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92화 (192/200)

192화

전반 5분 만에 얻은 첫 골의 기쁨이 다 가시기도 전에 크레토의 퇴장으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특히 레드카드를 받고도 선뜻 나가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크레토를 보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마음은 더욱 착잡했다.

“크레토.”

인수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크레토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렀다.

“미안해.”

“넌 네가 판단했을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 플레이잖아. 골까지 넣었는데 너무 고개 숙이지 마.”

“그래도…….”

“우리만 믿어. 우린 팀이잖아.”

“너무 끌지 말고 라커룸으로 돌아가. 경기해야지.”

주심의 퇴장 선언이 나왔는데도 크레토가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에 서 있자 참지 못한 주심이 인수와 크레토의 곁으로 다가왔다. 정당한 판정이었다. 백태클이었고 디딤발을 채인 상대 선수는 아직도 터치라인 밖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라커룸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하는 경기를 봐. 네 몫까지 최선을 다해서 뛸게.”

인수가 다시 크레토의 어깨를 두드리자 크레토도 천천히 경기장을 벗어나 치료를 받는 주아멜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라커룸으로 돌아가 있어. 반드시 이기고 돌아갈 테니까. 다들 물러나. 우선 수비부터 안정화해.”

레쉬포드감독도 벤치를 지나는 크레토의 등을 두드리고는 경기장을 보고 외쳤다.

“이미 다들 중앙선에서 물러났는데요. 확실히 하인스가 상황판단이 빠르긴 하네요.”

서있는 레쉬포드에게 다가온 수석코치는 레쉬포드가 말하기 전에 수비라인을 잡아주는 하인스를 칭찬했다. 크레토가 퇴장을 당한 어수선한 상황. 그렇다고 상대가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라고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은 뻔했다. 그럼 답은 우선은 치고 들어올 프랑스를 막아야 했다. 그걸 알았기에 에디는 왼쪽에 인수는 오른쪽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들 집중해. 우선은 막고 보자.”

크레토의 발에 챈 주아멜은 충격이 가셨는지 가볍게 뜀뛰며 채인 발을 점검하고 있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기에 다행이긴 했지만 주아멜이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리고 들어오고 나서도 수비를 안정화시켜야 했다. 다행인란 점은 퇴장당한 크레토가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은 10:10인 상황이었다. 데드볼 상황이거나 시간이 끌리면 주심이 들어오란 사인을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10:10이었다.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로 다시 시작된 공격. 프랑스도 아직 잉글랜드가 퇴장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했는지 빠르게 공을 돌리며 공격을 전개했다.

“에디. 붙어. 주위에 공이 온다 싶으면 딱 붙어.”

자신이 맡은 오른쪽 라인을 살피며 반대편 사이드에 있는 에디에게까지 지시를 내리는 인수. 주아멜이 경기장 밖에 있는 상황이었기에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었기에 에디에게 지시를 내리고 시코의 적극적으로 마크했다.

“공도 없는데 너무 적극적으로 붙는 거 아냐?”

시코는 공도 오지 않았는데 가까이 붙는 인수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지금도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라인 밖에서 의료진과 이야기하고 있는 주아멜은 AS모나코의 팀 동료였다. 이번 시즌 자신과 호흡을 맞추며 궂은일을 모두 받으며 자신이 날뛸 수 있도록 도와줬었다. 비록 한 명을 퇴장시키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주아멜이라고 생각하는 시코였다.

그런 시코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인수. 지금은 상대에게 반응하기보다 수비를 더욱 두텁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핸더슨. 프랑코가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게 따라붙어. 아직 오른쪽 라인을 파고들 사람이 없잖아.”

인수의 지시에 바로 프랑코에 따라붙는 핸더슨. 주아멜이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당장은 프랑코를 막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시코가 전방으로 보낸 두 번의 패스가 모두 프랑코에게 갔다는 것은 경기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온 작전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프랑코가 핸더슨과 잉스에게 막혀 공간을 만들지 못하자 이번에는 르마가 왼쪽 사이드로 빠졌다.

