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89화 (189/200)

189화

“니 몸은 강철로 만들어졌냐? 준결승에서도 날아다니던데.”

8강에서 무리한 탓에 준결승에 출전하지 않고 코펜하겐에서 회복훈련을 하던 에디가 인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뛸만해서 뛴 거지. 그나저나 마지막에 내가 넣은 골 봤어? 당시에는 몰랐는데, 스톡홀롬으로 넘어오면서 다시 봤더니 내가 했는데도 정말 멋지더라. 메슈가 찬 공을 뒷발로 트래핑해서 정확히 몸 앞에 가져다 놓은 거.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거 같은데.”

“네가 한 거 보고 크레토랑 둘이서 해봤는데 딱 한 번 성공했다. 수십 번을 했는데도.”

유로 2040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쓰이지 않을 반발력이 큰 공인구. 길게 넘긴 공은 그 반발력 때문에 트래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인수가 반발력을 온전히 흡수하고 바로 몸 앞에 떨궜다. 그걸 보고 대표팀이 넘어오기 전 에디와 크레토가 시험을 해봤는데 에디만 딱 한 번 성공하고 모두 실패했다.

“그게 다 되는 거면 모든 팀이 그 장면에서 다 넣었겠지. 이번 대회처럼 뒷공간이 많이 나온 대회가 없다잖아.”

“하긴. 진짜 쉽지 않더라. 발외측에 떨구는 건 쉬운데 맞으면 튕겨 나가버리니.”

“어차피 나도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해.”

“그래. 누가 올라오려나? 넌 어디가 올라올 거 같아?”

“그래도 한번 상대해본 덴마크가 편하긴 하지. 이제 잔디에 적당히 익숙해졌고 말이야. 그런데 프랑스가 올라오지 않을까?”

프랑스. 레 블뢰라고 불리는 푸른 전사들. 유럽에서 독일, 이탈리아와 어깨를 마주할 정도로 정통 강호였다. 잉글랜드가 월드컵을 한 번 제패하고 축구 종주국이라는 낡은 명성에 기대어 있다면 프랑스는 월드컵 2회 우승, 유로에서도 2번이나 우승한 국가였다. 유로에서만 따지면 스페인에게 밀리겠지만 월드컵까지 하면 스페인을 아래로 보는 국가였다.

좁은 바다를 사이로 마주 보는 두 국가였지만 전쟁과 화해, 그리고 다시 전쟁과 화해를 반복한 역사를 가졌다. 그런 만큼 서로 질 수 없는 경쟁 관계에 있었다.

더욱이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잉글랜드와 달리 프랑스는 피파를 만들고, 피파 월드컵을 만들고, 유럽축구연맹과 챔피언스리그까지 만들었다. 축구의 저변을 확대한 국가는 프랑스라는 말이었다. 그런 두 국가가 결승전에서 만난다면 이번 유로 최고의 대진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유럽축구연맹에서는 은근 두 국가의 결승전을 바란다는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하긴. 프랑스도 맴버가 좋으니까. 특히 두베르네가 날아다닌다며.”

이제 22살인 프랑스의 신성 두베르네. 이번 시즌 파리 생제르맹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16강에서 패하며 유럽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리그 앙에서 영플레이어 수상이 확실했다. 더욱이 안수 파티와 리그 앙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이번 유로에서도 4개의 어시스트와 2골을 기록하며 언론에 자주 이름을 비추고 있었다.

“두베르네도 그렇지만 수비진도 탄탄해. 주전 선수들이 거의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면서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이니까. 아마 눈빛을 보지 않고도 서로 원하는 플레이를 하겠지.”

“AS모나코나 리옹은 뭐 하고 있나 몰라. 선수들도 다 파리에 뺏기고 말이야. 리그 앙 우승도 파리가 벌써 10년째 하고 있지 않아?”

“압도적 1위와 그 외의 팀들이라고 해야지. 예전에 라리가에서 탑2가 있었고 프리미어리그에 빅4가 있었듯이 말이야. 분데스리가도 뮌헨과 그 외의 팀이라고 불린 적이 있었잖아.”

“그 당시 뮌헨은 챔피언스리그까지 주름잡았었잖아. 우승도 많이 하고. 그런데 파리는 우승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 30년째야.”

“남의 나라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래서 프랑스가 유력하다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뭐, 결과야 경기를 보면 알 수 있겠지. 연회장에 모여서 본다니까 그때 보자고.”

