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이곳은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르후스입니다. 오르후스하면 유명한 대성당이 있고 교육의 도시로 이름이 알려져 있죠?”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덴마크의 자랑인 AGF오르후스라는 축구클럽을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초대 유로피언 컵에 초청될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축구클럽입니다. 초대 유로피언 컵에 초청된 클럽을 보면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스포르팅, 에인트호번, 랭스, 파르티안 등 각 국가에서 내로라하는 16개 팀이 초청받은 대회였습니다. 그런 대회에 초청받을 정도로 명성이 있는 클럽을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 이곳 오르후스에 있는 세레스 파르크에 8강 최고의 매치업이 펼쳐지게 됩니다. 바로 잉글랜드와 독일의 대결인데요. 이 매치업 때문에 영국의 도박사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죠.”
세월이 흐른 만큼 영국의 스포츠 도박은 더욱 발전했다. 연간 100억 파운드를 돌파했고 세금만 13억 파운드가 넘게 징수됐다. 그런 만큼 치밀한 분석이 이루어지며 베팅의 승률을 높여나갔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인 잉글랜드와 독일이 8강에서 만난다는 시나리오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잉글랜드와 독일이 8강에서 이겨 4강에 진출하더라도 다음 상대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8강 승자와 대결해야 합니다. 세계 4대 프로축구리그를 가지고 있는 잉글랜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가 모두 같은 조에 묶여 결승 한 자리를 놓고 싸워야 한다는 말이죠.”
“언론들의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죠. 잉글랜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가 치열하게 싸우면서 결국 우승은 주최국인 덴마크가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요. 물론 반대쪽 조에도 주최국 덴마크를 비롯해 네덜란드, 프랑스, 폴란드가 있죠. 프랑스의 결승 진출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홈팀의 이점도 크죠.”
“2004년 포르투갈에서 열렸던 유로가 재현될 수 있다고 하는 말이죠. 유럽 축구의 강자로 꼽히는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잉글랜드도 홈팀이었던 포르투갈에게 덜미를 잡히며 8강에서 탈락했죠. 포르투갈도 4강에서 네덜란드를 만나 힘겨운 싸움을 했고 결국 우승은 유럽 축구의 변방 중의 변방으로 불리던 그리스가 차지했습니다. 개최국 포르투갈은 개막전에 이어 결승전에서까지 그리스를 상대로 패배하며, 그 대회에서의 2패를 모두 그리스에게 당하는 진기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유로 대회에 단 두 번 출전한 그리스가 우승을 가져간 2004년 대회가 생각난다는 뜻이겠죠.”
“다시 오늘 경기로 넘어와 보죠. 잉글랜드와 독일의 선발 라인업이 30분 전에 발표됐죠? 어떻게 분석하셨습니까?”
“전문가들이 양 팀의 라인업을 예측했죠? 그 분석들이 반영된 라인업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잉글랜드의 경우 독일의 양쪽 윙어들이 부담스러워 더욱 수비적인 윙백이 될 것이라는 분석대로 베이어와 산타가 선발로 기용됐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더블 볼란치를 선호했던 잉글랜드인데 이번에는 케이힐과 샤네를 기용했습니다. 리버풀의 중앙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긴 하지만 수비형 미드필드라기보다 사령관으로 기용되는 샤네죠. 샤네를 통해 수비진과 공격진의 연결고리를 만들겠다는 레쉬포드 감독의 의중이 보입니다.”
“반대로 샤네만 막으면 잉글랜드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놓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던데요.”
“그렇습니다. 그만큼 레쉬포드 감독이 샤네를 믿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죠. 독일도 샤네를 막으려고 할 만큼 뒤에 버텨줄 케이힐과 앞에서 치고 나갈 하인스가 얼마큼 샤네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독일입니다. 이번에 첼시로의 이적이 거의 확실하다는 파비엔 브란트가 최전방에 서고 양 쪽 윙포워드로 슈베르트와 브라이트너가 나서게 됩니다. 지난 조별리그와 달라진 점이라면 중앙 수비가 강화됐죠. 독일은 더블 볼란치를 들고 나왔습니다.”
