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A조가 끝나고 2시간 후 펼쳐진 B조의 조별리그 3차전. 죽음의 조라 불리는 B조는 독일이 2승, 네덜란드가 1승 1패, 포르투갈이 1승 1패, 그리스가 2패로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세 국가의 대표팀이 8강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독일과 네덜란드, 그리고 포르투갈과 그리스가 맞붙은 B조 3차전. 독일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네덜란드는 독일을 2:0으로 잡아냈다. 그리고 아일랜드가 포르투갈을 1:0으로 잡으며 이변이 생겼다. 2차전이 끝났을 때 누구나 다 조 1위로 꼽았던 독일이 네덜란드에게 지면서 조 2위로 네덜란드가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자연스럽게 4일 후 펼쳐질 8강 1차전에서 잉글랜드는 독일과 5일 후 펼쳐질 8강 3차전에서 덴마크는 네덜란드의 대진이 결정됐다.
다음날 펼쳐진 C조 조별리그 3차전. 누구나 예측했듯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나란히 조 1위와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D조 조별리그 3차전은 스페인과 폴란드가 8강에 올랐다.
“나 참. 독일이라니. 네덜란드나 포르투갈을 원했는데 말이에요.”
“네덜란드가 독일을 2:0으로 잡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만약 포르투갈이 아일랜드한테 이겼으면 독일이 탈락할 수도 있었는데요.”
독일이 네덜란드에게 2:0으로 지며 골득실이 +1이었다. 포르투갈이 아일랜드에게 1:0으로 이겼다면 네덜란드가 조 1위로 포르투갈이 조 2위로 8강에 진출할 수도 있었다.
“그것보다 당장 중요한 건 라인업이죠. 수비 쪽은 어때요?”
“분위기는 좋긴 한데 좀 더 빠른 선수가 양쪽 윙백에 필요할 듯한데요.”
독일의 무서운 점은 양쪽 윙이 빠르면서도 골 결정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전방에 슈커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었기에 양쪽 윙이 활약할 수 있었다. 핸더슨과 케일이 수비력과 오버래핑이 좋긴 했지만, 발이 느린 탓에 후방이 불안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베이어와 산타는 오버래핑이 너무 떨어지지 않을까요?”
“단판 토너먼트이기에 안정된 수비가 우선일 듯싶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의 레쉬포드와 유소년 대표팀을 맡으면서도 수비를 중요시했던 드리드핏. 둘의 의견이 갈렸다.
“아직 시간이 좀 더 있으니 고민해 봅시다. 다른 포지션은 그대로 가도 되겠죠?”
“시간이 가면서 점점 호흡이 맞아가고 있으니 그대로 가도 될 듯싶습니다.”
“그럼 핸더슨과 케일, 베이어와 산타를 번갈아 훈련해보고 최종 엔트리는 경기 전날 정하죠.”
“알겠습니다.”
***
“대회 중에 자꾸 전화하게 해서 미안한데 이거 이대로 처리하면 될까?”
레알 마드리드의 가장 큰 고민은 인수와의 계약 문제였다. 4년 계약 중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어떻게 해서든지 인수를 잡고 싶은 마음이 큰 레알 마드리드는 인수의 에이전트인 랭커리지와의 협상 자리를 꾸준히 이어갔다. 랭커리지 역시 인수와 계속 통화하며 계약 문제를 상의했다.
“우리한테 주도권이 있다고 말했었죠?”
“그렇지. 네 의지에 따른 문제니까.”
“그럼 바이아웃조항을 삭제하고 이적 거부권을 삽입해도 되나요?”
“잠시만. 잠시만. 하인스.”
랭커리지는 인수의 말이 당황스러웠는지 같은 말을 연속으로 하면서 침묵했다.
“바이아웃조항을 삭제한다고 하면 레알 마드리드는 좋아하겠지. 그런데 거기에 이적 거부권을 네가 갖는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거지?”
“바이아웃조항을 삭제한다고 해도 다른 클럽에서 큰 금액을 제안한다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적에 동의할 수도 있잖아요.”
“선수가 거부하는데 이적을 시킬 수는 없지. 물론 팀에서 경기에 출전을 시키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때는 억지로 이적시킬 수는 없어. 다른 선수들을 데려올 때나 내보낼 때도 문제가 되니까.”
“그래도 계약서에 내용이 있었으면 해요. 이건 레알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나중에 이적할 팀들까지 모두.”