스톡홀롬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는 잉글랜드대표팀. 전 선수가 들어가서 볼 수 있는 크기의 방이 없었기에 호텔의 연회장을 빌려 그곳에서 덴마크와 프랑스의 경기를 함께 보기로 했었다. 코치진이나 선수진들이 요청하는 자료들을 즉석에서 뽑아내기 위해 전력 분석팀도 함께.

***

“덴마크의 윙어가 바꿨네. 울버햄튼에서 뛰던 녀석이 주전 윙어 아니었어?”

“아까 해설자들이 말해줄 때 접시에 코 박고 있더니 이제 물어봐? 8강에서 카드를 받으면서 카드 누적으로 나오지 못한다잖아.”

“카드 누적? 하긴, 우리랑 경기할 때도 카드를 받긴 했었지. 우리는 카드 누적으로 못 나오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긴 해.”

조별리그 3경기 8강, 4강에 이기기까지 잉글랜드도 총 6장의 카드를 적립했다. 에디를 비롯해 헨더슨, 산타, 샤네, 잉스, 레비가 나눠 받으며 경고 누적으로 출장 정지를 받은 선수가 없었다. 잉글랜드의 4강 상대였던 이탈리아가 3명이 출장 정지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페어플레이를 했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다음 경기는 결승이니까 빨간 것만 받지 않으면 돼.”

“야야. 재수가 없게 빨간색 이야기는 왜 해? 경기장에서는 유니폼도 빨가면 안 된다는 거 몰라?”

리즈 유나이티드의 유스 출신으로 지금까지 리즈에서 뛰고 있던 잉스가 연회장이 떠나가라 외쳤다. 하얀 장미가 상징이던 요크 가문을 계승하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선수로서 붉은 장미를 계승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가장 큰 적이었다. 맨체스터를 상징하는 붉은 색을 싫어하는 것은 리즈 유나이티드의 선수로서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너, 그 발언으로 여기 있는 선수들 절반하고 적이 된 거 알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붉은색 유니폼이었지만, 리버풀, 소튼, 아스널, 아스톤 빌라, 번리까지 모두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아, 몰라. 그냥 붉은색 유니폼은 적폐야. 내가 이적하더라도 붉은색 유니폼을 입는 팀으로는 절대 안 가!”

“됐어. 그만하고 경기나 보자고. 이제 시작하잖아.”

잠시 잉스의 뇌절이 있었지만, 그 내막을 아는 선수단은 가볍게 웃어넘기고 경기에 집중했다. 사전행사가 모두 끝나고 프랑스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 프랑스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알퐁스 르마가 두베르네에게 공을 밀어줬다.

유벤투스의 스트라이커로 6년째 뛰고 있는 알퐁스 르마.

마르세유 출신이긴 했지만 커리어를 세리에A에서 쌓았다. 유벤투스에서 뛴 6년 동안 발롱도르 후보 탑 10에서 내려간 적이 없던 월드클래스급 스트라이커였다. 당연히 이번 시즌에도 유력한 탑 10 후보 중의 하나였다.

두베르네는 공을 후방에 있는 시코에게 돌렸다. AS모나코를 혼자서 2등의 자리에 올려놓은 시코. 매년 빅클럽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지만, 자신이 에이스가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는 패기 넘치는 선수였다. 아니면 그 팀의 최고 주급을 줄 수 있다면 가겠다고 말해왔다. 그런 패기만큼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시코였다.

시코가 공을 받음과 동시에 프랑스의 선수들이 모두 앞으로 나섰다. 두베르네가 이번 대회에서 포텐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시코는 이미 7년 전부터 프랑스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드로 활약해왔다. 비록 드리블과 패스 투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그만큼 믿음직스러운 동료가 없었다.

시코의 장기인 롱패스가 왼쪽 사이드로 향했다. 프랑스의 왼쪽 윙어 프랑코가 죽어라 뛰었지만 터치라인을 넘어갔다.

“저건 완전히 뚫렸던 거 아냐? 프랑코가 잡기만 했어도 사이드가 완전히 열렸겠는데.”

“너 같으면 잡았겠어?”

“저 정도 견제야 우습지. 프리미어리그가 얼마나 지저분한지 잘 알잖아.”