“우선 파비엔 브란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오피셜만 나오지 않았을 뿐 확정됐다는 에이전트의 말이 있었죠. 뮌헨에서 재계약을 통해 놓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첼시의 자금력에 밀렸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부호를 떠나보낸 첼시는 몇 번의 주인이 바뀌고 미국의 스포츠 재벌의 손에 넘어갔다. 이미 미국에서 스포츠산업으로 부를 이룬 미국인 구단주는 첼시의 체질 개선을 부르짖었다. 마케팅을 통한 수익증대와 적절한 예산 사용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만들어냈다. 물론 자신의 플렉스를 보여주기 위해 몇 번의 이적생을 받아들였고 이번에 브란트 역시 그 플렉스의 일환이었다.
“스트라이커보다 득점력이 뛰어난 윙포워드를 좋아하는 노이어 감독답게 슈베르트와 브라이트너가 선발로 나왔습니다. 뮌헨에서 제일 많은 득점을 올린 브란트지만 그 못지않은 득점력을 뽑낸 두 선수죠. 그러면서도 하인스를 막기 위해 쉬를레와 슈스터를 볼란치로 기용했습니다. 알고도 막지 못한다는 하인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5골을 뽑아내며 유력한 득점왕 후보인 하인스. 이 선수를 쉬를레와 슈스터 콤비가 어떻게 막을지도 이번 경기를 지켜보는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말씀하시는 도중 양 팀의 선수들이 입장하여 국가가 연주되었고 코인토스로 독일의 선공이 정해졌습니다. 유로 2040 8강 첫 번째 경기. 독일과 잉글랜드. 잉글랜드와 독일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
“초반에 압박해 들어오는 전술을 좋아하는 잉글랜드인 만큼 감독님의 말처럼 바로 반격에 나서야 해.”
“섬나라 녀석들이 알아서 양쪽을 열어줬잖아. 사이드를 활용하면 되잖아.”
“사이드뿐만 아니라 중앙도 비어. 샤네가 패스는 좋아도 수비는 약하잖아.”
독일대표팀 선수들은 코인 토스가 진행된 후 둥글게 뭉쳤다. 이미 경기 전 세뇌될 정도로 입력했던 전략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 선수들은 자신이 할 일은 물론이고 자신과 호흡을 맞출 선수가 해야 할 일까지 주지시켰다.
“좋아. 섬나라 녀석들을 다시 섬으로 돌려보내자고.”
“가자.”
“Schland! Schland! Schland!”
경기장이 울릴 정도로 한목소리를 낸 독일대표팀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최전방 스트라이커인 브란트만이 센터서클에 섰다. 브란트가 킥오프한 공을 한 번에 쉬를레에게 연결한 독일.
독일이 공을 뒤로 돌리자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은 바로 독일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윙백과 윙의 거리가 벌어지며 공간이 크게 생겼다.
“앞으로 보내.”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넘어온 패스를 다시 사이드로 보낸 독일이었다. 사이드로 벌리자 전방까지 나섰던 에디와 크레토가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이미 베이어와 산타를 기용했을 때부터 에디와 크레토가 많이 움직여줘야 했다. 에디와 크레토가 뒤로 물러서자 다시 중앙으로 공을 돌린 독일. 경기장을 넓게 쓰는 독일. 잉글랜드는 그런 독일을 더욱 압박했지만, 인수와 샤네의 수비 능력 때문에 중앙에 큰 공간이 생겼다.
“하인스, 샤네. 길목만 막아. 너희는 달라붙지 말라고.”
메슈와 더블 볼란치를 서며 수비의 부담을 줄여줬던 케이힐. 그만큼 터프하고 빠른 케이힐이었지만 인수와 샤네의 수비위치까지 지정해주려고 하니 자기 플레이가 어려웠다.
“들어오는 선수만 놓치지 마. 우리가 뒤에서 받쳐줄 테니.”
그런 케이힐을 보조하는 건 중앙수비수인 잉스와 콜이었다.
“에디 더 붙어줘.”
에디와 크레토가 잉글랜드 진영으로 내려서자 오버래핑으로 올라온 독일의 윙백. 순식간에 에디를 지나쳐 앞으로 달렸지만, 에디가 몇 걸음을 더 달려 그 앞을 막아섰다. 윙백이 올라오는 타이밍에 맞춰 패스된 공을 에디가 끊어냈다.
“돌아가.”
“올라가.”
에디가 끊은 공을 바로 인수에게 패스를 하고 전방을 향해 달렸다. 에디가 달림과 동시에 크레토가 오른쪽을 존이 중앙을 뚫었다.
“존.”
