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93화 (193/200)

193화

“길었던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두 해설위원은 아직도 주먹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드프라우스, 전반 어떻게 보셨습니까?”

워드프라우스는 캐스터의 말을 듣고서야 쥐었던 주먹을 펼쳤다. 땀에 흠뻑 젖은 두 손. 그만큼 긴장하면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크레토가 첫 골을 터트렸을 때만 하더라도 이번 대표팀이 역대 최고의 스쿼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2분 후 크레토의 퇴장부터 시작해 40분 넘게 주먹을 펴지도 못하고 경기를 지켜봤다. 오랜만에 펴진 손은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느냐며 찌릿찌릿한 신호를 보냈다.

“휴. 전반 경기를 보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스코어는 1:0으로 앞선 채로 끝났지만 한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전반이었습니다.”

“스코어와 상관없이 보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제 두 손에서는 땀이 흐르고 저리네요. 이 경기를 지켜보는 잉글랜드 팬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결승전을 위해 파르켄에 중계진을 보내며 해설진을 고민하던 방송사에서는 제임스 워드프라우스와 애슐리 콜을 파견했다. 이번 시즌 챔피언십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노리치의 감독을 맡아 12위라는 안정적인 등수로 1부 리그에 안착시킨 애슐리 콜 감독이었다. 은퇴 후 코치와 감독을 맡아왔기에 해설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국제대회에서 안정적인 해설로 인기가 높았다.

“전반을 총평하기에는 첫 골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죠. 양 팀 모두 공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기에 초반부터 빠른 공방을 주고받았습니다. 하인스의 중앙돌파를 푸레가 잘 막았죠. 그러나 왼쪽에 있는 에디와의 2:1 패스로 프랑스의 시선을 완전히 왼쪽 사이드로 돌려버렸습니다. 에디에게 공이 간 시점에서 프랑스 수비를 보시면 모두 왼쪽으로 시선이 돌아가 있는 것이 보이시죠? 특히 존이 최전방에 서 있다 보니 오른쪽을 막아야 할 선수들의 시선도 모두 왼쪽을 향했습니다. 이를 놓칠 하인스가 아니죠. 바로 오른쪽으로 열어주자 크레토의 중거리슛이 나왔습니다. 크레토를 막던 도르맹이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지 않았다면 슛 찬스가 나지 않았을 겁니다. 다쿠르가 슛코스를 읽고 왼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도르맹의 엉덩이 부근을 맞고 공이 꺾이면서 첫 골이 터졌습니다.”

“워드프라우스가 골 장면을 이야기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선수는 골을 넣은 다쿠르도 아니고 어시스트를 한 하인스도 아니었죠. 바로 존이 영리하게 수비를 잘 끌어냈어요.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비를 왼쪽으로 이끌면서 슛 코스를 만들어준 것이 좋았습니다.”

“두 해설위원께서 첫 골 장면을 분석해주셨는데요. 바로 2분 후 크레토의 백태클이 나왔습니다. 주심이 바로 퇴장을 지시했는데요. 이 장면을 보시면서 이야기해 주시죠.”

워드프라우스와 콜은 리플레이로 나오는 장면을 보고 신음성 같은 소리를 냈다. 리플레이를 보는 내내 입을 다물었던 두 사람은 리플레이가 끝나자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긴 시즌을 뛰다 보면, 아니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오늘은 되는 날이라고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잔디가 죽은 곳이 보이면 잔디가 팬 홈까지 다 보이는 날이죠. 그런 날 골까지 넣었으면 어떤 플레이를 해도 슈퍼플레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죠. 크레토가 그런 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반 초반 움직임이 양 팀에서 가장 좋았거든요. 뒤에서 태클을 해도 공을 찬다면 슈퍼플레이가 되는 거죠. 그러나 그런 날일수록 조심해야 하는데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거 같습니다.”

“워드프라우스가 말한 대로 그런 날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리플레이를 보면 슬라이딩을 하는 시점에는 정확히 공을 보고 태클했죠. 그러나 결국 주아멜의 디딤발을 걷어차고 말았습니다. 주아멜이 살짝 점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선수 생활까지 위험할 뻔한 태클이었습니다.”

