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독일은 다시 라인을 올리며 반격해왔다. 방금 전처럼 역습을 당하지 않겠다는 듯 라인을 올리면서도 수비수들이 후방을 신경 쓰고 있었다.
다시 양쪽 사이드를 활용하는 독일의 공격. 슈베르트와 브라이트너가 빠른 발을 이용해 공격을 전개했다. 잉글랜드 역시 슈베르트와 브라이트너를 막기 위해 베이어와 산타를 기용한 만큼 잘 막고 있긴 했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됐다.
“양쪽에서 잡으면 중앙으로 침투하는 길목을 막아줘.”
“나도 막으려고 하는데 애들이 너무 빨라. 걷어내는 것도 겨우 걷어내고 있단 말이야.”
“막을 수 있는 데까지만 막아. 우리가 바로 지원 나갈 테니까. 중앙으로 침투하면 저 녀석과 연계할 테니까 더욱 머리 아파져.”
잉스는 턱을 살짝 움직여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브란트를 가리켰다. 슈베르트와 브라이트너의 공격력이 좋다고 하지만 최전방 스트라이커는 브란트였다. 필요할 때 해주는 선수로 명성이 높았다. 실제 지난 시즌 뮌헨이 승점이 필요할 때마다 골을 넣어주며 자기를 과시했던 선수였다.
“알았어.”
“좋아. 가보자.”
후방에서부터 다시 전개된 독일의 공격. 브라이트너에게 연결된 공을 산타가 길목을 차단하며 막아섰다.
“비키지.”
“왜 자꾸 비키래.”
“오랜만에 봤는데 계속해서 까칠하게 나오네.”
프리미어리그가 16살에 데뷔할 수 있는 규정에 의해 헐시티에서 데뷔했던 브라이트너였다. 당시 비슷한 또래이자 팀 동료였던 산타와 자주 어울리며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했던 브라이트너였기에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1군에 먼저 데뷔한 브라이트너였고 산타는 브라이트너가 다시 분데스리가로 이적한 다음에 데뷔하긴 했었다. 그래도 계속 친분을 가지고 있었고 산타의 결혼식 피로연에도 참석했었던 브라이트너였다.
“지금은 적이잖아.”
브라이트너는 왼쪽에 쏠려있는 산타의 무게중심을 보고 오른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브라이트너의 움직임에 따라 오른쪽으로 무게중심을 빠르게 옮긴 산타. 다시 브라이트너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그 움직임에는 따라붙지 못했다.
“안 돼.”
브라이트너는 산타를 제치고 빠르게 낮은 크로스를 올렸다. 잉글랜드 최종수비수들의 키가 컸기에 높이 띄웠을 때는 재미를 보지 못했었기에 낮게 올린 크로스. 선수들의 허리높이를 지나가는 공을 막기 위해 다들 등을 돌려 공의 진행을 막아보려 했지만 잉스와 콜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내 거야.”
브라이트너가 크로스를 올리자마자 반대편으로 빠진 브란트는 공의 높이에 맞춰 낮게 뛰었다. 허리높이로 오는 공이었기에 발을 대기에는 너무 높았고 헤더도 애매한 상황. 브란트는 무릎으로 공을 찍었다.
전반에만 두 번의 선방을 보여줬던 볼. 브란트의 앞을 막아서며 공을 막아봤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였기에 공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삐익.
전반 37분. 브란트의 동점골. 브란트는 크로스를 한 브라이트너에게 뛰어가 안겼다. 그 뒤로 슈베르트를 비롯한 독일대표팀 선수들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
“지난 네덜란드전에서 골을 넣지 못했던 독일대표팀이었습니다.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을 브란트가 동점골을 성공시키네요.”
“브라이트너가 올려준 크로스가 쉬운 공은 아니었거든요. 허리높이, 일직선으로 날아온 공이었습니다.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추어 무릎으로 찍었습니다. 이건 골 감각이 살아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네요.”
“느린 화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브라이트너가 산타를 제치고 크로스를 올렸죠. 순간 산타가 미끄러지는 거 같았는데요.”
“독일의 양 윙 포워드가 무서운 점이 빠른데다 양발을 모두 잘 쓴다는 점이거든요. 잉글랜드에서 그 두 명을 막기 위해 투입한 선수들이 베이어와 산타입니다. 산타가 브라이트너가 중앙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오른쪽을 막고 있었죠. 순간 왼쪽으로 치고 들어갔을 때 왼발 크로스를 막기 위해 산타가 왼쪽을 수비하고 있을 때 다시 오른쪽으로 향하니 크로스를 올릴 틈이 났던 거죠. 산타가 잔디에 미끌린 것도 있었고요.”
“그렇게 찬스를 만든 브라이트너가 낮은 크로스를 선택했죠?”
“이전까지 양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가 모두 5개였는데 모두 높은 크로스였거든요. 잉스와 콜이 브란트를 잘 마크하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낮은 크로스를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낮았거나 높았다면 중간에 끊길 수 있었는데 허리높이로 정확히 날아왔죠. 그 공을 브란트가 잘 마무리했고요.”