존이 중앙을 파고들자 자신에게 달려드는 쉬를레와 슈스터를 피해 중앙에 비어있는 존에게 연결했다. 존이 다시 우측의 크레토에게 연결할 때 급히 돌아온 독일의 윙백이 태클로 터치라인 아웃을 만들었다.
샤네의 스로인으로 다시 시작된 경기. 크레토가 받은 스로인. 크레토는 독일 수비가 방심하고 있을 때 바로 존의 머리를 보고 크로스를 올렸다. 높이 뛰어오른 존은 공을 정확히 이마에 맞혔지만 크로스바를 넘어가고 말았다.
“미안해. 그래도 크로스는 좋았어.”
“괜찮아. 잘했어.”
존과 크레토는 서로 엄지를 내밀며 상대를 칭찬했다. 전반 5분 만에 만든 잉글랜드의 첫 번째 슈팅. 독일도 바로 이어진 공격에서 슈베르트가 골포스트를 살짝 빗겨 나는 슈팅을 했다. 양 팀의 첫 번째 슈팅을 기점으로 서로의 공격은 더욱 활발해졌다. 경기 시작 전 예측처럼 잉글랜드는 인수를 중심으로 독일은 양쪽 윙포워드인 슈베르트와 브라이트너가 공격을 주도했다.
특히 양발 모두 능숙하게 사용하는 슈베르트와 브라이트너인 만큼 서로의 위치를 크로스하며 찬스를 만들자 잉글랜드도 막아내기 급급한 모습이었다.
***
“선취점이 중요한데. 노이어도 모를 리가 없고.”
“점점 라인을 올리고 있는 거 보면 벤치에서 지시가 나온 거 같은데요.”
전반 20분이 넘어가자 독일의 벤치에서 먼저 작전이 나왔다.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며 공격에 힘을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벤치에서는 바로 보였지만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이 느끼기에는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확실히 독일이 준비를 많이 했네요.”
“그럼에도 우리가 준비를 더 많이 했지.”
레쉬포드 감독은 상대가 수비라인을 올리자 바로 코칭박스로 나섰다.
“하인스! 앞으로!”
두손을 입에 모아 인수에게 들릴 정도로 고함을 지른 레쉬포드. 워낙 크게 소리를 질러서였는지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레쉬포드 감독의 외침을 들은 인수는 바로 공을 독일 수비진 후방으로 길게 찼다. 에디의 주력을 믿고 레쉬포드 감독과 만든 전술 중 하나였다. 소튼에세 이미 호흡을 맞춰본 세 사람이었기에 믿고 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들어가.”
인수의 외침과 함께 잉글랜드의 공격진 4명이 모두 독일의 진영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샤네가 받치며 리바운드까지 노렸다.
“다들 돌아와.”
인수가 찬 공이 수비진 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본 독일의 골키퍼가 급하게 소리쳤다. 앞으로 밀고 나가다가 급하게 돌아선 탓에 다리가 빠른 에디와 인수는 이미 볼란치 라인을 돌파한 이후였다.
“하인스.”
인수가 찬 공이 정확히 코너 깃발 근처에서 멈추자 그 공을 낚아챈 에디. 중앙으로 파고들기보다 뒤에서 들어오는 인수를 보며 패스했다. 인수는 자신을 막아서는 중앙수비수 두 명을 보고 뒤에서 뛰어 들어오는 존을 향해 살짝 공을 띄웠다.
수비수들은 인수를 신경 쓰다 뒤에서 뛰어 들어온 존을 놓쳤고 존은 이마에 공을 정확히 얹혔다. 빠르게 쏘아진 공. 독일의 골키퍼는 몸을 날려 편칭으로 공을 쳐 냈지만 그 공은 우측에서 파고든 크레토의 발에 걸렸다. 공을 잡은 위치가 골라인이었기에 슛을 하기보다 바로 컷백으로 뒤로 돌렸다. 수비수들이 뒤늦게 뛰어든 존을 신경 쓰다 인수를 놓쳤다. 노마크 상태에서 공을 받은 인수. 골키퍼가 넘어진 반대 방향을 보고 가볍게 공을 밀어 넣었다.
삐익.
전반 27분 만에 터진 인수의 첫 골. 인수는 이번 골로 4경기 연속 골이자 이번 대회 6번째 골을 기록했다.
선취점을 가져오기 위해 라인을 올렸던 독일이 강력한 반격을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