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우리의 킥오프로 시작하는 후반이 중요해. 하인스 뚫을 수 있겠어?”
“톨로니요?”
전반 45분 동안 톨로니와 몇 번이나 대치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이드나 뒤로 공을 돌리며 대치를 피했다. 처음 AS로마전이 끝나고 경기를 복기할 때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막상 대치를 하려 하니 자연스럽게 패스가 먼저 생각났다.
“그래. 톨로니. 톨로니를 뚫어도 뒤에 수비가 많으니까 힘들겠지만 그래도 중거리슛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이 나오잖아.”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레쉬포드 감독은 인수를 무리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전반전 양 팀의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무리를 시키더라도 뚫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전반 서로의 미드필드 지역에서 치고받으며 후방에서 전방으로 공을 뿌려줄 샤네가 점점 처지고 있었다. 본인의 태클도 있었지만, 인수보다 더 많은 태클을 버텨냈기에 후반 초반에 바꿔줘야 할 수도 있었다. 공격진을 보강하기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메슈는 너무 수비적인 측면이 강했다. 에디와 크레토가 있었더라면 옵션도 많았겠지만, 이곳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톨로니라.”
지난 AS로마전에도 마린과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힘들게 뚫어낸 상대였다. 에디라도 있으면 같이 호흡을 맞추며 뚫을 수 있겠지만 에디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존을 활용하기에는 중앙수비수들까지 끌어들일 위험이 있었다. 인수는 고개를 들어 레쉬포드의 눈을 보았다. 잉글랜드의 에이스인 자신을 믿는 눈빛 절대 배신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해보죠.”
“좋아. 다들 모여. 여기 잘 보고 하인스에게 공간을 만들어줘야 해.”
레쉬포드는 작전판에 붙은 샤네의 위치를 하인스 앞으로 옮겼다.
“샤네. 후반 킥오프 직후에 바로 상대방의 중앙을 돌파해. 그 공간은 케이힐이 센터서클까지 전진해서 메꾼다. 샤네는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자카티의 움직임을 봉쇄해. 무조건 자카티가 인수에게 갈 수 없게 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네.”
“그리고 존. 넌 킥오프를 하자마자 전방으로 뛰어들어. 하인스가 톨로니를 제치고 들어오면 중앙수비수들이 하인스에게 달려들지 못하게 스크린을 걸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알았어?”
“알겠습니다.”
“켄과 바디는 양쪽의 윙백이 중앙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사이드를 계속 뚫는 척해. 중앙으로 들어와 하인스를 막으면 하인스가 공을 사이드로 돌릴 테니까 그때는 뚫어. 무리하지 말고 중앙으로 뚫고 나가면 저쪽에서도 급해질 테니까. 알았지?”
“네.”
“톨로니를 뚫고 난 후 모든 공격은 하인스 네가 판단해. 중거리슛각이 나오면 중거리를 쏘고 그게 아니라면 사이드로 돌려도 되고. 저쪽도 네가 직접 프리킥을 찰 수 있는 곳에서는 반칙하지 않고 있으니까 슛각은 나올 거야.”
“네. 감독님. 그런데 케이힐이 센터서클까지 나오면 뒷공간이 너무 열리지 않겠습니까? 혹시나 역습을 당할 경우도 생각해야죠.”
레쉬포드 감독은 인수의 말을 듣고 뒤로 물러나 코치들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인수가 이탈리아 진영을 뚫다 막히면 뒤로 돌리기 편한 위치에 케이힐을 두겠다는 의도였지만 역습을 조심해야 한다는 코치들도 있었다.
“좋아. 케이힐은 그 자리를 지켜. 대신 이번 공격에서 공을 뺏길 것 같으면 그냥 라인아웃을 시켜. 무조건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간다. 알았지?”
“네.”
“좋아. 가자.”
**
“티 내지 마.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니만큼 티 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
“당연하지. 그 정도도 모를까.”
“넌 모를 거 같아서 하는 소리야. 긴장한 모습이 보이잖아.”
인수는 킥오프 전 긴장한 모습을 한 존을 불렀다. 지금 부르는 것만으로도 알아차릴 선수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긴장한 존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알았어. 너나 잘하셔. 너무 빨리 달려서 날 지나쳐가지 말고.”