“브란트가 골을 넣으며 이번 대회에 3골을 기록하게 됩니다. 득점 순위 공동 2위가 되겠습니다.”
“공동 2위라고는 하지만 1위를 달리고 있는 하인스가 벌써 6골을 넣었거든요. 유로 2036 득점왕을 차지했던 폴란드의 다비도프스키가 7골을 기록했거든요. 하인스의 득점 페이스가 무섭다는 게 증명된거죠. 월드컵에서 골든슈를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하인스. 월드컵에서 골든슈를 받고 이번 대회에서도 득점 1위를 기록하고 있네요.”
“많이들 예상하고 있었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다음 출전한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가며 득점왕을 차지했죠. 이번 시즌 라리가에서 득점왕을 차지했고 유로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봐야겠죠.”
“전반 37분 브란트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1:1의 스코어가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잉글랜드의 킥오프로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
“독일과 경기하면서 한 점도 주지 않겠다는 건 욕심인 거 알지. 상대가 컨디션이 엉망이라면 0점으로 끝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점수를 주는 것이 당연해.”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네가 내가 아는 최고의 골키퍼이긴 하지만 골키퍼 혼자 모든 슛을 막기란 불가능하지.”
경기 시작 전 레쉬포드 감독은 볼을 따로 불렀다. 이제 23살의 어린 선수였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벌써 3시즌째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는 아쉽게 놓쳤지만, 이번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베스트 11에 들어갈 정도로 활약했던 볼이었다. 첫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유로라는 큰 대회를 치르면서도 딱히 긴장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조별리그가 끝나고 8강에 들어서자 점차 부담감이라는 것이 볼의 양 어깨를 누르는 것이 보였다.
“그거야 당연하죠.”
“그럼 줄 점수는 준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하는 너의 가장 큰 장점은 소튼에서 프리미어리그를 데뷔했다는 거야. 절대 수비가 강한 팀이 아니지. 소튼에서 하는 대로만 해. 점수를 주면 그 점수는 잊어. 다음 슛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 생각해.”
“그래도 지금은 유로잖아요.”
“유로가 뭐 어때서? 1960년에 시작된 유로에서 우리 잉글랜드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어. 축구 종주국이라는 우리 잉글랜드가 말이야. 물론 내가 선수로 뛰고 있을 때도 그렇고. 은퇴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봤지. 지난 월드컵에서 준우승에 머물렀을 때도 말이야. 바로 부담감. 쓸데없는 부담감이란 놈이 선수들을 짓누르고 있더라고.”
레쉬포드는 물을 마시고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특히 골키퍼란 자리 말이야. 필드 내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션인데도 부담감이 생기니 제 플레이를 하지 못하더라고. 그 명성 높은 케인까지 말이야. 그래서 난 너를 선택한 거야. 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 두서없이 말해서 헷갈리겠지만 이것만 기억해. 넌 신이 아니야.”
“그래 난 신이 아니야.”
볼은 잉글랜드의 공을 뺏은 독일이 다시 치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조용히 되뇌었다. 슈베르트가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왔다. 슈비르트가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인 페널티지역 왼쪽 위. 거기서 스핀을 주어 반대편 골포스트를 노리고 차는 전형적인 득점 공식이었다.
“다들 달려.”
볼은 슈베르트가 공을 차자마자 자신의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크게 소리쳤다. 정확히 두 손으로 캐치해낸 공. 넘어지려고 하는 것을 몇 발자국 더 걸어 중심을 잡고 바로 전방으로 길게 찼다. 전광판의 시간은 멈춘 상태였고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았다.
“좋아. 앞으로 달려.”
볼이 길게 찬 공은 정확히 샤네의 품에 안겼다. 바로 인수에게 찔러준 샤네. 인수는 샤네가 찔러준 공을 터치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공의 속도가 줄어들 때쯤 그 방향 그대로 건들고 다시 뛰었다.
“하인스를 막아. 다들 뭐해.”
인수가 깊이 침투하자 독일의 수비들이 바빠졌다. 바로 슛을 쏠 수도 있었고 중앙이나 사이드로 공을 패스할 수도 있는 위치. 인수는 자신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이미 앞서기 시작한 에디를 택했다. 인수의 패스를 받은 에디는 보지 않아도 어디 있는지 안다는 듯 바로 다이렉트로 중앙으로 패스했다. 먼 거리였지만 2:1 패스를 주고받은 두 사람. 인수는 에디가 패스한 공을 속도만 줄인 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인수를 신경 쓰느라 텅 비어있던 중앙. 존은 침착하게 공을 잡고 인사이드로 밀어 넣었다.
삐익.
전반 추가시간에 터진 존의 추가골. 잉글랜드가 다시 2:1로 앞서나갔다. 존의 세리머니가 끝나고 독일이 킥오프를 하자 주심은 휘슬을 불어 전반을 끝냈다.