“르마.”

르마가 콜의 견제에도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으로 빠져나오자 살리바가 바로 르마에게 공을 찔렀다. 콜을 등진 채로 공을 끌던 르마는 살리바가 케일의 마크를 벗겨내자 바로 살리바에게 공을 돌렸다.

“뒤에서 들어오는 시코와 두베르네를 막아.”

살리바에게 다시 공이 돌아가니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낀 볼. 중앙에 있던 잉스에게 소리쳤다. 시코에게는 인수와 케이힐이 붙어 있었고 두베르네에게는 메슈가 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후방에서 페널티지역으로 뛰어드는 공격수들은 언제나 위험했다.

볼이 외치자마자 페널티지역으로 빠르게 크로스를 올린 살리바. 프랑스 차세대 에이스란 소리를 듣는 두베르네가 메슈를 떼어내고 중앙으로 침투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이미 공은 두베르네를 지나간 후였다. 반대쪽에 대기하던 프랑코가 공을 잡기 위해 거칠게 핸더슨을 뿌리치고 달려갔지만 주심은 공격자 반칙을 선언했다.

크레토가 퇴장당하고 난 바로 다음 공격은 효과적으로 막았지만 주심은 바로 외곽에 있는 주아멜에게 들어오라는 신호를 주었다. 이제 11:10의 싸움을 해야 하는 잉글랜드. 남은 80분. 추가시간까지 생각한다면 90분 가까운 시간을 10명이 막아야 했다.

“11:10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다는 법은 없어. 그렇지 않아?”

인수는 볼이 파울이 된 지점에 공을 놓는 것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한 명이 퇴장당해 불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기고 있는데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

“그래. 이기고 있잖아. 목소리를 높여보자고.”

인수와 가장 오래 호흡을 맞췄던 에디. 인수의 말뜻을 알아듣고 먼저 목소리를 높여 잉글랜드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가자.”

“우리는 삼사자 군단이라고. 저깟 닭은 치킨을 튀겨버려야지.”

“앞으로 나가. 우리가 왜 물러서야 해.”

인수와 에디의 목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저마다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사기를 올렸다.

“케이힐. 크레토의 빈자리가 생기긴 했지만 공격수가 빈 것뿐이에요. 그만큼 전방에서 시간을 끄는 것은 힘들겠지만 수비 공백이 생긴 건 아니잖아요. 케이힐이 후방을 좀 다독여줘요.”

“걱정하지 마. 어린 애들이 알아서 사기가 올라가고 있잖아. 후방은 내가 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골이나 더 넣어. 그게 최고의 포션이니까.”

“수비만 안정화되면 어떻게든 해볼게. 믿어도 되겠지.”

“나 케이힐이야.”

볼이 뒤로 물러서 킥을 하려고 하는 짧은 순간 인수는 수비라인의 핵심이자 가장 연장자인 케이힐에게 다가갔다. 케이힐도 인수가 다가온 이유를 아는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연령이 낮아지며 이제 30살이 된 케이힐이 대표팀의 최연장자가 됐다. 어려진 만큼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었다. 공격진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지만 수비까지 커버하기에는 무리였다.

주심이 공을 차지 않는 볼에게 구두로 경고하자 그제야 앞에 있는 잉스에게 공을 밀었다. 11:10의 우세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프랑스.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해 들어왔다. 잉스는 프랑코의 압박에 핸더슨에게 공을 보내고 다시 받았다. 프랑코가 핸더슨에게 붙는 사이 르마가 잉스에게 붙었다. 페널티지역 바로 외곽에서 공을 돌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

“뒤로 줘.”

볼은 잉스가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큰 소리로 불러 공이 오자마자 전방으로 길게 찼다. 의도적으로 오른쪽을 보고 찬 공이었기에 멀리 간 공은 프랑스 진영 중앙 부근에서 터치라인 아웃으로 넘어갔다.

“당황하지 마.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에 우리가 당했다고 당황하면 어떻게 해.”

“미안해.”