수비수들이 손을 쓰는 것에 가장 관대한 리그가 바로 프리미어리그였다. 그런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비수들이 손을 써도 뿌리칠 힘이 있어야 했다. 그런 리그에서 최고를 찍었던 에디답게 자신이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이번 패스는 프랑코가 못 잡은 것이 아니라 시코가 실수한 것이 맞다고 봐. 차라리 두베르네에게 보내서 두베르네가 안전하게 찔러줬으면 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는 덴마크 수비가 먼저 자리 잡을 수도 있었잖아. 이번에도 전진해있었으니 기회가 보였지 한 단계를 더 거쳤으면 분명 뒤로 물러섰을 거라고.”

“결과론은 경기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다시 덴마크가 공격하잖아.”

일방적 응원을 받고 있는 덴마크 대표팀. 조밀한 공격을 이어가 보지만 프랑스의 체급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이어져야 할 패스가 프랑스의 압박에 자주 끊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저 녀석들 저렇게까지 밀릴 정도는 아니지 않아? 우리랑 할 때는 거의 대등하게 경기했잖아.”

“그때는 모든 팀이 잔디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잖아. 저 녀석들만 빼고.”

“하긴 진짜 짜증 나는 잔디긴 했어. 그래도 익숙해지니까 괜찮은 면도 있어. 잔디에 구르는 공이 빨라서 스루패스를 더욱 위력적으로 보낼 수 있더라고.”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긴 하지만 북유럽밖에 쓰지 않으니까. 난 좀 더 푹신한 잔디가 좋아.”

“그러면 세리에로 꺼져. 세리에 잔디가 그렇게 푹신하다니까.”

“세리에에서 토트넘보다 돈을 더 줄 수 있으면 가지. 돈을 맞춰줄 수 있는 팀에서는 내가 필요 없다는데 어쩔 수 없지.”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뚫으려는 프랑스와 어떻게든 막으려는 덴마크였기에 지루한 경기로 진행됐다. 뚫으려는 프랑스가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더 집중이 되겠지만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잉글랜드 선수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이런 팀이 아닌데.”

“그러게 말입니다. 너무 서두르고 있는데요.”

“전반도 이제 중반이 넘어서고 있는데 아직도 실수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경기가 끝나고 휴식일이 4일밖에 없으니까. 하루 먼저 끝난 우리가 5일을 쉬는 것에 반해 자기들은 4일을 쉬니 최대한 90분 안에 경기를 끝내려고 하는 거 같은데.”

“그럴수록 더 침착해야 하는데 말이야. 한때 무적이 뢰블레라는 소리를 들었던 팀이….”

전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자 프랑스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던 지네딘 지단이 주장으로 프랑스대표팀을 이끌었을 때가 있었다. 화려한 개인기는 물론이고 세밀한 패스와 조직력으로 세계 축구를 휩쓸었었다. 그때의 프랑스 대표팀을 기억하는 코치진들이었다.

“트뤼포 감독의 표정을 보니 한소리 나오겠군.”

“주름진 얼굴이 더 주름져 보이니 침 튀기게 소리를 지르겠는데요.”

올림피아 리옹의 감독이었다가 4년 전부터 프랑스대표팀을 맡고 있는 알랭 트뤼포 감독이었다. 리옹 시절부터 주름진 얼굴이 더 주름지면 폭포수 같은 침을 쏟아내곤 했다. 그런 후에는 선수들의 플레이가 바뀌는 경우가 많았기에 언론에서는 그 침을 트뤼포의 세례라고도 불렀다.

전반을 0:0으로 끝낸 양 팀.

하프타임에 트뤼포의 세례를 받았는지 프랑스 대표팀의 플레이가 전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패스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전반에 보였던 실수가 줄어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밀리던 덴마크 대표팀은 프랑스 대표팀이 더욱 세밀한 패스를 들고나오니 버틸 수가 없었다.

후반 10분. 르마가 이번 대회 4호 골을 뽑아내며 1:0으로 앞서나갔다.

홈경기에서 질 수 없었던 덴마크가 공격적으로 나오자 후방이 불안해졌다. 불과 5분 후 르마가 추가 골을 터트리며 5골을 뽑아냈다.

이번 대회에서만 8골을 넣으며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인수를 3골 차로 따라온 르마. 이제 결승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큰 차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못 따라붙을 차이는 아니었다.

경기 종료 전 두베르네가 이번 대회 3호 골을 넣으며 프랑스가 덴마크를 3:0으로 제압했다.

홈팀으로 4강까지 올랐던 덴마크가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프랑스가 결승전에 진출하며 잉글랜드 대 프랑스의 결승이 성사됐다.

축구 역사상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처음 만나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유럽축구연맹이 생각하는 최고의 결승 대진이 유로 2040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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