***
잉글랜드의 킥오프로 시작된 후반. 이번엔 독일이 잉글랜드를 압박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에디가 있었기에 그 어느 팀도 열어주지 않았던 뒷공간을 열어준 채로 압박한 독일. 잉글랜드는 당연히 에디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뒷공간을 노렸다.
인수의 롱패스. 에디는 마음껏 뛰어가 인수의 패스를 받았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기록했을 때 제일 좋아했던 플레이. 사이드에서 윙백을 스피드로 뚫어내고 중앙으로 들어가 그대로 골대로 직접 슈팅을 했다. 독일의 골키퍼가 적절하게 뛰어나와 슛코스를 막았기에 노골이 됐기에 에디는 빠르게 내려와 수비를 준비했다.
두 번째 인수의 패스. 다시 뛰어 들어간 에디가 중앙에 침투했을 때는 최종수비수가 에디의 앞을 막았다. 인수가 먼 거리에서 패스한 공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중앙에서 사이드로 밀려났다.
그렇게 잉글랜드의 공격코스가 단순해지자 반대로 독일이 에디가 비운 자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말렸네요.”
“그러게 말렸군요.”
뒷공간을 열어준 독일의 작전. 첫 번째 찬스에서 에디가 침착하게 골을 넣었더라면 한순간에 침몰해버릴 수도 있었던 작전이었다. 그러나 공격패턴이 단순해지자 독일의 수비가 점점 안정화됐고 에디가 돌아오는 타이밍도 점점 늦고 있었다.
“하인스가 저렇게 뻔히 보이는 수법에 당할 줄은 몰랐네요.”
“밖에서 보는 우리도 이제야 말렸다는 것을 느꼈으니 하인스도 느꼈겠죠. 이미 늦긴 했지만.”
에디가 비운 자리를 파고든 독일의 윙백은 슈베르트와 호흡을 맞추며 2:1 패스로 베이어를 뚫어냈다. 베이어를 뚫고 들어간 슈베르트가 수비들을 뚫고 반대편으로 열어준 공을 브라이트너가 슛했다. 발리슛처럼 찬 공이 잉글랜드의 골망을 갈랐고 다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후반 25분 브라이트너의 골로 2:2가 됐고 시간은 점점 흘러 더 이상의 점수가 나지 않은 채 후반이 종료됐다.
연장까지 진행됐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고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승부차기가 펼쳐졌다.
양 팀이 승부차기 순번을 주심에게 넘기고 잉글랜드의 첫 번째 키커로 샤네가 나섰다.
“저 녀석 독일 최고의 골키퍼라고 하지만 반응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 구석으로 차면 무조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차.”
레쉬포드 감독이 승부차기에 나설 명단을 작성하며 선수들에게 지시한 사항은 단 하나였다. 구석으로 강하게. 샤네는 주심의 지시에 공을 페널티 포인트에 놓고 뒤로 물러섰다. 왼쪽 골포스트 하단을 노리고 강하게 찬 슛.
텅.
샤네의 첫 번째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다시 샤네에게 돌아왔다.
“괜찮아. 내가 막을게.”
이번 시즌 페널티킥 방어율 42%에 달하는 볼은 자신 있게 글러브를 두드리며 독일의 첫 번째 키커의 슛을 펀칭으로 쳐내 샤네의 실수를 만회했다.
“가자. 할 수 있어.”
두 번째 에디의 슈팅와 독일의 슈팅이 모두 성공했고, 세 번째 존의 페널티킥까지 성공했다.
“이번에 막아야 돼. 알지.”
“걱정하지 마. 나 볼이야. 알잖아.”
세 번째 슈팅을 성공시키고 존은 볼에게 소리쳤다.
독일의 세 번째 키커로 나선 슈베르트. 오른쪽 상단을 노리고 강하게 찬 공이 골포스트를 넘어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키커까지 찬 결과 2:1로 앞서기 시작하는 잉글랜드. 네 번째 키커로 크레토가 나섰다. 독일의 골키퍼가 방향을 잘 잡았지만, 옆구리를 맞고 튄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독일의 네 번째 키커로 나선 브라이트너가 찬 공도 골문 왼쪽 하단을 통과했다.
“마지막이야. 너만 넣으면 끝나.”
마지막 5번째 키커만을 남겨두고 3:2인 상황. 잉글랜드의 5번째 키커로 나선 인수가 골을 넣는다면 그대로 잉글랜드의 승리가 결정됐다.
힘차게 달리며 찬 공. 마지막이라는 부담감이 커서였는지 인수가 찬 공이 골포스트를 크게 넘어 관중석으로 넘어갔다.
“괜찮아. 내가 막을게.”
머리를 움켜쥐며 무릎을 꿇은 인수에게 다가간 볼이 위로했다. 독일의 다섯 번째 키커만 막아내면 잉글랜드의 승리가 결정되는 상황. 독일의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선 선수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파넨카킥을 시도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둥실 떠가는 공. 아무런 움직임을 가져가지 않았던 볼이 가슴에 끌어안으며 8강 첫 번째 경기는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