“오케이. 좋아. 그럼 그걸 계약서에 반영하도록 해볼게. 특급선수들 같은 경우 계약서에 쓰지는 않지만 이런 조건들이 있긴 하니까. 계약기간은 협의한 대로 4년으로?”
“네.”
처음 인수는 레알 마드리드와 3년 계약을 생각했고 랭커리지에 말했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측에서 6년 계약을 제안해왔다. 레알 마드리드와 랭커리지가 한 달 동안 20번이나 만나며 협의하며 기본 계약을 4년으로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세부적인 합의를 위해 다시 5번 이상 회의를 하며 협의 중이었다.
“좋아. 오늘 레알 마드리드와 최종적으로 합의하고 계약서를 보내줄게. 네가 확인하고 사인해.”
“알겠어요.”
“아 그리고 독일 놈들 콧대 좀 눌러줘. 요즘 자기 선수들 몸값 오른다고 자랑질하는 놈이 있네. 그리고 그놈이 제일 많이 데리고 있는 애들이 독일 애들이고.”
축구는 선수들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슈퍼에이전트들이 있었다. 실제 랭커리지 에이전시도 인수를 비롯해 에디, 존, 볼 등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선수들이 다수 있었다. 물론 브라질,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다른 국적을 가진 선수들도 있었지만 대표적인 선수들만 보자면 잉글랜드 국가대표들이 다수였다. 그런 랭커리지 에이전시와 비교되는 몇 개의 에이전시. 그중 독일 국가대표팀을 꾸려도 된다고 말하는 쪽에서 랭커리지의 약을 올렸다. 그런 와중 이번 잉글랜드와 독일이 8강에서 만나자 둘은 사소한 내기를 했다.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사소하지 않지만, 그들끼리는 사소한 정도였다는 게 문제였다. 내기보다는 에이전트로서의 자존심 싸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선수들이 더 뛰어나다는 믿음이 이번 내기를 성사시켰다.
“이겨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네요. 이렇게 신경 써주는 랭커리지를 위해 독일을 눌러줘야겠어요.”
“역시 하인스야. 난 네가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고. 나도 레알 마드리드 녀석들과 잘해볼게.”
“아.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와는 4년 계약이 마지막이에요. 반드시 주지시켜주세요.”
“알았어.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으니 저쪽도 6년 계약을 하자고 나온 거였지.”
“그럼 나중에 또 이야기해요.”
“계약이 거의 확정됐나 보네.”
우연찮게 인수와 같이 있으며 통화를 듣게 된 에디였다. 인수가 계약서 내용을 모두 에디에게 말했기에 들어도 상관없었다.
“응. 4년 계약을 할 거 같아.”
“그 후에는 분데스리가야? 세리에야?”
“아직 정하지는 않았는데. 4년 후의 전력을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잖아.”
전 세계에 있는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었던 인수. 자라면서 출전할 수 없는 대회나 리그도 있다는 것을 알고 유럽 4대 리그와 큰 대회의 우승컵을 모두 들어 올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 시즌 수페르코파와 이번 시즌 트레블을 기록하며 라리가에서 들 수 있는 우승컵은 다 챙겼다. 클럽 월드컵이라는 대회도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벤트성 대회였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우승컵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라는 소리를 듣겠네.”
“응. 안티들은 어디나 있는 거니까.”
“그놈의 안티들 관리 안 되나?”
“랭커리지 이야기 들어보면 전 세계에 깔렸데. 그냥 신경 쓰지 말라던데. 안티보다 팬이 더 많다고.”
“뭐 나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열받잖아.”
“하여튼 계약 끝나기 1년 전부터 분데스리가나 세리에A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는 팀을 찾을 거야.”
“그러고 나서 세인트로 돌아오고?”
“당연하지. 그러려고 바이아웃조항을 삭제하고 이적 거부권까지 계약서에 추가하는 건데. 그래야 계약이 끝나고 FA로 세인트에 가지.”
“나도 참 대단한 놈이긴 해.”
“그렇게 따지면 더 높은 주급 받으면서 팀을 옮길 수 있는데도 세인트에 남아있는 네가 더 대단한 거지.”
“뭐 그런가. 하여튼 들 수 있는 우승컵은 다 들고 세인트로 와. 세인트에서도 우승컵을 들어야 하잖아.”
“물론이지.”