잉스는 자신보다 어린 볼에게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했다. 킥이 정확한 볼이 터치아웃을 만든 이유를 알았기에 더욱 미안했다.

“잉스. 아스톤빌라의 수호신이 왜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냥 네가 잘하는 대로 하면 돼.”

“알았어요.”

공격진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사기를 북돋웠다고 하지만 갑자기 달려드는 상대를 보고 다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이 걱정스러워 인수도 케이힐에게 부탁했을 터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다시 고개 들고 앞을 보고. 가슴에 달려 있는 엠블럼을 봐. 우리가 누구라고?”

“삼사자 군단.”

“우리 조국에 첫 번째 유로 트로피를 바치자고.”

“네.”

인수는 케이힐이 잉스에게 다가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후방은 케이힐에게 충분히 맡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프랑스의 점유율을 낮추는 일만 남았다.

“에디.”

“응?”

“나한테 최대한 가까이 붙어줘.”

“그럼 돌파하기가 힘들 텐데.”

에디는 인수의 말을 듣고 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장기인 사이드 돌파. 오른쪽, 왼쪽을 가리지 않고 돌파하여 크로스나 슛을 때리는 것이 에디의 장기였다. 그런 장점이 중앙으로 들어오게 되면 힘들었다.

“우선은 돌파보다 점유율을 올려야 해. 어렸을 적부터 우리 잘하던 거 있잖아.”

“아 알았어.”

인수는 존도 불러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프랑스는 잉글랜드가 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볼보이에게 바로 받은 공을 경기장 내부로 스로인해 바로 치고 들어왔다.

“존. 달라붙어.”

인수는 앞에 있는 존에게 외치고 바로 오른쪽에서 파고드는 주아멜에게 붙었다.

***

“경기를 보는 눈이 있어. 확실히.”

“선수들을 다독일 때는 다독이고 다그칠 때는 다그치는 카리스마도 있고요. 그래서 케일이 은퇴하면서 주장을 맡겨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죠.”

“이제 20살짜리인데 대표팀 주장 역할을 저렇게 잘 소화할 줄은 몰랐네.”

처음 레쉬포드 감독이 인수를 주장으로 선임할 때만 해도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전임 대표팀 주장이었던 케인의 공개 지지가 있었음에도 너무 어린 나이가 걸렸다. 더욱이 자존심 높았던 아스널의 헤리어 슈는 인수가 주장이 되면 대표팀에서 은퇴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표팀 스트라이커의 1옵션은 아니더라도 A매치 48경기에 출장하며 19골이나 터트린 스트라이커였다. 그런 스트라이커가 은퇴를 입에 담고 있었으니 협회에서도 난감한 입장이었다. 다만 레쉬포드 감독의 확고한 의지가 인수를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을 만들었다.

“이런 모습을 협회 늙은이들이 본다면 할 말이 없겠지.”

“월드컵에서 하인스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뻔히 봐놓고도 몰랐던 늙은이들이니까.”

“슬슬 수비는 안정화되어가는 거 같은데.”

레쉬포드 감독은 수석코치와 나란히 앉아 협회의 높은 자리에 앉아 살이 피둥피둥 오른 이사들을 욕했다. 이번 대회가 끝나고도 그런 표정을 지으며 고압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슬슬 전반전이 끝나가는데.”

“전반전에 그렇게 당해줬으면 후반전에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전광판의 시계는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대기심이 들어 올린 3분이란 시간도 거의 다 지나간 시점. 경기장에서는 인수가 에디와 공을 주고받으며 주심의 휘슬이 불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반전 점유율 70:30. 프랑스의 일방적인 공세였지만 스코어는 퇴장당한 크레토가 넣은 1골을 바탕으로 1:0으로 리드하고 있었다. 전방에서는 인수가. 후방에서는 케이힐이 선수들을 다독이며 꾸역꾸역 막은 결과였다. 잉글랜드가 가져간 점유율 30퍼센트도 인수와 에디가 패스를 통해 시간을 끌었던 결과였던 것을 생각하면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전반전을 통해 수비가 안정화됐고 이제는 반격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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