“소튼에서 한두 번 호흡 맞춰본 것도 아니고 내 손이랑 눈도 잘 봐. 그 전처럼 놓쳐서 내가 갈 길 방해하지 말고.”
“야, 딱 한 번이었어. 그것도 유스 때. 그걸로 언제까지 우려먹을 생각이야.”
존이 억울하다는 듯 항의했지만 주심이 손에 들고 있던 공을 찍고 시계를 맞추고 있었기에 센터포인트로 돌아갔다.
삐익.
주심의 휘슬과 동시에 존은 인수에게 공을 넘기고 바로 전방으로 뛰었다. 존과 동시에 출발하는 나머지 선수들. 특히 샤네는 인수가 이탈리아의 최전방공격수인 토니를 제칠 때 이미 인수를 지나쳤다.
“자리 잡아. 들어만 오지 못하게 막아.”
잉글랜드의 갑작스런 공격. 이탈리아의 발렐라 골키퍼는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경기 초반 상대가 아직 자리 잡지 못했을 때 밀고 들어오는 전술. 누구나 알고 있는 전술이었기에 잘 사용되지 않는 전술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대표팀답게 파고드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길목을 막아섰다.
“톨로니 달려들지 마.”
토니가 뚫린 것을 보고 바로 달려드는 톨로니. 옆에서 자카티가 소리쳤지만 톨로니는 자신 있었다.
‘전반 내내 나랑 맞서지 못하고 공을 돌렸던 하인스라고. 이번에도 내가 다가서면 뒤로 돌리겠지.’
자카티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톨로니는 앞으로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인수 역시 토니를 뚫고 톨로니의 정면으로 달렸다. 순식간에 지나친 두 사람. 톨로니와 맞붙었을 때 순식간에 반대편 발로 공을 옮기고 톨로니를 살짝 피한 후 다시 공을 옮겨 놓는 라 크로게타. 흔히 팬텀드리블이라 부르는 드리블로 톨로니를 제쳤다. 인수가 자신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급하게 발을 뻗었다. 분명 발에 걸리는 느낌이 났지만 휘청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은 인수. 바로 전방을 향해 달렸다.
“저 멍청이가.”
자카티가 인수를 막기 위해 인수 쪽으로 달리려 했지만 샤네의 절묘한 스크린에 인수가 자신을 지나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인스를 막아.”
골대에서 30미터 정도. 아직까지는 반칙으로 끊어도 되는 허용선이었지만 더 들어간다면 위험지역이었다. 경기 시작 전 이탈리아의 감독은 골대에서 26미터 거리까지 위험지역으로 설정하고 그 안에서는 최대한 반칙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끊으려면 지금밖에 없었다.
“어딜.”
존에게 잠시 막혔던 중앙수비수 바카토니가 인수의 앞을 막아섰다. 급하게 달려왔지만 골대 쪽으로 가는 방향을 정확히 막은 바카토니. 인수는 급히 뛰어온 바카토니의 발이 벌려져 있는 것을 보고 가랑이 사이로 살짝 찼다. 공을 차고 점프를 뛴 인수. 바카토니를 점프로 제친 인수는 존의 스크린으로 뻥 뚫려있는 골대를 보고 발을 휘둘렀다.
“멍청아 하지 마.”
인수에게 뚫린 톨로니가 뒤늦게 쫓아와 인수의 슛 모션을 보고 뒤에서 태클했다. 자카티가 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몸을 날린 후였고 뒤에서 들어온 태클은 인수의 디딤발을 건들며 인수를 쓰러뜨렸다.
삐익.
슛하지 못하고 쓰러진 인수. 주심은 바로 휘슬을 불고 뛰어왔다. 전반전 내내 거친 몸싸움이 오갔지만 주심이 생각하는 범위 안의 반칙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들어온 태클은 분명 위험한 태클이었다. 공을 보고 들어갔으면 모를까 톨로니의 태클은 인수의 디딤발을 먼저 건든 것을 확인했다. 발의 축이 차인 인수는 아직도 발목을 잡고 뒹굴고 있었다.
“공을 보고 들어간 거예요.”
주심이 휘슬을 불자 바로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톨로니.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진 인수를 본 순간 카드의 색이 문제지 카드는 확정이었다.