“주심이 바로 뛰어와서 상황을 정리하고 바로 레드카드를 꺼냈거든요. 유로 결승전에서 전반 7분 만에 퇴장 선언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현직 감독으로서 주심의 판정을 존중합니다.”

애슐리 콜은 간단히 대답하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콜 감독은 현직 감독의 입장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워드프라우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주심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죠.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결승전이니만큼 부담감이 있다.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그리했듯 결승전에서도 휘슬을 아끼지 않고 불겠다. 대충 이런 워딩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맞습니다. 그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봤는데 중요한 단어는 다 들어있었죠.”

“그리고 경기 시작 전에 양 팀 주장인 하인스와 르마를 불러 다시 주의를 시키는 장면이 있었죠. 분명 자신의 인터뷰한 내용을 양 팀 주장에게 다시 주지시켰을 겁니다. 경기 초반이었지만 비신사적 플레이. 그것도 선수 생활을 끝낼 수도 있는 플레이를 한 것에 대해 정확히 판정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잉글랜드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보면 카드 색이 아쉬울 수 있겠지만요.”

“크레토가 퇴장당하고 난 이후 플레이를 보면 참 놀라웠는데요.”

“모든 선수가 몸을 날려 수비하는 플레이가 돋보였죠. 특히 주장은 하인스지만 수비의 핵심은 케이힐입니다. 전반 내내 하인스와 케이힐이 가까이 붙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화면이 잡혔는데요.”

“하인스와 케이힐이 대화를 한 이후에는 하인스는 공격수들을 케이힐은 수비수들을 다독이는 모습이 보였죠. 평균연령이 낮아져서 걱정했던 팬들이 많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안심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계속 소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크레토 퇴장 이후 흔들리는 듯 보였던 중앙수비수들도 바로 안정을 찾았죠. 다 소통의 결과입니다. 그로 인해 몸을 날려서 뚫리더라도 바로 다음 선수가 대기할 수 있는 수비시스템이 만들어진 거죠.”

“그렇군요. 그럼 잉글랜드 후반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골을 먹지 않아야 합니다. 하인스와 에디, 존이 소튼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선수들이라고 하지만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거든요. 특히 전반에 많이 뛰었던 핸더슨과 케일을 후반에는 교체를 해줘야 할 것으로 생각하면 어떻게든 점수를 지켜야 합니다.”

“지금 잉글랜드 선수들을 생각하면 팽팽히 당겨있는 실 같은 느낌이거든요. 이 팽팽한 실이 끊어질지. 아니면 느슨해져서 안정될지는 골에 달려있습니다.”

“그럼 잠시 쉬었다가 후반으로 돌아오겠습니다. 1:0으로 앞선 잉글랜드 후반에도 쭉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

“이럴 때는 감독이란 자리가 무겁기만 하네. 차리라 선수로 뛰고 있으면 더 편할 거 같아.”

“그래도 감독이 뒤에서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선수들에게 힘이 되는 법이죠. 직접 선수로 뛰어봐서 잘 알 테지만.”

레쉬포드 감독과는 달리 선수 생활을 하지 않은 브리드핏 수석코치였다.

“산타와 베이어는 준비됐죠?”

전반에 많이 뛴 핸더슨과 케일이었다. 하프타임 때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회복했다고 하지만 프랑스의 파상공세를 받다 보면 바로 체력이 떨어진 것이 눈에 보일 터였다. 이미 전반이 끝날 때부터 산타와 베이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됐죠. 아. 결국 뺏기네. 숫자 싸움에서 밀리니 하인스도 별수 없네요.”

잉글랜드의 킥오프로 시작된 후반. 인수는 에디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프랑스 진영으로 올라갔다. 숫자상으로 밀리고 있었기에 수비수들이 많이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 인수는 에디와 존을 이용해 점유율을 올리고 있었다. 그것을 그냥 둘 프랑스가 아니었다. 인수와 에디에게 2명씩의 수비가 붙으며 공격을 시작한 지 3분 만에 공을 뺏기고 말았다.

“차라리 역습상황이면 모르겠는데 저렇게 수비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죠. 드리블의 신이 와도 저렇게 수비하면 뚫지 못하죠.”

