른손으로 콜마르의 왼쪽 어깨에 감고 왼쪽으로 패스 공간을 만든 인수. 뛰어 들어가는 사라비아에게 찔러주었다. 이번 경기를 자신의 마지막 경기라 여기고 뛰는 사라비아. 죽을 듯 달려 인수가 찔러준 공을 잡고 바로 중앙으로 크로스했다.
“뒤에서 뛰어드는 선수들을 봐.”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의 골키퍼로서 완전히 자리 잡은 얀다시. 큰 소리로 뒤에서 파고드는 선수들을 보라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콜마를 뿌리치고 뛰어든 인수와 처음부터 후방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던 마린. 두 사람이 거리를 벌리고 뛰어 들어오자 공은 앞에서 끊어야지 뒤로 넘어가면 안 됐다. 그러나 전방의 수비들이 끊어내지 못했고 후방으로 넘어오자 미끄러지는 인수의 발에 공이 걸렸다. 골키퍼가 움직일 수도 없는 구석을 향한 공.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첫 골이 인수의 발에서 터졌다.
“좋아. 잘했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남태평양의 섬에서 여생을 즐길 세도로프 감독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한 마지막 시즌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에서 모두 우승을 놓쳤다. 그래도 2년 연속 트레블을 기록한 공이 있는지라 경질하지 못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책임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 경기를 이기고 트레블을 이룬 감독으로서 은퇴하고 싶었던 세도로프 감독. 이제 늙은 몸이었지만 점프까지 뛰며 인수의 첫 골을 기뻐했다.
첫 골이 터진 이후에도 양 팀은 끊임없이 상대의 골대를 노렸다. 후반 10분 존이 레알 마드리드의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느린 화면으로 보면 존의 왼발이 한발이나 앞서 있는 오프사이드였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후반 17분. 인수는 오른쪽 사이드를 맡는 파라데스와 스위칭을 하며 바르셀로나 왼쪽 라인을 뚫었다. 중앙에 파고든 마린과 사라비아, 파라데스가 바르셀로나의 골키퍼 얀다시의 시선을 잘 끌어주었다.
얀디시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것을 본 인수는 바로 왼발 아웃사이드로 강하게 공을 찼다. 인수를 막아선 바르셀로나의 왼쪽 윙백의 허벅지를 스치듯 지나간 공은 오른쪽 골대 근처에서 골문 쪽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왼쪽 골포스트를 강하게 강타한 공은 다시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페널티지역으로 튀어나왔다.
“막아.”
“리바운드. 집어넣어.”
바르셀로나 문전에서 리바운드된 공을 두고 다투게 된 양 팀. 제일 먼저 뛰어든 선수는 인수와 자리를 바꾼 파라데스였다. 자신의 앞으로 튀어나온 공을 무지성으로 때린 파라데스. 파라데스의 슛을 막기 위해 몸을 날린 콜마르의 등을 맞고 앞으로 튀어나왔고 이번에는 마린이 다시 골을 강하게 찼다. 마린의 앞을 막아서 바르셀로나 중앙수비수의 허벅지를 맞은 공. 왼쪽으로 몸을 날린 얀디시와는 반대쪽인 오른쪽 골문을 통과했다.
삐익.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와 4번 만나 1승 3패로 열세를 보였던 레알 마드리드. 가장 중요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반 17분 2:0으로 앞서 나갔다.
세도로프 감독은 사라비아와 파라데스를 빼고 누네스와 후베이루를 투입했다. 2:0의 스코어만 지키자고 나온 레알 마드리드. 후반 45분이 지나고 추가시간에 존이 헤더골을 터트리긴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나온 만회골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3연패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고 은퇴하는 세도로프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와 아름다운 작별을 하는 순간이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나고 3주 후. 2042 독일 월드컵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