이번 시즌 유로파 진출에 성공한 소튼. 당연히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흑자를 기록했다. 구단주가 그 수익을 모두 재투자하기로 하면서 주전선수들 대부분이 재계약을 했다. 앞으로도 계속 재투자하기로 하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처음으로 구단 가치 한 자리 숫자를 기록하게 됐다. 물론 상위 팀들과의 격차가 엄청나긴 했지만, 자신의 이익보다는 구단을 먼저 생각하는 구단주를 만났다는 사실에 팬들도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독일 이야기는 뭐야? 나한테는 그런 소리 없었는데.”
“아마 곧 있으면 너랑 볼, 존한테도 다 전화할걸. 요나스가 랭커리지한테 도발했나 봐.”
“요나스면 그 독일 최대 에이전시 사장 말하는 거지? 갑자기 웬 도발이래. 자기 과시형이긴 했어도 랭커리지하고는 딱히 충돌이 없었잖아.”
“이번에 파비엔 브란트가 뮌헨에서 첼시로 이적했잖아. 이적료도 상당하고. 그 외에도 몇 명 이적시키면서 랭커리지의 이적료 기록을 뛰어넘었나 봐.”
“참 그쪽 세계도 별걸로 다 자존심 싸움 한다니까.”
“너도 네가 존보다 주급 적다고 생각해봐.”
“아. 그렇게 말하니 이해했다. 재계약하기 전에 나보다 주급 높다고 얼마나 자랑했는데.”
바르셀로나와 계약하며 존의 주급이 에디의 주급을 뛰어넘었던 기간이 10개월 가까이 지속됐다. 존을 만날 때마다 ‘이적해야 하나.’라는 생각할 정도로 흥분한 적이 있었기에 랭커러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래서 너랑 크레토의 활약이 중요한 거야. 드리드핏이 계속해서 베이어와 산타를 잡고 전술훈련을 시키고 있으니까.”
“그거로 레쉬포드도 머리 아픈 거 같던데. 베이어와 산타면 둘이 합쳐서 오버래핑 한반도 나오지 않은 경기도 있었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너랑 크레토가 양쪽 윙에서 많이 뛰어야지.”
“나야 뭐 뛰는 것은 자신 있지만 크레토가 불만 많겠네.”
피오렌티나 윙포워드로 뛰면서 득점력을 과시했던 크레토였다. 이번 대회 3경기를 치를 동안 어시스트 1개만 기록하고 있을 뿐 득점이 없는 크레토였다. 자신의 몸값을 더 올리며 이적까지 생각하고 있는 크레토였기에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래도 팀을 먼저 생각해주고 있잖아.”
“크레토도 그동안 빛을 못 보고 있다가 이제야 겨우 빛을 보고 있잖아. 국가대표도 처음으로 뽑혔는데 열심히 해야지.”
“하여튼 너도 이제 그만 네 방으로 꺼져. 레이하고 통화해야 해.”
“나도 수아하고 통화해야 해. 간다.”
***
“분석관들이 예측하는 독일 라인업이 나왔습니다.”
드리드핏이 분석관들을 닦달해 만든 독일의 예상 라인업. 조별리그 3경기 동안 계속 선발 라인업이 바뀐 독일이었기에 분석관들도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결과였다.
“결국은 양쪽 윙은 그대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네요.”
“아무래도 우리가 계속 주전으로 출전시킨 윙백들이 핸더슨과 케일이었으니까요. 다리가 느리다는 약점이 확실하잖아요.”
분석관들의 예상 라인업을 보면 핸더슨과 케일을 노리고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80퍼센트 이상이었다.
“핸더슨과 케일을 내보내고 오버래핑을 계속 시키면?”
“에디의 활동 반경이 좁아지겠죠. 그렇지 않아도 활동 범위가 넓어 계속해서 핸더슨과 겹치는데요.”
“그렇죠.”
“그럼 결국은 베이어와 산타를 출전시켜야 하겠군요.”
“베이어와 케일을 출전시키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서로 호흡을 맞춰보지도 않은 수비수들을 기용하는 바보 같은 감독은 없죠.”
다음날 독일과의 8강 경기를 앞두고 새벽까지 이어진 코치진의 회의 끝에 잉글랜드의 라인업이 결정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왜 무서운지 보여줍시다.”
“이 라인업이면 할 수 있죠.”
레쉬포드와 드리드핏은 피곤한 얼굴임에도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