주심은 상황을 보고 앞주머니에서 노란색 카드를 빼들었다.
“백태클인데 왜 노란색이에요. 디딤발을 보고 들어왔잖아요.”
“항의는 받아들이지 않겠어. 하인스도 일어났잖아.”
긴급히 들어오려는 의료진을 막은 것은 인수였다. 크게 부딪히지도 않았고 살짝 걸린 수준. 톨로니에게 카드만 먹여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괜히 의료진까지 들어와 터치라인 밖에서 치료를 받게 되면 프리킥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다들 선 넘지 마. 백태클인데 노란색으로 끝난 이유를 생각해.”
주심은 프리킥 지점에서 9.15m 뒤 페널티지역에 라인을 긋고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경고했다.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도 프리킥을 차기도 전에 라인에서 뛰어나오며 다시 차게 한 적도 있었다.
“콜로니가 수비벽 뒤에 누워서 밑으로 깔리는 킥을 막아줘. 나머지는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선수들을 막아주고.”
선수들의 수비위치를 정해주는 발레라. 경기 전 인수의 프리킥을 분석했던 발레라였다. 자기 차고 싶은 대로 차는 스타일. 깔아차기도 하고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킥도 자주 구사하고 심지어 골키퍼가 있는 쪽으로 원바운드 킥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트피스를 이용하기까지 했으니 어떤 식으로 올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삑.
이탈리아도 잉글랜드도 프리킥은 인수가 차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프리킥 지점에는 인수 외에는 없었다. 주심의 휘슬이 불리고 천천히 뛴 인수, 이탈리아가 세운 벽 가장 왼쪽으로 보고 안으로 휘어지는 킥을 찼다.
오른쪽은 수비벽에 맡기고 골대 왼쪽만 막고 있던 발레라. 인수의 킥을 보고 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공은 골대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들어 갔다.
삐익.
이번 대회 인수의 첫 번째 프리킥이 골로 성공하자 인수는 벤치에 있는 레쉬포드에게 달려갔다.
“뛰지 마. 뛰지 말라고. 악.”
인수의 커다란 덩치가 뛰어와 레쉬포드 감독을 껴안자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뒤로 밀렸다.
“이럴 때나 해보지 언제 해보겠어요.”
“네가 달려오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하여튼 잘했어. 다치지는 않았지?”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아도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안되지.”
레쉬포드 감독이 깜짝 놀라 인수를 떼어냈다. 인수는 레쉬포드 감독의 품에서 벗어나 디딤발이었던 왼발을 바닥에 굴렀다.
인수의 골로 1:0으로 앞서가는 잉글랜드. 이제 골이 필요한 이탈리아가 공격적으로 나섰다.
레쉬포드 감독은 지난 경기에서 연장은 물론이고 승부차기까지 수고했던 샤네를 빼고 메슈를 투입했다. 한 골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전략. 이탈리아도 파이브백이었던 전술을 깨고 공격형 미드필드인 샤나위를 투입했다. 조별리그에서 1골을 기록한 적이 있는 샤나위를 투입했지만, 잉글랜드의 수비가 쉽게 뚫리지 않았다. 톨로니까지 빼고 공격수인 안드레아 비엘리까지 투입한 이탈리아. 후반 35분이 넘어가자 전원 공격의 초강수까지 두었다.
“하인스 달려.”
샤나위가 비엘리에게 패스한 공을 끊어낸 메슈. 전방을 달리는 인수에게 길게 찼다.
공격진에 인수와 존. 이탈리아 수비진에 골키퍼 발렐라를 포함해 바스토니 둘. 인수는 존의 앞을 달리며 바스토니의 움직임을 살폈다. 왼쪽에서 파고드는 존을 막아야 할지, 아니면 지금 공을 가진 인수를 막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바스토니. 인수는 주춤하는 바스토니를 넘기며 골키퍼와 1:1로 맞섰다. 침착하게 왼쪽 구석을 보고 찬 슛. 발렐라가 끝까지 막기 위해 기어 보았지만 골라인을 넘어 골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번 대회 8골을 터트린 인수. 잉글랜드가 2:0으로 앞서가는 점수이자 결승으로 가는 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