“그래도 하인스와 에디다 보니 바로 뒤로 돌아와서 수비를 해주네요.”

“하인스의 수비를 믿으면 안 돼요. 그냥 장애물, 아니 콘 하나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요.”

인수와 한 시즌을 뛰어봤던 레쉬포드 감독. 인수의 수비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래도 장애물은 장애물 아닙니까. 속도를 줄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대신 공격에서 전부 만회하고 있기도 하고요.”

“핸더슨. 나가면 안 돼. 케일 앞으로 나와. 잉스와 라인을 맞춰야 할 거 아냐. 라인을 봐.”

브리드핏과 이야기를 나누던 레쉬포드 감독은 앞으로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크레토가 퇴장당하며 비어있는 오른쪽 라인. 인수가 오른쪽을 맡아주더라도 수비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핸더슨이 그 공간을 전부 커버하고 있었다. 인수가 뚫리자마자 앞으로 뛰어나가는 핸더슨. 뒷공간이 비었다.

“잉스. 프랑코를 봐.”

핸더슨이 뛰어나간 자리에 프랑코가 옆으로 이동했다. 이번 경기에 스트라이커로 나서긴 했지만, 윙에서도 충분히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프랑코였다. 잉스가 프랑코를 따라 오른쪽으로 향하자 그만큼 르마에 대한 수비가 얇아졌다.

“시코를 막아.”

“달려들지 마. 전방으로 패스를 못 하게만 해.”

잉글랜드 선수들이 움직임을 가져가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숫자상의 불리함은 어쩔 수 없었다.

“두베르네.”

시코는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케이힐을 보고 공을 옆으로 돌렸다. 메슈가 두베르네를 막고 있었지만 움직일 공간이 충분했던 두베르네는 시코가 패스한 공을 잡지 않고 방향만 틀어서 전방으로 보냈다.

콜을 등지며 서 있던 르마. 두베르네가 패스한 공을 발끝으로 공중으로 띄웠다.

“돌아서지 못하게 붙어. 슛 찬스를 내주지 마.”

볼이 소리치기도 전 콜은 르마의 등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이 녀석 왜 이렇게 힘이 세.’

등으로 콜을 밀어붙이는 르마. 공중에 띄운 공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뒤로 돌렸다. 시코와 두베르네가 좌우로 벌어지며 만들어진 틈. 푸레가 후방에서 뛰어 들어왔다. 시코와 두베르네를 막느라 푸레를 신경 쓰지 못한 잉글랜드. 르마가 패스한 공을 받아 강하게 찼다.

푸레의 발 방향을 보고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볼. 방향은 정확히 잡았지만 푸레의 슛이 워낙 강했다. 손목이 꺾이며 공의 방향이 위쪽으로 바꿨지만, 크로스바를 맞은 공이 그대로 골라인 넘어서 떨어졌다.

“잘했어. 작전대로야.”

하프타임 내내 프랑스 감독이 지시했던 전술. 프랑코가 최종수비수를 데리고 사이드로 빠지면 중앙에서 시코와 두베르네가 공간을 만들기로 했었다. 마무리를 맡은 푸레도 한 방이 있는 선수이니만큼 마무리를 맡겼다. 전반 내내 수비룰을 수행하느라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은 푸레를 공격으로 쓴다는 작전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제길. 너무 이른데.”

후반 시작 4분 만에 터진 프랑스의 만회골. 레쉬포드감독은 미리 뛰어나가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했다. 핸더슨이 뛰쳐나가지 않았더라면 프랑코가 외곽으로 빠지더라도 잉스가 그렇게까지 따라가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랬다면 르마에게 공이 갔을 때 잉스가 중앙을 막을 시간이 충분했다.

이미 이겼다는 듯 포효하고 있는 프랑스 선수들을 보며 레쉬포드 감독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세리머니가 길어지자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주심을 원망도 해보고 후반 시작하자마자 핸더슨과 케일을 바꿨어야 했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다 경기장에 서 있는 인수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인수의 눈빛. 선수가 포기하지 않았는데 감독인 자신이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제 후반이 시작됐을 뿐 기회는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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